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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住居構造와 炊事文化를 통해 본 백제계 이주민의 일본 畿內地域 정착과 그 의미 = The Significance of the Emigration from Baekche to Kinai Region of Japan Reflected on the House and Cooking Stru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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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본의 북부 구주와 기내 일부지역에서는 고분시대 전기에 한반도로부터 부뚜막이 딸린 가옥이 전래되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된다. 이후 5세기에 접어들어 기내지역을 중심으로 부뚜막이 딸린 주거지와 벽주건물이 급격히 보급되는데 그 계기는 백제계 주민들의 집단적 이주이다.
    특히 부뚜막의 아궁이 주위를 감싼 아궁이테는 그 형태 및 제작기술면에서 백제와 기내지역이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다만 백제권역 내에서 어느 한 지역만을 특정하기는 곤란하고 중앙과 지방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기내의 여러 유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동식 부뚜막이 출토된 유적은 백제권역에서 2개소에 불과하고 오히려 고구려, 신라, 가야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기내지역에서 발견되는 이동식 부뚜막의 대부분은 아궁이부분에 수혈 주거지 부뚜막의 아궁이테와 같은 챙을 단 것들이 많아서 백제와의 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 아울러 소형의 미니어쳐 부뚜막이 부장되는 기내지역의 횡혈식석실분에는 동곳이 함께 부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백제지역과 관련이 깊다.
    이렇듯 5세기 이후 백제계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일본열도에 이주한 계기는 고구려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군사적 긴장이었고, 한성함락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들은 모두 백제계이면서도 지역적으로나 신분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백제 중앙 권력의 일정한 의도가 개재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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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북부 구주와 기내 일부지역에서는 고분시대 전기에 한반도로부터 부뚜막이 딸린 가옥이 전래되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된다. 이후 5세기에 접어들어 기내지역을 중심...

    일본의 북부 구주와 기내 일부지역에서는 고분시대 전기에 한반도로부터 부뚜막이 딸린 가옥이 전래되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된다. 이후 5세기에 접어들어 기내지역을 중심으로 부뚜막이 딸린 주거지와 벽주건물이 급격히 보급되는데 그 계기는 백제계 주민들의 집단적 이주이다.
    특히 부뚜막의 아궁이 주위를 감싼 아궁이테는 그 형태 및 제작기술면에서 백제와 기내지역이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다만 백제권역 내에서 어느 한 지역만을 특정하기는 곤란하고 중앙과 지방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기내의 여러 유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동식 부뚜막이 출토된 유적은 백제권역에서 2개소에 불과하고 오히려 고구려, 신라, 가야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기내지역에서 발견되는 이동식 부뚜막의 대부분은 아궁이부분에 수혈 주거지 부뚜막의 아궁이테와 같은 챙을 단 것들이 많아서 백제와의 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 아울러 소형의 미니어쳐 부뚜막이 부장되는 기내지역의 횡혈식석실분에는 동곳이 함께 부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백제지역과 관련이 깊다.
    이렇듯 5세기 이후 백제계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일본열도에 이주한 계기는 고구려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군사적 긴장이었고, 한성함락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들은 모두 백제계이면서도 지역적으로나 신분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백제 중앙 권력의 일정한 의도가 개재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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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e latter half of 3rd century, the house style having kitchen range was introduced from Korean Peninsula to northen Kyusyu and Kinai region of Japan, which could not be succeeded in the latter region. By 5th century, the house style equipped with kitchen range whose furnace had the tunnel shaped hang-over structure became widespread throughout Kinai,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caused by massive immigration of Baekche people. Such unique furnace structure identified in Baekche and in Kinai of Japan shows strong similarity in tems of overall shape as well as construction technique. Furthermore, the variety in shape and structure of furnace between central area and local regions in Baekche is also recurrent in Kinai, Japan.
    In Baekche only two cases of excavated portable kitchen range were so far known. However, a lot of them were recovered in the regions of Goguryo, Silla and Gaya. But the portable kitchen ranges excavated in Kinai region resemble aforementioned Baekche type one. So we cannot deny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che and Kinai. In addition, the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s in Kinai entombed with the miniature portable kitchen range and bronze hairpin are closely related to the burial tradition of Baekche. From 5th century intensifying military confrontation between Baekche and Goguryo caused massive emigration from Baekche to Japanese peninsula. And those emigrants were diverse in their social rank as well as in native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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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latter half of 3rd century, the house style having kitchen range was introduced from Korean Peninsula to northen Kyusyu and Kinai region of Japan, which could not be succeeded in the latter region. By 5th century, the house style equipped with ...

