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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엘리트 지식인의 민주주의 인식 = 조병옥과 유진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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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50년대는 미국, 즉 세계체제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한국사에서 최초로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국민국가 형성과정은 전쟁(내전)을 포함하기도 하는 정복-피정복의 격렬한 정치투쟁을 수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단히 복잡한 사회적, 문화적 통합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통상적으로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에서 중요한 담론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였다.
    1950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담론지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사회의 지배적 담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지배체제의 정당화는 물론 저항담론의 중심 역할로 확장되었다. 민주주의 담론의 확산 과정은 교육제도의 확충 등에 크게 영향 받았지만 이는 지식인의 담론적 실천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복합적 효과를 산출하게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조병옥과 유진오는 1950년대 대표적인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성장, 교육배경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인식에서는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민주주의의 절대적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서구 특히 미국 학계에서 정리된 자유 민주주의관을 충실하게 추종했다. 이들의 민주주의 인식의 대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둘 다 공히 서구 근대의 인간관, 합리적 이성주의를 절대화하면서 서구 근대 정치철학이 가정한 이성적 주체의 합리적 행위에 근거해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이 성립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현실적으로 ‘후진국가’인 한국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국가’의 발전된 민주주의를 따라 배워야 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선진-후진 구도로 민주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이들에게는 서구-근대-선진국가에 대한 강렬한 콤플렉스가 노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곧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 구도에 규정당하는 것이자 서구 근대에 대한 식민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둘째, 양자 모두 반공을 절대적 조건으로 하여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게 미국은 서구 근대의 합리적 이성의 최고 실현체인 반면 공산주의는 전근대성, 야만성, 반인륜성 등으로 설명되는 반민주주의의 대표적 실체였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의미화되기 보다는 공산주의의 반정립으로 정당화되는 수동적 양상을 드러내어 적극적 정치담론으로 기능하기 힘들었다.
    셋째, 양자 모두 대중에 대한 지도, 계몽, 교육을 강조하는 ‘엘리트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대중행동에 근거한 민주주의, 인민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요컨대 이들은 ‘다수자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내용적 가정을 대의제를 통한 ‘엘리트 과두제’로 치환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형식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넷째, 민주주의의 저항담론화에 일정한 계기성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저항담론화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아니라 그들의 담론적 실천을 조건으로 활용한 대중의 직접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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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는 미국, 즉 세계체제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한국사에서 최초로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국민국가 형성과정은 전쟁(내전)을 포함하기도 하는 정복-피정복의 격렬한 정치...

