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교통 통신이 오늘날과 다른 형태로서 시간과 공간의 구성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에 인간들의 세계관과 우주관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개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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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Korean
辛行 ; 私親 ; 追崇 ; 淑嬪崔氏 ; 毓祥宮 ; 昭寧園 ; 景慕宮 ; 顯隆園 ; 景祐宮 ; 徽慶園 ; confucian society ; Joseon Dynasty ; Kings parade ; Roya tomb ; ancestral shrine ; Royal Ceremony ; simbol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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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97-129(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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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조선시대는 교통 통신이 오늘날과 다른 형태로서 시간과 공간의 구성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에 인간들의 세계관과 우주관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개념 하...
조선시대는 교통 통신이 오늘날과 다른 형태로서 시간과 공간의 구성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에 인간들의 세계관과 우주관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개념 하에 국왕이 통치하던 조선의 민인과 영토를 관망해야 당대에 거행되고 통용되던 권력 구조를 엿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조선왕조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체제로 사용하였던 국왕의 의례 중에서 幸行에 주안점을 두었다.
행행은 국왕의 면모를 대내외에 드러내어 그 권위를 상정함과 동시에 민인들로 하여금 통치자의 실체를 파악하게 하는 정치행사의 하나였다. 이에 조선초부터 후기 까지 역대의 국왕들은 국가의 공식 행사는 물론 사적인 이유에 의해서 궁궐 밖 거둥, 곧 행행을 거행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의 통치자와 피치자는 국초부터 우리가 종래에 관념적으로 생각하던 양자 간의 거리감 보다는 좀 더 밀접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종래의 행행 연구에서 간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행행에 대한 연구는 주로 조선 후기에 집중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서도 영조와 정조 시기의 왕권 강화와 연결시켜 연구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영조와 정조대 탕평정치와 왕권 강화라는 정치적 테마에 맞게 국왕의 의례도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주장한 결과이다. 그런데 행행을 단순히 왕권강화에만 연결시켜 볼 때 과연 행행과 같은 국왕의 의례가 역사시대에서 어느 시기 · 지역 · 왕조인들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왕이라는 그 실체 자체가 권력이요, 상징인 상황에서 행행과 같은 국왕의 의례는 당연히 왕권의 강화와 권위의 상징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왕의 행행 의장의 변화. 행행이 거행되는 대상의 변화, 행행의 횟수, 행행을 바라보는 민인들의 시각 등 정치적인 부분은 물론 사회적 시각으로 행행을 접근하는 것이 훨씬 다양한 형태의 내용으로 행행을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의례. 유구한 왕조의 역사에서 동일한 형태로 유지되던 의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시스템이 어떠한 정치적 정당성과 사회적 동의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행행 연구는 종래 이루어졌던 정치적인 내용은 물론 국왕의 의례라는 사회적 동의하에 진행된 부분을 검증해야겠다.
이에 본고에서는 영조가 사친이었던 숙빈최씨의 추숭과정에서 거행한 행행에 주안점을 두었다. 영조는 사친인 숙빈최씨를 국모에 준하는 반열에 올리면서 그 사당인 毓祥宮과 묘소인 昭寧園에 대한 행행을 거행하였다. 영조의 사친은 궁녀 출신으로 역대 국왕의 생모들과 비교할 때 그 격이 낮을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곧 영조 자신의 지위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영조의 육상궁 행행은 여타의 능행 · 원행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횟수와 관심도가 달랐다. 즉 영조는 사친 추숭의 하나로 육상궁 행행을 거행하여 대내외적으로 사친의 지위를 정당화하고 적법화 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권위와 嫡統을 공인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영조의 사친 사당과 묘소에 대한 행행은 정조와 순조 등 후대의 국왕들에게도 이어져 동일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정조의 景慕宮 · 顯隆園, 순조의 景祐宮 · 徽慶園 행행이 그것이었다. 결국 영조대 사친 추숭과 함께 거행된 육상궁과 소령원 행행은 행행 지역과 대상에 따라 국왕의 행행 의도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asically, this thesis is to study of the Kings parade in late Joseon Dynasty. And small focus is Kings parade in the Royal tomb about King Youngjo. As we know the Kings parade is very simbolize, and visuality, mobilize. And that king's Movement, we c...
Basically, this thesis is to study of the Kings parade in late Joseon Dynasty. And small focus is Kings parade in the Royal tomb about King Youngjo. As we know the Kings parade is very simbolize, and visuality, mobilize. And that king's Movement, we called Hanghaeng(溫辛), this movement belonged Sunsu(巡狩). Sunsu(巡狩) was Korea and China's the part of ruler system. It just happen like Ritual action, therefore it makes people believed, the Royal class was been long long time in father land. And therefore, there is no one doubt about Kings power and exist. It happened every each Kings period. People believed very simple everytime, everywhere, any place in this world.
King Youngjo is most powerful king in Joseon Dynasty. However his Royal blood line is not so good. Because his mother is not really Royal family. She's father is not wealth and highest family, they just farmer. So when she get in to Palace, she's job is very low and hard work place. Then King Youngjo want to make a his mother belong in real Royal family line. Therefore he think, when she's rank is going up then his position is fallowing that. So King Youngjo's parade is many time being a mother's place. He trying to go to the mother's tomb, and so many time worship at the ancestral shrine. Then King Youngjo's parade, specially going to mother's tomb and sanctuary is very repeatedly.
As we know, People simply depend on there own eyes. It was happen all the time in Kingdom of confucian, we called Joseon Dynasty. Royal Ceremony is very fixed to continue forever. The one of the best ceremony was the parade of Kings. The Kings parade, it's highest ritual action in Kingdom of confucian society.
Today we know usually authority class who believe or not believe, they made invention of tradition. It was same condition, and appeared in Joseon Dynasty, specially Kings parade in Royal tomb and ancestral shrine. Finally the Kings Parade in Joseon Dynasty, it was fixed the simbol of power and people who believed always shadow of the Kings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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