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OpenAccess

    식민지시대 흥행(장) 「취체규칙」의 문화전략과 역사적 추이 = The Cultural Strategy and Historical Progress of 'Heung-hang' & 'Heung-hang-jang' 「Control Regulations」 in Colonial Period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4965253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20년대 흥행 및 흥행장 「취체규칙」의 제정은, 제국의 표준에 근거하여 조선사회의 변동에 대응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식민지조선을 편재하기 위한 문화전략의 하나였다. 이 글은 그때에 도령으로 제정된 「취체규칙」의 성격과 역사적 추이를 지켜보면서 조선총독부령으로 제정된 「조선흥행등취체규칙」(1944)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흥행문화에 대한 식민권력의 구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취체규칙」의 제정은 기본적으로 흥행문화가 국가의 관리체계 안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로써 그 제도화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특수한 사정상 「취체규칙」의 성격은 일본 내지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법제가 표명한 것보다 그 실제적 수행성이 훨씬 더 중요했음을 의미한다. 일본 내지의 것보다 그 내용이 간소해도 무방한 이유, 공안풍속의 기준과 경관의 임석 규정이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검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규정들은 정치적 담론의 삭제를 겨냥하고 있었음이 분명했고, 이는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식민지군중에 대한 경계였다. 그러나 흥행규범의 제도화는 아노미화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취체규칙」이 ‘사람’이라는 독립변수를 제어하고자 했던 것은 당연했고, 그 가운데 특히 주시된 대상은 변사였다. ‘사람’이라는 변수는 불확정적인 채로 남아 있기에, 취체의 역사적 추이는 이에 대한 제도적 구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취체당국이 「취체규칙」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들 가운데 ‘배우’가 중요하게 부상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1944년 「취체규칙」에서 ‘사람’이 부조된 것도 그 필연적 결과였다. 즉 이들을 국가가 ‘개인’으로 호명함으로써 관객과의 종족적 연대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결국 조선총독부의 문화전략은 종족적인 횡적 연대를 제어하는 동시에 개인을 직접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번역하기

    1920년대 흥행 및 흥행장 「취체규칙」의 제정은, 제국의 표준에 근거하여 조선사회의 변동에 대응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식민지조선을 편재하기 위한 문화전략의 하나였다. 이 글은 그때에...

    1920년대 흥행 및 흥행장 「취체규칙」의 제정은, 제국의 표준에 근거하여 조선사회의 변동에 대응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식민지조선을 편재하기 위한 문화전략의 하나였다. 이 글은 그때에 도령으로 제정된 「취체규칙」의 성격과 역사적 추이를 지켜보면서 조선총독부령으로 제정된 「조선흥행등취체규칙」(1944)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흥행문화에 대한 식민권력의 구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취체규칙」의 제정은 기본적으로 흥행문화가 국가의 관리체계 안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로써 그 제도화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특수한 사정상 「취체규칙」의 성격은 일본 내지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법제가 표명한 것보다 그 실제적 수행성이 훨씬 더 중요했음을 의미한다. 일본 내지의 것보다 그 내용이 간소해도 무방한 이유, 공안풍속의 기준과 경관의 임석 규정이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검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규정들은 정치적 담론의 삭제를 겨냥하고 있었음이 분명했고, 이는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식민지군중에 대한 경계였다. 그러나 흥행규범의 제도화는 아노미화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취체규칙」이 ‘사람’이라는 독립변수를 제어하고자 했던 것은 당연했고, 그 가운데 특히 주시된 대상은 변사였다. ‘사람’이라는 변수는 불확정적인 채로 남아 있기에, 취체의 역사적 추이는 이에 대한 제도적 구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취체당국이 「취체규칙」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들 가운데 ‘배우’가 중요하게 부상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1944년 「취체규칙」에서 ‘사람’이 부조된 것도 그 필연적 결과였다. 즉 이들을 국가가 ‘개인’으로 호명함으로써 관객과의 종족적 연대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결국 조선총독부의 문화전략은 종족적인 횡적 연대를 제어하는 동시에 개인을 직접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Enactment of 'Heng-hang' & 'Heng-han-jang' 「Control Regulations」 in 1920s were one of the cultural strategy based on Empire's standard, for reacting Chosun community's fluctuation. This paper's purpose is to look the character and historical progress of 「Control Regulations」 legislated by provincial ordinance at that time, to explain Colonial Power' plan for 'Heung-hang' culture through the progress of 「Chosun Heung-hang etc. Control Regulations」(1944)' legislation by Chosun Government General ordinance. Basically, 「Control Regulations」' legislation meant 'Heung-hang' culture's go into the State's supervising system, so its institutionalization stated. But from the colonial rule's distinct point of view, the character of 「Control Regulations」 were different with Japan's. This means that the real performativity was more important than the expressed regulations. Censorship regulation was the same. It's these regulations' goal to remove political discourse, this means the alert for the colonial mob. But the institutionalization of 'Heun-hang' rule have implied anomie condition. It's only fair that 「Control Regulations」 attempt to control 'person'. However 'person' remains in the undecided, so control's historical progress moved to tighten up the regulations for 'person'. In 1944 「Control Regulations」, person's relievo was an inevitable result. That is, State called them 'individual', and thereby attempted to cut ethnic solidarity between them and spectators.
    번역하기

    Enactment of 'Heng-hang' & 'Heng-han-jang' 「Control Regulations」 in 1920s were one of the cultural strategy based on Empire's standard, for reacting Chosun community's fluctuation. This paper's purpose is to look the character and historical progr...

