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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 시론 = A Preliminary Study on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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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61년에 발표된 이기백의 『국사신론』 「서론」은 한국사학계 최초의 본격적인 ‘탈식민주의선언’이었다. 이후 식민사학 극복 논의의 전형적인 방식은, 역사 왜곡의 지표를 설정함으로써 식민사학의 내용을 규정하고, 다시 이를 거울과 같은 방식으로 역으로 투사함으로써 민족주의 역사학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식민사학 연구를 쇄신ㆍ탈피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식민사학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절실하다.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개념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근대역사학적 인식론과 방법론을 수용한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역사학은 ‘이중의 굴절’을 통해 형성되었다. 서구의 근대역사학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입되는 과정은 두 번의 굴절을 거치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 역사학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일선동조론’과 ‘만선사관’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논리를 만들어내었다.
    한일합병 전후 시기 식민주의 역사학은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여기에 토대를 제공한 것은 제국대학의 3사과 제도 정착이었다. 이후 식민주의 역사학은 일본과 조선 내에서 여러 계열로 나뉘어 체계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는 제국대학 내의 국사, 동양사 연구를 중심으로, 고고학과 사회경제사 연구자들이 가담하여 활기를 띠게 되었다.
    반면 조선 내에서는 관방사학과 민간사학으로 나뉘어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가 정착ㆍ확산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조선사편수회 계열과 경성제대 계열의 연구자들이었다. 이들은 함께 청구학회를 결성하여 활동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조선 내의 재야 민간사학도 언론ㆍ출판활동에 종사하던 재조선 일본인들에 의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었으며, 이들은 상당한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었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이데올로기는 식민주의와 근대주의가 결합함으로써 정체성론이라는 전형적인 이론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근대주의 이데올로기는 식민지의 근대주의적 개발 이데올로기로 활용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식민주의가 국민주의적 통합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타율성과 관련한 다양한 논리적 근거를 생산해내게 되었으나, 조선사의 역사적 소속에서조차 일치된 견해를 끌어내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조선사는 일본사의 지방사인가 아니면 중국사의 부속사로서 동양사로 보아야 할 것인가? 식민주의와 결합하여 일찍부터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부상했던 제국주의적 이론체계 즉 일선동조론이나 만선사관은 제국주의의 붕괴와 동시에 종말을 고했다. 이제 국민주의와 근대주의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주의와 근대주의가 쇠퇴해가는 시대의 식민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식민주의가 근대역사학과 이별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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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에 발표된 이기백의 『국사신론』 「서론」은 한국사학계 최초의 본격적인 ‘탈식민주의선언’이었다. 이후 식민사학 극복 논의의 전형적인 방식은, 역사 왜곡의 지표를 설정함으로...

