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4월의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통해 한일회담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한일회담은 한국-일본 양국가의 외교문제 이상의 문제성을 안고 있었다. 일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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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349-38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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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4월의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통해 한일회담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한일회담은 한국-일본 양국가의 외교문제 이상의 문제성을 안고 있었다. 일본과의 수교는 과거사의 문제 외에도 세계질서와 연결된다. 한일수교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에 한국이 편입됨을 뜻하는 것으로, 자유진영의 일원인 일본은 갈등과 협력의 대상이라는 양가적 관계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일본을 대하는 한국의 첫 번째 반응은 감정적 분노였다. 그리고 이 분노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감정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한일회담의 배후에 미국이 있고, 세계질서와 연관되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한일회담에 대한 인식은 변화한다. 군사정권은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기호를 통해 한국의 특수성과 세계의 보편성이 만날 가능성을 타진했다. ‘민족적’이라는 수사는 한국의 특수성을 실현하는 의의를 가진다. 이를 위한 한국의 선택지 중 하나로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 체제가 있었지만 한국의 선택은 미국이라는 세계질서였다. 친미-반공의 태도를 취한 지식인들은 군사정권을 비판했지만, 미국이라는 세계질서에는 침묵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세계질서 속의 한국의 주체성은 경제를 통해 상상될 수 있었다. 경제는 근대성의 중핵이었으며, 한국의 주체성과 세계가 만나는 실천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의 문제는 탈냉전, 비동맹의 상상력 속에서도 중요한 심급으로 이해되었다. 경제의 장에서도 군사정권은 비판받았지만 세계체제를 인정한 이상 한국의 역할과 국익은 한정적이었다. 이때 글쓰기가 추구한 것이 실력양성과 내면의 완성이었다. 당시의 저널리즘 글쓰기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함께 민족의 실력양상이라는 담론을 구성했다. 일본은 한국의 주체성을 인식하기 위한 경로였다. 그리고 주체성 수립을 위해서는 도덕적 역량이 요구되었다. 수기, 논픽션, 그리고 『조선총독부』 속의 인물은 도덕적 우위로써 식민지 지배를 상상적으로 극복했다. 도덕적 우위는 실질적 힘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인 보상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 형성을 지향했다.
목차 (Table of Contents)
한국어교육에서 대화 분석 방법론의 수용 양상과 발전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