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영(朴漢永, 1870~1948)은 근대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학승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19세기 선 논쟁을 불러일으킨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법맥을 계승했고,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자주적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9241244
김용태 (동국대학교)
2024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51-85(35쪽)
0
상세조회0
다운로드박한영(朴漢永, 1870~1948)은 근대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학승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19세기 선 논쟁을 불러일으킨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법맥을 계승했고,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자주적 ...
박한영(朴漢永, 1870~1948)은 근대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학승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19세기 선 논쟁을 불러일으킨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법맥을 계승했고,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자주적 종단을 지향한 임제종(臨濟宗) 건립 운동에 참여했다. 또 잡지 『해동불보(海東佛報)』를 펴내는 등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고, 중앙학림-불교전수학교-중앙불교전문학교로 이어지는 서울의 불교 최고 교육기관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해방 직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의 초대 교정(敎正)을 맡는 등 그는 격동의 시대에 불교계를 이끈 인물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박한영의 불교사 이해 및 한국 불교사 인식을 살펴보았다. 먼저 불교 대중화와 전문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박한영의 생애와 활동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박한영의 중앙학림 시절 강의록인 『각종강요(各宗綱要)』(1918)와 불교의 역사를 기술한 『불교사람요(佛敎史攬要)』에 1910년대 초부터 도입된 근대불교학 연구의 성과와 방법론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어 현재 남아있는 『각종강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의 종파」에 나타난 박한영의 한국 불교사 이해의 내용과 특징을 간추려 선종의 도입 등 오늘날과 다른 주장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근대학문의 방법론에 입각한 연구에서 한국 불교사의 전체상을 조망하는 과정에 박한영이 동참했음을 볼 수 있었다. 또 당시 다카하시 도루 등 일본인 학자들이 한국불교 연구를 위해 자문과 도움을 얻은 사실에서 그의 평판과 학계에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 『각종강요』와 『불교사람요』를 검토한 결과 그것이 우연한 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잡지의 글 기고와 불교 교육기관에서의 오랜 강의를 통해 그의 한국불교 이해가 대중적 동의를 얻고 구체화 되면서 점차 통설로 수렴되어 갔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ak Hanyeong (朴漢永, 1870-1948) was one of the leading scholar-monks of modern Korean Buddhism. He inherited Baekpa Geungseon's (白坡亘璇, 1767-1852) lineage that sparked a Seon debate in the nineteenth century and, along with Han Yongun (韓...
Bak Hanyeong (朴漢永, 1870-1948) was one of the leading scholar-monks of modern Korean Buddhism. He inherited Baekpa Geungseon's (白坡亘璇, 1767-1852) lineage that sparked a Seon debate in the nineteenth century and, along with Han Yongun (韓龍雲, 1879-1944),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to establish Imje jong as an autonomous Buddhist order. He also took the initiative to popularize Buddhism by publishing the Buddhist magazine titled Haedong bulbo (海東佛報), and continued to nurture his students at the top Buddhist institution in Seoul, Jungang Hangnim, which became Bulgyo jeonsu hakkyo and, further later, Jungang Bulgyo jeonmun hakkyo. He was also a leading figure in Buddhist circles during turbulent times, serving as the first head of the Joseon Bulgyo jungang chongmuwon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This article examines Bak's understanding of Buddhist history and his perception of Korean Buddhist history. It first summarizes the life and activities of Bak, who worked to popularize Buddhism and revitalize monastic education. It also introduces the results and methodologies of modern Buddhist studies introduced in the early 1910s and examines the extent to which they were reflected in Bak's Gakjong gangyo (各宗綱要) of 1918, a lecture note from his time at Jungang hangnim, and Bulgyosa ramyo (佛敎史攬要), a summary of the history of Buddhism. The article then investigates Bak's tendencies in understanding Korean Buddhist history as found in “Joseon ui jongpa” (Buddhist schools of Korea), which comprises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surviving Gakjong gangyo, and shows that he made claims that differ from those made today, regarding such issues as the introduction of Sŏn.
