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凶禮는 『國朝喪禮補編』의 편찬으로 그 틀이 완비되었다. 이미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와 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를 편찬하면서 흉례의 틀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영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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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 (서울대학교)
2009
Korean
國葬 ; 五禮 ; 凶禮 ; 凶禮書 ; 『國朝喪禮補編』 ; 英祖 ; 『國朝五禮儀』 ; 『國朝續五禮儀』 ; gukjang(State Funeral) ; orye ; Hyungnye ; Hyungnyeseo ; Gukjosangrye Bopyeon ; King Yeongjo ; Gukjooryeui ; Gukjo sogoryeui ; gukjang(State Funeral) ; orye ; Hyungnye ; Hyungnyeseo ; Gukjosangrye Bopyeon ; King Yeongjo ; Gukjooryeui ; Gukjo sogoryeui
KCI등재
학술저널
171-209(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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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조선후기의 凶禮는 『國朝喪禮補編』의 편찬으로 그 틀이 완비되었다. 이미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와 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를 편찬하면서 흉례의 틀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영조는 ...
조선후기의 凶禮는 『國朝喪禮補編』의 편찬으로 그 틀이 완비되었다. 이미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와 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를 편찬하면서 흉례의 틀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영조는 ‘흉례’ 부분의 내용이 미진한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국조상례보편』에는 영조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受敎’ 부분을 별도로 모아 책의 편찬에 반영하도록 하였다.
영조의 명에 의해 마련된 『국조상례보편』은 영조 자신이 “중국의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던 만큼 흉례서의 결정판으로 볼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정조, 순조대에도 그 이상의 흉례서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조의 국장을 치를 때에는 『국조상례보편』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다. 자신의 死前에 흉례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장례 때 사용될 몇몇 기구는 미리 제작해 놓도록 하였던 영조, 그의 국장에서 『국조상례보편』의 기록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후기 국왕의 국장절차를 고찰할 때 영조대에 편찬한 『국조상례보편』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는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 보인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frame of Hyungnye of the Late Joseon Dynasty was structured with the compilation of Gukjosangrye Bopyeon. The frame of Hyungnye was already completed when Gukjo oryeui and Gukjo sogoryeui had been compiled under the King Seongjong’s reign and Ki...
The frame of Hyungnye of the Late Joseon Dynasty was structured with the compilation of Gukjosangrye Bopyeon. The frame of Hyungnye was already completed when Gukjo oryeui and Gukjo sogoryeui had been compiled under the King Seongjong’s reign and King Yeongjo’s reign, but King Yeongjo thought the contents of Hyungnye was insufficient. So, he separately collected Soogyo (discipline of a King) which contained his opinion and had it be reflected to the compilation of the book.
He was very proud of Gukjosangrye Bopyeon completed by his order, saying ‘it can be compared with the Chinese one’, so it can be considered as the definitive edition of the book, Hyungnye. It is because better Hyungnye wasn’t made even in the reign of King Jeongjo and Soonjo who were the successors to King Yeongjo.
During the gukjang(State Funeral) of King Yeongjo, the contents of Gukjosangrye Bopyeon was fully taken into account. King Yeongjo made the book, Hyungnye before he died and pre-established some organizations for his funeral, so there is no wonder that his funeral was proceeded with the record of Gukjosangrye Bopyeon. That’s why the contents of Gukjosangrye Bopyeon which was compiled in the reign of King Yeongjo should be taken essentially when the process of gukjang of a k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stu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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