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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체제의 대중인식과 동원 담론 = The Mass Perception and Mobilization Discourse of Yusin Regime in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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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is aimed to clarify Park Chunghee regime's mass politics and mass mobilization in 1970s. South Korea began to be transformed to mass society through th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in 1960s. Park Chunghee reigime had to obey democratic procedure and thus they were inclined to reinforce their mass politics for the election. Even though Park chunghee recognized mass as something incredible and fearful, he could not deny mass politics at that time.
    In early 1970s, Park Chunghee regime was transformed to Yusin Regime which was quasi fascism and their mass politics was changed greatly. Rapid industrialization gave rise to new social antagonisms and confrontations which Park Chunghee regime had to solve. Therefore they seleted ‘nonpolical politics of mass mobilzation’ instead of unpredictable election. Saemaulundong(Nwe Town Movement) was a typical example of it. State could get the control power for agricultural reproduction process and began to interpellate peasants as a national subject. The interpellation was efficient quite.
    These processes were nation buildings of South Korea. In other words, national economy began to be established and formation of national subjects got warmed into work. Park Chunghee regime grasped democracy as a politics of homogenization and intended utilize as a machanism of mass mobilization.
    Even though there are so many disputes over the mass politics and mass mobilization of Park Chunghee regime, it seems to be apparent that their influence on Korean society including the opponent is enormous and ineffaceable. The public who was cynical on agitation and propaganda of Park Chunghee regime could not get out of life style which was formed by them. Even the stubborn opponents are not free from the counter- identification of Park Chunghee regime. In short, the failed aspect as well as successive aspect of Park Chunghee regime are parts of Korean societ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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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is aimed to clarify Park Chunghee regime's mass politics and mass mobilization in 1970s. South Korea began to be transformed to mass society through th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in 1960s. Park Chunghee reigime had to obey de...

    This study is aimed to clarify Park Chunghee regime's mass politics and mass mobilization in 1970s. South Korea began to be transformed to mass society through th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in 1960s. Park Chunghee reigime had to obey democratic procedure and thus they were inclined to reinforce their mass politics for the election. Even though Park chunghee recognized mass as something incredible and fearful, he could not deny mass politics at that time.
    In early 1970s, Park Chunghee regime was transformed to Yusin Regime which was quasi fascism and their mass politics was changed greatly. Rapid industrialization gave rise to new social antagonisms and confrontations which Park Chunghee regime had to solve. Therefore they seleted ‘nonpolical politics of mass mobilzation’ instead of unpredictable election. Saemaulundong(Nwe Town Movement) was a typical example of it. State could get the control power for agricultural reproduction process and began to interpellate peasants as a national subject. The interpellation was efficient quite.
    These processes were nation buildings of South Korea. In other words, national economy began to be established and formation of national subjects got warmed into work. Park Chunghee regime grasped democracy as a politics of homogenization and intended utilize as a machanism of mass mobilization.
    Even though there are so many disputes over the mass politics and mass mobilization of Park Chunghee regime, it seems to be apparent that their influence on Korean society including the opponent is enormous and ineffaceable. The public who was cynical on agitation and propaganda of Park Chunghee regime could not get out of life style which was formed by them. Even the stubborn opponents are not free from the counter- identification of Park Chunghee regime. In short, the failed aspect as well as successive aspect of Park Chunghee regime are parts of Korean societ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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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1960-70년대는 대중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였고 그 속에서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와 대중동원이 진행되었다. 즉 1960년대 박정희 체제는 선거를 통한 권력 재생산 메커니즘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선거판 대중정치’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정희의 대중 인식은 불신과 공포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시대적 조건 하에서 대중정치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1970년대 초 유신체제 성립을 전후해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는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었다. 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노골화되면서 박정희 체제는 예측불가능한 ‘선거판’ 대신 ‘비정치적 대중동원의 정치’를 실천하고자 했다. 새마을 운동은 그 대표적 사례였는데, 농업 재생산 과정을 장악한 국가는 농민을 민족/국민적 주체로 호명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내었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nation building이 본격화되었다. 즉 이 시기를 거치면서 국민경제 형성과 국민적 주체 생산이 본격화되었고, 박정희 체제는 민주주의를 동질화의 정치로 파악해 정치적 대중동원 기제로 활용하고자 했다.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와 대중동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박정희 체제는 자신의 반대세력을 포함해 한국사회 전반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체제의 선전 선동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던 대중들조차 체제가 구축해놓은 생활양식을 벗어나기 힘들었으며, 완강한 반대세력들도 반동일화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요컨대 박정희 체제는 성공은 물론 그 실패한 측면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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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1960-70년대는 대중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였고 그 속에서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와 대중동원이 진행되었다. 즉 1960년대 박정희 체제는 선거를 통한 권...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1960-70년대는 대중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였고 그 속에서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와 대중동원이 진행되었다. 즉 1960년대 박정희 체제는 선거를 통한 권력 재생산 메커니즘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선거판 대중정치’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정희의 대중 인식은 불신과 공포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시대적 조건 하에서 대중정치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1970년대 초 유신체제 성립을 전후해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는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었다. 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노골화되면서 박정희 체제는 예측불가능한 ‘선거판’ 대신 ‘비정치적 대중동원의 정치’를 실천하고자 했다. 새마을 운동은 그 대표적 사례였는데, 농업 재생산 과정을 장악한 국가는 농민을 민족/국민적 주체로 호명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내었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nation building이 본격화되었다. 즉 이 시기를 거치면서 국민경제 형성과 국민적 주체 생산이 본격화되었고, 박정희 체제는 민주주의를 동질화의 정치로 파악해 정치적 대중동원 기제로 활용하고자 했다.
    박정희 체제의 대중정치와 대중동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박정희 체제는 자신의 반대세력을 포함해 한국사회 전반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체제의 선전 선동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던 대중들조차 체제가 구축해놓은 생활양식을 벗어나기 힘들었으며, 완강한 반대세력들도 반동일화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요컨대 박정희 체제는 성공은 물론 그 실패한 측면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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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정한, "현실 민주주의와 정치행위"

