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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濟 聖住山 信仰과 聖住寺 = The Sungju Mountain Faith of Paekje and the Sungj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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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194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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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materials of “Lives of Eminent Korean Monks”, “Stele
      for Monk Nanghye” and “The History of Sungju Temple”
      testifying the Sungju Temple and the Sungju Mountain can
      be linked to and used for the understanding of nature and the
      progress of the Sungju Mountain Faith in Paekje.
      The Sungju Mountain regarded as the North Mountain
      containing the Ohap Temple was worshipped by the state.
      The Ohap Temple's name was changed to Sungju Temple and
      the Sungju Mountain to Sungum Mountain after Paekje's fall.
      The mountain's name was changed to Sungju again about the
      middle of the Koryo period.
      The Sungju Mountain was an important spot toward the
      West Sea during the Sabi―Capitol period. The Baekje royal
      family aimed to recover its sovereignty and to realign its
      country. Accordingly, the Sungju Mountain was focused as animportant spot. The alignment of the Five Mountains had the
      meaning of religionization of the mountains and acceptance at
      the state level. The Five Mountains worship was important
      at the side of the state.
      The holiness of the Sungju Mountain was added by
      Buddhism especially with the faith of Avalokiteshvara.
      Paekje's Avalokiteshvara faith was by saddharma―puṇḑarīka
      Sūtra. It suggests the existence of the Buddha land thoughts
      in Paekje. Muyeom, the famous monk, recognized the
      meanings of the flow of the Buddha land thoughts and
      suggested the religious justifications to the Silla aristocratic
      classes.
      번역하기

      The materials of “Lives of Eminent Korean Monks”, “Stele for Monk Nanghye” and “The History of Sungju Temple” testifying the Sungju Temple and the Sungju Mountain can be linked to and used for the understanding of nature and the progress o...

      The materials of “Lives of Eminent Korean Monks”, “Stele
      for Monk Nanghye” and “The History of Sungju Temple”
      testifying the Sungju Temple and the Sungju Mountain can
      be linked to and used for the understanding of nature and the
      progress of the Sungju Mountain Faith in Paekje.
      The Sungju Mountain regarded as the North Mountain
      containing the Ohap Temple was worshipped by the state.
      The Ohap Temple's name was changed to Sungju Temple and
      the Sungju Mountain to Sungum Mountain after Paekje's fall.
      The mountain's name was changed to Sungju again about the
      middle of the Koryo period.
      The Sungju Mountain was an important spot toward the
      West Sea during the Sabi―Capitol period. The Baekje royal
      family aimed to recover its sovereignty and to realign its
      country. Accordingly, the Sungju Mountain was focused as animportant spot. The alignment of the Five Mountains had the
      meaning of religionization of the mountains and acceptance at
      the state level. The Five Mountains worship was important
      at the side of the state.
      The holiness of the Sungju Mountain was added by
      Buddhism especially with the faith of Avalokiteshvara.
      Paekje's Avalokiteshvara faith was by saddharma―puṇḑarīka
      Sūtra. It suggests the existence of the Buddha land thoughts
      in Paekje. Muyeom, the famous monk, recognized the
      meanings of the flow of the Buddha land thoughts and
      suggested the religious justifications to the Silla aristocratic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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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성주사와 성주산 관련 사료인『 해동고승전』,『 낭혜화상비』,『 성
      주사사적』을 연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백제 성주산 신앙의 성격과
      성주사의 변동을 밝혔다.
      백제의 오합사가 있던 성주산은 오악 중 북악으로 여겨져 국가제
      사가 모셔졌다. 백제가 망한 후 퇴락의 과정을 겪기도 하다가 무염
      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이곳에 머무르면서 오합사는
      성주사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고, 성주산은 숭엄산으로 불리웠다. 숭
      엄산은 고려 중기 이후에는 다시 성주산으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
      성주산은 사비 도읍 시대 서해안 방면의 요충지로서 정치, 군사적
      으로 중요시되었다. 백제 왕실은 사비로 천도하면서 국권을 회복하
      려는 목적으로 국토를 재인식하고 재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성주산
      은 서북 방면의 요충으로 주목되었다. 오악의 편제는 국토 내의 중
      요한 산악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수용하
      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문 성주산이 지닌 신성성에는 전통적 산악신앙의 흐름 위에 불교적
      신성성이 부여되었다. 불교에서 불보살이 머무는 곳은 환희, 吉祥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악이 원래 지닌 종교적 신성성에 보다 다
      양한 이상적 경지를 제공하였다. 이는 단지 수식적 의미만이 아니라
      불보살의 경지로의 승격을 의미하며 백제 국토 내에 불보살이 산다
      는 불국토사상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백제에서 성주산은 관음보살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백제의
      관음신앙은『 법화경』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해안을 배경으
      로 한 삶의 비중이 큰 백제에서 바다의 수호신으로서의 관음에 대한
      신앙을 수용한 것이었다. 서해안 방면의 요충지로 여겨진 성주산은
      관음의 주처로 여겨졌다. 오합사는 북악신에 대한 祭場임과 동시에
      관음신앙의 도량이었다.
      무염은 성주산이 지닌 전통적 종교적 의미에 주목했다. 그는 무열
      왕계의 유력한 인물인 김흔, 김양으로부터 주석을 요청받았으며 문
      성왕 등 여러 왕들의 귀의를 받았다. 무염이 이렇게 왕실, 귀족의 존
      숭을 받게 된 배경에는 高德僧이었던 데에도 기인한 것이지만, 무열
      왕계 귀족의 정신적 귀의처를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염은 성주
      사와 성주산에서 종교적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백제의 북악이자
      관음도량인 성주산과 성주사는 무열계 귀족들에게 지방적 세력근거
      지의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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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사와 성주산 관련 사료인『 해동고승전』,『 낭혜화상비』,『 성 주사사적』을 연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백제 성주산 신앙의 성격과 성주사의 변동을 밝혔다. 백제의 오합사가 있던 성...

