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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학계의 동북공정 대응논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 = A Critical Review on the State of South Korean Historian’s Response to China’s Northeas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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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고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에 나온 남한학계, 주로 고구려사 연구자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논리를 검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2003∼2004년에 걸쳐 수차례의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남한학계는 연구의 양적 증가에 상응하는 질적 수준의 제고는 이루지 못했다. 고구려연구재단과 그 뒤를 이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 하에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오히려 연구영역이 제한되고, 연구역량이 소진되는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동북공정의 주요 논거가 되었던 고구려의 족원 및 건국지역,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역사의 계승과 계승의식, 고구려사의 정체성 및 귀속의식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연구성과물을 검토한 결과 중국과의 관계, 특히 조공ㆍ책봉 문제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조공ㆍ책봉관계의 시기별 변화상과 특징을 세밀하게 파악하여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조공ㆍ책봉관계의 성립 시점은 언제인지, 조공ㆍ책봉관계 성립 이전의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미해결의 과제도 적지 않다.
    고구려의 족원에 대해 중국측은 ‘多民族 기원설’에 입각하여 고구려 초기 단계부터 여러 종족의 융합으로 형성된 ‘高句麗族’을 상정하고 있다. 남한학계에서도 고구려의 족원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 편이나, ‘濊ㆍ貊’ 문제가 논의의 초점이 되었고, 중국학계의 주장처럼 고구려 건국 단계부터 ‘고구려족’ 내지 ‘고구려인’을 상정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이는 고구려의 형성 및 성장과정을 좀 더 치밀하게 규명함으로써 해결될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은 건국지역과 한 군현의 영향 문제를 둘러싼 중국학계와 남한학계의 논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학계에서는 압록강 중상류의 적석총 축조집단이 모태가 되어 고구려가 건국될 때는 이미 현도군의 통제를 벗어난 시점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지만, 幘溝漊의 설치 시기나 설치의 의미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차이가 있는 실정이다.
    고구려사의 계승, 계승의식과 관련해서는 고구려 유민의 향방이나 고려의 고구려 계승 문제 등에 집중해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계승 문제는 귀속된 유민의 숫자나 땅의 넓이보다는 유민의 自意識과 계승의식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고구려의 정체성과 귀속의식 문제는 고구려와 관련된 모든 요소를 고려한 최종 결론적 성격을 갖는데, ‘고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학계의 주장에 맞서 남한학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역사에 대한 귀속성 판단의 기준으로서 당대인의 역사의식과 소속감, 계승성 등을 제시하고 고구려의 天下觀에 주목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고구려라는 나라를 ‘영위한 주체’와 ‘지향성’의 문제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빈약한 고구려의 사회ㆍ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킬 필요가 있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 수준을 제고하여 체계적인 논리를 개발하는 일에는 비단 고구려사연구자, 한국사 연구자만이 아니라 인접학문 분야 연구자와의 협력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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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고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에 나온 남한학계, 주로 고구려사 연구자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논리를 검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2003∼2004년에 걸쳐 수차례의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

