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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周恩來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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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363872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2005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 아·태지역연구학과 , 2005. 8

      • 발행연도

        2005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ii, 98 p. : 색채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조정남
        부록수록
        참고문헌 : p. 91-92

      • 소장기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고려대학교 세종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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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논문초록

      1976년 1월 8일 周恩來의 서거에 다수의 국가가 조기를 게양하는 등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UN본부에서는 애도기간에 가맹국의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UN기만을 조기로 게양했다. 이것은 UN으로서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였다.
      周恩來는 외빈을 초대하여 수많은 만찬을 베풀었지만, 인민대회당에서 만찬을 들기 전에 보통 북경호텔 주방에서 국수 한 사발을 먹었다. 그래서 귀빈들에게 모든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이렇게 중국은 물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周恩來를 알아보고자 周恩來의 외교정책 연구를 논문 주제로 선택하게 되었다.
      본 논문의 구성으로 제 1장에서는 한중관계 발전과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대외 위상 등을 근거로 중국 외교의 기본 원칙과 기본 노선, 기본 정책 등을 구성하고 있는 周恩來 외교정책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더불어 연구방법과 연구범위를 제시했다.
      제 2장에서는 周恩來에 대한 소개로 周恩來 生涯에 대한 약술(略述)과 周恩來 외교의 기원을 알아봤다.
      제 3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周恩來가 실행한 周恩來 외교의 주요 내용을 알아봤다.
      제 4장에서는 周恩來 외교정책, 周恩來․毛澤東 외교정책 연관성, 중국 외교정책에 대한 周恩來의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제 5장에서는 본 연구의 결론으로서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고 연구의 결론을 정리했다.

      周恩來는 건국초기에 정무원 총리 겸 외교부 부장으로 임명 되었다. 이후로 계속하여 서거할 때까지 26년간 총리 직을 수행했고, 외교부 부장 직은 9년 후 다른 사람이 맡았으나 중대한 외교현안에서는 계속 외교업무를 직접 관리했다. 여기에서 중국의 외교정책과 周恩來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명확하게 구분하여 대답할 수가 없다. 단지 건국초기부터 계속하여 1〜2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26년간 중단 없이 계속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중국의 외교정책이 周恩來의 외교정책이요, 周恩來의 외교정책이 중국의 외교정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周恩來가 외교전면에서 직접 실행한 정책이기에 周恩來의 외교정책이라고 표현하였다.
      周恩來의 외교정책으로
      일변도(一邊倒) 정책 : 즉 “일방적이다”라는 표현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친다”로 중국이 개국 초기 제정한 정책으로 다분히 소련을 염두에 둔 정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전날 소집된 중앙정치협상회의에서 통과된 공동강령 제1장 11조에서 “대외 정책은 소련과 연합하여 제국주의 침략을 공동으로 반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여 대소 “一辺倒”(일방주의)외교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정책선택의 이면에는 현실을 감안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평화공존5원칙 과 구동존이(求同存異)정책 : 1953년 12월 31일, 周恩來는 중남해 서화정(西花廳)에서 회담차 북경에 온 인도대표단과 접견시 “평화공존5원칙”을 제의하였다. (周恩來 1955. 6월에 인도에서 평화공존5원칙 네루수상과 공동발표)
      그것은 바로 영토주권을 상호존중하고, 침범하지 않고, 내정 불간섭, 평등호혜와 평화 공존의 원칙이다.
      1955년 4월 18일 (24일까지)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서 周恩來는 국제관계중 평화공존5원칙을 실행하는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29개 참가국의 국가체계나 외교노선이 차이가 매우 크고, 참가국 중 중국과 베트남만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단지 5개국의 정식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周恩來는 보충연설 중에 ‘求同存异(공동한 것을 추구하며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정신을 중점적으로 강조하였는데 즉 사회제도와 의식형태의 차이를 접어 두고 평화공존의 원칙 하에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부분 식민지주의의 재난과 고통을 받은 국가들이 식민주의를 반대하고, 독립과 평화를 쟁취, 수호하며 민족경제와 문화 등 발전시키는데서 공통된 염원과 요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아세아-아프리카국가들 중에 서로 다른 이념과 사회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求同存异정신으로 단결을 추구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周恩來가 구동존이(求同存异) 정신을 강조하여 반둥회의 10원칙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민간선행, 이민촉관, 선발제인(民間先行, 以民促官, 先發制人)정책 : 중미, 중일 외교에서 나타난다. 1970년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다. 대회가 끝난 후 중국탁구팀은 시합에 참가한 각국 탁구 대표단을 중국에 초청하여 우호방문을 진행하라는 국내의 긴급지시를 받고, 미국탁구팀의 중국방문을 초청한 것은 중국정부가 중미민간의 우호왕래와 중미관계 회복을 수립하기 위하여 중대한 절차를 채택한 것이다.
      1971년 4월 14일, 周恩來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했다.
      周恩來는 1953년부터 1975년의 22년간 일본에서 온 손님을 298차 회견하였으며 그중 일본 각계의 중국방문 단체가 회견한 횟수가 200번이다. 매번 회견한 인원은 평균 10명이고 총 300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서 周恩來가 민간외교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민간이 먼저 행하고, 이것이 정부를 촉진하며, 먼저 기선을 제압 한다 혹은 선수를 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周恩來는 외교에서 시종일관 “實事求是(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다)”와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한다.”를 기본으로, 조사연구를 중요시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중시하고, 전면적으로 상황파악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대책을 세워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소련과의 “一邊倒”, 반둥회의의 “평화공존5원칙”과 “求同存异”, 미일과의 “民間先行, 以民促官”과 “先發制人” 등의 외교정책을 시의 적절하게 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번역하기

