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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帝下 朝鮮人 道評議會·道會議員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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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687950

    • 저자
    • 발행사항

      城南: 韓國學中央硏究院, 2006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韓國學中央硏究院 韓國學大學院 , 歷史專攻 , 2006. 2

    • 발행연도

      2006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DDC

      951.6 판사항(21)

    • 발행국(도시)

      경기도

    • 형태사항

      xi, 369p. : 삽도 ; 26cm.

    • 일반주기명

      부록 : 도평의회·도회의원 명단과 주요 인물의 약력
      지도교수:권희영
      참고문헌 : p.291-307

    • 소장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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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제하에 존재한 地方議會(道評議會, 府協議會, 面協議會, 道會, 府會, 邑會)는 3·1 운동 직후 처음 설치되어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이 지방의회에서는 조선인·일본인 의원들이 지방행정의 자문과 예산 심의 및 기타 도행정과 관련된 자문 및 의결을 수행하였다. 이 논문은 지방의회 가운데에도 지방행정의 최고 기관인 道에 설치된 도평의회(1920년대)와 도회(1930년대 이후)에 진출한 조선인 의원들의 역사적 성격과 활동 내용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도평의회와 도회 제도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있으나 그 제도의 운영 및 그 제도에 참여한 의원들에 대한 연구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제도 및 운영상으로 도평의회와 도회는 많은 제한성을 갖고 있었고 ‘지방자치’에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일제가 이들 기관을 설치한 것은 조선인 가운데 일부 유력자를 지배체제의 일각에 끌어들여 일제의 통치에 순응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었다. 총독부측은 지방의원들이 당국과 일반 조선인 사이에서 ‘上通下達’의 매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에 참여한 조선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우선 이들이 일제에 대해 타협적이었다든가 일제의 정책에 협력했다는 점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력과 활동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할 경우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우선 극단적인 제도상의 제약 속에서도 의정 단상에서 조선인의 생활과 권리 향상을 위해 ‘질문전’을 펼친 의정활동을 들 수 있고, 많은 도평의원·도회의원(도평·도의로 약칭한다)들이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 경력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少數이기는 하지만 도평·도의가 된 이후에도 민족운동 내지 사회운동과 관련을 맺고 활동을 전개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의정활동의 결과는 도당국에서 마련한 예산안 등을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시키고 당국자들의 무성의한 답변 이외에 실질적인 정책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찍이 민족·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930년대 이후에는 협력활동에 적극적이 었던 도평·도의들이 많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논문에서는 약 1,370여명에 달하는 ‘모든’ 도평·도의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이들을 전국적 범위에서, 또한 1920년부터 1945년의 전기간에 걸쳐 망라하여 기초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이 논문에서 도평·도의들을 분석한 기본 시각은 ‘저항과 협력의 복합성과 중층성’, 그리고 ‘식민지적 근대’이다. 전민족이 일제의 직접 통치하에 놓이게 된 압도적인 민족모순의 무게만큼 차별적인 식민지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일제와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고, 일제의 통치가 근대문명의 전파 및 종속적 자본주의화를 이끈 만큼 거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 역시 거대하였다.

    도평·도의들은 의정활동 뿐 아니라 식민지의 조건에서 경제 활동, 관·공직 활동, 민족·사회운동, 일제에 대한 협력활동에 다각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논문은 그들의 활동 양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그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지방제도의 개정은 단순히 지방제도 자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제시기를 풍미한 참정·자치문제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관련되고 도평·도의들은 지방제도의 개정과 조선인의 참정권 문제, 조선자치의회를 구성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일제는 지방의회를 통해 지역유력자들을 지방지배의 하위 파트너로 삼아 통치를 안정시키고자 하였고, 조선인들은 일제의 ‘지방자치’의 허구성을 논박하고 지방자치의 완전한 실현을 요구하였다. 조선인의 입장에서 ‘지방자치’는 일제통치하에서 조선인의 정치적 권리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장래의 민족독립을 준비하는 정치적 훈련의 의미를 가졌다.

    도평·도의는 대부분 郡 단위의 지역유력자였고, 지역적 기반 위에서 일제당국 및지역민과 상호작용을 해 나갔다. 그들은 일제가 지방차원까지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역유력자층으로 형성되고, 그 중 일부는 전국적 명망성을 지닌 유력자로 성장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도평·도의들이 지역에서 일제 통치자의 하위동맹으로 지배체제 내에 포섭된 양상과, 지역민과 함께 지역 생활의 향상과 민족 차별의 시정을 위해 활동한 점을 규명하였다. 도평·도의들이 참여한 민족·사회운동이나 참정·자치운동, 내선 융화·내선일체운동을 통해 저항과 협력이 중층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평·도의에 대한 연구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식민지적 근대를 헤쳐 온 현대 한국 지배층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하기

    일제하에 존재한 地方議會(道評議會, 府協議會, 面協議會, 道會, 府會, 邑會)는 3·1 운동 직후 처음 설치되어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이 지방의회에서는 조선인·일본인 의원들이 지방행정�...

