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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930년대 동아일보 계열의 정세인식 변화와 배경 = 체제 비판에서 체제 굴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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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9997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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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수정자본주의적 사상을 수용하여 내재화한 일제하 민족주의 정치세력이 1930년대 파시즘의 대두라는 전 세계적 시대 조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하여 갔는가를 동아일보 계열의 정세인식과 대응을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아일보는 1930년대 중반까지는 일제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적 기조를 유지하였다. 1930년대 초반부터 일본 군국주의 대두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보이고 있었고, 그 배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분석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이를 통해 파시즘의 전 세계적 대두라는 조건 속에서 세계의 대세는 그 이전의 민족자결, 세계개조, 민주발전이라는 진보적 긍정적 변화에서 돌변하여 국가주의적 블록화, 독재화, 반동화로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고, 파시즘의 대두가 조선에서는 식민지 억압을 강화시키고 모든 민주적 권리를 말살해 가는 반동적 체제를 강화시킬 것이며, 이에 따라 조선에서의 민족자결, 민족자치, 민주적 권리의 신장이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했다. 동아일보 주도세력은 파시즘이 역사 발전에 역행하는 ‘반동사상’이며, 민중의 헌법적 권리행사를 유보시키는 ‘근대화한 전제주의’로서 ‘정치적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옹호하였다.
    1936년 2?26사건을 계기로 통제파가 장악한 일본 군부가 정치일선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건 후 성립된 히로타 고키 내각은 사실상 군부에 의해 움직였다. 동아일보는 히로타 내각을 국방 내각이라고 규정하면서, 군비 증강을 통해 대륙 침략의 길로 가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들은 총독부의 극심해진 언론 검열 상황을 반영하여 완곡한 형태로 히로타 내각과 군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비판하였다.
    동아일보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파시스트세력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통해 간접적인 형식을 빌어서 일본의 파시즘화를 비판하였다. 또한 유럽에서 반파시즘 인민전선 운동이 전개되자,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이는 그 이념이나 노선을 동의해서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파시즘의 대두와 일본의 군국주의 파시즘화는 조선의 독립 및 민주적 재편을 더욱 멀게 할 것이라는 정세 판단위에서, 파시즘과 군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성원하기 위한 전술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1936년 손기정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10개월간의 무기정간에 처해지면서 태도가 변화하게 된다. 일제의 강력한 언론통제책에 굴복하여 일제와 타협하고 일제 정책을 지지 선전하는 논조로 변화하였다. 또한 1920∼30년대를 걸쳐 동아일보를 주도하던 송진우가 퇴진하면서 주도층에 변화가 있게 된다. 그렇지만 동아일보의 이런 모습은 일본파시즘 체제에 자발적 포섭되어 가는 민족운동 세력들의 체제 포섭과 규정의 모습이 아닌 굴종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더군다나 일제에 의해 동아일보의 강제폐간은 굴종의 길을 걷던 동아일보 세력이 민족운동 세력으로서 정치적으로 회생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사정이 해방직후 국내 민족주의 세력, 우파 세력 결집의 중심에 동아일보 계열이 있을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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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수정자본주의적 사상을 수용하여 내재화한 일제하 민족주의 정치세력이 1930년대 파시즘의 대두라는 전 세계적 시대 조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하여 갔는가를 동아일보...