    본 논고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에 나온 남한학계, 주로 고구려사 연구자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논리를 검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2003∼2004년에 걸쳐 수차례의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남한학계는 연구의 양적 증가에 상응하는 질적 수준의 제고는 이루지 못했다. 고구려연구재단과 그 뒤를 이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 하에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오히려 연구영역이 제한되고, 연구역량이 소진되는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동북공정의 주요 논거가 되었던 고구려의 족원 및 건국지역,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역사의 계승과 계승의식, 고구려사의 정체성 및 귀속의식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연구성과물을 검토한 결과 중국과의 관계, 특히 조공ㆍ책봉 문제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조공ㆍ책봉관계의 시기별 변화상과 특징을 세밀하게 파악하여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조공ㆍ책봉관계의 성립 시점은 언제인지, 조공ㆍ책봉관계 성립 이전의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미해결의 과제도 적지 않다.
    고구려의 족원에 대해 중국측은 ‘多民族 기원설’에 입각하여 고구려 초기 단계부터 여러 종족의 융합으로 형성된 ‘高句麗族’을 상정하고 있다. 남한학계에서도 고구려의 족원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 편이나, ‘濊ㆍ貊’ 문제가 논의의 초점이 되었고, 중국학계의 주장처럼 고구려 건국 단계부터 ‘고구려족’ 내지 ‘고구려인’을 상정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이는 고구려의 형성 및 성장과정을 좀 더 치밀하게 규명함으로써 해결될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은 건국지역과 한 군현의 영향 문제를 둘러싼 중국학계와 남한학계의 논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학계에서는 압록강 중상류의 적석총 축조집단이 모태가 되어 고구려가 건국될 때는 이미 현도군의 통제를 벗어난 시점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지만, 幘溝漊의 설치 시기나 설치의 의미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차이가 있는 실정이다.
    고구려사의 계승, 계승의식과 관련해서는 고구려 유민의 향방이나 고려의 고구려 계승 문제 등에 집중해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계승 문제는 귀속된 유민의 숫자나 땅의 넓이보다는 유민의 自意識과 계승의식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고구려의 정체성과 귀속의식 문제는 고구려와 관련된 모든 요소를 고려한 최종 결론적 성격을 갖는데, ‘고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학계의 주장에 맞서 남한학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역사에 대한 귀속성 판단의 기준으로서 당대인의 역사의식과 소속감, 계승성 등을 제시하고 고구려의 天下觀에 주목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고구려라는 나라를 ‘영위한 주체’와 ‘지향성’의 문제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빈약한 고구려의 사회ㆍ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킬 필요가 있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 수준을 제고하여 체계적인 논리를 개발하는 일에는 비단 고구려사연구자, 한국사 연구자만이 아니라 인접학문 분야 연구자와의 협력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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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focuses on the review of South Korean scholars’ research against China’s Northeast Project. While the South Korean scholars showed their efforts to cope with China’s Northeast Project through the several academic meetings during the 2003∼2004, their research achievements still needs refinements and the progress in constructing their arguments.
    My review can be divided into four parts, including the ethnic origin of Koguryo and founding ground, the relationship with China, the consciousness of succession, Koguryo’s historical identity. I found that South Korean scholars’ researches are concentrated on the issues on the relationship with China, especially on the System of Tribute and Appointment. Their researches point out the fictitious aspects of China’s Northeast Project’s argument -Koguryo is one of China’s regional governments- through the close examination of changes and conspicuous characteristics along the time.
    South Korean scholars also investigated the ethnic origin of Koguryo, however, their research area was centered on the issue of Yae/ Maek race. Regarding the issue of postulating the Koguryo race or the Koguryo people from the stage of foundation of the state as the Chinese scholars assert, South Korean scholars’ views are not consolidated. This issue can be clarified through the more thorough research on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Koguryo.
    The researches on the succession of Koguryo and the consciousness of succession of Koguryo were carried out with the focus on the migration of refugees of Koguryo and the Koryo’s succession of Koguryo. South Korean scholars strongly argued that there were Koguryo’s own state identity and the Koguryo people’s self-consciousness of belongings to their country, and refuted the Chinese scholars’ assertions of Koguryo as a regional government of China. South Korean scholars suggested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of that day and the consciousness of succession as criteria for the consciousness of belongings to their country, and also payed the attention on the Koguryo people’s view of the universe. In addition, we need to examine carefully the constituency of elite group who were in charge of Koguryo, and their value-ori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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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focuses on the review of South Korean scholars’ research against China’s Northeast Project. While the South Korean scholars showed their efforts to cope with China’s Northeast Project through the several academic meetings during the 2...

    This paper focuses on the review of South Korean scholars’ research against China’s Northeast Project. While the South Korean scholars showed their efforts to cope with China’s Northeast Project through the several academic meetings during the 2003∼2004, their research achievements still needs refinements and the progress in constructing their arguments.
    My review can be divided into four parts, including the ethnic origin of Koguryo and founding ground, the relationship with China, the consciousness of succession, Koguryo’s historical identity. I found that South Korean scholars’ researches are concentrated on the issues on the relationship with China, especially on the System of Tribute and Appointment. Their researches point out the fictitious aspects of China’s Northeast Project’s argument -Koguryo is one of China’s regional governments- through the close examination of changes and conspicuous characteristics along the time.
    South Korean scholars also investigated the ethnic origin of Koguryo, however, their research area was centered on the issue of Yae/ Maek race. Regarding the issue of postulating the Koguryo race or the Koguryo people from the stage of foundation of the state as the Chinese scholars assert, South Korean scholars’ views are not consolidated. This issue can be clarified through the more thorough research on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Koguryo.
    The researches on the succession of Koguryo and the consciousness of succession of Koguryo were carried out with the focus on the migration of refugees of Koguryo and the Koryo’s succession of Koguryo. South Korean scholars strongly argued that there were Koguryo’s own state identity and the Koguryo people’s self-consciousness of belongings to their country, and refuted the Chinese scholars’ assertions of Koguryo as a regional government of China. South Korean scholars suggested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of that day and the consciousness of succession as criteria for the consciousness of belongings to their country, and also payed the attention on the Koguryo people’s view of the universe. In addition, we need to examine carefully the constituency of elite group who were in charge of Koguryo, and their value-ori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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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과정
    • Ⅱ. 고구려의 기원에 대한 대응논리
    • Ⅲ.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대응논리
    • Ⅳ. 역사의 계승과 계승의식에 대한 대응논리
    • Ⅴ. 고구려의 정체성, 귀속의식에 대한 대응논리
    • Ⅰ. 머리말 :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과정
    • Ⅱ. 고구려의 기원에 대한 대응논리
    • Ⅲ.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대응논리
    • Ⅳ. 역사의 계승과 계승의식에 대한 대응논리
    • Ⅴ. 고구려의 정체성, 귀속의식에 대한 대응논리
    • Ⅵ. 맺음말 :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연구방향의 모색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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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박경철, "麗唐戰爭의 再認識" 동북아역사재단 (15) : 137-199, 2007