    1950년대는 미국, 즉 세계체제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한국사에서 최초로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국민국가 형성과정은 전쟁(내전)을 포함하기도 하는 정복-피정복의 격렬한 정치투쟁을 수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단히 복잡한 사회적, 문화적 통합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통상적으로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에서 중요한 담론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였다.
    1950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담론지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사회의 지배적 담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지배체제의 정당화는 물론 저항담론의 중심 역할로 확장되었다. 민주주의 담론의 확산 과정은 교육제도의 확충 등에 크게 영향 받았지만 이는 지식인의 담론적 실천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복합적 효과를 산출하게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조병옥과 유진오는 1950년대 대표적인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성장, 교육배경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인식에서는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민주주의의 절대적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서구 특히 미국 학계에서 정리된 자유 민주주의관을 충실하게 추종했다. 이들의 민주주의 인식의 대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둘 다 공히 서구 근대의 인간관, 합리적 이성주의를 절대화하면서 서구 근대 정치철학이 가정한 이성적 주체의 합리적 행위에 근거해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이 성립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현실적으로 ‘후진국가’인 한국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국가’의 발전된 민주주의를 따라 배워야 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선진-후진 구도로 민주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이들에게는 서구-근대-선진국가에 대한 강렬한 콤플렉스가 노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곧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 구도에 규정당하는 것이자 서구 근대에 대한 식민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둘째, 양자 모두 반공을 절대적 조건으로 하여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게 미국은 서구 근대의 합리적 이성의 최고 실현체인 반면 공산주의는 전근대성, 야만성, 반인륜성 등으로 설명되는 반민주주의의 대표적 실체였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의미화되기 보다는 공산주의의 반정립으로 정당화되는 수동적 양상을 드러내어 적극적 정치담론으로 기능하기 힘들었다.
    셋째, 양자 모두 대중에 대한 지도, 계몽, 교육을 강조하는 ‘엘리트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대중행동에 근거한 민주주의, 인민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요컨대 이들은 ‘다수자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내용적 가정을 대의제를 통한 ‘엘리트 과두제’로 치환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형식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넷째, 민주주의의 저항담론화에 일정한 계기성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저항담론화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아니라 그들의 담론적 실천을 조건으로 활용한 대중의 직접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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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ROK had experienced nation-building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USA and world system in 1950s. The nation-building process is companied with the political struggles which may contain civil war. And it need to the social, cultural integration of the nation. Generally, nationalism and democracy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nation-building process of bourgeois nation state.
    In 1950s, democracy had a critical position in the topography of political discourse, and it had became the dominant discourse in Korea. The role of democracy in Korea was expanded from ruling discourse to resistant one. It was influenced by the enlargement of education system, but it must be noted that it was effective to be combined with the discursive practice of intellectuals.
    Cho Byung-ok and Yu Chin-oh were typical elite intellectuals of Korea in 1950s. There are many differences in between them. But they were similar to recognition of democracy. All of them emphasized the absolute universality of democracy, and imitated concept of liberal democracy which was made in the west. The peculiarities of their cognition of democracy is as follows.
    First, all of them believed in the modern view of human being of the west and America, and insisted that democratic political process is possible with the rational act of the reasonable subject which is hypothesis of the modern political philosophy of the west. It meant that backward Korea must follow the democracy of advanced country. Because of they understood the democracy with advanced-backward composition, it was inevitable that they had the strong complex to the west, modernity and advanced countries.
    Second, they understood democracy on condition anti-communism. To them, America is the supreme symbol of modern rationalism, whereas communism is the typical anti democracy ideology which is premodern, brutal and anti-humanity. Therefore democracy was not positive but passive political discourse.
    Third, there are strong elitism, emphasis on the leading, enlightenment and education for mass, in their cognition of democracy. They did not think over the democracy based on mass political action and people's direct democracy. In short, they transformed the democratic principle of rule by majority into the elite oligarchy by representative system. Therefore democracy was to be formalized.
    Fourth, they contributed the conversion of democracy into the resistance discourse. In this process, however, important thing was not elite intellectuals but the direct action of the people which utilized their discussive practice as a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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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K had experienced nation-building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USA and world system in 1950s. The nation-building process is companied with the political struggles which may contain civil war. And it need to the social, cultural integration of the ...

    ROK had experienced nation-building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USA and world system in 1950s. The nation-building process is companied with the political struggles which may contain civil war. And it need to the social, cultural integration of the nation. Generally, nationalism and democracy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nation-building process of bourgeois nation state.
    In 1950s, democracy had a critical position in the topography of political discourse, and it had became the dominant discourse in Korea. The role of democracy in Korea was expanded from ruling discourse to resistant one. It was influenced by the enlargement of education system, but it must be noted that it was effective to be combined with the discursive practice of intellectuals.
    Cho Byung-ok and Yu Chin-oh were typical elite intellectuals of Korea in 1950s. There are many differences in between them. But they were similar to recognition of democracy. All of them emphasized the absolute universality of democracy, and imitated concept of liberal democracy which was made in the west. The peculiarities of their cognition of democracy is as follows.
    First, all of them believed in the modern view of human being of the west and America, and insisted that democratic political process is possible with the rational act of the reasonable subject which is hypothesis of the modern political philosophy of the west. It meant that backward Korea must follow the democracy of advanced country. Because of they understood the democracy with advanced-backward composition, it was inevitable that they had the strong complex to the west, modernity and advanced countries.
    Second, they understood democracy on condition anti-communism. To them, America is the supreme symbol of modern rationalism, whereas communism is the typical anti democracy ideology which is premodern, brutal and anti-humanity. Therefore democracy was not positive but passive political discourse.
    Third, there are strong elitism, emphasis on the leading, enlightenment and education for mass, in their cognition of democracy. They did not think over the democracy based on mass political action and people's direct democracy. In short, they transformed the democratic principle of rule by majority into the elite oligarchy by representative system. Therefore democracy was to be formalized.
    Fourth, they contributed the conversion of democracy into the resistance discourse. In this process, however, important thing was not elite intellectuals but the direct action of the people which utilized their discussive practice as a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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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1950년대 국민국가 형성과 자유 민주주의 정치질서
    • Ⅱ. 조병옥의 민주주의 인식
    • Ⅲ. 유진오의 민주주의 인식
    • 요약
    • 머리말
    • Ⅰ. 1950년대 국민국가 형성과 자유 민주주의 정치질서
    • Ⅱ. 조병옥의 민주주의 인식
    • Ⅲ. 유진오의 민주주의 인식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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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정한, "현실 민주주의와 정치행위, 정치비평 상반기"