    일제하에 존재한 地方議會(道評議會, 府協議會, 面協議會, 道會, 府會, 邑會)는 3·1 운동 직후 처음 설치되어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이 지방의회에서는 조선인·일본인 의원들이 지방행정의 자문과 예산 심의 및 기타 도행정과 관련된 자문 및 의결을 수행하였다. 이 논문은 지방의회 가운데에도 지방행정의 최고 기관인 道에 설치된 도평의회(1920년대)와 도회(1930년대 이후)에 진출한 조선인 의원들의 역사적 성격과 활동 내용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도평의회와 도회 제도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있으나 그 제도의 운영 및 그 제도에 참여한 의원들에 대한 연구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제도 및 운영상으로 도평의회와 도회는 많은 제한성을 갖고 있었고 ‘지방자치’에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일제가 이들 기관을 설치한 것은 조선인 가운데 일부 유력자를 지배체제의 일각에 끌어들여 일제의 통치에 순응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었다. 총독부측은 지방의원들이 당국과 일반 조선인 사이에서 ‘上通下達’의 매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에 참여한 조선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우선 이들이 일제에 대해 타협적이었다든가 일제의 정책에 협력했다는 점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력과 활동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할 경우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우선 극단적인 제도상의 제약 속에서도 의정 단상에서 조선인의 생활과 권리 향상을 위해 ‘질문전’을 펼친 의정활동을 들 수 있고, 많은 도평의원·도회의원(도평·도의로 약칭한다)들이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 경력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少數이기는 하지만 도평·도의가 된 이후에도 민족운동 내지 사회운동과 관련을 맺고 활동을 전개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의정활동의 결과는 도당국에서 마련한 예산안 등을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시키고 당국자들의 무성의한 답변 이외에 실질적인 정책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찍이 민족·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930년대 이후에는 협력활동에 적극적이 었던 도평·도의들이 많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논문에서는 약 1,370여명에 달하는 ‘모든’ 도평·도의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이들을 전국적 범위에서, 또한 1920년부터 1945년의 전기간에 걸쳐 망라하여 기초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이 논문에서 도평·도의들을 분석한 기본 시각은 ‘저항과 협력의 복합성과 중층성’, 그리고 ‘식민지적 근대’이다. 전민족이 일제의 직접 통치하에 놓이게 된 압도적인 민족모순의 무게만큼 차별적인 식민지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일제와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고, 일제의 통치가 근대문명의 전파 및 종속적 자본주의화를 이끈 만큼 거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 역시 거대하였다.

    도평·도의들은 의정활동 뿐 아니라 식민지의 조건에서 경제 활동, 관·공직 활동, 민족·사회운동, 일제에 대한 협력활동에 다각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논문은 그들의 활동 양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그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지방제도의 개정은 단순히 지방제도 자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제시기를 풍미한 참정·자치문제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관련되고 도평·도의들은 지방제도의 개정과 조선인의 참정권 문제, 조선자치의회를 구성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일제는 지방의회를 통해 지역유력자들을 지방지배의 하위 파트너로 삼아 통치를 안정시키고자 하였고, 조선인들은 일제의 ‘지방자치’의 허구성을 논박하고 지방자치의 완전한 실현을 요구하였다. 조선인의 입장에서 ‘지방자치’는 일제통치하에서 조선인의 정치적 권리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장래의 민족독립을 준비하는 정치적 훈련의 의미를 가졌다.

    도평·도의는 대부분 郡 단위의 지역유력자였고, 지역적 기반 위에서 일제당국 및지역민과 상호작용을 해 나갔다. 그들은 일제가 지방차원까지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역유력자층으로 형성되고, 그 중 일부는 전국적 명망성을 지닌 유력자로 성장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도평·도의들이 지역에서 일제 통치자의 하위동맹으로 지배체제 내에 포섭된 양상과, 지역민과 함께 지역 생활의 향상과 민족 차별의 시정을 위해 활동한 점을 규명하였다. 도평·도의들이 참여한 민족·사회운동이나 참정·자치운동, 내선 융화·내선일체운동을 통해 저항과 협력이 중층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평·도의에 대한 연구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식민지적 근대를 헤쳐 온 현대 한국 지배층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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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日帝下に存在した地方議会(道評議会、府協議会、面協議会、道会、府会、邑会)は、 3․1運動直後、はじめて設置され、日帝末まで存続した。この地方議会では、朝鮮人及 び․日本人議員たちが、地方行政の諮問と、地方予算に対する審議、そのはかの道行政 に関する議決などをしたのである。本論文は、地方議会の中でも地方行政の最高機関で ある'道'につくられた、1920年代の道評議会と、1930年代以降の道会に参加 した朝鮮人議員の歴史的な性格と、活動の內容を糾明することを目標としている。