    1961년에 발표된 이기백의 『국사신론』 「서론」은 한국사학계 최초의 본격적인 ‘탈식민주의선언’이었다. 이후 식민사학 극복 논의의 전형적인 방식은, 역사 왜곡의 지표를 설정함으로써 식민사학의 내용을 규정하고, 다시 이를 거울과 같은 방식으로 역으로 투사함으로써 민족주의 역사학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식민사학 연구를 쇄신ㆍ탈피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식민사학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절실하다. 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개념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근대역사학적 인식론과 방법론을 수용한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역사학은 ‘이중의 굴절’을 통해 형성되었다. 서구의 근대역사학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입되는 과정은 두 번의 굴절을 거치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 역사학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일선동조론’과 ‘만선사관’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논리를 만들어내었다.
    한일합병 전후 시기 식민주의 역사학은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여기에 토대를 제공한 것은 제국대학의 3사과 제도 정착이었다. 이후 식민주의 역사학은 일본과 조선 내에서 여러 계열로 나뉘어 체계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는 제국대학 내의 국사, 동양사 연구를 중심으로, 고고학과 사회경제사 연구자들이 가담하여 활기를 띠게 되었다.
    반면 조선 내에서는 관방사학과 민간사학으로 나뉘어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가 정착ㆍ확산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조선사편수회 계열과 경성제대 계열의 연구자들이었다. 이들은 함께 청구학회를 결성하여 활동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식민주의 역사학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조선 내의 재야 민간사학도 언론ㆍ출판활동에 종사하던 재조선 일본인들에 의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었으며, 이들은 상당한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었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이데올로기는 식민주의와 근대주의가 결합함으로써 정체성론이라는 전형적인 이론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근대주의 이데올로기는 식민지의 근대주의적 개발 이데올로기로 활용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식민주의가 국민주의적 통합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타율성과 관련한 다양한 논리적 근거를 생산해내게 되었으나, 조선사의 역사적 소속에서조차 일치된 견해를 끌어내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조선사는 일본사의 지방사인가 아니면 중국사의 부속사로서 동양사로 보아야 할 것인가? 식민주의와 결합하여 일찍부터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부상했던 제국주의적 이론체계 즉 일선동조론이나 만선사관은 제국주의의 붕괴와 동시에 종말을 고했다. 이제 국민주의와 근대주의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주의와 근대주의가 쇠퇴해가는 시대의 식민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식민주의가 근대역사학과 이별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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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reface to A New Theory of Our Nation written by Ki-baik Lee in 1961 was the first distinct ‘declaration of postcolonialism’ by a Korean historian. Since then, discourses about overcoming Korean colonial history(식민사학) have typically been focused on establishing a set of indicators of historical distortion, defining what constitutes colonial history, and reversing that definition to construct a nationalist history. The concept of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식민주의 역사학) may be useful in reforming this predominant approach and offering a new perspective on the colonial history of Korea.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concerns colonialism as an ideology while also based on the epistemological and methodological developments of modern historiography.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during the Japanese imperial rule was characterized by a double refraction, due to Western modern historiography first being introduced to Japan before being brought into Korea. Furthermore, in this process, two lines of thought based on the ideology of imperialism were formed: the Japan-Joseon Common Ancestry Theory and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Joseon as One.
    Around the time of the annexation of Korea,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became increasingly institutionalized, largely based on Imperial University’s division of its history department into three sections: National (Japanese) History, Occidental History and Oriental History. Subsequently,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within Japan and Korea followed the path of systemization and expansion, with ‘history’ being divided into several categories. In Japan, there was a significant boost in historical research, mostly on national history and oriental history, led by Imperial University, with added participation by archaeologists and social and economic historians.
    Meanwhile, in Korea,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was becoming expanded and stabilized at the same time, with a divide between civil history and official history. This development was led by academics affiliated with the Joseo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s well as those affiliated with Keijō Imperial University, who together formed and operated the ‘Cheonggu Academic Association.’ Research on the civil and unofficial history of Korea was also being actively pursued by Japanese academics in Korea who were involved in the press and publications, and their activities were viewed with much interest by the masses.
    In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colonialism was merged with modernism, giving rise to the theory of stagnation, which became the key idea behind the modern development of the colonized Joseon. On the other hand, colonialism was also combined with the nationalist ideology of unity, providing various logical grounds for heteronomy. However, differences remained as to where Joseon belonged among the many categories of history. Was Joseon history a regional history of Japan or an oriental history attached to China? The imperialist theories that quickly emerged in conjunction with colonialism such as the Japan-Joseon Common Ancestry Theory and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Joseon as One signalled the demise and, ultimately, end of imperialism. Now that we've reached an era when nationalism and modernism are seemingly declining, what will happen to colonialism? Isn't it about time that colonialism parted ways with modern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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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reface to A New Theory of Our Nation written by Ki-baik Lee in 1961 was the first distinct ‘declaration of postcolonialism’ by a Korean historian. Since then, discourses about overcoming Korean colonial history(식민사학) have typically be...