    2 기수연, "현도군과 고구려 건국에 대한 연구,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3 윤휘탁, "현대 중국의 변강, 민족의식과 '동북공정'" 역사문제연구소 (65) : 184-205, 2003

    4 여호규, "한국사의 입장에서 본 고구려사" 신서원 27 : 2007

    5 노태돈, "한국사를 통해 본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 풀빛 1998

    6 김영심, "한국 고대사연구 100년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연구방향의 모색" 역사학회 (203) : 1-23, 2009

    7 여호규, "총론:6~8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연구의 진전을 기대하며" 한국역사연구회 (61) : 19-30, 2006

    8 여호규, "책봉호 수수(授受)를 통해 본 수·당의 동방정책과 삼국의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61) : 31-59, 2006

    9 정병준, "중화인민공화국의 藩屬理論과 그 비판,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10 서길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공정 5년의 성과와 전망,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1 박경철, "麗唐戰爭의 再認識" 동북아역사재단 (15) : 137-199, 2007

    2 기수연, "현도군과 고구려 건국에 대한 연구,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3 윤휘탁, "현대 중국의 변강, 민족의식과 '동북공정'" 역사문제연구소 (65) : 184-205, 2003

    4 여호규, "한국사의 입장에서 본 고구려사" 신서원 27 : 2007

    5 노태돈, "한국사를 통해 본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 풀빛 1998

    6 김영심, "한국 고대사연구 100년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연구방향의 모색" 역사학회 (203) : 1-23, 2009

    7 여호규, "총론:6~8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연구의 진전을 기대하며" 한국역사연구회 (61) : 19-30, 2006

    8 여호규, "책봉호 수수(授受)를 통해 본 수·당의 동방정책과 삼국의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61) : 31-59, 2006

    9 정병준, "중화인민공화국의 藩屬理論과 그 비판,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10 서길수, "중화인민공화국 동북공정 5년의 성과와 전망,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11 여호규, "중국학계의 고구려 대외관계사 연구현황" 한국고대사학회 31 : 35-66, 2003

    12 신종원, "중국인들의 고구려 연구-동북공정의 논리" 민속원 2009

    13 송기호, "중국의 한국고대사 빼앗기 공작" 역사문제연구소 (65) : 159-183, 2003

    14 정두희,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제기된 한국사학계의 몇 가지 문제" 183 : 2004

    15 임기환,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국 역사학계의 대응: 고구려사 인식을 중심으로" 수선사학회 (26) : 1-22, 2006

    16 이인철, "중국의 고구려귀속문제연구 분석, in 중국의 한국고대사연구 분석" 2005

    17 금경숙, "중국의 고구려 계승문제 인식과 분석, in 중국의 한국고대사연구 분석" 고구려연구재단 2005

    18 이성제, "중국의 고구려 ‘조공·책봉’ 문제 연구 검토, in 중국의 한국고대사 연구 분석" 2005

    19 김병준, "중국고대 簡牘자료를 통해 본 낙랑군의 군현지배" 역사학회 (189) : 139-173, 2006

    20 孫進己, "중국 고구려사 연구의 개방과 번영의 6년, in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유산" 한국고대사학회·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4

    21 한명기, "조선시대 漢中 지식인의 高句麗 인식―고구려의 ‘强盛’과 조선의 고구려 계승 인식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8) : 337-366, 2006

    22 김일권, "일제시기 조선사 편수와 만선사적 고구려사의 역설" 한국고대사학회 (61) : 75-111, 2011

    23 정운용, "역사적 적용에 있어서 ‘다민족 통일국가론’의 허실, in 중국의 통일국가론으로 본 고구려사" 동북아역사재단 2009

    24 박한제, "수당 세계제국과 고구려 -조공질서 및 기미체제와 관련하여-, in 한국고대국가와 중국왕조의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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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한규철, "발해의 고구려 역사 계승 문제" 한국고대사학회 33 : 97-116, 2004