    2 손호철, "해방 50년의 한국정치" 새길 1995

    3 신창현, "해공 신익희, 해공신익희선생기념회"

    4 강인철, "한국전쟁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백산서당 1999

    5 박찬표,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고려대 출판부 1997

    6 문지영, "한국에서 자유주의:정부수립 후 1970년대까지 그 양면적 전개와 성격에 관한 연구" 서강대 2003

    7 최장집,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나남 1996

    8 임종명, "제1공화국 초기 대한민국의 가족국가화와 內破" (130) : 2005

    9 칼 슈미트, "정치신학" 법문사 1988

    10 최재봉, "전혜린 일인칭 단수 대명사의 세계" 삼인 1999

    1 김정한, "현실 민주주의와 정치행위, 정치비평 상반기"

    2 손호철, "해방 50년의 한국정치" 새길 1995

    3 신창현, "해공 신익희, 해공신익희선생기념회"

    4 강인철, "한국전쟁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백산서당 1999

    5 박찬표,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고려대 출판부 1997

    6 문지영, "한국에서 자유주의:정부수립 후 1970년대까지 그 양면적 전개와 성격에 관한 연구" 서강대 2003

    7 최장집,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나남 1996

    8 임종명, "제1공화국 초기 대한민국의 가족국가화와 內破" (130) : 2005

    9 칼 슈미트, "정치신학" 법문사 1988

    10 최재봉, "전혜린 일인칭 단수 대명사의 세계" 삼인 1999

    11 서중석,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 역사비평사 2005

    12 이영록, "유진오 헌법사상의 형성과 전개" 서울대 2000

    13 유진오, "양호기" 고려대 출판부 1977

    14 강정인, "서구 중심주의에 비쳐진 한국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한국화" 책세상 2002

    15 콜론 보고서, "사상계 1960년 1월호"

    16 샹탈 무페, "민주주의의 역설, 인간사랑"

    17 조병옥, "민주주의와 나" 영신문화사 1959

    18 유진오, "민주정치에의 길" 일조각 1963

    19 백운선, "민주당과 자유당의 정치이념 논쟁" 한길사 1981

    20 허 은, "미국의 대한 문화활동과 한국사회의 반응-1950년대 미국정부의 문화활동과 지식인의 대미인식을 중심으로" 고려대 2004

    21 "동아일보 조선일보"

    22 공보처, "대통령 이승만 박사 담화집 2"

    23 조병옥, "나의 회고록"

    24 노철, "김수영 개인주의의 승리" 삼인 1999

    25 임종명, "一民主義와 대한민국의 근대민족국가화" 44 : 2005

    26 "RG 306, USIS Seoul->USIA Washington(1960.1.25), Country Assessment Report, Foreign Service Despatches, Asia, 1954-65, Box 2, NARA"

    27 박명림, "195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민주주의 ‘제도’와 권위주의 ‘실천’의 역사적 조건" 역사비평사 1998

    28 손호철, "1950년대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한국전쟁 이후 시기를 중심으로" (5)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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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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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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