      논문초록 1976년 1월 8일 周恩來의 서거에 다수의 국가가 조기를 게양하는 등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UN본부에서는 애도기간에 가맹국의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UN기만을 조기로 게양했다. ...

      논문초록

      1976년 1월 8일 周恩來의 서거에 다수의 국가가 조기를 게양하는 등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UN본부에서는 애도기간에 가맹국의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UN기만을 조기로 게양했다. 이것은 UN으로서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였다.
      周恩來는 외빈을 초대하여 수많은 만찬을 베풀었지만, 인민대회당에서 만찬을 들기 전에 보통 북경호텔 주방에서 국수 한 사발을 먹었다. 그래서 귀빈들에게 모든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이렇게 중국은 물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周恩來를 알아보고자 周恩來의 외교정책 연구를 논문 주제로 선택하게 되었다.
      본 논문의 구성으로 제 1장에서는 한중관계 발전과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대외 위상 등을 근거로 중국 외교의 기본 원칙과 기본 노선, 기본 정책 등을 구성하고 있는 周恩來 외교정책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더불어 연구방법과 연구범위를 제시했다.
      제 2장에서는 周恩來에 대한 소개로 周恩來 生涯에 대한 약술(略述)과 周恩來 외교의 기원을 알아봤다.
      제 3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周恩來가 실행한 周恩來 외교의 주요 내용을 알아봤다.
      제 4장에서는 周恩來 외교정책, 周恩來․毛澤東 외교정책 연관성, 중국 외교정책에 대한 周恩來의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제 5장에서는 본 연구의 결론으로서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고 연구의 결론을 정리했다.