      성주사와 성주산 관련 사료인『 해동고승전』,『 낭혜화상비』,『 성
      주사사적』을 연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백제 성주산 신앙의 성격과
      성주사의 변동을 밝혔다.
      백제의 오합사가 있던 성주산은 오악 중 북악으로 여겨져 국가제
      사가 모셔졌다. 백제가 망한 후 퇴락의 과정을 겪기도 하다가 무염
      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이곳에 머무르면서 오합사는
      성주사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고, 성주산은 숭엄산으로 불리웠다. 숭
      엄산은 고려 중기 이후에는 다시 성주산으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
      성주산은 사비 도읍 시대 서해안 방면의 요충지로서 정치, 군사적
      으로 중요시되었다. 백제 왕실은 사비로 천도하면서 국권을 회복하
      려는 목적으로 국토를 재인식하고 재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성주산
      은 서북 방면의 요충으로 주목되었다. 오악의 편제는 국토 내의 중
      요한 산악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수용하
      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문 성주산이 지닌 신성성에는 전통적 산악신앙의 흐름 위에 불교적
      신성성이 부여되었다. 불교에서 불보살이 머무는 곳은 환희, 吉祥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악이 원래 지닌 종교적 신성성에 보다 다
      양한 이상적 경지를 제공하였다. 이는 단지 수식적 의미만이 아니라
      불보살의 경지로의 승격을 의미하며 백제 국토 내에 불보살이 산다
      는 불국토사상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백제에서 성주산은 관음보살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백제의
      관음신앙은『 법화경』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해안을 배경으
      로 한 삶의 비중이 큰 백제에서 바다의 수호신으로서의 관음에 대한
      신앙을 수용한 것이었다. 서해안 방면의 요충지로 여겨진 성주산은
      관음의 주처로 여겨졌다. 오합사는 북악신에 대한 祭場임과 동시에
      관음신앙의 도량이었다.
      무염은 성주산이 지닌 전통적 종교적 의미에 주목했다. 그는 무열
      왕계의 유력한 인물인 김흔, 김양으로부터 주석을 요청받았으며 문
      성왕 등 여러 왕들의 귀의를 받았다. 무염이 이렇게 왕실, 귀족의 존
      숭을 받게 된 배경에는 高德僧이었던 데에도 기인한 것이지만, 무열
      왕계 귀족의 정신적 귀의처를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염은 성주
      사와 성주산에서 종교적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백제의 북악이자
      관음도량인 성주산과 성주사는 무열계 귀족들에게 지방적 세력근거
      지의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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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수태, "성주사와 낭혜" 서경문화사 2001