    The preface to A New Theory of Our Nation written by Ki-baik Lee in 1961 was the first distinct ‘declaration of postcolonialism’ by a Korean historian. Since then, discourses about overcoming Korean colonial history(식민사학) have typically been focused on establishing a set of indicators of historical distortion, defining what constitutes colonial history, and reversing that definition to construct a nationalist history. The concept of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식민주의 역사학) may be useful in reforming this predominant approach and offering a new perspective on the colonial history of Korea.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concerns colonialism as an ideology while also based on the epistemological and methodological developments of modern historiography.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during the Japanese imperial rule was characterized by a double refraction, due to Western modern historiography first being introduced to Japan before being brought into Korea. Furthermore, in this process, two lines of thought based on the ideology of imperialism were formed: the Japan-Joseon Common Ancestry Theory and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Joseon as One.
    Around the time of the annexation of Korea,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became increasingly institutionalized, largely based on Imperial University’s division of its history department into three sections: National (Japanese) History, Occidental History and Oriental History. Subsequently,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within Japan and Korea followed the path of systemization and expansion, with ‘history’ being divided into several categories. In Japan, there was a significant boost in historical research, mostly on national history and oriental history, led by Imperial University, with added participation by archaeologists and social and economic historians.
    Meanwhile, in Korea,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was becoming expanded and stabilized at the same time, with a divide between civil history and official history. This development was led by academics affiliated with the Joseo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s well as those affiliated with Keijō Imperial University, who together formed and operated the ‘Cheonggu Academic Association.’ Research on the civil and unofficial history of Korea was also being actively pursued by Japanese academics in Korea who were involved in the press and publications, and their activities were viewed with much interest by the masses.
    In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colonialism was merged with modernism, giving rise to the theory of stagnation, which became the key idea behind the modern development of the colonized Joseon. On the other hand, colonialism was also combined with the nationalist ideology of unity, providing various logical grounds for heteronomy. However, differences remained as to where Joseon belonged among the many categories of history. Was Joseon history a regional history of Japan or an oriental history attached to China? The imperialist theories that quickly emerged in conjunction with colonialism such as the Japan-Joseon Common Ancestry Theory and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Joseon as One signalled the demise and, ultimately, end of imperialism. Now that we've reached an era when nationalism and modernism are seemingly declining, what will happen to colonialism? Isn't it about time that colonialism parted ways with modern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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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윤소영,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조선 인식과 ‘제국의 꿈’" 한국근현대사학회 (45) : 7-4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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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환병, "해방직후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의 한국사인식" 한국사학사학회 (5) : 41-88, 2002

    4 세키네히데유키, "한일합병 전에 제창된 일본인종의 한반도 도래설" 동아시아일본학회 (19) : 163-186, 2006

    5 이기백,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1978

    6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92

    7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89

    8 이만열, "한국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9 이만열, "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 문학과 지성사 1981

    10 윤해동, "탈식민주의 상상의 역사학으로" 푸른역사 2014

    1 윤소영,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조선 인식과 ‘제국의 꿈’" 한국근현대사학회 (45) : 7-46, 2008

    2 조동걸, "현대 한국사학사" 나남출판 1998

    3 이환병, "해방직후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의 한국사인식" 한국사학사학회 (5) : 41-88, 2002

    4 세키네히데유키, "한일합병 전에 제창된 일본인종의 한반도 도래설" 동아시아일본학회 (19) : 163-186, 2006

    5 이기백,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1978

    6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92

    7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89

    8 이만열, "한국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9 이만열, "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 문학과 지성사 1981

    10 윤해동, "탈식민주의 상상의 역사학으로" 푸른역사 2014

    11 이윤화, "중국과 일본의 역사가들" 신서원 2007

    12 도면회, "조선총독부의 문화 정책과 한국사 구성 체계 -『 조선반도사』와 『조선사의 길잡이』를 중심으로 -" 역사학회 (222) : 67-9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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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조인성, "일제시기 만주사ㆍ조선사 인식" 동북아역사재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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