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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의 변화양상을 통해 본 부여사 전개과정 고찰 = This review buyeo through the change of tomb aspect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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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부여는 고조선과 더불어 한국사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고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성과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이 글은 부여 무덤의 특징을 고찰해 보고, 무덤의 변화양상을 통해 부여사의 전개과정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부여 무덤으로는 노하심유적, 모아산유적, 학고촌유적 등이 있다. 이들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특징을 통해 보면, 노하심유적 단계에는 북방초원문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모아산유적 단계에 들어서는 북방초원문화의 영향이 줄어들고 점차 한문화의 영향이 강해지고 있는 변화양상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양상을 통해 부여사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부여의 건국 주체세력은 기존의 예맥계통이 아닌 북방초원계통의 민족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당시 흉노 등의 북방초원민족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던 국제정세와 노하심유적의 기원을 눈강하류지역 한서이기문화와 평양고분군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이들은 늦어도 기원전 2세기초에 길림시일대를 중심으로 부여를 건국한 후 기원전후한 시기까지 송화강유역을 따라 주변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 당시 노하심유적과 학고촌유적이 조영되고 있는데, 이 당시의 무덤의 구조와 장례풍속, 출토유물 등에서 북방초원문화의 전통적 요소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으며, 일부 예맥계의 토착적인 요소와 한문화요소가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부여문화가 탄생되고 있다.
    이후 3세기 중반까지 부여는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주변국들과 상호경쟁 혹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당시 모아산유적이 조영되는데, 이 시기의 무덤에서는 한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당시 부여가 중원의 한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기존의 토착문화와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고급문화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선진문화의 주체적 수용은 당시 부여를 동북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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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는 고조선과 더불어 한국사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고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성과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이 글은 부여 무덤의 특징을 고찰해 보고, 무덤의 변...

    부여는 고조선과 더불어 한국사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고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성과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이 글은 부여 무덤의 특징을 고찰해 보고, 무덤의 변화양상을 통해 부여사의 전개과정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부여 무덤으로는 노하심유적, 모아산유적, 학고촌유적 등이 있다. 이들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특징을 통해 보면, 노하심유적 단계에는 북방초원문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모아산유적 단계에 들어서는 북방초원문화의 영향이 줄어들고 점차 한문화의 영향이 강해지고 있는 변화양상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양상을 통해 부여사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부여의 건국 주체세력은 기존의 예맥계통이 아닌 북방초원계통의 민족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당시 흉노 등의 북방초원민족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던 국제정세와 노하심유적의 기원을 눈강하류지역 한서이기문화와 평양고분군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이들은 늦어도 기원전 2세기초에 길림시일대를 중심으로 부여를 건국한 후 기원전후한 시기까지 송화강유역을 따라 주변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 당시 노하심유적과 학고촌유적이 조영되고 있는데, 이 당시의 무덤의 구조와 장례풍속, 출토유물 등에서 북방초원문화의 전통적 요소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으며, 일부 예맥계의 토착적인 요소와 한문화요소가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부여문화가 탄생되고 있다.
    이후 3세기 중반까지 부여는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주변국들과 상호경쟁 혹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당시 모아산유적이 조영되는데, 이 시기의 무덤에서는 한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당시 부여가 중원의 한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기존의 토착문화와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고급문화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선진문화의 주체적 수용은 당시 부여를 동북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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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was originally change of Puyeo tomb aspects of the grant was written in the purpose for which you want to reinterpreted. Until now, Puyeo tomb surveyed the ruins of a tomb grant, together bought the ruins laoheshen ruins, maoershan ruins, xuegucun ruins. Grassland in the north of the laoheshen ruins traditional culture remains strong, and maoershan ruins together have a strong influence of the mountain are the ruins of the Han culture are two aspects.
    These changes give the four aspects of the founding principals of the development process, and it Puyeo power to the people of the northern grassland system can assume. This was the origin of the ruins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nd the nungang river heart can be found in archaeological culture and the points that can be presented as evidence.
    Surrounding the basin songhwa river Puyeo the power to extend the lead, while the ruins to loaheshen ruins and hakgochony ruin, laoheshen ruins of the tomb structure and funeral customs, relics unearthed in the north grasslands and traditional elements of culture still remains strong, and some indigenous elements of the indigenous culture and Han culture is a unique combination of Puyeo and is being formed can be found.
    After the 3rd century Puyeo until the middle of the rule system to establish stable, and publicly has maintained friendly relations with neighboring countries, this time the maoershan ruins together,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of the content on Han culture have a strong showing, at the time Puyeo by the Han culture accept the initiative in their own unique culture has been developed. This advanced culture at the time of acceptance of the initiative to Puyeo making in Northeast Asia, and is dominated by the 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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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was originally change of Puyeo tomb aspects of the grant was written in the purpose for which you want to reinterpreted. Until now, Puyeo tomb surveyed the ruins of a tomb grant, together bought the ruins laoheshen ruins, maoershan ruins,...

