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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求禮 義兵의 항일투쟁 = The Gurye RA’s Fight for Act of Aggression by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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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418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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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look at the Righteous Armies (RA) in the Jeolla province. In this article, Gurye RA refers to the RA activity from Gurye(求禮) or RA activity developed on the stage of Gurye. It is difficult to find any specific research on Gurye RA. Accordingly, the figures who were from Gurye and participated in the RA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RA activities were first reviewed. Next, the characteristics of a righteous camp, who was active in the Gurye area, were examined.
      As a result, RA from Gurye were born in the 1850s and 1880s, and the age of participants in RA activities at the time was between their 20s and 50s. Their status and occupation were identified as ordinary farmers or merchants, except for two Confucian scholars, Lim Hyun-joo(林顯周) and Yoo Byeong-gi(劉秉淇). Their residences are mainly mountainous areas such as Masan-myeon and Toji-myeon close to Mt. Jiri and Mt. Baegun.
      Some of them were active in a righteous camp in other regions, and most of RA who were active in Gurye belonged to a righteous camp Ko Gwang-soon(高光洵). Among them, Yoo Byeong-gi was the most notable RA leader.
      Baek Nak-gu(白樂九), Kim Dong-shin(金東臣), and Ko Gwang-soon are representative of the RA leaders from other regions who worked in Gurye.
      They organized their own righteous camps and were active in Gurye and other Mt, Jiri areas. Among them, Baek Nak-gu was the blind RA, and he was the first to raise a RA in Gurye. After that, Kim Dong-shin from Hoedeok(懷德), Chungcheongnam-do, and Ko Gwang-soon from Changpyeong (昌平), Jeollanam-do, staged an anti-Japanese struggle based on the so-called the theory of the base camp in Mt. Jiri(智異山根據地論). In particular, they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RA by using temples in Gurye, such as the Munsuam Temple in Munsugol and the Yeongoksa Temple in Piagol, Mt.
      Jiri areas. In addition, they fought with the Japanese military and police by crossing Mt. Jiri areas such as Namwon(南原) in Jeollabuk-do, Gwangyang (光陽) and Gokseong(谷城) in Jeollanam-do, and Hamyang(咸陽) and Hadong (河東) in Gyeongsangnam-do, centering on Gurye. Their theory of the base camp in Mt. Jiri was well received by RA in the Samnam(三南, the three provinces) region, and around 1908, Mt. Jiri was transformed into a righteous army base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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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look at the Righteous Armies (RA) in the Jeolla province. In this article, Gurye RA refers to the RA activity from Gurye(求禮) or RA activity developed on the stage of Gurye. It is difficult to find any specific res...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look at the Righteous Armies (RA) in the Jeolla province. In this article, Gurye RA refers to the RA activity from Gurye(求禮) or RA activity developed on the stage of Gurye. It is difficult to find any specific research on Gurye RA. Accordingly, the figures who were from Gurye and participated in the RA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RA activities were first reviewed. Next, the characteristics of a righteous camp, who was active in the Gurye area, were examined.
      As a result, RA from Gurye were born in the 1850s and 1880s, and the age of participants in RA activities at the time was between their 20s and 50s. Their status and occupation were identified as ordinary farmers or merchants, except for two Confucian scholars, Lim Hyun-joo(林顯周) and Yoo Byeong-gi(劉秉淇). Their residences are mainly mountainous areas such as Masan-myeon and Toji-myeon close to Mt. Jiri and Mt. Baegun.
      Some of them were active in a righteous camp in other regions, and most of RA who were active in Gurye belonged to a righteous camp Ko Gwang-soon(高光洵). Among them, Yoo Byeong-gi was the most notable RA leader.
      Baek Nak-gu(白樂九), Kim Dong-shin(金東臣), and Ko Gwang-soon are representative of the RA leaders from other regions who worked in Gurye.
      They organized their own righteous camps and were active in Gurye and other Mt, Jiri areas. Among them, Baek Nak-gu was the blind RA, and he was the first to raise a RA in Gurye. After that, Kim Dong-shin from Hoedeok(懷德), Chungcheongnam-do, and Ko Gwang-soon from Changpyeong (昌平), Jeollanam-do, staged an anti-Japanese struggle based on the so-called the theory of the base camp in Mt. Jiri(智異山根據地論). In particular, they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RA by using temples in Gurye, such as the Munsuam Temple in Munsugol and the Yeongoksa Temple in Piagol, Mt.
      Jiri areas. In addition, they fought with the Japanese military and police by crossing Mt. Jiri areas such as Namwon(南原) in Jeollabuk-do, Gwangyang (光陽) and Gokseong(谷城) in Jeollanam-do, and Hamyang(咸陽) and Hadong (河東) in Gyeongsangnam-do, centering on Gurye. Their theory of the base camp in Mt. Jiri was well received by RA in the Samnam(三南, the three provinces) region, and around 1908, Mt. Jiri was transformed into a righteous army base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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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전라도 의병 중에서 求禮 義兵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글에서 구례의병이란 구례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했거나, 구례를 무대로 전개한 의병 활동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한말 구례 의병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구례출신으로 의병에 참여한 인물과 그들의 의병 활동상의 특징을 먼저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구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義陣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구례 출신 의병들은 1850년대에서 1880년대 출생자로서 의병에 참여한당시의 연령은 20대에서 50대에 해당되었다. 이들의 신분이나 직업은 임현주와 유병기등 유학자 2명을 제외하면 평범한 농민이나 상인들로 파악되었다. 이들의 거주지는 마산면과 토지면 등 주로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가까운 산간 지역이다. 이들 중 일부는 타지역의 의진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며, 구례에서 활동한 의병들은 대부분 고광순 의진 소속이었다. 이들 중에서 유병기가 가장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다.
      구례에서 활동한 타 지역 출신 의병장으로는 백낙구 김동신 고광순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독자적인 의진을 조직하여 구례를 비롯한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 중에백낙구는 맹인의병장이었는데, 구례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충남 회덕 출신의 김동신과 전남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이른바 지리산근거지론에 입각하여 항일투쟁을전개하였다. 특히, 이들은 지리산 문수골의 문수암과 피아골의 연곡사 등 구례지역 사찰을 근거지로 삼아 의병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들은 구례를 중심으로 전북의 남원, 전남의 곡성 광양, 경남의 하동 함양 등 지리산권역을 넘나들며 일본 군경과 싸웠다.
      이들의 지리산근거지론은 삼남지방 의병들의 큰 호응을 받았으며, 1908년을 전후하여지리산은 의병기지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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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전라도 의병 중에서 求禮 義兵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글에서 구례의병이란 구례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했거나, 구례를 무대로 전개한 의병 활동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한말 ...