    In the latter half of 3rd century, the house style having kitchen range was introduced from Korean Peninsula to northen Kyusyu and Kinai region of Japan, which could not be succeeded in the latter region. By 5th century, the house style equipped with kitchen range whose furnace had the tunnel shaped hang-over structure became widespread throughout Kinai,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caused by massive immigration of Baekche people. Such unique furnace structure identified in Baekche and in Kinai of Japan shows strong similarity in tems of overall shape as well as construction technique. Furthermore, the variety in shape and structure of furnace between central area and local regions in Baekche is also recurrent in Kinai, Japan.
    In Baekche only two cases of excavated portable kitchen range were so far known. However, a lot of them were recovered in the regions of Goguryo, Silla and Gaya. But the portable kitchen ranges excavated in Kinai region resemble aforementioned Baekche type one. So we cannot deny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che and Kinai. In addition, the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s in Kinai entombed with the miniature portable kitchen range and bronze hairpin are closely related to the burial tradition of Baekche. From 5th century intensifying military confrontation between Baekche and Goguryo caused massive emigration from Baekche to Japanese peninsula. And those emigrants were diverse in their social rank as well as in native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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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Ⅰ. 머리말
    • Ⅱ. 부뚜막 딸린 주거지의 전파와 확산
    • Ⅲ. 아궁이테의 형태적, 기술적 특징과 지역성
    • Ⅳ. 이동식 부뚜막의 출현과 확산
    • 요약
    • Ⅰ. 머리말
    • Ⅱ. 부뚜막 딸린 주거지의 전파와 확산
    • Ⅲ. 아궁이테의 형태적, 기술적 특징과 지역성
    • Ⅳ. 이동식 부뚜막의 출현과 확산
    • Ⅴ. 백제계 이주민의 畿內지역 정착의 실상-맺음말에 대신하여
    • 참고문헌
    •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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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麗水 禾長洞遺蹟" Ⅱ : 2002

    2 "羅州 新村里 9號墳"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3 "金海鳳凰臺遺蹟" 釜山大學校博物館 1998

    4 "한반도 고대 구들시설에 대한 연구" 국립공주박물관 2 : 2002

    5 "한대의 무덤과 그 제사의 기원" 학연문화사 2006

    6 "한국 고대의 온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7 "파주 주월리유적 96-7호 주거지출토 아궁이장식" 京畿道博物館 (7) : 2003

    8 "춘천 율문리 75-2번지 창고신축부지내 유적 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 2006

    9 "전주 장동유통단지 문화재 발굴조사 1차 지도위원회의자료" 2006

    10 "영광 학정리함평 용산리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2000

    1 "麗水 禾長洞遺蹟" Ⅱ : 2002

    2 "羅州 新村里 9號墳"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3 "金海鳳凰臺遺蹟" 釜山大學校博物館 1998

    4 "한반도 고대 구들시설에 대한 연구" 국립공주박물관 2 : 2002

    5 "한대의 무덤과 그 제사의 기원" 학연문화사 2006

    6 "한국 고대의 온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7 "파주 주월리유적 96-7호 주거지출토 아궁이장식" 京畿道博物館 (7) : 2003

    8 "춘천 율문리 75-2번지 창고신축부지내 유적 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 2006

    9 "전주 장동유통단지 문화재 발굴조사 1차 지도위원회의자료" 2006

    10 "영광 학정리함평 용산리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2000

    11 "연기 월산리유적" 충청문화재연구원 2006

    12 "삼국시대 壁柱建物 연구" 韓國考古學會 60 : 2006

    13 "부뚜막施設의 登場과 地域相" 嶺南考古學會 1993

    14 "백제토기 탐구" 주류성 2006

    15 "백제의 주거지" 공주대학교 2004

    16 "문화재조사연구단 발굴10년" 2005

    17 "무안 양장리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Ⅱ : 2000

    18 "담양 오산유적 지도위원회의 및 현장설명회 자료" 2005,C

    19 "구들과 민속과 환경" 21 : 2002

    20 "광주-장성간 국도1호선 확장공사구간내 문화유적 현장설명회 자료" 2005,B

    21 "고구려무덤들에 보이는 부뚜막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19901990-1

