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기독교 및 일본의 종파불교가 유입되면서 정부의 숭유억불의 불교정책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은 전통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던 의승군과 도총섭 제도를 없애면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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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中央大學校 大學院, 2006
2006
한국어
서울
v, 307 p. ; 2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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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개항 이후 기독교 및 일본의 종파불교가 유입되면서 정부의 숭유억불의 불교정책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은 전통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던 의승군과 도총섭 제도를 없애면서 불...
개항 이후 기독교 및 일본의 종파불교가 유입되면서 정부의 숭유억불의 불교정책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은 전통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던 의승군과 도총섭 제도를 없애면서 불교와 국가관계를 새롭게 변화시켰다. 이후 원흥사 및 사사관리서를 통한 불교의 국가 관리체제가 시도되었다가 실패하면서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조선불교계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영향 아래 근대적 교육과 포교에 대한 고민과 내용이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외세를 만나게 되었다. 일제는 1911년 寺刹令을 반포함으로써 불교계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하고자 하였다. 소위 ‘寺刹令 體制’로서 30개 本山과 그 아래 末寺로 편재되는 本末제도와 寺法의 시행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총독부 불교정책의 기본적인 틀이었다.
일제당국은 사찰령을 통하여 조선 사찰의 재산을 관리하고자 하였고, 본산주지에게 강력한 권능을 부여하면서 불교계 교단을 통제하고자 했다. 이에 본산주지들은 ‘寺法’이라는 법률적 통제를 통하여 末寺를 장악하면서 조선불교계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였다.
그럼에도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 조직적인 사찰령 비판과 철폐운동은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로 사찰령에 대하여 우호적이었다. 이에 조선불교계는 여타 종교와는 달리 사찰령 체제로 식민지체체에 연착륙할 수 있었다.
총독부는 30본산 주지들을 중심으로 조선불교계를 재편하고자 하였고, 30본산들도 이에 적극 동참하면서 30본산주지회의소와 30본산연합사무소 등을 만들어 운용하였다. 이는 총독부의 불교계 통제와 관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조선불교계 내부의 중앙교단 조직이라는 요구도 일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이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조직되고 총본산 체제로 발전하면서 중앙교단이 운영되었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사찰령 체제의 본산제도의 틀은 변화하지 않았다.
사찰령 체제의 본말제도는 권력기관인 조선총독이 본산주지를 인가함에 따라 종교의 세속화를 가져왔다. 더욱이 대처육식에 대한 금제가 사실상 없어진 상황에서 승려들의 타락과 세속화는 가속되었다. 이에 사찰령 체제에서 본산주지 문제는 지속적인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고, 본산별 경쟁에 따라 조선불교계의 통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찰령은 기본적으로 조선불교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라 조선사찰의 재산을 관리하고 조선불교의 급격한 변화를 방지하면서 ‘現狀維持’를 하고자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조선불교계에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지금도 구속력을 갖는 제도로서 본산제도는 사찰령 체제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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