    본 연구는 수정자본주의적 사상을 수용하여 내재화한 일제하 민족주의 정치세력이 1930년대 파시즘의 대두라는 전 세계적 시대 조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하여 갔는가를 동아일보 계열의 정세인식과 대응을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아일보는 1930년대 중반까지는 일제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적 기조를 유지하였다. 1930년대 초반부터 일본 군국주의 대두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보이고 있었고, 그 배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분석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이를 통해 파시즘의 전 세계적 대두라는 조건 속에서 세계의 대세는 그 이전의 민족자결, 세계개조, 민주발전이라는 진보적 긍정적 변화에서 돌변하여 국가주의적 블록화, 독재화, 반동화로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고, 파시즘의 대두가 조선에서는 식민지 억압을 강화시키고 모든 민주적 권리를 말살해 가는 반동적 체제를 강화시킬 것이며, 이에 따라 조선에서의 민족자결, 민족자치, 민주적 권리의 신장이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했다. 동아일보 주도세력은 파시즘이 역사 발전에 역행하는 ‘반동사상’이며, 민중의 헌법적 권리행사를 유보시키는 ‘근대화한 전제주의’로서 ‘정치적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옹호하였다.
    1936년 2?26사건을 계기로 통제파가 장악한 일본 군부가 정치일선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건 후 성립된 히로타 고키 내각은 사실상 군부에 의해 움직였다. 동아일보는 히로타 내각을 국방 내각이라고 규정하면서, 군비 증강을 통해 대륙 침략의 길로 가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들은 총독부의 극심해진 언론 검열 상황을 반영하여 완곡한 형태로 히로타 내각과 군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비판하였다.
    동아일보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파시스트세력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통해 간접적인 형식을 빌어서 일본의 파시즘화를 비판하였다. 또한 유럽에서 반파시즘 인민전선 운동이 전개되자,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이는 그 이념이나 노선을 동의해서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파시즘의 대두와 일본의 군국주의 파시즘화는 조선의 독립 및 민주적 재편을 더욱 멀게 할 것이라는 정세 판단위에서, 파시즘과 군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성원하기 위한 전술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1936년 손기정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10개월간의 무기정간에 처해지면서 태도가 변화하게 된다. 일제의 강력한 언론통제책에 굴복하여 일제와 타협하고 일제 정책을 지지 선전하는 논조로 변화하였다. 또한 1920∼30년대를 걸쳐 동아일보를 주도하던 송진우가 퇴진하면서 주도층에 변화가 있게 된다. 그렇지만 동아일보의 이런 모습은 일본파시즘 체제에 자발적 포섭되어 가는 민족운동 세력들의 체제 포섭과 규정의 모습이 아닌 굴종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더군다나 일제에 의해 동아일보의 강제폐간은 굴종의 길을 걷던 동아일보 세력이 민족운동 세력으로서 정치적으로 회생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사정이 해방직후 국내 민족주의 세력, 우파 세력 결집의 중심에 동아일보 계열이 있을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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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has the purpose to research how the nationalist political group which accepted and internalized revised modified capitalism under Japanese imperialism recognized and responded to the rise of fascism in 1930s, the global stream of the times, through Dong-A-Ilbo group recognition of and response to the situation.
    Dong-A-Ilbo maintained the critical keynote for the Japanese governance system until the mid-1930s.
    It expressed concern and caution about the rise of the Japanese militarism from the early 1930s, attributed the background of the militarism to fascism rising over the world and showed its attitude to criticize the nationalism and to champion democracy. It also aggressively publicized the anti-fascism popular front when this was raised in Europe in 1935. Dong-A-Ilbo followed the tactical decision to support the anti-fascism popular front that went against fascism and militarism on a global level because it judged that the rise of fascism over the world and the Japanese fascistic militarism would further keep the independence of Choseon and democratic rearrangement from happening rather than it agree the ideology or the political line.
    However, as it was suspended for an indefinite period for 10 months because of the incident of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Son Ki-Cheong in 1936, Dong-A-Ilbo changed its attitude. Submitting to the strong policy of press control of the Japanese imperialism, it compromised with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changed its tone of the press to supporting and propagandizing Japanese policies. Moreover, as Song Chin-woo, who took the lead in Dong-A-Ilbo in 1920s and 1930s, stepped down, its leaders group got to change. Although the nationalist groups were voluntarily won over to the Japanese fascistic system, Dong-A-Ilbo appeared to be submissive to the Japanese fascistic system rather than won over to or regulated by the Japanese system. However, Dong-A-Ilbo’s discontinuance forc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gave its groups, which were submissive to the Japanese fascistic system, justification to politically revive as a nationalist movement group. This situation wa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Dong-A-Ilbo group who were able to be at the center of the concentration of the domestic nationalist groups and the right wing groups immediately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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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has the purpose to research how the nationalist political group which accepted and internalized revised modified capitalism under Japanese imperialism recognized and responded to the rise of fascism in 1930s, the global stream of the times,...