    This article was originally change of Puyeo tomb aspects of the grant was written in the purpose for which you want to reinterpreted. Until now, Puyeo tomb surveyed the ruins of a tomb grant, together bought the ruins laoheshen ruins, maoershan ruins, xuegucun ruins. Grassland in the north of the laoheshen ruins traditional culture remains strong, and maoershan ruins together have a strong influence of the mountain are the ruins of the Han culture are two aspects.
    These changes give the four aspects of the founding principals of the development process, and it Puyeo power to the people of the northern grassland system can assume. This was the origin of the ruins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nd the nungang river heart can be found in archaeological culture and the points that can be presented as evidence.
    Surrounding the basin songhwa river Puyeo the power to extend the lead, while the ruins to loaheshen ruins and hakgochony ruin, laoheshen ruins of the tomb structure and funeral customs, relics unearthed in the north grasslands and traditional elements of culture still remains strong, and some indigenous elements of the indigenous culture and Han culture is a unique combination of Puyeo and is being formed can be found.
    After the 3rd century Puyeo until the middle of the rule system to establish stable, and publicly has maintained friendly relations with neighboring countries, this time the maoershan ruins together,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of the content on Han culture have a strong showing, at the time Puyeo by the Han culture accept the initiative in their own unique culture has been developed. This advanced culture at the time of acceptance of the initiative to Puyeo making in Northeast Asia, and is dominated by the 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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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주요유적
    • Ⅲ.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특징
    • Ⅳ. 무덤의 편년과 변화양상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주요유적
    • Ⅲ.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의 특징
    • Ⅳ. 무덤의 편년과 변화양상
    • Ⅴ. 부여 무덤의 기원과 부여사 전개과정
    • Ⅵ. 맺음말
    • 參考文獻
    •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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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송호정, "「夫餘」 한국사4-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2 신용민, "한대 목곽묘 연구" 학연문화사 2000

    3 박경철, "새로운 扶餘史像 定立을 위한 몇 가지 課題" 한국고대학회 (23) : 173-190, 2005

    4 송호정, "부여의 국가형성 과정과 문화 기반" 고구려연구재단 (6) : 2005

    5 박경철, "부여사연구의 제문제 in : 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연구의 방향" 학연문화사 2004

    6 송기호, "부여사 연구의 쟁점과 자료해석" 한국고대사학회 37 : 2005

    7 박경철, "고조선·부여의 주민구성과 종족" 고구려연구재단 (6) : 2005

    8 고구려연구재단, "고조선·단군·부여" 고구려연구재단 2004

    9 이기동, "韓國民族史에서 본 夫餘" 한국고대사학회 37 (37): 5-13, 2005

    10 강인욱, "靺鞨文化의 形成과 2~4세기 挹婁ㆍ鮮卑ㆍ夫餘系文化의 관계" 고구려발해학회 33 : 9-42, 2009

    1 송호정, "「夫餘」 한국사4-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2 신용민, "한대 목곽묘 연구" 학연문화사 2000

    3 박경철, "새로운 扶餘史像 定立을 위한 몇 가지 課題" 한국고대학회 (23) : 173-190, 2005

    4 송호정, "부여의 국가형성 과정과 문화 기반" 고구려연구재단 (6) : 2005

    5 박경철, "부여사연구의 제문제 in : 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연구의 방향" 학연문화사 2004

