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南善(1890-1957)은 한말부터 일제시기를 걸쳐 해방 후까지 역사학, 민속학, 저널이즘 (출판 및 신문·잡지의 발간) 등 문화·학술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민족주의 우파계열’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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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高麗大學校, 2005
2005
한국어
911.06 판사항(4)
951.903 판사항(21)
서울
iii, 202p.: 삽도; 26cm
참고문헌: p.19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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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南善(1890-1957)은 한말부터 일제시기를 걸쳐 해방 후까지 역사학, 민속학, 저널이즘 (출판 및 신문·잡지의 발간) 등 문화·학술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민족주의 우파계열’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광범위한 분야의 저술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상사 연구의 측면에서 崔南善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崔南善에 관한 연구는 한말-일제하-해방 후라는 복잡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각기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 민족주의의 모습과 식민지적 근대가 무엇이었는가에 관해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또한 崔南善은 각각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치적 입장은 물론 사상적으로도 일관성보다는 자기 矛盾·균열의 모습을 보였다. 각 장별로 살핀 崔南善의 ‘식민지적 근대’와 ‘조선학 연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韓末부터 1910년대까지 崔南善은 출판·번역을 통해 서구 근대 문명을 소개했고, ‘조선학’ 연구의 토대가 될 朝鮮光文會 활동 및 조선의 역사·지리에 관한 연구를 했다. 아울러 1918년 ??自助論??을 번역하여 자본주의 근대와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빅토리안 가치관을 소개하고자 했다. 둘째, 1910년대 崔南善의 근대에 대한 체험을 철도 여행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근대적 방법론을 적용한 민족의 기원과 檀君 硏究, 민족사의 구상 등을 살펴보았다. 셋째, 1920년대 본격적으로 진행된 민족성 논의, 기행문, 단군 연구, 조선불교 연구 등 최남선의 ‘朝鮮學’ 연구를 검토했다. 조선인의 손에 의한 조선 문화 연구의 필요성을 제창한 ‘조선학’ 연구는 제국주의적 학문인 지역학에 대항하고자 함에서 비롯되었다. 넷째, 1930년대 이후 전시체제하에서의 崔南善의 ‘조선학’ 연구가 어떻게 변용되고 동요했는지를 검토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崔南善은 세계적 보편성을 지녔다고 인식한 文化와 힘의 논리를 신봉하는 근대적 입장을 조선적인 특수성보다 우위에 놓았다. 다섯째, 해방 후 崔南善이 일제말 親日行爲와 실추된 ‘문화적 권위’를 해방공간 속에서 어떻게 복원하고자 시도했는가를 다루었다.
일제시기 민족주의를 왜 崔南善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물음에 다시 自問하면, 崔南善은 우리에게 ‘올바른’ 민족주의가 무엇인지를 살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崔南善은 한말부터 1920년대, 1930년대 중반, 해방 후라는 상황 속에서 崔南善은 상호 배타적으로 보이는 민족주의와 친일의 境界에 서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崔南善이란 한 인물의 사상적·논리적 변화를 통해 우리의 근대·민족주의가 잘 이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된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오늘날, 崔南善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근대 민족주의의 모습 가운데 지양해야 할 바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崔南善 연구의 현재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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