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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8년 무신란(戊申亂) 관련 문헌의 재검토 = A Re-assessment of the Texts on the 1728 Musin Rebe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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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무신란(戊申亂)은 18세기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영조가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국왕의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라는 요소를 내포한 위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왕은 실제 사건의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신을 녹훈하였고, 공식적인 이해의 틀을 담은 『감란록』(1729)과 『천의소감』(1755)을 간행했다. 국왕이 제시한 사건 이해에 대해 여러 방향의 반론이 있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이후 조선의 망국 이전까지는 『감란록』 등에 대한 전면적인 반론을 담은 문헌은 간행되지 않았다. 대신에 정치집단 혹은 가문이나 지역의 관점에서 나름의 의도를 갖고 『감란록』을 보완하는 문헌들이 나타났는데, 『남정일록』, 『무신창의록』, 『호남절의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문헌은 국가에서 주도한 공식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적으로 공인받지는 못했으며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공적을 강조 또는 과장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또 때로는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운 진술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반론이라면 소극적인 반론인 셈이다.
      조선 왕조가 끝나고 붕당의 의미가 약화된 시점에 이르면, 무신란은 허구화의 대상이 된다. 힘센 장사이자 큰 전공을 세운 장수로 알려진 공신 이만유의 행적을 다룬 전기를 편찬한다고 내세운 『사상당실록문집』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문헌에서는 『남정일록』과 같은 기존의 기록에서 각종 전공의 주체를 ‘이만유’로 바꾸는 등의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때로는 야담이나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에 의하면 이만유는 어릴 때 천재성을 보이고 자라서는 이인(異人)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얻었으며 낮은 신분임에도 국왕의 예우를 받으며 출정하고 제갈량 같은 지략을 발휘하여 초인적인 공을 세우는 인물이 된다. 이 문헌이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남은 것은 이러한 허구화가 아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용인되기 어려웠을 허구화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헌이 많이 산출되지는 못했는데, 이는 무신란이 국왕이 없어진 시대의 새로운 관심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단군이나 동명왕,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장희빈이나 사도세자 등이 자주 문학의 소재가 되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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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란(戊申亂)은 18세기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영조가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국왕의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라는 요소를 내포한 위험한 사...

      무신란(戊申亂)은 18세기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영조가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국왕의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라는 요소를 내포한 위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왕은 실제 사건의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신을 녹훈하였고, 공식적인 이해의 틀을 담은 『감란록』(1729)과 『천의소감』(1755)을 간행했다. 국왕이 제시한 사건 이해에 대해 여러 방향의 반론이 있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이후 조선의 망국 이전까지는 『감란록』 등에 대한 전면적인 반론을 담은 문헌은 간행되지 않았다. 대신에 정치집단 혹은 가문이나 지역의 관점에서 나름의 의도를 갖고 『감란록』을 보완하는 문헌들이 나타났는데, 『남정일록』, 『무신창의록』, 『호남절의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문헌은 국가에서 주도한 공식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적으로 공인받지는 못했으며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공적을 강조 또는 과장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또 때로는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운 진술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반론이라면 소극적인 반론인 셈이다.
      조선 왕조가 끝나고 붕당의 의미가 약화된 시점에 이르면, 무신란은 허구화의 대상이 된다. 힘센 장사이자 큰 전공을 세운 장수로 알려진 공신 이만유의 행적을 다룬 전기를 편찬한다고 내세운 『사상당실록문집』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문헌에서는 『남정일록』과 같은 기존의 기록에서 각종 전공의 주체를 ‘이만유’로 바꾸는 등의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때로는 야담이나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에 의하면 이만유는 어릴 때 천재성을 보이고 자라서는 이인(異人)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얻었으며 낮은 신분임에도 국왕의 예우를 받으며 출정하고 제갈량 같은 지략을 발휘하여 초인적인 공을 세우는 인물이 된다. 이 문헌이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남은 것은 이러한 허구화가 아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용인되기 어려웠을 허구화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헌이 많이 산출되지는 못했는데, 이는 무신란이 국왕이 없어진 시대의 새로운 관심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단군이나 동명왕,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장희빈이나 사도세자 등이 자주 문학의 소재가 되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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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Musin Rebellion(戊申亂)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ffair in the hiotory of 18th Century Joseon. On the occasion of this rebellion King Yeongjo reorganized the taxation and examination system, but he had to keep his eyes on the public discourse. Because it was clear that this rebellion put forward a dangerous argument that implied doubts about the legitimacy of the king. While the king praised many public figures, he compiled a book with official opinions, suck as Gamlanrok(勘亂錄) and Cheneuisogam(闡義昭鑑). Although some might have disagreed with the descriptions in these texts, no documentary works containing full-scale counterargument against the Gamlanrok was published during the Joseon Dynasty. Instead, texts to supplement Gamlanrok with its own inten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action, family or region appeared, including Namjeongilrok(南征日錄) and Honamjeleuirok(湖南節義錄). These texts seem to be official records led by the state, but in reality they are not nationally recognized and bear the mark of highlighting or exaggerating the achievements of a particular individual or group. It also sometimes contains suspicious statements about whether they are true or not.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Musin Rebellion turned into an object of fictionalization. A case in point is the Sasangdang-Silok-munjip(四尙堂實錄文集) which features a biography about the achievements of the powerful man and great general Yi manyu. In this book, editor or writter changed other people's exploits to those of Yi Manyu, and sometimes added elements of legend and fiction. The fact that this work has not yet been published shows that there is a limit to the social acceptance of such fiction, but nevertheless, it is certainly a new change to show the face of fiction tha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tolerate before. However, the similar texts did not produce much, which is believed to be due to the fact that Musin Rebellion was inconsistent with the new concerns of the time. At least it cannot be evaluated as a successful reinterpretation or reconstruction of this rebe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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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n Rebellion(戊申亂)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ffair in the hiotory of 18th Century Joseon. On the occasion of this rebellion King Yeongjo reorganized the taxation and examination system, but he had to keep his eyes on the public discourse. ...

