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文殊信仰) at Wutai Shan (or Mount Wutai五臺山) is based upon Avatamasaka Sutra (『華嚴經』). According to Avatamasaka Sutra, which has been translated in 60 volumes during the period of Eastern Ji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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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文殊信仰) at Wutai Shan (or Mount Wutai五臺山) is based upon Avatamasaka Sutra (『華嚴經』). According to Avatamasaka Sutra, which has been translated in 60 volumes during the period of Eastern Jin dynasty...
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文殊信仰) at Wutai Shan (or Mount Wutai五臺山) is based upon Avatamasaka Sutra (『華嚴經』). According to Avatamasaka Sutra, which has been translated in 60 volumes during the period of Eastern Jin dynasty, it is believed that Manjusri resides at Qingliang Shan (or Mount Clear-and-Cool清涼山) to preach the Dharma. 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at Wutai Shan emerged in later ages due to the explanation that Wutai Shan indeed is the Qingliang Shan in Avatamasaka Sutra. In the light of historical documentations and academic researches, the majority claims that 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has become influential since the Northern dynasty. However, it could be found in relevant documentations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Wutai Shan and 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in fact was not that cohesive as many scholars has concluded. By that time, Manjusri Worship did not have a dominant position at Wutai Shan; moreover, the recognition that “Qingliang Shan is Wutai Shan” had not yet formed before the Sui dynasty.
Jajang (慈藏), a Buddhist master monk during the period of Medieval Silla, is believed as the one who introduced Manjursi Worship to Mount Odae, Silla. However, the contradiction can be found in existent historical documentations, and scholars are unable to provide more convictive evidence to prove that Jajang introduced Manjursi Worship to Silla, all of which caused the current doubt. Considering the process of emergence and development of Manjursi Worship at Wutai Shan, the story that Jajang made a pilgrimage to Wutai Shan during the Tang dynasty is fictional.
The introduction of Manjusri Worship to Silla should be earlier than Jajang visited Tang. In other words, the practice of Manjusri Worship became widespread in Silla, while Buddhist scriptures were brought back to Silla by gubeopseung (求法僧). In addition, although there are no clear records on the date of the formation of Manjusri Worship at Silla’s Mount Odea, it would not be later than the mid-8th century. During that period, Mount Odae’s Manjusri Worship followed the trajectory of development of Wutai Shan’s Manjusri Worship in Tang. Therefore, the formation of Mount Odae’s Manjusri Worship in Silla had undergone a long time rather than with in a short time. From the period of Queen Seondeok(善德女王) to the period of King Gyeongdeok (景德王), the spread of Manjusri Worship was based on the idea of bulgukto (佛國土) and took Silla’s northern policy as the starting point in order to maintain a stabilized and peaceful environment at Mount Odea’s area in Myeongju (溟州).
문수신앙, 오대산문수신앙은 각각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화엄경』에 의거한 신앙이라는 별개의 연원에서 출발하는 신앙들이다. 이에 두 신앙의 성립시기와 사상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고 ...
문수신앙, 오대산문수신앙은 각각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화엄경』에 의거한 신앙이라는 별개의 연원에서 출발하는 신앙들이다. 이에 두 신앙의 성립시기와 사상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신앙이 중국불교사의 변천과 더불어 오대산지역 불교의 발전에 따라서 결합되면서 나중에는 동일하게 되었다.
동진 시기 번역된 60권본 『華嚴經』 「菩薩住處品」에는 문수보살이 청량산에서 常住說法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바로 이 문구의 청량산을 중국 오대산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오대산문수신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역대의 문헌 기록들과 학계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화엄경』의 「보살주처품」을 그 근거로 하여 일찍이 북조시기부터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주처이었다는 인식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문헌들을 자세히 고찰해 보면 오대산의 발전과 문수신앙의 관계는 선인들이 논했던 것처럼 그렇게 긴밀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 오대산불교의 발전은 결코 문수신앙이 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수나라 이전에 ‘청량산=오대산’이라는 인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한편, 신라 중고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 慈藏은 신라 오대산문수신앙의 전래자로 지칭된다. 그런데 현재 전하고 있는 자료들 상호간에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있어 학계에서는 자장이 문수신앙의 전래자라는 점에 대하여 확정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빈약하여 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다. 중국 오대산문수신앙의 설립 과정을 참고해 보면 자장이 입당하였지만 代州 오대산을 참배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문수신앙은 자장의 입당 이전, 구법승을 통해 불교경전을 신라로 유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신라 오대산문수신앙의 성립 시기는 8세기 중엽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신라중대에 전래된 오대산문수신앙은 당나라의 오대산문수신앙의 발전에 따라 수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라의 오대산문수신앙은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진행된 것으로, 선덕여왕에서 경덕왕 대에 걸쳐 점차 성립된 것으로, 결국 불국토사상을 바탕으로 통일신라의 북방정책에 발맞추어 명주 오대산 일대의 안정화를 그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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