    いままで道評議会と道会の制度的な性格に関しては、ある程度、硏究成果がある。が、その制度の運營および、その制度に参加した議員たちに対する硏究は、とても足り ない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制度としても、運營の面でも、道評議会と道会は、多く の制限性があり、'地方自治'の水準には決して及んでいなかった。これらの機関を置 いた日帝の意圖は、朝鮮人のなかで、一部の有力者を支配体制の一角に編入させ、日帝 の統治に順應させようとしたのであり、議員たちが当局と一般の朝鮮人との間で'上通 下達'の媒介の役割をすることを期待したのである。

    その目的で作られた地方議会に参加した朝鮮人たちは、はたしてどんなひとびとで あったのか。もちろん、日帝に対する彼らの妥協性、あるいは協力を問題にしなければ ならない。しかし、この人々経歴と、彼らの活動に対して、実證的に硏究すれば、それ ほど単純な結論をだすことはできない。まず、極端的な制度上の制約の下でも、議政壇 上で朝鮮人の生活と権利の向上のため、'質問戰'を行った、かれらの議政活動があげ られる。また、数多くの道平․道議たちが議員になる以前に、民族運動とか、社会運動 に関心をもち、実際に関与したし、あるいは、議員になったあとでも少数はそのような 活動を続けたことが確認される。

    もちろん、議政活動の結果というのは、道当局で用意した予算案などを、原案通りに 通過させるぐらいで、当局者たちの誠意なき答弁以外に、実質的な政策改善を引き出す ことはほぼできなかった。過去の民族․社会運動参加者として、1930年代以後には、協 力活動に積極的になった多数の道平․道議の存在も否認できない。

    この論文では、約1380人にのぼる、'すべての'’道平․道議たちを分析の対象に して、全國的な範圍で、また1920年から1945年までの全期間にわたって、から れの基礎資eを調査し、これを基にして論旨を展開した。

    本論文で道平․道議たちを分析した基本的な視点は、'抵抗と協力の複合性(中層性)'、そして、'植民地的な近代'である。全朝鮮民族が日帝の直接統治下におか れ、壓倒的な民族矛盾を経験したほど、差別的な植民地現実を打開しようとする努力 は、日帝と衝突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し、日帝の統治が近代文明の伝播および(從属 的な)資本主義化を導いたほど、それに便乘しようとする慾望も、やはり巨大であっ た。

    道平․道議たちは、議政活動をした参加しただけでなく、植民地の条件の下で、경経済活動、官․公職活動、民族․社会運動、日帝に対する協力活動などに多面的に関与し た。この論文は、そのような活動の様子を全体的に把握しようとした。

    地方制度の改正は、単に地方制度問題にとどまることでなく、日帝時期を風靡した、 参政․自治問題と深い関連性をもっていた。本論文では、それが、どのように関連さ れ、道平․道議たちは、地方制度の改正、朝鮮人の参政権問題、朝鮮自治議会を構成す る問題などに、どのように対応したのか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

    日帝は、地方議会を通じて地域有力者らを、地方支配の下位パートナにしようとし、 朝鮮人たちは、'地方自治'の完全な実現を要求した。朝鮮人の立場から見ると、'地 方自治'は、朝鮮人の政治的な権利を向上させ、将来の民族独立を準備する政治的な訓 練を意味した。

    道平․道議は、ほとんど、郡単位での地域有力者であって、地域的な基盤の을갖고日 帝当局、および地域民とそれぞれ相互作用をしていった。かれらは日帝が地方の次元ま で支配構造を確立している過程で、地域有力者層として形成され、そのなかで一部は、 全国的な名望をもつ有力者になった。

    本論文では、かれらが地域で日帝統治者の下位同盟として支配体制のなかに包攝され た樣相と、地域民とともに生活の向上と民族差別の是正のために活動した点を糾明し た。道平․道議たちの参加した民族․社会運動や、協力活動の內容から見て、抵抗と協力 が中層的に現れた。道平․道議に対する硏究は、多くの施行錯誤をへて、植民地的な近 代を乗り越えてきた、現代韓國の支配層の起源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も役にたつだろう と思う。
    번역하기

    日帝下に存在した地方議会(道評議会、府協議会、面協議会、道会、府会、邑会)は、 3․1運動直後、はじめて設置され、日帝末まで存続した。この地方議会では、朝鮮人及 び․日本人議...

