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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한국의 단군 인식과 민족주의 = Ideas on Dangun and Nationalism in Moder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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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aimed at to explain changing ideas on Dangun, founder of Ancient Joseon dynasty, in Late Daehan Imperial, and these ideas influenced to establishment and diffusion of Korean nationalism. Dangun was regarded as of great importance through Goryeo and Joseon dynasty, because he is founder of Ancient Joseon dynasty which is a first state in Korean history. But in Late Daehan Imperial period, the importance of Dangun is more increased. The reason of emphasis on Dangun is that he is regarded as centripetal point of national cohesion and basis of nation identity. Movements of Dangun nationalism were developed various dimensions. The head of these movements were newspapers and periodical journals. These mass media stressed that Korean nations are descendant of Dangun through articles and lyric lines and through use of a Dangun era, so that inspired patriotism into the heart of peoples. Not only mass media, but also education of korean history acted part role of inspiration of recognition of Dangun. As to approach of Daehan Imperial’s collapse, ideas on Dangun progressed from the ancestor of Korean nation to universal god. This religious movement was take charge of a religious sect called Daejonggyo(大倧敎). Daejonggyo worshipped Dangun as a god of their religion and celebrated Dangun’s birthday and ascension to heaven day. And this religious sect stressed Baekdusan(白頭山) as nation symbol. In spite of Imperial Japan’s oppression to these Dangun movements, ideas on Dangun is continued to contemporary Ko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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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aimed at to explain changing ideas on Dangun, founder of Ancient Joseon dynasty, in Late Daehan Imperial, and these ideas influenced to establishment and diffusion of Korean nationalism. Dangun was regarded as of great importance through Go...

      This paper aimed at to explain changing ideas on Dangun, founder of Ancient Joseon dynasty, in Late Daehan Imperial, and these ideas influenced to establishment and diffusion of Korean nationalism. Dangun was regarded as of great importance through Goryeo and Joseon dynasty, because he is founder of Ancient Joseon dynasty which is a first state in Korean history. But in Late Daehan Imperial period, the importance of Dangun is more increased. The reason of emphasis on Dangun is that he is regarded as centripetal point of national cohesion and basis of nation identity. Movements of Dangun nationalism were developed various dimensions. The head of these movements were newspapers and periodical journals. These mass media stressed that Korean nations are descendant of Dangun through articles and lyric lines and through use of a Dangun era, so that inspired patriotism into the heart of peoples. Not only mass media, but also education of korean history acted part role of inspiration of recognition of Dangun. As to approach of Daehan Imperial’s collapse, ideas on Dangun progressed from the ancestor of Korean nation to universal god. This religious movement was take charge of a religious sect called Daejonggyo(大倧敎). Daejonggyo worshipped Dangun as a god of their religion and celebrated Dangun’s birthday and ascension to heaven day. And this religious sect stressed Baekdusan(白頭山) as nation symbol. In spite of Imperial Japan’s oppression to these Dangun movements, ideas on Dangun is continued to contemporary Ko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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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한말 단군 인식과 그것이 한국 민족주의 형성과 보급에 일익을 담당했음을 밝힌 것이다.
      단군은 한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조로 역대 왕조를 통해 중시되어 왔다. 그러다가 한말 일제의 침략에 따른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단군의 존재는 새롭게 부각된다. 그것은 민족의 결속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로서 부각된 것이었다.
      단군 인식의 강조는 신문 잡지를 비롯한 언론매체나 역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단군의 역사적 위상이 강화되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 단군기년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단군에 대한 애국가사들이 창작되었고, 단군 유적이 중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란 인식이 등장한 점이다. 즉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단군은 국가의 시조에 불과했으나, 이때부터 단군은 민족의 시조로 자리 매김되고, 이를 근거로 민족 단결의 당위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멸망이 임박함에 따라, 단군인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단군은 종교적 신앙대상으로까지 승화된다. 1909년 대종교의 출현이 바로 그것인데, 대종교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하는 한편, 단군의 탄생과 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과 단군의 승천을 기념하는 어천절을 제정하여 단군 인식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선전함으로서, 민족의식의 구체적 상징을 제공하였다.
      이렇듯 한말에는 단군이 한국 민족주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했기에, 일제는 단군인식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해책동을 했다. 그러나 단군인식은 소멸되지 않았고, 이때 형성된 단군인식이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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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말 단군 인식과 그것이 한국 민족주의 형성과 보급에 일익을 담당했음을 밝힌 것이다. 단군은 한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조로 역대 왕조를 통해 중시되어 왔다. 그러다...

      이 글은 한말 단군 인식과 그것이 한국 민족주의 형성과 보급에 일익을 담당했음을 밝힌 것이다.
      단군은 한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시조로 역대 왕조를 통해 중시되어 왔다. 그러다가 한말 일제의 침략에 따른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단군의 존재는 새롭게 부각된다. 그것은 민족의 결속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로서 부각된 것이었다.
      단군 인식의 강조는 신문 잡지를 비롯한 언론매체나 역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단군의 역사적 위상이 강화되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 단군기년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단군에 대한 애국가사들이 창작되었고, 단군 유적이 중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란 인식이 등장한 점이다. 즉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단군은 국가의 시조에 불과했으나, 이때부터 단군은 민족의 시조로 자리 매김되고, 이를 근거로 민족 단결의 당위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멸망이 임박함에 따라, 단군인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단군은 종교적 신앙대상으로까지 승화된다. 1909년 대종교의 출현이 바로 그것인데, 대종교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하는 한편, 단군의 탄생과 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과 단군의 승천을 기념하는 어천절을 제정하여 단군 인식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선전함으로서, 민족의식의 구체적 상징을 제공하였다.
      이렇듯 한말에는 단군이 한국 민족주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했기에, 일제는 단군인식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해책동을 했다. 그러나 단군인식은 소멸되지 않았고, 이때 형성된 단군인식이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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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2 (2): 2-4, 1909

      2 태극학회 13 : 5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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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皇城新聞, "論說 檀君聖祖由來紀念"

      5 大韓每日申報, "論說 打破家族的觀念"

      6 皇城新聞, "論說 我民族의 神聖歷史"

      7 皇城新聞, "論說 我民族의 思想統一的機關"

      8 皇城新聞, "論說 我檀君子孫의 氏族과 疆土와 敎化의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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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大韓每日申報, "論說 打破家族的觀念"

      6 皇城新聞, "論說 我民族의 神聖歷史"

      7 皇城新聞, "論說 我民族의 思想統一的機關"

      8 皇城新聞, "論說 我檀君子孫의 氏族과 疆土와 敎化의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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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1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8 2.15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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