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송국리유적은 지금까지 실시된 수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 무문토기(無文土器)시대에서 부터 삼한, 삼국,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많은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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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식 (국립진주박물관)
1998
Korean
900
학술저널
5-49(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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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송국리유적은 지금까지 실시된 수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 무문토기(無文土器)시대에서 부터 삼한, 삼국,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많은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중심을 이루는 유적군은 무문토기시대 유적으로 수십동(數十棟)에 이르는 주거지군, 토기요지, 저장시설, 석관묘, 그리고 다수의 옹관묘 등 생산, 생활, 매장 등 취락(聚落)의 제(諸) 구성요소들이 복합된 우리나라 최대의 대단위 취락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송국리 52지구는 송국리유적군 가운데서도 요령식동검이 출토된 석관묘의 확인으로 가장 먼저 알려져 주목받았던 곳이다. 그동안 이 석관묘가 위치한 52지구의 돌출 구릉에 대해서 입지의 우월성, 석관의 규모와 축조상태, 요령식동검·동착(銅鑿)과 같은 청동기의 출토 등에 근거하여 무문토기시대 송국리 취락의 지배자묘(支配者墓)로 이해하고 동검묘(銅劍墓)만이 단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기존에 알려진 청동묘와 옹관묘 이외에 석개토광묘(石蓋土壙墓) 2기와 석관묘 3기, 옹관묘 1기가 새로이 확인됨으로써 동검묘를 정점으로 하는 주거와 매장공간과의 유기적인 결합·분리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송국리 52지구 무문토기시대 무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와 그 성과를 소개하였다.
목차 (Table of Contents)
납동위원소비법에 의한 청당동유적 출토 청동제대구(靑銅製帶鉤)의 산지추정
창녕 여초리 B지구 1호 토기요지에 대한 고고지자기 측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