    6 송기호, "부여사 연구의 쟁점과 자료해석" 한국고대사학회 37 : 2005

    7 박경철, "고조선·부여의 주민구성과 종족" 고구려연구재단 (6) : 2005

    8 고구려연구재단, "고조선·단군·부여" 고구려연구재단 2004

    9 이기동, "韓國民族史에서 본 夫餘" 한국고대사학회 37 (37): 5-13, 2005

    10 강인욱, "靺鞨文化의 形成과 2~4세기 挹婁ㆍ鮮卑ㆍ夫餘系文化의 관계" 고구려발해학회 33 : 9-42, 2009

    11 유태용, "論衡·吉驗篇에 보이는 槀離國의 研究" 백산학회 57 : 2000

    12 劉振華, "試論吉林西團山文化晚期遗存" (1) : 1982

    13 李 鍾 洙, "西溝 古墳群의 性格과 使用集團에 대하여" 백산학회 (77) : 99-127, 2007

    14 林沄, "西岔溝型銅柄鐵劍與老河深․彩嵐墓地的族属" 中国大百科全書出版社 1998

    15 喬梁, "西團山文化之後幾種古代遗存" 2 : 1993

    16 박양진, "考古學에서 본 夫餘" 한국고대사학회 (37) : 55-79, 2005

    17 박경철, "濊貊夫餘와 高句麗의 正體性에 關한 硏究" 고구려발해학회 (18) : 497-532, 2004

    18 李殿福, "漢代夫餘文化芻議" 3 : 1985

    19 馬德謙, "淡淡吉林龍潭山,東團山一带的漢代遗物" 4 : 1987

    20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 "楡樹老河深" 文物出版社 1987

    21 유태용, "楡樹 老河深遺蹟의 中層古墳에 대한 硏究 in : 고고학-시간과 공간의 흔적" 학연문화사 2006

    22 오영찬, "楡樹 老河深遺蹟을 통해 본 夫餘社會 in : 한반도와 동북3성의 역사문화" 서울대출판부 1999

    23 张博泉, "東北地方史稿" 吉林大學出版社 1985

    24 张博泉, "東北古代民族․考古與疆域" 吉林大學出版社 1997

    25 王绵厚, "東北古代夫餘部的興衰及王城變遷" 2 : 1990

    26 李文信, "李文信考古文集" 遼寧人民出版社 1992

    27 박양진, "族屬 추정과 夫餘 및 鲜卑 고고학자료의 비교분석" 한국고고학회 39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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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潘玲, "平洋墓葬的年代與文化性質" 科學出版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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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李建才, "夫餘的疆域和王城" 4 :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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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武國勛, "夫餘王城新考-前期夫餘王城的發現" 4 :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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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馬德謙, "夫餘文化的幾個問題" 2 : 1991

    36 노태돈, "夫餘國의 疆域 및 그 變遷" 국사편찬위원회 4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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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林沄, "夫餘史地再探討" 4 : 1999

    39 馬德謙, "夫餘叢說" 3 : 1994

    40 孫正甲, "夫餘原流辨析" 6 : 1984

    41 馬德謙, "夫餘前期國都的幾個問題" 3 : 1995

    42 박양진, "墓葬資料의 社會的 分析과 楡樹 老河深 墓地의 一考察" 한국상고사학회 29 : 1998

    43 이종수, "吉林省 中部地域 初期鐵器時代 文化遺蹟 硏究"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30 : 2001

    44 張立明, "吉林泡子沿前山遗址及其相關問題" 2 : 1986

    45 吉林市博物馆, "吉林永吉縣學古東山遗址試掘简报" 6 : 1981

    46 尹玉山, "吉林永吉學古漢墓清理简报" 1 : 1985

    47 董學增, "吉林東團山原始, 漢, 高句麗, 渤海諸文化遗址调查略报" (1) : 1982

    48 李建才, "吉林市龍潭山山城考" 2 : 1995

    49 劉景文, "吉林市郊帽儿山古墓群" 文物出版社 1991

    50 張忠培, "吉林市郊古代遗址的文化類型" 1 : 1963

    51 王洪峰, "吉林市郊區帽儿山漢代墓地" 文物出版社 1994

    52 吉林市博物馆, "吉林市泡子沿前山遗址和墓葬" 6 : 1985

    53 邵蔚風, "吉林市東團山遗址局部调查简报" 1 : 2001

    54 唐音, "吉林市東團山漢魏時期及明代遗址" 文物出版社 2003

    55 吉林市博物馆, "吉林市帽儿山漢代木槨墓" 2 : 1988

    56 王洪峰, "吉林市帽儿山夫餘遗址" 文物出版社 1997

    57 劉景文, "吉林市帽儿山墓地南山墓群" 文物出版社 2000

    58 劉景文, "吉林市帽儿山古墓群" 文物出版社 1992

    59 李建才, "再論北夫餘․東夫餘即夫餘的問題" 吉林文史出版社 1995

    60 오강원, "中滿지역의 初期鐵器文化-泡子沿式文化의 成立과 展开" 한국상고사학회 2000

    61 李建才, "三論北夫餘․東夫餘即夫餘的問題" 吉林文史出版社 3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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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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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9 0.59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6 1.438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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