From this vantage point, we can see that Bak joined the scholarly trend of the time that looked at the whole picture of Korean Buddhist history through the modern methodological lens beginning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His reputation and stature in the academic community can be gauged from the fact that Japanese scholars, including Takahashi Toru, sought his advice and assistance in the study of Korean Buddhism, and a review of the Gakjong gangyo and the Bulgyosa ramyo proves that this was not accidental. Furthermore, it can also be guessed that his understanding of Korean Buddhism gradually became a common view as it gained popular acceptance and spread through many of his magazine articles and years of lectures at Buddhist institutions.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성연, "한국 근대 불교교육 담론과 불교전문학교의 설립"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78) : 115-152, 2023
2 오영섭, "조선광문회 연구" 한국사학사학회 (3) : 79-140, 2001
3 김용태, "조계종 종통의 역사적 이해 - 근 ․ 현대 종명, 종조, 종지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선학회 (35) : 144-168, 2013
4 김순석,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경인문화사 2003
5 고영섭, "영호당 박한영과 상현거사 이능화의 학문태도와 연구방법" 한국불교학회 78 : 49-90, 2016
6 고영섭, "영호(石顚) 정호(漢永)와 중앙불교전문학교- 한국의 ‘윌리엄스 칼리지’ 혹은 ‘엠허스트 칼리지’" 한국불교학회 70 : 33-69, 2014
7 종걸, "영호 정호 대종사 일생록 1870-1948" 신아출판사 2016
8 정선여, "신라 하대 북종선의 동향" 신라사학회 (18) : 69-103, 2010
9 김용태, "식민지 불교의 혁신론과 문명개화의 여정" 동국대동국역사문화연구소 (4) : 2010
10 김광식, "석전 영호대종사 한국불교의 초석을 세우다" 조계종출판사 2015
1 김성연, "한국 근대 불교교육 담론과 불교전문학교의 설립"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78) : 115-152, 2023
2 오영섭, "조선광문회 연구" 한국사학사학회 (3) : 79-140, 2001
3 김용태, "조계종 종통의 역사적 이해 - 근 ․ 현대 종명, 종조, 종지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선학회 (35) : 144-168, 2013
4 김순석,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경인문화사 2003
5 고영섭, "영호당 박한영과 상현거사 이능화의 학문태도와 연구방법" 한국불교학회 78 : 49-90, 2016
6 고영섭, "영호(石顚) 정호(漢永)와 중앙불교전문학교- 한국의 ‘윌리엄스 칼리지’ 혹은 ‘엠허스트 칼리지’" 한국불교학회 70 : 33-69, 2014
7 종걸, "영호 정호 대종사 일생록 1870-1948" 신아출판사 2016
8 정선여, "신라 하대 북종선의 동향" 신라사학회 (18) : 69-103, 2010
9 김용태, "식민지 불교의 혁신론과 문명개화의 여정" 동국대동국역사문화연구소 (4) : 2010
10 김광식, "석전 영호대종사 한국불교의 초석을 세우다" 조계종출판사 2015
11 김상일, "석전 박한영의 저술 성향과 근대불교학적 의의"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46 : 139-159, 2007
12 오경후, "석전 박한영의 불교사관과 그 가치" 한국불교학회 88 : 179-207, 2018
13 김창숙, "석전 박한영의 《계학약전》과 역사적 성격" (107) : 107-136, 1999
14 임형석, "박한영 『인학절본』 번역과 사상적 문맥"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15 : 145-173, 2013
15 조남호,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조선불교연구" 한국사상문화학회 (20) : 389-419, 2003
16 운성, "노사의 학인시절-우리 스님 석전 박한영 스님" 84 : 1981
17 이성수, "근대불교 강맥의 사자상승 연구-석전 박한영을 중심으로"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25 : 101-141, 2023
18 김윤경, "근대기 현실인식 및 개혁에 관한 불교와 하곡학의 교섭-박한영, 이건방, 정인보를 중심으로" 조선대 인문학연구원 54 : 41-80, 2017
19 김상일, "근대 불교지성과 불교 잡지- 석전 박한영과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한국어문학연구학회 (52) : 5-30, 2009
20 김경집, "근 ․ 현대 불교계의 한국 선종사 인식과 논의" 대행선연구원 8 : 243-278, 2022
21 남도영, "구한말의 명진학교" 역사학회 90 : 85-137, 1981
22 지관, "韓國高僧碑文總集: 朝鮮朝․ 近現代"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0
23 James E. Ketelaar, "邪教/殉教の明治: 廃仏毀釈と近代仏教" ぺりかん社 2006
24 朴漢永, "讀敎史論" 12.13 : 1913
25 忽滑⾕快天, "朝鮮禪敎史" 春秋社 1930
26 朝鮮總督府, "朝鮮寺刹史料" 朝鮮總督府內務部地方局 1911
27 今⻄⿓, "朝鮮佛敎關係書籍解題" 1 (1): 2-3, 1911
28 李能和, "朝鮮佛敎通史에 就하여" 6 : 1917
29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新文館 1918
30 權相⽼, "朝鮮佛敎略史" 新文館 1917
31 朴漢永, "朝鮮佛敎史蹟 尋究" 8 : 1914
32 權相⽼, "敎史" 12 : 1913
33 朴漢永, "將何布敎利生乎아" 2 : 1913
34 朴漢永, "學虛는 不如小實" 2 : 1913
35 "各宗綱要"
36 凝然, "冠註八宗綱要" 京都書林 1887
37 朴漢永, "佛敎의 興廢所以를 탐구할 今日" 4 : 1914
38 朴漢永, "佛敎講師와 頂門⾦針" 9 : 1912
39 佛敎各宗協會, "佛敎各宗綱要 1" ⾙葉書院 1896
40 "佛敎史攬要"
41 韓⿓雲, "佛敎⾭年運動을 復活하라" 新10 : 1938
42 島地黙雷, "三國佛敎略史 上" 鴻盟社 1890
송당(松堂) 조준(趙浚)의 한시에 나타난 『논어(論語)』 수용과 그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