    This study has the purpose to research how the nationalist political group which accepted and internalized revised modified capitalism under Japanese imperialism recognized and responded to the rise of fascism in 1930s, the global stream of the times, through Dong-A-Ilbo group recognition of and response to the situation.
    Dong-A-Ilbo maintained the critical keynote for the Japanese governance system until the mid-1930s.
    It expressed concern and caution about the rise of the Japanese militarism from the early 1930s, attributed the background of the militarism to fascism rising over the world and showed its attitude to criticize the nationalism and to champion democracy. It also aggressively publicized the anti-fascism popular front when this was raised in Europe in 1935. Dong-A-Ilbo followed the tactical decision to support the anti-fascism popular front that went against fascism and militarism on a global level because it judged that the rise of fascism over the world and the Japanese fascistic militarism would further keep the independence of Choseon and democratic rearrangement from happening rather than it agree the ideology or the political line.
    However, as it was suspended for an indefinite period for 10 months because of the incident of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Son Ki-Cheong in 1936, Dong-A-Ilbo changed its attitude. Submitting to the strong policy of press control of the Japanese imperialism, it compromised with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changed its tone of the press to supporting and propagandizing Japanese policies. Moreover, as Song Chin-woo, who took the lead in Dong-A-Ilbo in 1920s and 1930s, stepped down, its leaders group got to change. Although the nationalist groups were voluntarily won over to the Japanese fascistic system, Dong-A-Ilbo appeared to be submissive to the Japanese fascistic system rather than won over to or regulated by the Japanese system. However, Dong-A-Ilbo’s discontinuance forc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gave its groups, which were submissive to the Japanese fascistic system, justification to politically revive as a nationalist movement group. This situation wa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Dong-A-Ilbo group who were able to be at the center of the concentration of the domestic nationalist groups and the right wing groups immediately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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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1931~32년 일본 국가주의 대두에 대한 우려와 경계
    • Ⅱ. 1933∼34년 파시즘 대두에 따른 세계 대세 인식 변화와 파시즘 비판
    • Ⅲ. 1935∼36년의 정세인식과 파시즘 비판
    • 요약
    • 머리말
    • Ⅰ. 1931~32년 일본 국가주의 대두에 대한 우려와 경계
    • Ⅱ. 1933∼34년 파시즘 대두에 따른 세계 대세 인식 변화와 파시즘 비판
    • Ⅲ. 1935∼36년의 정세인식과 파시즘 비판
    • Ⅳ. 비판과 굴종의 갈림길 - 동아일보의 무기정간 사태와 중일전쟁
    • Ⅴ. 굴종의 배경과 동아일보의 폐간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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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교양인 2005

    2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산규명 보고서" 2009

    3 방기중, "조선 지식인의 경제통제론과 ‘신체제’인식, In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 체제인식과 대응" 혜안 2005

    4 최민지, "일제하 민족언론사론" 일월서각 1978

    5 박용규,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한 신문들의 논조 변화 - 일제 말기(1937~1940)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회 28 : 111-140, 2005

    6 최유리, "일제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7 장신, "일제말기 김성수의 친일 행적과 변호론 비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2) : 271-313, 2009

    8 升味準之輔, "일본정치사. Ⅲ" 형설출판사 1992

    9 한상일, "일본의 국가주의" 까치 1988

    10 방기중, "일본 파시즘 인식의 혼돈과 재인식의 방향, In 식민지파시즘의 유산과 극복의 과제" 혜안 2006

    1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교양인 2005

    2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산규명 보고서" 2009

    3 방기중, "조선 지식인의 경제통제론과 ‘신체제’인식, In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 체제인식과 대응" 혜안 2005