    22 "高敞 石橋里遺蹟" 湖南文化財硏究院 2005

    23 "高井田山古墳" 柏原市敎育委員會 1996

    24 "飛鳥文化の先進地 高取" 2005

    25 "風納土城Ⅰ -현대연합주택 및 1지구 재건축 부지"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26 "韓國 古代 부뚜막施設 硏究" 2001

    27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2004

    28 "鎭川 三龍里山水里 土器 窯址群" 韓南大學校中央博物館 2006

    29 "造付けの付屬具" 2003

    30 "近畿の渡來人の受容" 2005

    31 "西新町遺跡の -その歷史的意義-" 1996

    32 "舒川 楸洞里 遺蹟 -Ⅰ地域-" 忠淸文化財硏究院 2006

    33 "續カマドの採用と普及" 埋藏文化財硏究會 Ⅱ : 2000

    34 "用途不明板狀土製品について" Ⅶ : 2001

    35 "潭陽 城山里遺蹟" 2004

    36 "漢江 中下流域의 中島式土器 編年小考" 2006

    37 "溝遺跡 -その34-" 2000,B

    38 "溝遺跡 -その12-』." 2000,A

    39 "泗都城 -陵山里 및 軍守里地點 發掘調査 報告書"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2003

    40 "河內湖周邊の韓式系土器と渡來人" 2005

    41 "河內大和近江の渡來人 -集落と移動-" 埋藏文化財硏究會 Ⅱ : 2002

    42 "日本 西日本地域 博物館에 所藏된 高句麗 遺物" 12 : 2001

    43 "慶山 林堂遺蹟(Ⅴ) -D-Ⅱ地區 古墳群" 1998

    44 "形土器とくらし" 大阪府文化財センタ 2005

    45 "平澤 玄華里 遺蹟" 忠北大學校先史文化硏究所 1996

    46 "屋北遺跡發掘調査槪要" Ⅲ : 2006

    47 "寢屋川市の古墳時代遺跡" 歷史シンポジウム資料 寢屋川市寢屋川市敎育委員會 1997

    48 "咸平 老迪遺蹟" 湖南文化財硏究院 2005

    49 "和順 雲月里 운포 遺蹟" 全南大學校博物館 2002

    50 "務安 良將里遺蹟" 목포대학교박물관 1997

    51 "出現期の再考 -庄內~布留式期の資料を中心に" Ⅱ : 2002

    52 "全南地域 四柱式住居址의 構造的인 變遷 및 展開過程" 54 韓國上古史學會 54 : 2006

    53 "全南地域 5~6世紀代 住居址에 대한 試論" 湖南文化財硏究院 5 : 2005

    54 "全北地域 1~7世紀 聚落의 分布와 性格" 韓國上古史學會 44 : 2004

    55 "光州 동림동유적 3차 지도위원회의 및 현장설명회 자료" 2005,A

    56 "光州 月田洞遺蹟" 全南大學校博物館 1996

    57 "光州 新昌洞 低濕地遺蹟" 국립광주박물관 Ⅲ : 2001

    58 "傳金官加耶宮墟址" 釜山大學校博物館 2006

    59 "三國時代 아궁이틀에 대한 考察" 50 : 2003

    60 "一須賀古墳群の調査" 2004

    61 "「창녕 골프장 조성예정지 발굴조사」지도위원회의 및 현장설명회 자료집" 2006

    62 "U字形板狀土製品考" 167 : 2004

    63 "5~6世紀 百濟 住居煖房墓制文化의 倭國 傳播와 그 背景" 23 : 2006

    64 "45世紀における韓日交涉の考古學的再檢討" 韓國文化硏究振興財團 12 : 1998

    65 "3-6세기 한반도와 일본의 교섭" 韓國考古學會 61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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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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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2 0.89 1.572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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