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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근대 국민국가와 문화재의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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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해방 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문화재가 민족문화의 궁극적 표상으로 본질화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미군정기는 ‘민족문화’ 건설의 대의를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과 도전이 가시적인 언설들로 분출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수립되면서 민족문화의 의미는 ‘문화재’라는 유형의 상징물로 직결되도록 국가에 의해 전유된다.
    특히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승만 정권이 표방했던 자유주의와 반공주의를 국민 개개인의 정신에 각인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그 와중에 다양한 문화적 장치들이 국민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적극 동원된다. 이후 195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 문화 장치들 중 하나였던 문화재는 국가 차원과 개인 차원에서 공히 보호되어야 할 민족문화의 신성한 결정체로 성화된다.
    해방 후 50년대, ‘문화재’는 때로는 원시적 문화로, 때론 배타적 보수주의로, 또 때때로 민족위기의 상징, 국위선양의 대표, 민족 자존심 등으로 정의되었으니, 이 시기는 한국 예술의 대표자들이 이러한 중첩된 의미들을 유형의 문화재로부터 계승하면서 내셔널한 ‘무형문화재’ 제도로 편입되는 전사(前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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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해방 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문화재가 민족문화의 궁극적 표상으로 본질화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미군정기는 ‘민족문화’ 건설의 ...

    이 글은 해방 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문화재가 민족문화의 궁극적 표상으로 본질화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미군정기는 ‘민족문화’ 건설의 대의를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과 도전이 가시적인 언설들로 분출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수립되면서 민족문화의 의미는 ‘문화재’라는 유형의 상징물로 직결되도록 국가에 의해 전유된다.
    특히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승만 정권이 표방했던 자유주의와 반공주의를 국민 개개인의 정신에 각인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그 와중에 다양한 문화적 장치들이 국민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적극 동원된다. 이후 1950년대를 통과하면서 그 문화 장치들 중 하나였던 문화재는 국가 차원과 개인 차원에서 공히 보호되어야 할 민족문화의 신성한 결정체로 성화된다.
    해방 후 50년대, ‘문화재’는 때로는 원시적 문화로, 때론 배타적 보수주의로, 또 때때로 민족위기의 상징, 국위선양의 대표, 민족 자존심 등으로 정의되었으니, 이 시기는 한국 예술의 대표자들이 이러한 중첩된 의미들을 유형의 문화재로부터 계승하면서 내셔널한 ‘무형문화재’ 제도로 편입되는 전사(前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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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ical process that cultural asset was sanctificated as ultimate symbol of national culture. In the period of U.S. Military Government spouted out the various assertion and provocation around the 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But in a short time Lee-Government established and the discours of ‘Nation Culture’ was appropriated by it, namely state.
    Korean war was conducted to infuse into mind of people Liberalism and Anti-Communism those Lee-Government professed. In that context diverse cultural apparatuses mobilized for making the nation and especially cultural asset was consecrated as national cultural symbol that had to be protected personally as well as nationally.
    Cultural asset was conceptualized sometimes with primitive culture, exclusive conservatism and sometimes with symbol of national crisis and national respect, booster of national prestige in that period. And korean artistes succeeded to this compounded meaning of cultural asset and were assigned to namely, ‘intangible cultural asset’ in a shor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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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ical process that cultural asset was sanctificated as ultimate symbol of national culture. In the period of U.S. Military Government spouted out the various assertion and provocation around the construction of ‘National...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ical process that cultural asset was sanctificated as ultimate symbol of national culture. In the period of U.S. Military Government spouted out the various assertion and provocation around the construction of ‘National Culture.’ But in a short time Lee-Government established and the discours of ‘Nation Culture’ was appropriated by it, namely state.
    Korean war was conducted to infuse into mind of people Liberalism and Anti-Communism those Lee-Government professed. In that context diverse cultural apparatuses mobilized for making the nation and especially cultural asset was consecrated as national cultural symbol that had to be protected personally as well as nationally.
    Cultural asset was conceptualized sometimes with primitive culture, exclusive conservatism and sometimes with symbol of national crisis and national respect, booster of national prestige in that period. And korean artistes succeeded to this compounded meaning of cultural asset and were assigned to namely, ‘intangible cultural asset’ in a shor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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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들어가는 글
    • 2. 민족문화의 정의를 둘러싼 대립
    • 3. 민족문화의 국가적 전유와 문화재의 창출
    • 4. 맺는 글
    • [국문초록]
    • 1. 들어가는 글
    • 2. 민족문화의 정의를 둘러싼 대립
    • 3. 민족문화의 국가적 전유와 문화재의 창출
    • 4. 맺는 글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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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관계 제1차 사료목록" 19898월호

    2 "한국전탱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백산서당 1999

    3 "한국인류학 백년" 일지사 2001

    4 "진단학회와 나 해방 직후 의외의 돌풍" 진단학회 1984

    5 "조선의 고적" 1948

    6 "전통의 날조와 창조" 서경문화사 1995

    7 "음악건설의 제언" 혁명1946

    8 "악극계 예술연감" 1947년11월호

    9 "반공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 2001

    10 "박물관과 한평생" 1992

    1 "해방과 분리공간의 음악관계 제1차 사료목록" 19898월호

    2 "한국전탱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백산서당 1999

    3 "한국인류학 백년" 일지사 2001

    4 "진단학회와 나 해방 직후 의외의 돌풍" 진단학회 1984

    5 "조선의 고적" 1948

    6 "전통의 날조와 창조" 서경문화사 1995

    7 "음악건설의 제언" 혁명1946

    8 "악극계 예술연감" 1947년11월호

    9 "반공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 2001

    10 "박물관과 한평생" 1992

    11 "민족주의 음악 창출" 1988

    12 "민족음악의 수립의 제창" 19467월호

    13 "민족문화의 본질" 194512월호

    14 "미군정기의 남한행정 체계" 한국복지행정연구소 1997

    15 "무형문화재 제도의 성립 그 역사성의 재고" 한국민속학회 40 : 2004

    16 "농촌문화건설의 기본문제" 19473월호

    17 "근대적 의미의 ‘조선 문화예술" 한독사회과학회 15 (15): 2005

    18 "간송 전형필" 보성중고등학교 1996

    19 "Legends of People Myths of State and political culture in Sri Lanka and Australia" Smithonian Institution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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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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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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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2 0.52 0.5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64 0.9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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