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떻게 타자를 사유하는가, 라는 질문은 시가 어떻게 공동체를 사유하는가, 라는 질문과 연동되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전자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시와 공동체의 관계를 밝혀보고자 했...
시는 어떻게 타자를 사유하는가, 라는 질문은 시가 어떻게 공동체를 사유하는가, 라는 질문과 연동되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전자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시와 공동체의 관계를 밝혀보고자 했다. 타자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소통’이라는 주제에 의거할 수 없다. 시의 언어는 투명한 언어가 아니라 불투명한 언어이며, 시에서 교환되는 것은 ‘의견’이 아니라 ‘역설’이며, 시는 동일성의 지평이 아니라 이질성의 지평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시와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시의 존재론적인 위상에서 타자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 있음을 논증해야 한다. 그 구체적 특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지에서 확인되는 타자가 있다. 이미지 자체가 타자의 흔적이다. 이미지는 타자에게서 오는 힘의 흔적이며, 이를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작용이 상상력이다. 이미지들은 상상력을 통해서 이성에 병합되지 않고, 변용 그 자체로 확산되며, 이 다양체들이 타자의 존재를 확증해준다. 타자를 받아들일 때 나는 수동성과 무능력과 무한함을 품게 된다. 이것이 ‘감각’이 품은 타자의 형상이다.
둘째, 어조가 품은 공동체가 있다. 이성과 감성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기분’을 일컫는 시학의 용어가 어조인데, 이것은 주체의 주관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태도가 처음부터 ‘~에 대한 태도’이므로 어조는 타자지향적이다. 그것은 화자의 심리상태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며,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를 반영하는 객관적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셋째, 비유가 만들어내는 타자 영접(환대)의 방식이 있다. 비유는 타자를 포괄하는 시적 사유의 운동 양식이다. 은유는 동일성과 이질성을 결합하는 자리에서 타자를 받아들이고, 제유는 구체화와 일반화의 과정에서 주체와 다른 개별적 타자들, 주체를 포함하지 않는 상위개념의 타자들을 받아들인다. 한편 환유는 처음부터 이질적인 타자들과의 무매개적 연관을 창조한다.
시는 이 세 가지 통로를 통해 타자들의 놀이터이자 전장이 된다. 이 지평을 ‘상황’이라 부를 수 있다. 상황은 주체와 타자가 만나는 감각의 현장(이미지), 둘이 교섭하는 관계의 표현(어조), 타자들의 환대를 실천하는 놀이터(비유)다. 그렇게 본다면 시는 어떤 예술장르보다도 더 강력하고 집요하게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