      이 글은 전라도 의병 중에서 求禮 義兵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글에서 구례의병이란 구례 출신으로 의병 활동을 했거나, 구례를 무대로 전개한 의병 활동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한말 구례 의병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구례출신으로 의병에 참여한 인물과 그들의 의병 활동상의 특징을 먼저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구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義陣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구례 출신 의병들은 1850년대에서 1880년대 출생자로서 의병에 참여한당시의 연령은 20대에서 50대에 해당되었다. 이들의 신분이나 직업은 임현주와 유병기등 유학자 2명을 제외하면 평범한 농민이나 상인들로 파악되었다. 이들의 거주지는 마산면과 토지면 등 주로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가까운 산간 지역이다. 이들 중 일부는 타지역의 의진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며, 구례에서 활동한 의병들은 대부분 고광순 의진 소속이었다. 이들 중에서 유병기가 가장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다.
      구례에서 활동한 타 지역 출신 의병장으로는 백낙구 김동신 고광순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독자적인 의진을 조직하여 구례를 비롯한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 중에백낙구는 맹인의병장이었는데, 구례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충남 회덕 출신의 김동신과 전남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이른바 지리산근거지론에 입각하여 항일투쟁을전개하였다. 특히, 이들은 지리산 문수골의 문수암과 피아골의 연곡사 등 구례지역 사찰을 근거지로 삼아 의병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들은 구례를 중심으로 전북의 남원, 전남의 곡성 광양, 경남의 하동 함양 등 지리산권역을 넘나들며 일본 군경과 싸웠다.
      이들의 지리산근거지론은 삼남지방 의병들의 큰 호응을 받았으며, 1908년을 전후하여지리산은 의병기지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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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홍영기, "麗水抗日運動史" 여수항일운동사편찬위원회 2006