    4 최민지, "일제하 민족언론사론" 일월서각 1978

    5 박용규,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한 신문들의 논조 변화 - 일제 말기(1937~1940)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회 28 : 111-140, 2005

    6 최유리, "일제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7 장신, "일제말기 김성수의 친일 행적과 변호론 비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2) : 271-313, 2009

    8 升味準之輔, "일본정치사. Ⅲ" 형설출판사 1992

    9 한상일, "일본의 국가주의" 까치 1988

    10 방기중, "일본 파시즘 인식의 혼돈과 재인식의 방향, In 식민지파시즘의 유산과 극복의 과제" 혜안 2006

    11 윤덕영, "신간회 창립과 합법적 정치운동론"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5) : 107-163, 2010

    12 윤덕영, "신간회 창립 주도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의 정치 지형"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8) : 79-128, 2011

    13 전상숙, "식민지시기 좌파 지식인들의 전향 현상과 논리, In 일제시기한국 사회주의 지식인 연구" 지식산업사 2004

    14 임경석, "세계 대공항기 사회주의.민족주의 세력의 정세인식" 11 : 1994

    15 "삼천리"

    16 채백,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 연구" 한국언론정보학회 39 (39): 2007

    17 동아일보사, "동아일보사사. 1권" 동아일보사 1975

    18 "동아일보"

    19 "동광"

    20 고하선생전기편찬위원회, "독립에의 집념 - 고하 송진우 전기" 동아일보사 1990

    21 볼프강 쉐벨부시, "뉴딜, 세 편의 드라마" 지식의풍경 2009

    22 김영숙, "근대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 선인 2009

    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4 고하선생전기편찬위원회, "거인의 숨결-고하송진우관계 자료문집" 동아일보사 1990

    25 "警務彙報"

    26 山室信一, "東アジア近現代通史. 5∼6" 岩波書店 2011

    27 김경일, "朝鮮民族解放運動史資料集 제3권" 영진문화사 1993

    28 "朝鮮出版警察月報"

    29 인촌기념회, "仁村金性洙傳" 인촌기념회 1976

    30 윤덕영, "1945년 한국민주당 초기 조직의 성격과 주한미군정 활용" 한국역사연구회 (80) : 245-291, 2011

    31 방기중, "1930년대 조선 농공병진정책과 경제통제, In 일제 파시즘 지배정책과 민중생활" 혜안 2004

    32 이승렬, "1930년대 전반기 일본군부의 대륙침략관과 ‘조선공업화’정책" 67 : 1996

    33 이태훈, "1930년대 전반 민족주의세력의 국제정세인식과 파시즘논의" 역사문제연구소 12 (12): 243-269, 2008

    34 장신, "1930년대 언론의 상업화와 조선.동아일보의 선택" 역사문제연구소 (70) : 164-196, 2005

    35 홍종욱, "1930년대 『동아일보』의 국제정세 인식1930년대 『동아일보』의 국제정세인식-사회주의 및 전체주의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민족운동사학회 (58) : 73-116, 2009

    36 윤덕영, "1930년 전후 조선총독부 자치정책의 한계와 동아일보 계열의 비판" 대동문화연구원 (73) : 347-395, 2011

    37 윤덕영, "1920년대전반동아일보계열의 정치운동구상과 ‘민족적중심세력’론" 역사문제연구소 14 (14): 9-49, 2010

    38 윤덕영, "1920년대 중반 일본 정계 변화와 조선총독부 자치정책의 한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7) : 163-208, 2010

    39 윤덕영, "1920년대 중반 민족주의 세력의 정세인식과 합법적 정치운동의 전망 ―동아일보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학회 (53) : 73-107, 2010

    40 윤덕영, "1920년대 전반 민족주의 세력의 민족운동 방향 모색과 그 성격 - 동아일보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한국사학회 (98) : 347-39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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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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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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