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대략 100여기가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마애불 200여기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하지만, 고려시대 마애불 가운데 명문이나 관련 기록이 있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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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애 (동국대학교)
2019
Korean
덕주사 ; 月岳寺 ; 월악산 ; 고성 거류산 ; 마애불 ; 觀奧(1096~1158) ; 願堂 사찰 ; 미륵불 ; 法相宗 ; Deokjusa Temple ; Woraksa Temple ; Mt. Worak ; Mt. Georyu of Goseong ; Rock-carved Buddha Statue ; Gwanoh(觀奧 ; 1096~1158) ; Memorial Temple (願堂) ; Maitreya ; Fa-xiang School(法相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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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483-518(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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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고려시대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대략 100여기가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마애불 200여기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하지만, 고려시대 마애불 가운데 명문이나 관련 기록이 있어 정...
고려시대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대략 100여기가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마애불 200여기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하지만, 고려시대 마애불 가운데 명문이나 관련 기록이 있어 정확한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예는 극히 적다. 이곳 제천 덕주사 마애불입상도 고려 전기 크게 유행했던 대형 마애불 가운데 하나이지만, 역시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덕주사 마애불의 양식을 고려하면, 11세기 전-중반 무렵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덕주사 마애불입상의 얼굴 모습은 이전 시기에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미감이다. 이러한 모습은 불상의 크기가 크다는 점과 함께 중부지역 불상의 특징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경남 고성 거류산에서 동일한 양식의 마애불이 알려지면서, 지역 구분없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덕주사 마애불이 위치한 월악산 인근은 영남에서 각 지역으로 이르는 길목에 있는데다가, 남한강 수로의 출발지였다. 덕주사 마애불입상과 유사한 양식의 마애불을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한편, 1158년 작성한 觀奧(1096~1158)의 묘지명을 통해 덕주사가 12세기 전반에는 법상종 사찰이며, 원당 사찰이었음도 알게 됐다. 관오는 그의 묘지명이 작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중앙 교단에서 활동했던 중요한 승려였음을 알려준다. 관오는 법상종 승려였다. 관오가 법상종 승려였음은 그가 출가한 승려 상지가 고려 최고의 법상종 사찰인 현화사의 승통이었으며, 관오 자신이 법상종 대표 사찰 가운데 하나인 법천사 주지를 지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된다. 그런 그가 덕주사가 願堂이라고 밝혔다는 점, 그리고 덕주사의 승려를 불러 왕을 위한 축성도량을 열었다는 점에서 당시 덕주사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덕주사 역시 법상종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덕주사 마애불의 존명은 이 시기 법상종 승려와 미륵불의 관계, 13m에 이르는 덕주사 마애불의 크기로 미뤄 볼 때 미륵불로 볼 수 있다. 덕주사는 교통이 사방으로 열린 월악산에 거대한 마애불을 새기고, 나라의 안녕을 빌었던 고려 전기 대표 호국도량 가운데 하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bout 100 rock-carved Buddha statues of Goryeo era are known nationwide. This is about half of 200 rock-carved Buddha statues in Korea. However, there are very few examples of Goryeo era rock-carved Buddha statues that can be used to determine the exa...
About 100 rock-carved Buddha statues of Goryeo era are known nationwide. This is about half of 200 rock-carved Buddha statues in Korea. However, there are very few examples of Goryeo era rock-carved Buddha statues that can be used to determine the exact time of production due to the inscription or related records. The rock-carved standing Buddha statue at Deokjusa temple in Jecheon is one of the large rock-carved Buddha statues that were very popular in the early Goryeo era, but the exact time of production is also unknown. The rock-carved Buddha statue at Deokjusa temple was considered to have been created in the first half of the 11th century, considering its style. The face of the rock-carved standing Buddha statue at Deokjusa temple is a new aesthetic not found in previous periods. This figure is known as a feature of the central region, mainly Chungcheong, along with the large sized Buddha statue, but recently, the same style of rock-carved Buddha statues are known at Mt. Georyu, Goseong, Gyeongnam, confirming that they were popular nationwide. In particular, the region around Mt. Worak where the Deokjusa temple rock-carved Buddha statue is located is on the way from Yeongnam to various regions, and was the starting point of the Namhan River channel. This is why the rock-carved Buddha statue, which is similar in style to the Deokjusa temple rock-carved standing Buddha statue, can be found all over the country.
The grave name of Gwanoh (觀奧, 1096~1158), written in 1158, also revealed that the Deokjusa temple was one of the Fa-xiang (法相) temples, and the Memorial Temple as well in the first half of the 12th century. Just the fact that there is his grave name written tells us that Gwanoh was an important monk in the central Order. Gwanoh was a Fa-xiang School monk. The monk sanctuary he was in was Seungtong of Hyeonhwasa temple which is Koryo's best Fa-xiang temple, and This is confirmed by the fact that Gwanoh himself was the head of Beopcheonsa temple, one of the representative temples of Fa-xiang. In that sense that he said Deokjusa temple was a Memorial Temple (願堂), and in that the monks of the Deokjusa temple were called to open fortification Doryang for the king, it is possible to presume the status of the Deokjusa temple at that time. It is very likely that the Deokjusa temple was also one of Fa-xiang temples, and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name of the Deokjusa temple rock-carved Buddha statue at this time is the Maitreya in the light of gues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Fa-xiang monks and the Maitreya and the size of the Deokjusa temple rock-carved Buddha statue reaching 13m. Deokjusa temple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 nation-defending Doryang in the early Goryeo era who carved a giant rock-carved Buddha statue at Mt. Worak where traffic is open everywhere and wished the country tranqu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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