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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안동인의 역사저술과 역사인식 = Historical Descriptioin and Perception of Andonger in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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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6022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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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안동은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이자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된다.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으로서 우선 퇴계학통이라는 학맥이 대의 명분을 중시하게 한 정치적 측면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안동인의 독립투쟁과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지니며 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역사인식이 산출한 역사전술이다.
      안동인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척족들의 집단 망명이라는 매우 특이한 사례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정착하여 독립운동의 터전을 일궜던 서간도를 우리 민족사의 무대로 인식하였고, 그곳에 살던 중국인들도 광범위한 범주에서 동족으로 여겼다. 안동인의 치열한 역사인식을 대표하는 인물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이상룡ㆍ류인식ㆍ이원태이다.
      이상룡이 만주로 망명하기로 결심한 것은 만주는 단군 성조의 옛 강토로서 비록 옷차림이나 언어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조상은 동일 종족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망명하기 직전 저술하였다는 『국사國史』는 현전하지 않아 체계적인 그의 역사인식 구조를 알 수는 없으나, 그의 많은 문학 작품과 그의 망명일기인 「서사록西徙錄」에 기록된 내용만 가지고도 그의 역사인식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류인식은 혁신유림으로서 망국을 당해 발해의 옛 땅이 우리들이 돌아 갈 곳이라고 판단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는 귀국 후 점차 역사인식이 박약해지는 젊은이들에게 조국정신祖國精神을 심어주고 국수國粹를 발휘하게 하기 위하여 방대한 『대동사大東史』를 저술하였다. 본서는 철저한 남북조사관에 의해 단군을 수위로 하는 고구려-발해정통론을 전개하여 1910년대를 대표하는 역사서로 평가된다.
      이원태는 대종교도로서 만주로 망명하여 교주인 김교현을 종사하였고, 귀국후 『배달졸강역형세도倍達族疆域形勢圖 』(44圖)를 저술하였다. 본서는 만주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을 배달족으로 인식하여 남북조南北朝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역사는 단지 남강南疆(南朝) 왕조의 변천에 불과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잃어버린 땅인 북강北疆(北朝) 만주를 수복하는 것이 진정한 민족하의 통일로 인식하였다.
      결국 안동민의 도만渡滿과 독립운동은 치열한 역사인식에 기초한 것이었고, 이상룡ㆍ류인식ㆍ이원태는 이를 역사저술로 표출해 낸 대표적 인물이었다. 이들은 모두 만주 망명과 독립투쟁의 경험을 지니고 있었으며,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하는 배달족과 남북국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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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은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이자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된다.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으로서 우선 퇴계학통이라는 학맥이 대의 명분을 중시하게 한 정치적 측면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안동은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이자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된다.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으로서 우선 퇴계학통이라는 학맥이 대의 명분을 중시하게 한 정치적 측면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안동인의 독립투쟁과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지니며 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역사인식이 산출한 역사전술이다.
      안동인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척족들의 집단 망명이라는 매우 특이한 사례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정착하여 독립운동의 터전을 일궜던 서간도를 우리 민족사의 무대로 인식하였고, 그곳에 살던 중국인들도 광범위한 범주에서 동족으로 여겼다. 안동인의 치열한 역사인식을 대표하는 인물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이상룡ㆍ류인식ㆍ이원태이다.
      이상룡이 만주로 망명하기로 결심한 것은 만주는 단군 성조의 옛 강토로서 비록 옷차림이나 언어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조상은 동일 종족이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망명하기 직전 저술하였다는 『국사國史』는 현전하지 않아 체계적인 그의 역사인식 구조를 알 수는 없으나, 그의 많은 문학 작품과 그의 망명일기인 「서사록西徙錄」에 기록된 내용만 가지고도 그의 역사인식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류인식은 혁신유림으로서 망국을 당해 발해의 옛 땅이 우리들이 돌아 갈 곳이라고 판단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는 귀국 후 점차 역사인식이 박약해지는 젊은이들에게 조국정신祖國精神을 심어주고 국수國粹를 발휘하게 하기 위하여 방대한 『대동사大東史』를 저술하였다. 본서는 철저한 남북조사관에 의해 단군을 수위로 하는 고구려-발해정통론을 전개하여 1910년대를 대표하는 역사서로 평가된다.
      이원태는 대종교도로서 만주로 망명하여 교주인 김교현을 종사하였고, 귀국후 『배달졸강역형세도倍達族疆域形勢圖 』(44圖)를 저술하였다. 본서는 만주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을 배달족으로 인식하여 남북조南北朝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역사는 단지 남강南疆(南朝) 왕조의 변천에 불과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잃어버린 땅인 북강北疆(北朝) 만주를 수복하는 것이 진정한 민족하의 통일로 인식하였다.
      결국 안동민의 도만渡滿과 독립운동은 치열한 역사인식에 기초한 것이었고, 이상룡ㆍ류인식ㆍ이원태는 이를 역사저술로 표출해 낸 대표적 인물이었다. 이들은 모두 만주 망명과 독립투쟁의 경험을 지니고 있었으며,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하는 배달족과 남북국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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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Andong area is considered a birthplace of a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s well as a sacred place of independence movement. The writing on history of Andongs fighters for korea independence presents their historical consciousness. Lee, Sang-ryong, Ryu, In-sik and Lee, Won-tae have become known as among them and they moved to Manchuria to keep doing their movement. The area Manchuria made them expand their view of korean ancient history.
      Lee, Sang-ryong had thought that Manchuria had used to be korea’s territory from the beginning by Dangun, the founder of korean, It made him move to Munchuria. It can be figured out his historical awareness by means of his exilediary ‘Seosalog(西徙錄)’ Ryu in-sik was quite innovative and followed Lee Sangryoung to Manchuria where was regarded as the place they could go back after lost their country. Ryu had hoped that native young people own patriotic spirit, so that he left the book ‘Daedongsa(大東史-)’. This book is represented the history book as well told of those days. Lee, Won-tae followed his religious leader Kim, Gyo-heon as Dangun religionist. He also wrote a book about the ancient korea. ‘baedaljog gangyeong hyeongsedp(倍達族疆域形勢圖)’, a map of people’s who all lived in Manchuria and Han Peninsula. The history in Han Peninsula except Manchuria was for him just about dynasty chronicle. He rather hoped korea’s unification with that the country should have Manchuria back that used to belong to ancient korea.
      Eventually their patriotic spirit made them move to Manchuria and write history books. They all had mutual view of that Dangun should be the origin of korean and that they moved to Manchuria to continue their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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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ndong area is considered a birthplace of a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s well as a sacred place of independence movement. The writing on history of Andongs fighters for korea independence presents their historical consciousness. Lee, Sang-ryong...

