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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웅진천도 초기의 한강 유역 상황 = Circumstances the Han River Valley in the Beginning of Ungjin Baekj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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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s how Baekje(百濟) maintained and controled the Han river valley, after Baekje transferred the capital to Ungjin(熊津).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Baekje continued to keep the Hanseong(漢城), despite the invasion of Goguryo(475). As seen in records on the 63rd of King Jangsu(長壽) and the First year of King Munju(文周) in Samguksagi, Goguryo(高句麗) took Hanseong and killed the King of Baekje, but went back directly after the end of the war. This shows that Goguryo invaded the Han river, but didn't have an intention to control it.
    In the situation that established facilities in the Royal capital of Baekje were substantially collapsed, Goguryo could not set up a regional government and arrange stationed force in it.
    Also, because Goguryo was more or less aware that King Munju went to Silla to ask reinforcements, Goguryo may have left Hanseong as soon as possible so that Goguryo would not strategically fight against reinforcements from Silla(新羅). It seems that Goguryo chose to expand the territory on a safe base after subduing even Silla rather than her rear was harassed by Silla by going far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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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s how Baekje(百濟) maintained and controled the Han river valley, after Baekje transferred the capital to Ungjin(熊津).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Baekje continued to keep the Hanseong(漢城), despite the invasion o...

    This study examines how Baekje(百濟) maintained and controled the Han river valley, after Baekje transferred the capital to Ungjin(熊津).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Baekje continued to keep the Hanseong(漢城), despite the invasion of Goguryo(475). As seen in records on the 63rd of King Jangsu(長壽) and the First year of King Munju(文周) in Samguksagi, Goguryo(高句麗) took Hanseong and killed the King of Baekje, but went back directly after the end of the war. This shows that Goguryo invaded the Han river, but didn't have an intention to control it.
    In the situation that established facilities in the Royal capital of Baekje were substantially collapsed, Goguryo could not set up a regional government and arrange stationed force in it.
    Also, because Goguryo was more or less aware that King Munju went to Silla to ask reinforcements, Goguryo may have left Hanseong as soon as possible so that Goguryo would not strategically fight against reinforcements from Silla(新羅). It seems that Goguryo chose to expand the territory on a safe base after subduing even Silla rather than her rear was harassed by Silla by going far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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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475)에도 불구하고 수도인 한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켰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장수왕 63년 기사나 백제본기의 문주왕 원년 기사를 보면,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시키고 백제왕을 죽였지만, 싸움이 끝난 직후 다시 돌아갔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곧 당시 고구려의 침략 목표가 백제 지역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경영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백제의 왕도(王都) 지역이 상당 부분 기반 시설이 상실된 마당에 고구려가 당장 이를 중심으로 지방 관부를 설치하고 주둔군을 배치하는 등 영토로 삼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또한 문주(文周)가 신라로 구원병을 청하러 간 사실도 고구려 측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전략상 신라 구원군과 직접 대적하지 않을 바에는 한시라도 빨리 한성 주변을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고구려로서는 백제와 동맹을 맺은 신라 때문에 지나치게 남하하여 후방을 교란 당하는 것 보다는 신라마저 제압한 이후에 안정되게 영토 확장을 시도하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실제로 장수왕의 한성 침공 이후 백제는 고구려에게 해상을 통한 대중국 외교에 대한 견제는 받았지만 서기 6세기초까지 단 한번도 직접적인 공세를 당한 적이 없는 반면, 신라는 소지마립간(479~500) 때에 지속적인 공세를 받았다. 따라서 백제는 고구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백제와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가 지나치게 남하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한강 유역에 대한 영유권을 일정 부분 지속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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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475)에도 불구하고 수도인 한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켰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장수왕 63년 기사나 백제본기의 문주왕 원년 기사를 보면, 고구...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475)에도 불구하고 수도인 한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켰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장수왕 63년 기사나 백제본기의 문주왕 원년 기사를 보면,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시키고 백제왕을 죽였지만, 싸움이 끝난 직후 다시 돌아갔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곧 당시 고구려의 침략 목표가 백제 지역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경영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백제의 왕도(王都) 지역이 상당 부분 기반 시설이 상실된 마당에 고구려가 당장 이를 중심으로 지방 관부를 설치하고 주둔군을 배치하는 등 영토로 삼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또한 문주(文周)가 신라로 구원병을 청하러 간 사실도 고구려 측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전략상 신라 구원군과 직접 대적하지 않을 바에는 한시라도 빨리 한성 주변을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고구려로서는 백제와 동맹을 맺은 신라 때문에 지나치게 남하하여 후방을 교란 당하는 것 보다는 신라마저 제압한 이후에 안정되게 영토 확장을 시도하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실제로 장수왕의 한성 침공 이후 백제는 고구려에게 해상을 통한 대중국 외교에 대한 견제는 받았지만 서기 6세기초까지 단 한번도 직접적인 공세를 당한 적이 없는 반면, 신라는 소지마립간(479~500) 때에 지속적인 공세를 받았다. 따라서 백제는 고구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백제와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가 지나치게 남하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한강 유역에 대한 영유권을 일정 부분 지속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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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고대사론 신라의 삼국통일을 보는 시각" 한길사 1988

    2 "신라 통일기 九誓幢의 성립과 그 성격" 서울대 국사학과 41-42, 1999

    3 "신라 문무왕대의 대복속민 정책­백제유민에 대한 관등수여를 중심으로­"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16 : 1999

    4 "삼한에 대한 인식의 변천 한국사연구" 1982

    5 "삼국통일후 신라 기배체제의 추이" 23 : 2001

    6 "삼국통일의 역사적 성격" 1988

    7 "삼국의 정립과 신라통일의 민족사적 의미" 1989

    8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9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통일신라,발해" 솔출판사 2002

    10 "백제 부흥운동사" 일조각 2003

    1 "한국고대사론 신라의 삼국통일을 보는 시각" 한길사 1988

    2 "신라 통일기 九誓幢의 성립과 그 성격" 서울대 국사학과 41-42, 1999

    3 "신라 문무왕대의 대복속민 정책­백제유민에 대한 관등수여를 중심으로­"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16 : 1999

    4 "삼한에 대한 인식의 변천 한국사연구" 1982

    5 "삼국통일후 신라 기배체제의 추이" 23 : 2001

    6 "삼국통일의 역사적 성격" 1988

    7 "삼국의 정립과 신라통일의 민족사적 의미" 1989

    8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9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통일신라,발해" 솔출판사 2002

    10 "백제 부흥운동사" 일조각 2003

    11 "반도 소통일 후의 신라의 백제 유민에 대한 정책 전북학연구" 전라북도 1 : 1997

    12 "멸망 직후 백제 유민의 동향"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7 : 2001

    13 "나당전쟁의 개시와 그 배경" 173 : 2002

    14 "新羅三國統合과 麗" 서경문화사 1997

    15 "新羅 下代의 浿江鎭" 1976

    16 "儀鳳四年皆土 글씨기와를 통해 본 신라의 통일의식과 통일기원" 21 : 2002

    17 "‘南北國時代論’의 虛像에 대하여" 19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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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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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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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44 0.44 0.4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8 0.38 0.811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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