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조선시대의 도교 연구에서 가장 주목하였던 것은 중종대의 昭格署 폐지를 둘러싼 문제였다. 그러나 소격서 문제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강화도 참성단에 대한 규...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60108578
2008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267-294(28쪽)
11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지금까지 조선시대의 도교 연구에서 가장 주목하였던 것은 중종대의 昭格署 폐지를 둘러싼 문제였다. 그러나 소격서 문제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강화도 참성단에 대한 규...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도교 연구에서 가장 주목하였던 것은 중종대의 昭格署 폐지를 둘러싼 문제였다. 그러나 소격서 문제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강화도 참성단에 대한 규명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昭格殿에서는 祈의 의례가 엄숙하며, 塹城壇 또한 春ㆍ秋의 醮禮가 경건하니 이는 일정한 나라의 祭典[國典]이다.”라고 하여, 소격서와 함께 참성단을 아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성은 고려시대부터 초례가 행해지고 있었다. 참성에서 초례가 행해지기 시작한 것은 몽고와의 전란으로 강화로 천도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개경의 모든 시설을 그대로 江都(강화)로 옮긴 고려왕조는 초례를 강화도 내에서 거행해야 했다. 그리하여 원종 때 가서는 개경 환도와 맞물리면서 참성에서도 초례가 거행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조선시대에 들어 초례처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참성은 유지되었다. 조선은 유교체제를 표방하였지만 도교 의례인 초례는 祀典에 올라있는 국가제례였다. 국가제례에서 초례는 대ㆍ중ㆍ소사 중 小祀로 거행되었다. 그리고 참성도 소격전에서 거행되는 초례와 마찬가지로 소사로 거행되었다. 즉 조선시대의 초례는 사전에 규정된 국가의례였으며, 국가의례로서 행해진 초례처로서 소격전과 함께 참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참성은 고려 후기 이래 단군의 제천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마니산은 원래 불교와 관련된 곳이었다. 참성단이 단군과 연계된 것은 강화천도 이후 이곳에서 행해진 초례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제천 의식이었던 초례로 인해 제천단=단군이라는 인식이 ‘世傳’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후기 들어 단군 인식의 제고와 맞물리면서 참성을 단군과 관련짓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tried to reveal the meaning of Chamseong(塹城) and it's Taoist ritual in the early Chosun period. However, The Chamseong becamed known as Tangun's Temple of Heaven. Before the Koryo period, Tangun(檀君) was apparently known and worsh...
This paper tried to reveal the meaning of Chamseong(塹城) and it's Taoist ritual in the early Chosun period. However, The Chamseong becamed known as Tangun's Temple of Heaven.
Before the Koryo period, Tangun(檀君) was apparently known and worshiped as a god of local safety and prosperity. Tangun transmission was discovered in the four regions, Mt. Myohyang, Pyongyang, Mt. Guwol, Mt. Mani(麻尼).
Ganghwa Island is an island in the estuary of the Han River, on the west coast of Korea peninsula. The island's highest point is Mt. Mani, 469 meters above sea level. Legendary god-king Tangun is said to have made an altar on top of Mt. Mani, chamseong, and offered sacrifices to his ancestors.
But in the early Koryo period, Mt. Mani, or Mt. Mali was related with the Buddism. Mani is Maniboju(摩尼寶珠), Mound. Mali is Malizichon(摩利支天), Heaven god. By the way in the middle Koryo period, Taoist ritual was celebrated in Mt Mali. And the function of Tangun transmission and the adoption process of Tangun's position as the Korean ancestor which occurred during Yuan's reconciliatory period. In 1231, Mongolians invaded Koryo, The court of Koryo took refuge on the Ganghwa island as Mongol forces invaded in 1232. Goryeo resisted for about 30 years but finally sued for peace in 1259. So Mt. Mani, Ganghwa Island was historical space.
In the early period of chosun dynasty, Taoism's religious role was accepted, and there were Taoist temples such as Sokyeojon(昭格殿), Taecheongkwan(太淸觀), Tailjon(太一殿), and Chamseong. Especially Sokyeojon and Chamseong ware the Taoist temples as well as an organization for performing the Taoist Rituals. As the Taoist Ritual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National Rituals. And the Taoist Rituals and the Taoist Rituals of Chamseong was held in accordance with the practice of small sacrificial rite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서영대, "한국사(26)" 국사편찬위원회 1995
2 "한국문집총간"
3 김철웅, "조선초의 道敎와 醮禮" 19 : 2002
4 崔先惠, "조선초기 태조?태종대의 醮祭의 시행과 왕권강화" 17 : 2001
5 유병래, "조선조 소격전의 연원과 터에 관한 고찰" 32 : 2006
6 "조선왕조실록"
7 "용재총화"
8 "삼국유사"
9 "국조오례의"
10 김성환, "고려시대의 단군전승과 인식" 경인문화사 2002
1 서영대, "한국사(26)" 국사편찬위원회 1995
2 "한국문집총간"
3 김철웅, "조선초의 道敎와 醮禮" 19 : 2002
4 崔先惠, "조선초기 태조?태종대의 醮祭의 시행과 왕권강화" 17 : 2001
5 유병래, "조선조 소격전의 연원과 터에 관한 고찰" 32 : 2006
6 "조선왕조실록"
7 "용재총화"
8 "삼국유사"
9 "국조오례의"
10 김성환, "고려시대의 단군전승과 인식" 경인문화사 2002
11 "고려사"
12 "경국대전주해"
13 "경국대전"
14 서영대, "강화도의 塹城壇에 대하여? 韓國史論 41·42"
15 徐慶田, "高麗道敎思想의 硏究" 원광대학교논문집 1985
16 車柱環, "韓國道敎思想硏究" 서울대 출판부 1978
17 李能和, "朝鮮道敎史" 普成文化社 1981
18 韓?劤, "朝鮮王朝 初期에 있어서의 儒敎理念의 實踐과 信仰?宗敎" 3 : 1976
19 이병휴, "昭格署의 革罷論議와 士林派" 1 : 1985
20 李鍾殷, "昭格署硏究" 7 : 1988
21 鄭杜熙, "昭格署 폐지 논쟁에 나타난 趙光祖와 中宗의 대립" 88 : 1999
22 金海榮, "中宗祖의 昭格署革罷 論議에 대한 一考察" 6 : 1990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57 | 0.57 | 0.6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54 | 0.5 | 1.665 | 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