    27 송기호, "동아시아의 역사분쟁" 솔출판사 2007

    28 이인철,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백산자료원 2010

    29 최광식, "동북공정 이후 중국 연구서에 보이는 고구려· 발해 인식" 한국고대학회 (29) : 107-1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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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방향숙, "고대 동아시아의 책봉조공체제의 원형과 변용 -한중관계를 중심으로 -, in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책봉" 고구려연구재단 2005

    33 박대재, "고대 ‘동아시아 세계론’과 고구려사, in 고대 동아시아 세계론과 고구려의 정체성" 동북아역사재단 2007

    34 김현숙, "고구려의 종족기원과 국가형성과정" 대구사학회 89 : 33-61, 2007

    35 김종완, "고구려의 조공과 책봉의 성격-정체성과 관련하여-, in 고구려연구 18" 학연문화사 2004

    36 공석구, "고구려의 영역과 평양천도 문제" 한국고대사학회 33 : 41-56, 2004

    37 서영대, "고구려의 사직과 영성에 대하여, in 고구려의 사상과 문화" 고구려 연구재단 2005

    38 고구려연구재단, "고구려의 사상과 문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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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고구려연구재단, "고구려의 국가형성" 2005

    41 윤명철, "고구려와 수·당전쟁의 성격에 관한 해석, in 고구려 정체성" 18 : 2004

    42 노태돈, "고구려와 북위간의 조공·책봉관계에 대한 연구, in 한국 고대국가와 중국왕조의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6

    43 강선, "고구려와 북방민족의 관계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견해, in 동북공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44 안병우,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계승 관계" 한국고대사학회 33 : 117-140, 2004

    45 여호규, "고구려와 慕容燕의 조공·책봉관계 연구, in 한국 고대국가와 중국왕조의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6

    46 송기호, "고구려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 -『高句麗簡史』 서평" 1 : 1991

    47 여호규, "고구려 초기의 梁貊과 小水貊" 한국고대사학회 25 : 91-130, 2002

    48 여호규, "고구려 초기 對中戰爭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15) : 7-56, 2007

    49 이순근, "고구려 역사, 과연 누구의 역사인가" 역사문제연구소 (70) : 197-220, 2005

    50 김현숙, "고구려 붕괴 후 그 유민의 거취 문제" 한국고대사학회 33 : 75-98, 2004

    51 시노하라 히로카타, "고구려 문자자료의 특성, in 고대 동아시아 세계론과 고구려의 정체성" 동북아역사재단 2007

    52 김미경, "고구려 건국문제를 통해 본 ‘지방정권론’의 내용과 비판, in 중국의 통일국가론으로 본 고구려사" 동북아역사재단 2009

    53 김현숙, "고구려 族源 문제에 대한 중국학계의 인식, in 중국학계의 한국고대사연구 분석" 2005

    54 박경철, "고구려 '민족'문제 인식의 현황과 과제" 한국고대사학회 31 : 67-110, 2003

    55 박경철, "鴨綠江 中․上流流域 積石塚築造集團의 存在樣態" 한국고대학회 (32) : 211-243, 2010

    56 朴漢濟, "魏晉-隋唐時代 胡族君主의 中華帝王으로의 變身過程과 그 論理―‘多民族國家’ 形成의 一 契機에 대한 探索―" 중앙아시아학회 9 : 1-28, 2004

    57 박경철, "高句麗 異種族支配의 實相" 고려사학회 15 : 10-320, 2003

    58 "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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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馬大正, "古代中國高句麗歷史論叢" 흑룡강교육출판사 2001

    61 이성규, "中華帝國의 팽창과 축소: 그 이념과 실제" 역사학회 (186) : 87-133, 2005

    62 강준영, "中國의 東北工程 再論" 중국연구소 38 : 2006

    63 박경철, "中國學界의 高句麗 對隋·唐 70年戰爭 認識의 批判的 檢討" 한국고대사학회 33 : 57-74, 2004

    64 김유철, "中國 史書에 나타난 高句麗의 國家的 正體性" 고구려발해학회 (18) : 13-56, 2004

    65 "三國志"

    66 "三國史記"

    67 강선, "‘책봉’을 통해 본 고구려 ‘지방정권론’ 비판, in 중국의 통일국가론으로 본 고구려사" 동북아역사재단 2009

    68 최광식, "‘東北工程’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고구려사 연구동향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33 : 5-22, 2004

    69 여호규,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난 고구려의 대중인식(對中認識)과 대외정책" 한국역사연구회 (55) : 25-60, 2005

    70 여호규, "<廣開土王陵碑>에 나타난 高句麗 天下의 공간범위와 주변 族屬에 대한 인식" 역사문화연구소 (32) : 3-48, 2009

    71 古畑 徹, "1∼7세기 왜와 중국의 조공·책봉관계의 성격에 대하여 -일본의 중국사연구자의 견해를 중심으로" 18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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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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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외대사학 -> 역사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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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49 1.216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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