      The Andong area is considered a birthplace of a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s well as a sacred place of independence movement. The writing on history of Andongs fighters for korea independence presents their historical consciousness. Lee, Sang-ryong, Ryu, In-sik and Lee, Won-tae have become known as among them and they moved to Manchuria to keep doing their movement. The area Manchuria made them expand their view of korean ancient history.
      Lee, Sang-ryong had thought that Manchuria had used to be korea’s territory from the beginning by Dangun, the founder of korean, It made him move to Munchuria. It can be figured out his historical awareness by means of his exilediary ‘Seosalog(西徙錄)’ Ryu in-sik was quite innovative and followed Lee Sangryoung to Manchuria where was regarded as the place they could go back after lost their country. Ryu had hoped that native young people own patriotic spirit, so that he left the book ‘Daedongsa(大東史-)’. This book is represented the history book as well told of those days. Lee, Won-tae followed his religious leader Kim, Gyo-heon as Dangun religionist. He also wrote a book about the ancient korea. ‘baedaljog gangyeong hyeongsedp(倍達族疆域形勢圖)’, a map of people’s who all lived in Manchuria and Han Peninsula. The history in Han Peninsula except Manchuria was for him just about dynasty chronicle. He rather hoped korea’s unification with that the country should have Manchuria back that used to belong to ancient korea.
      Eventually their patriotic spirit made them move to Manchuria and write history books. They all had mutual view of that Dangun should be the origin of korean and that they moved to Manchuria to continue their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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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문
      • 1. 머리말
      • 2. 안동인의 민족운동과 역사저술
      • 3. 안동인의 역사인식
      • 4. 안동인의 역사인식의 특징과 의의
      • 요약문
      • 1. 머리말
      • 2. 안동인의 민족운동과 역사저술
      • 3. 안동인의 역사인식
      • 4. 안동인의 역사인식의 특징과 의의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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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朴杰淳, "李源台의 生涯와 歷史認識" 한국근현대사학회 26 : 92-122, 2003

      2 金正珅, "金敎獻 史學의 精神的 背景" 국학연구소 4 : 1990

      3 全遇容,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

      4 김희곤, "안동의 독립운동사"

      5 김희곤,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6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역사비평사 2001

      7 박걸순, "시대의 선각자 혁신유림 류인식" 지식산업사 2009

      8 강윤정, "백하 김대락의 생애와 민족운동, In 백범과 민족운동 7" 백범학술원 2000

      9 조동걸, "백하 김대락의 망명일기(1911~1913)" 안동사학회 5 : 2000

      10 박걸순, "국학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 朴杰淳, "李源台의 生涯와 歷史認識" 한국근현대사학회 26 : 92-122, 2003

      2 金正珅, "金敎獻 史學의 精神的 背景" 국학연구소 4 : 1990

      3 全遇容,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

      4 김희곤, "안동의 독립운동사"

      5 김희곤,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6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역사비평사 2001

      7 박걸순, "시대의 선각자 혁신유림 류인식" 지식산업사 2009

      8 강윤정, "백하 김대락의 생애와 민족운동, In 백범과 민족운동 7" 백범학술원 2000

      9 조동걸, "백하 김대락의 망명일기(1911~1913)" 안동사학회 5 : 2000

      10 박걸순, "국학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1 金大洛, "국역 백하일기" 경인문화사 2011

      12 李相龍, "국역 石洲遺稿"

      13 박걸순, "祖國精神‧國粹論‧南北朝史觀으로 민족사를 통찰한 "大東史", In 大東史" 한국국학진흥원 2006

      14 朴殷植, "白巖朴殷植全集" 동방미디어 2002

      15 金澤榮, "歷史輯略" 1977

      16 박걸순, "植民地 시기의 歷史學과 歷史認識" 경인문화사 2004

      17 박걸순, "東山 柳寅植의 歷史認識" 한국사학사학회 2 (2): 63-94, 2000

      18 박걸순, "日帝强占期 亡命 人士의 高句麗·渤海認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3) : 435-482, 2004

      19 조동걸, "安東儒林의 渡滿經緯와 獨立運動上의 性向, In 韓國民族主義의 成立과 獨立運動史硏究" 지식산업사 1989

      20 김희곤, "安東 독립운동 인물사전" 선인 2011

      21 柳寅植, "大東史" 한국국학진흥원 2006

      22 姜天奉, "倍達族疆域形勢圖 譯刊에 부침, In 倍達族疆域形勢圖" 서울대학교출판부 1972

      23 李源台, "倍達族疆域形勢圖"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2

      24 韓永愚, "1910年代 李相龍‧金敎獻의 民族主義 歷史敍述, In 韓國民族主義歷史學" 일조각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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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8-01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 Studies Adancement Center ->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KCI등재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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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5 0.65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62 1.324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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