      周恩來는 건국초기에 정무원 총리 겸 외교부 부장으로 임명 되었다. 이후로 계속하여 서거할 때까지 26년간 총리 직을 수행했고, 외교부 부장 직은 9년 후 다른 사람이 맡았으나 중대한 외교현안에서는 계속 외교업무를 직접 관리했다. 여기에서 중국의 외교정책과 周恩來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명확하게 구분하여 대답할 수가 없다. 단지 건국초기부터 계속하여 1〜2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26년간 중단 없이 계속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중국의 외교정책이 周恩來의 외교정책이요, 周恩來의 외교정책이 중국의 외교정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周恩來가 외교전면에서 직접 실행한 정책이기에 周恩來의 외교정책이라고 표현하였다.
      周恩來의 외교정책으로
      일변도(一邊倒) 정책 : 즉 “일방적이다”라는 표현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친다”로 중국이 개국 초기 제정한 정책으로 다분히 소련을 염두에 둔 정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전날 소집된 중앙정치협상회의에서 통과된 공동강령 제1장 11조에서 “대외 정책은 소련과 연합하여 제국주의 침략을 공동으로 반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여 대소 “一辺倒”(일방주의)외교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정책선택의 이면에는 현실을 감안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평화공존5원칙 과 구동존이(求同存異)정책 : 1953년 12월 31일, 周恩來는 중남해 서화정(西花廳)에서 회담차 북경에 온 인도대표단과 접견시 “평화공존5원칙”을 제의하였다. (周恩來 1955. 6월에 인도에서 평화공존5원칙 네루수상과 공동발표)
      그것은 바로 영토주권을 상호존중하고, 침범하지 않고, 내정 불간섭, 평등호혜와 평화 공존의 원칙이다.
      1955년 4월 18일 (24일까지)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서 周恩來는 국제관계중 평화공존5원칙을 실행하는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29개 참가국의 국가체계나 외교노선이 차이가 매우 크고, 참가국 중 중국과 베트남만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단지 5개국의 정식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周恩來는 보충연설 중에 ‘求同存异(공동한 것을 추구하며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정신을 중점적으로 강조하였는데 즉 사회제도와 의식형태의 차이를 접어 두고 평화공존의 원칙 하에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부분 식민지주의의 재난과 고통을 받은 국가들이 식민주의를 반대하고, 독립과 평화를 쟁취, 수호하며 민족경제와 문화 등 발전시키는데서 공통된 염원과 요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아세아-아프리카국가들 중에 서로 다른 이념과 사회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求同存异정신으로 단결을 추구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周恩來가 구동존이(求同存异) 정신을 강조하여 반둥회의 10원칙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민간선행, 이민촉관, 선발제인(民間先行, 以民促官, 先發制人)정책 : 중미, 중일 외교에서 나타난다. 1970년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다. 대회가 끝난 후 중국탁구팀은 시합에 참가한 각국 탁구 대표단을 중국에 초청하여 우호방문을 진행하라는 국내의 긴급지시를 받고, 미국탁구팀의 중국방문을 초청한 것은 중국정부가 중미민간의 우호왕래와 중미관계 회복을 수립하기 위하여 중대한 절차를 채택한 것이다.
      1971년 4월 14일, 周恩來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했다.
      周恩來는 1953년부터 1975년의 22년간 일본에서 온 손님을 298차 회견하였으며 그중 일본 각계의 중국방문 단체가 회견한 횟수가 200번이다. 매번 회견한 인원은 평균 10명이고 총 300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서 周恩來가 민간외교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민간이 먼저 행하고, 이것이 정부를 촉진하며, 먼저 기선을 제압 한다 혹은 선수를 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周恩來는 외교에서 시종일관 “實事求是(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다)”와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한다.”를 기본으로, 조사연구를 중요시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중시하고, 전면적으로 상황파악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대책을 세워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소련과의 “一邊倒”, 반둥회의의 “평화공존5원칙”과 “求同存异”, 미일과의 “民間先行, 以民促官”과 “先發制人” 등의 외교정책을 시의 적절하게 운용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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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 차
      • 제 1 장 서 론
      • 제 1 절 연구의 목적
      • 제 2 절 연구의 방법 및 범위
      • 1. 연구의 방법
      • 목 차
      • 제 1 장 서 론
      • 제 1 절 연구의 목적
      • 제 2 절 연구의 방법 및 범위
      • 1. 연구의 방법
      • 2. 연구의 범위
      • 제 2 장 周恩來 외교의 기원
      • 제 1 절 周恩來 생애(生涯)
      • 제 2 절 周恩來 외교의 기원
      • 제 3 장 周恩來 외교의 주요 내용
      • 제 1 절 소련과 외교조약
      • 제 2 절 한국전 참전
      • 제 3 절 제네바 회의
      • 제 4 절 平和共存5원칙과 반둥회의
      • 제 5 절 중미 관계 정상화
      • 제 6 절 중일 국교 정상화
      • 제 4 장 중국 외교정책에 대한 周恩來의 영향
      • 제 1 절 周恩來 외교정책
      • 제 2 절 周恩來毛澤東 외교정책 연관성
      • 1. 周恩來毛澤東 외교정책 통일성
      • 2. 周恩來毛澤東 외교정책 보완성
      • 3. 周恩來毛澤東 외교정책 차이점
      • 제 3 절 중국외교정책에 대한 周恩來의 영향
      • 제 5 장 결 론
      • 참고문헌
      • 부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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