      2 "韓國佛敎硏究" 한국불교연구원 1982

      3 "輿地圖書" 국사편찬위원회 1979

      4 李箕永, "象徵的 表現을 통해서 본 7―8世紀 新羅 및 日本의 佛國土思想"

      5 韓國古代社會硏究所,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6 速水侑, "觀音信仰" 雄山閣 1982

      7 梁承律, "聖住山門 關聯 史料의 檢討" 古代硏究會 7 : 1999

      8 "聖住寺" 충남대박물관 1998

      9 許興植, "禪宗九山門과 禪門禮懺文의 問題點" 경북대학교 5 : 1983

      10 李基白, "皇龍寺와 그 創建 in : 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86

      1 김수태, "성주사와 낭혜" 서경문화사 2001

      2 "韓國佛敎硏究" 한국불교연구원 1982

      3 "輿地圖書" 국사편찬위원회 1979

      4 李箕永, "象徵的 表現을 통해서 본 7―8世紀 新羅 및 日本의 佛國土思想"

      5 韓國古代社會硏究所,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6 速水侑, "觀音信仰" 雄山閣 1982

      7 梁承律, "聖住山門 關聯 史料의 檢討" 古代硏究會 7 : 1999

      8 "聖住寺" 충남대박물관 1998

      9 許興植, "禪宗九山門과 禪門禮懺文의 問題點" 경북대학교 5 : 1983

      10 李基白, "皇龍寺와 그 創建 in : 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86

      11 金煐泰, "百濟의 觀音思想"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3 : 1979

      12 今西龍, "百濟五方五部考 in : 百濟史硏究" 國書刊行會 1970

      13 梁起錫, "百濟 聖王代의 政治改革과 그 性格―專制王權의 成立問題와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회 4 : 1991

      14 金英心, "百濟 地方統治體制 硏究" 서울대학교 1997

      15 ·章輝玉, "海東高僧傳硏究" 民族社 1991

      16 "海東高僧傳"

      17 "洪州大觀" 홍주대관편찬위원회 2002

      18 李道學, "泗沘時代 百濟의 4方界山과 護國寺刹의 成立"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 : 1989

      19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in : 高麗名賢集" 成均館大 大東文化硏究院 1973

      20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寶蓮閣 1979

      21 孫晉泰, "朝鮮 古代 山神의 性에 대하여 in : 朝鮮民族文化의 硏究" 을유문화사 1948

      22 金映遂, "智異山 聖母社에 대하여" 震檀學會 11 : 1939

      23 "日本書紀"

      24 丁元卿, "新羅景文王代의 願塔建立" 부산시립박물관 5 : 1983

      25 申東河, "新羅 佛國土思想의 展開樣相과 歷史的 意義" 서울대학교 2000

      26 李基白, "新羅 五岳의 成立과 그 意義 in :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27 "新增東國輿地勝覽" 亞細亞文化社 1974

      28 森鹿三, "支那古代に於ける山嶽信仰" 歷史地理學同攷會 28 (28): 1931

      29 "崇巖山聖住寺事蹟 in : 文化財" 文化財管理局 1969

      30 "大正新脩大藏經"

      31 井上以智爲, "北岳恒山の祭祀" 歷史地理學同攷會 15 (15): 1925

      32 井上以智爲, "北岳恒山と北岳廟 (上)(下)" 歷史地理學同攷會 14 (14): 1925

      33 "三國遺事"

      34 金煐泰, "三國時代의 法華收容과 그 信仰" 東國大 佛敎文化硏究所 1983

      35 "三國史記"

      36 梁承律, "「 金立之」의 '聖住寺碑'" 古代硏究會 6 : 1998

      37 近藤浩一, "9세기 중엽 聖住寺와 신라 王京人의 서해안 진출" 新羅史學會 8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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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0 평가예정 계속평가 신청대상 (등재유지)
      2019-06-17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 Korean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2019-06-11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Society For Buddhist Studies -> Korea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2019-06-07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BUL GYO HAK YEONGU-Journal of Buddhist Studies -> 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2015-01-01 평가 우수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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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8 0.48 0.5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2 0.47 0.937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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