    2 농림부, "한국농정 50년사 1권" 1999

    3 한국군사혁명사편찬위원회, "한국군사혁명사"

    4 갈봉근, "통일주체국민회의론" 한국헌법학회 출판부 1978

    5 김효전, "칼 슈미트 헌법이론의 한국적 전개" 1978

    6 박정희, "지도자도" 1961

    7 "조선일보"

    8 백동주, "인간 용광로" 금란출판사 1975

    9 칼 슈미트, "의회주의와 현대 대중 민주주의와의 대립, in 정치신학" 법문사 1929

    10 박정희,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동아출판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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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농림부, "한국농정 50년사 1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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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갈봉근, "통일주체국민회의론" 한국헌법학회 출판부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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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박정희, "지도자도" 1961

    7 "조선일보"

    8 백동주, "인간 용광로" 금란출판사 1975

    9 칼 슈미트, "의회주의와 현대 대중 민주주의와의 대립, in 정치신학" 법문사 1929

    10 박정희,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동아출판사 1962

    11 윤해동, "식민지 근대와 대중사회의 등장,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휴머니스트 2004

    12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새마을운동 발전방안 연구" 1988

    13 潘鈺, "새마을 운동과 생산성 증대-농업을 중심으로, 강원도" 1980

    14 내무부, "새마을 운동-시작에서 오늘까지" 1979

    15 양동안, "반시대적 사조들-1막극 ‘민족적 민주주의의 안팍" 1970

    16 정호영, "박정희 체제의 지배 메커니즘과 대중의 동의-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과 농민담론을 중심으로" 서강대 2007

    17 하재훈, "박정희 체제의 대중통치: 새마을 운동의 구조․행위자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경북대 2006

    18 대통령 비서설, "박정희 대통령 연설문집 1, 2, 4, 5" 1973

    19 조갑제, "박정희 10"

    20 박정희, "민족중흥의 길" 광명출판사 1978

    21 박정희, "민족의 저력" 광명출판사 1971

    22 유선영, "동원체제의 과민족화 프로젝트와 섹스영화: 데카당스의 정치학" 성곡언론문화재단 15 (15): 2-56, 2007

    23 에릭 R. 울프, "농민" 청년사 1978

    24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8권"

    25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5"

    26 박상길, "나와 제3․4공화국" 한진출판사 1982

    27 김형욱, "김형욱 회고록: 혁명과 우상 2" 아침 1985

    28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 운동" 푸른역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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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노영기,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와 지식인" 선인 2004

    37 조영탁, "1960년대 이후 양곡관리정책의 변화와 그 성격에 관한 연구" 서울대 1993

    38 강명구, "1960년대 도시발달의 유형과 특징, 1960년대 사회변화연구:1963~1970" 백산서당 1999

    39 허수, "1920~30년대 식민지 지식인의 '대중' 인식" 한국역사연구회 (77) : 321-38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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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평가) KCI등재
    2020-03-12 학회명변경 영문명 : Sanghur Hakbo-The Jou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 The Learned Society of Sanghur's Literature KCI등재
    2020-03-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Leaned Society of sanghur`s Literature -> Sanghur Hakbo: The 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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