    Enactment of 'Heng-hang' & 'Heng-han-jang' 「Control Regulations」 in 1920s were one of the cultural strategy based on Empire's standard, for reacting Chosun community's fluctuation. This paper's purpose is to look the character and historical progress of 「Control Regulations」 legislated by provincial ordinance at that time, to explain Colonial Power' plan for 'Heung-hang' culture through the progress of 「Chosun Heung-hang etc. Control Regulations」(1944)' legislation by Chosun Government General ordinance. Basically, 「Control Regulations」' legislation meant 'Heung-hang' culture's go into the State's supervising system, so its institutionalization stated. But from the colonial rule's distinct point of view, the character of 「Control Regulations」 were different with Japan's. This means that the real performativity was more important than the expressed regulations. Censorship regulation was the same. It's these regulations' goal to remove political discourse, this means the alert for the colonial mob. But the institutionalization of 'Heun-hang' rule have implied anomie condition. It's only fair that 「Control Regulations」 attempt to control 'person'. However 'person' remains in the undecided, so control's historical progress moved to tighten up the regulations for 'person'. In 1944 「Control Regulations」, person's relievo was an inevitable result. That is, State called them 'individual', and thereby attempted to cut ethnic solidarity between them and spectators.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황성신문"

    2 "조선총독부관보"

    3 "조선총독부 경무국, 活動寫眞フイルム檢閱槪要(1926.8~1927.7), 1931"

    4 "조선일보"

    5 "조선급만주"

    6 이순진, "조선 무성영화의 활극성과 공연성에 대한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2009

    7 "조선"

    8 박영정, "일제하 연극통제정책과 친일연극인" 역사문제연구소 1993

    9 이승희, "식민지시대 연극의 검열과 통속의 정치" 대동문화연구원 (59) : 443-482, 2007

    10 이화진, "식민지기 영화 검열의 전개와 지향" 한국문학연구소 (35) : 417-456, 2008

    1 "황성신문"

    2 "조선총독부관보"

    3 "조선총독부 경무국, 活動寫眞フイルム檢閱槪要(1926.8~1927.7), 1931"

    4 "조선일보"

    5 "조선급만주"

    6 이순진, "조선 무성영화의 활극성과 공연성에 대한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2009

    7 "조선"

    8 박영정, "일제하 연극통제정책과 친일연극인" 역사문제연구소 1993

    9 이승희, "식민지시대 연극의 검열과 통속의 정치" 대동문화연구원 (59) : 443-482, 2007

    10 이화진, "식민지기 영화 검열의 전개와 지향" 한국문학연구소 (35) : 417-456, 2008

    11 이혜령, "식민지 군중과 개인 ―염상섭의 『狂奔』을 통해서 본 시론" 대동문화연구원 (69) : 485-527, 2010

    12 이승희, "사실주의극의 성립 - 사회주의의 번역과 검열의 역학" 한국극예술학회 (29) : 47-84, 2009

    13 박영정, "법으로 본 일제강점기 연극영화 통제정책"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16 : 2004

    14 "매일신보"

    15 "동아일보"

    16 "대한매일신보"

    17 유선영, "극장구경과 활동사진 보기:충격의 근대 그리고 즐거움의 훈육" 역사문제연구소 (64) : 362-376, 2003

    18 이승희, "공공 미디어로서의 극장과 조선민간자본의 문화정치" 대동문화연구원 (69) : 219-259, 2010

    19 박헌호, "‘文化政治’期 新聞의 位相과 反-檢閱의 內的論理― 1920年代 民間紙를 中心으로" 대동문화연구원 (50) : 199-259, 2005

    20 박영정, "1938년의 입장세법"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97

    21 한국영상자료원, "1910~1934 식민지시대의 영화검열" 현실문화연구 2009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계속평가 신청대상 (재인증평가)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평가) KCI등재
    2020-03-12 학회명변경 영문명 : Sanghur Hakbo-The Jou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 The Learned Society of Sanghur's Literature KCI등재
    2020-03-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Leaned Society of sanghur`s Literature -> Sanghur Hakbo: The 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24 0 0.92 0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 0 1.675 0.4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