      2 원재연, "한말-일제강점기 남원유학자 박해창(朴海昌, 1876-1933)의 자강론과 계몽활동" 역사실학회 (62) : 153-189, 2017

      3 홍영기, "한말 후기의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4 박민영, "한말 중기의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5 홍영기, "한말 나주의병의 주도인물과 활동" 한국학연구소 34 : 969-1000, 2010

      6 홍영기, "한말 고흥지역의 의병항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60) : 5-33, 2017

      7 홍영기, "한말 高光洵의 의병활동과 智異山根據地論" 호남사학회 (47) : 71-95, 2012

      8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9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10 고영진, "의향의 고장 담양" 담양군 2004

      1 홍영기, "麗水抗日運動史" 여수항일운동사편찬위원회 2006

      2 원재연, "한말-일제강점기 남원유학자 박해창(朴海昌, 1876-1933)의 자강론과 계몽활동" 역사실학회 (62) : 153-189, 2017

      3 홍영기, "한말 후기의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4 박민영, "한말 중기의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5 홍영기, "한말 나주의병의 주도인물과 활동" 한국학연구소 34 : 969-1000, 2010

      6 홍영기, "한말 고흥지역의 의병항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60) : 5-33, 2017

      7 홍영기, "한말 高光洵의 의병활동과 智異山根據地論" 호남사학회 (47) : 71-95, 2012

      8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9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10 고영진, "의향의 고장 담양" 담양군 2004

      11 黃玹, "역주 매천야록 (전3책)" 문학과지성사 2005

      12 "독립운동판결문 홈페이지"

      13 "독립운동사자료집 3"

      14 高光烈, "독립운동사자료집 3" 1971

      15 "독립운동사자료집 3"

      16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일조각 2004

      17 박민영, "대한 선비의 표상 최익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2

      18 高光洵, "국역 녹천유고" 담양문화원 1994

      19 "구한국관보"

      20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

      21 홍영기, "강진원 의병장의 생애와 활동"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12 : 2006

      22 黃炳中, "鼓巖集, 상·하(2책)" 1938

      23 순천시사편찬위원회, "順天市史 : 정치·사회편" 순천시사편찬위원회 1997

      24 국사편찬위원회, "韓國獨立運動史 1" 국사편찬위원회 1965

      25 朴殷植, "韓國獨立運動之血史" 維新社 1920

      26 "陣中日誌 (전3책)" 토지주택박물관 2010

      27 정다희, "警堂 林顯周의 生涯와 義兵活動" 남도문화연구소 (39) : 213-244, 2020

      28 홍영기, "舊韓末 全羅南道 島嶼地方 義兵에 대한 一考察 : 특히 莞島·海南지역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21 : 1990

      29 이일룡, "秘錄 韓末全南義兵戰鬪史" 全南日報印書館 1977

      30 "皇城新聞"

      31 高永煥, "無名烈士 高光洵(1847-1907)" 東亞日報社 9 : 1932

      32 "湖南節義錄, 下"

      33 김성호, "求禮 柳氏家의 생활일기 1851~1915, 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1

      34 "杏史實紀"

      35 朴殷植, "朴殷植全書, 上" 단국대학교 출판부 1975

      36 "朝鮮總督府官報"

      37 "朝鮮暴徒討伐誌"

      38 "暴徒에 관한 編冊"

      39 "暴徒史編輯資料"

      40 김동신, "文集"

      41 "大韓每日申報"

      42 "全羅南道誌 6"

      43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8~19"

      44 홍영기, "19세기 중엽이후 李最善家의 民族運動"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39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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