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어린이기(childhood)"라는 주제를 통해서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 가족의 변화상을 추적하고자 하는 연구이다. 여기서 "어린이기"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린이라는 집단에 대해서 ...
이 연구는 "어린이기(childhood)"라는 주제를 통해서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 가족의 변화상을 추적하고자 하는 연구이다. 여기서 "어린이기"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린이라는 집단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의하는 방식,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 및 관행,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제도 및 실천과 관련된 것으로,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발생하고 가족의 근대적 변형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서 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한 해석은 자유와 자율성의 확대라는 기존의 주류적인 해석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즉 근대사회가 인간의 신체에 가하는 통제적인 측면인 훈육화(disciplination)를 강조하는 시각과, 지식이 사회지배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하는 최근의 연구성과들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어린이의 신체와 정신을 주조해내는 사회적 과정을 크게 (신체관리의) 의료화와 (제도교육을 중심으로 한) 규율화의 차원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주요 수행집단(agent)의 성격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연구의 과제로 설정한 점은 세가지로서 첫째, 일제 식민지 시기, 특히 일제 지배가 정교화한 1920-40년 동안 생산된 어린이에 대한 담론의 내용을 실증적으로 밝히는 것, 둘째, 그러한 담론의 생산에 개입한 사회집단의 성격을 그들이 전개한 실제적 사업내용을 중심으로 제도수준에서 분석하는 것, 셋째, 그러한 담론과 사회제도에 대해서 가족이 대응한 양식, 혹은 가족 변화를 살피는 것이다.
연구방법으로서는 역사적 문헌연구 방법을 택하였다. 기존의 연구가 없는 탓에 일차적으로는 1920-40년의 일간지(동아일보)의 어린이ㆍ가정관련 기사를 집중분석하여 일제하 어린이에 대한 담론의 주요한 경향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나타나는 주요 사회집단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어린이정책과 사업내용을 분석하였다. 총독부의 아동관련 정책으로는 사회사업과 교육부분을 살펴보았는데, 朝鮮社會事業協會의 {朝鮮社會事業}과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에서 발행한 {朝鮮の敎育硏究}를 검토하였다. 교회의 아동정책과 사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간지의 분석과 함께 모자보건기구에서 발간한 단행본을 사용하였으며, 교회사관련 2차자료를 참고하였다. 이외에 {朝鮮總督府統計年報}, {朝鮮國稅調査報告} 등의 통계를 이용하였다.
연구의 결과 일제식민지 시기, 특히 1920-30년대를 통해 한국사회는 어린이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담론들을 생산해내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개입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켜내고자 노력하였음이 발견되었다.
연구의 결과를 어린이의 육체적 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의료화와, 교육을 중심으로 분석한 규율화의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어린이의 육체적 보호 및 관리의 측면을 보면, 식민지 시기 어린이의 "몸"은 위생과 건강론(질병으로부터의 보호), 양육의 표준화. 수량화 담론 및, 유유아 사망률 저하를 위한 사회제도적 노력 등에 힘입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호와 관리의 주요 대상으로 부상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근대적" 양육 담론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기구는 우선 미국의 의료선교기구의 모자보건사업으로 드러났다. 모자보건기구는 서양의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한 양육법을 교화하여 전통 양육법을 개량시키고자 하였으며, 어린이들이 보다 규율적인 생활원리를 체화할 수 있도록 추구하였다. 한편 식민지 권력은 사회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위생이나 방역사업 등 강력한 의료화 기반을 구축하였으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특화한 의료적 관리는 미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교회의 모자보건사업은 이러한 빈 공간을 성공적으로 침투해 내었다.
한편 어린이 교육에 대한 담론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자녀의 권리와 교육권에 대한 강조, 둘째, 서구 유아교육이념의 도입에 따른 새로운 교육론, 셋째, 자녀교육에서의 규율성을 강조하는 담론이다. 권리론에서는 특히 장유유서의 질서가 비판되었고, 어린이의 피교육권이 강조되었다. 서구 유아교육이론의 도입을 통해서는 어린이가 성인과는 매우 다른 지적ㆍ정서적 특징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하면서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적합한 아동중심적 교육방법이 제기되었다. 셋째, 자녀교육에서의 규율성은 서구적 자녀교육법이 소개되면서, 또한 취학률이 증대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공통적으로 규율적인 생활태도와 시간관념의 형성을 강조하였다.
제도수준의 분석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제도를 분석하였는데 초등학교의 규율화 노력이 두드러졌다. 초등학교는 학교생활 전반에서의 규율과 질서, 그리고 노동규율의 훈육화를 위한 잠재적, 공식적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자율적 복종기제 형성을 통한 사회질서의 체화라는 근대 교육의 원리를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 주체 형성과정과는 달리 한국사회의 어린이기는 아동의 인격과 권리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한부분으로 포함하고 있었던 점이 특징인데 한울사상에 기반한 천도교측의 어린이운동에서 그러한 성격이 강했다.
어린이기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에 대해 가정이 대응한 양상 내지 변화한 모습은 아래와 같다. 단순화시켜 보면 식민지 시기 가족은 어린이기의 사회적 구축과정과 상호작용하는 속에서 일부 중상층 가정에서는 모성역할의 강화를,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는 자녀의 부양대상화라는 가족역할의 변화를 경험하였는데 후자는 부모자녀관계가 (부모에 대한) 효도 중심에서 (자녀에 대한) 부양중심적 관계로 변화하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모성역할의 강화현상은 일부 중상류층 신여성집단에서 나타났는데 이들이 모성역할의 전문화 담론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태도를 보인 것은 그것이 "여성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개화와 개명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자녀의 취학률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으로 친족집단이 지배하고 있던 가족은 미약하지만 서서히 국가관리체계 내로 포섭되어가는 변화의 조짐이 노정되고 있었다.
한편 한국가족에 대한 근대의 영향력의 다차원성도 드러나는데, 즉 유유아(학령전기 자녀)에 대한 미국적 근대의 영향력과, 학령기 어린이에 대한 일본적 근대의 지배력이 공존하는 체제가 그것이다. 이는 일제는 학교와 같은 제도교육의 영역은 장악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제도화의 정도가 약했던 문화적ㆍ사회적 공간에서는 미국 등 다른 식민주의 세력과 경합을 벌였음을 의미하며, 이 논문에서 다룬 가정과 어린이, 특히 아직 학교체제로 편입하기 전인 유유아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