      Musin Rebellion(戊申亂)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ffair in the hiotory of 18th Century Joseon. On the occasion of this rebellion King Yeongjo reorganized the taxation and examination system, but he had to keep his eyes on the public discourse. Because it was clear that this rebellion put forward a dangerous argument that implied doubts about the legitimacy of the king. While the king praised many public figures, he compiled a book with official opinions, suck as Gamlanrok(勘亂錄) and Cheneuisogam(闡義昭鑑). Although some might have disagreed with the descriptions in these texts, no documentary works containing full-scale counterargument against the Gamlanrok was published during the Joseon Dynasty. Instead, texts to supplement Gamlanrok with its own inten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action, family or region appeared, including Namjeongilrok(南征日錄) and Honamjeleuirok(湖南節義錄). These texts seem to be official records led by the state, but in reality they are not nationally recognized and bear the mark of highlighting or exaggerating the achievements of a particular individual or group. It also sometimes contains suspicious statements about whether they are true or not.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Musin Rebellion turned into an object of fictionalization. A case in point is the Sasangdang-Silok-munjip(四尙堂實錄文集) which features a biography about the achievements of the powerful man and great general Yi manyu. In this book, editor or writter changed other people's exploits to those of Yi Manyu, and sometimes added elements of legend and fiction. The fact that this work has not yet been published shows that there is a limit to the social acceptance of such fiction, but nevertheless, it is certainly a new change to show the face of fiction tha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tolerate before. However, the similar texts did not produce much, which is believed to be due to the fact that Musin Rebellion was inconsistent with the new concerns of the time. At least it cannot be evaluated as a successful reinterpretation or reconstruction of this rebe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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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동수, "호남절의록의 사료가치 검토(1)" 호남사학회 (44) : 31-104, 2011

      2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3 "평남녹"

      4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5 "천의소감(闡義昭鑑)"

      6 이종범,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13-289, 2003

      7 이이화, "조선당쟁관계자료집 9" 여강출판사 1985

      8 이욱, "조선 영조대 무신란과 안동 지방의 ‘의병’" 고려사학회 (42) : 141-168, 2011

      9 박상석, "전란에 뒤흔들린 민간인의 일상 - 민간인의 무신란(戊申亂) 체험 실기 연구 -" 열상고전연구회 (54) : 35-67, 2016

      10 고성훈, "영조의 정통성을 묻다, 무신란과 모반 사건"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1 김동수, "호남절의록의 사료가치 검토(1)" 호남사학회 (44) : 31-104, 2011

      2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3 "평남녹"

      4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5 "천의소감(闡義昭鑑)"

      6 이종범,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13-289, 2003

      7 이이화, "조선당쟁관계자료집 9" 여강출판사 1985

      8 이욱, "조선 영조대 무신란과 안동 지방의 ‘의병’" 고려사학회 (42) : 141-168, 2011

      9 박상석, "전란에 뒤흔들린 민간인의 일상 - 민간인의 무신란(戊申亂) 체험 실기 연구 -" 열상고전연구회 (54) : 35-67, 2016

      10 고성훈, "영조의 정통성을 묻다, 무신란과 모반 사건"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11 이원균, "영조 무신란에 대하여" 효원사학회 (2) : 63-87, 1971

      12 장필기, "영조 대의 무신란, 탕평의 길을 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3 유탁일, "아뢴즉 장수잡는 일이기에" 오늘의 문학사 (창간) : 34-67, 1977

      14 "사상당실록문집(四尙堂實錄文集)"

      15 유탁일, "미발표작품 <날리가>에 대하여" 국어국문학회 (61) : 108-111, 1973

      16 "무신창의록(戊申倡義錄)"

      17 "동소만록(桐巢漫錄)"

      18 최선혜, "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의 시문에 나타난 영남의 인상-1728년 무신란(戊申亂)의 흔적을 중심으로-" 한국문화연구원 27 : 41-74, 2014

      19 "남정일록(南征日錄)"

      20 "감란록(勘亂錄)"

      21 허태용, "英祖代 蕩平政局下 國家義理書 편찬과 戊申亂 해석 - 『勘亂錄』, 『御製大訓』, 『闡義昭鑑』의 비교 검토 -" 한국사학회 (116) : 71-104, 2014

      22 고수연, "英祖代 戊申亂 硏究의 現況과 課題" 호서사학회 (39) : 177-212, 2004

      23 이지영, "『闡義昭鑑諺解』의 異本에 대한 고찰" 한국학중앙연구원 33 (33): 95-121, 2010

      24 정승철, "『闡義昭鑑諺解』의 異本 比較"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3) : 39-58, 1990

      25 고수연, "『戊申倡義錄』을 통해 본 18, 19세기 嶺南 南人의 정치동향" 호서사학회 (65) : 311-350, 2013

      26 노기춘, "「湖南節義錄」에 관한 硏究" 한국서지학회 (44) : 271-299, 2009

      27 정병설, "‘도서원부’를 통해 본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의 한국고서 수집" 태학사 (63) : 117-144, 2013

      28 Andrew David Jackson, "The 1728 Musin Rebellio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6

      29 정우봉, "18세기 馬兵의 한글일기 『난리가』 연구" 한국고전문학회 (43) : 295-326, 2013

      30 조찬용, "1728년 무신봉기와 300년 차별" 학고방 2012

      31 허태용, "1728년 戊申亂의 진압과 『戡亂錄』의 편찬" 한국사연구회 (166) : 107-14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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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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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3 0.73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55 1.5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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