    日帝下に存在した地方議会(道評議会、府協議会、面協議会、道会、府会、邑会)は、 3․1運動直後、はじめて設置され、日帝末まで存続した。この地方議会では、朝鮮人及 び․日本人議員たちが、地方行政の諮問と、地方予算に対する審議、そのはかの道行政 に関する議決などをしたのである。本論文は、地方議会の中でも地方行政の最高機関で ある'道'につくられた、1920年代の道評議会と、1930年代以降の道会に参加 した朝鮮人議員の歴史的な性格と、活動の內容を糾明することを目標としている。

    いままで道評議会と道会の制度的な性格に関しては、ある程度、硏究成果がある。が、その制度の運營および、その制度に参加した議員たちに対する硏究は、とても足り ない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制度としても、運營の面でも、道評議会と道会は、多く の制限性があり、'地方自治'の水準には決して及んでいなかった。これらの機関を置 いた日帝の意圖は、朝鮮人のなかで、一部の有力者を支配体制の一角に編入させ、日帝 の統治に順應させようとしたのであり、議員たちが当局と一般の朝鮮人との間で'上通 下達'の媒介の役割をすることを期待したのである。

    その目的で作られた地方議会に参加した朝鮮人たちは、はたしてどんなひとびとで あったのか。もちろん、日帝に対する彼らの妥協性、あるいは協力を問題にしなければ ならない。しかし、この人々経歴と、彼らの活動に対して、実證的に硏究すれば、それ ほど単純な結論をだすことはできない。まず、極端的な制度上の制約の下でも、議政壇 上で朝鮮人の生活と権利の向上のため、'質問戰'を行った、かれらの議政活動があげ られる。また、数多くの道平․道議たちが議員になる以前に、民族運動とか、社会運動 に関心をもち、実際に関与したし、あるいは、議員になったあとでも少数はそのような 活動を続けたことが確認される。

    もちろん、議政活動の結果というのは、道当局で用意した予算案などを、原案通りに 通過させるぐらいで、当局者たちの誠意なき答弁以外に、実質的な政策改善を引き出す ことはほぼできなかった。過去の民族․社会運動参加者として、1930年代以後には、協 力活動に積極的になった多数の道平․道議の存在も否認できない。

    この論文では、約1380人にのぼる、'すべての'’道平․道議たちを分析の対象に して、全國的な範圍で、また1920年から1945年までの全期間にわたって、から れの基礎資eを調査し、これを基にして論旨を展開した。

    本論文で道平․道議たちを分析した基本的な視点は、'抵抗と協力の複合性(中層性)'、そして、'植民地的な近代'である。全朝鮮民族が日帝の直接統治下におか れ、壓倒的な民族矛盾を経験したほど、差別的な植民地現実を打開しようとする努力 は、日帝と衝突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し、日帝の統治が近代文明の伝播および(從属 的な)資本主義化を導いたほど、それに便乘しようとする慾望も、やはり巨大であっ た。

    道平․道議たちは、議政活動をした参加しただけでなく、植民地の条件の下で、경経済活動、官․公職活動、民族․社会運動、日帝に対する協力活動などに多面的に関与し た。この論文は、そのような活動の様子を全体的に把握しようとした。

    地方制度の改正は、単に地方制度問題にとどまることでなく、日帝時期を風靡した、 参政․自治問題と深い関連性をもっていた。本論文では、それが、どのように関連さ れ、道平․道議たちは、地方制度の改正、朝鮮人の参政権問題、朝鮮自治議会を構成す る問題などに、どのように対応したのか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

    日帝は、地方議会を通じて地域有力者らを、地方支配の下位パートナにしようとし、 朝鮮人たちは、'地方自治'の完全な実現を要求した。朝鮮人の立場から見ると、'地 方自治'は、朝鮮人の政治的な権利を向上させ、将来の民族独立を準備する政治的な訓 練を意味した。

    道平․道議は、ほとんど、郡単位での地域有力者であって、地域的な基盤の을갖고日 帝当局、および地域民とそれぞれ相互作用をしていった。かれらは日帝が地方の次元ま で支配構造を確立している過程で、地域有力者層として形成され、そのなかで一部は、 全国的な名望をもつ有力者になった。

    本論文では、かれらが地域で日帝統治者の下位同盟として支配体制のなかに包攝され た樣相と、地域民とともに生活の向上と民族差別の是正のために活動した点を糾明し た。道平․道議たちの参加した民族․社会運動や、協力活動の內容から見て、抵抗と協力 が中層的に現れた。道平․道議に対する硏究は、多くの施行錯誤をへて、植民地的な近 代を乗り越えてきた、現代韓國の支配層の起源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も役にたつだろう 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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