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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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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지정 10년을 맞이하여, 고구려 도성의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여러쟁점 중 고고학적인 검토가 가능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고구려 도성은 도읍의 위치에 따라 환인(桓仁), 집안(集安), 평양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문헌기록에는 보다 많은 고구려 도성 및 천도 기사가 확인되는 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고학적인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고구려의 건국지인 졸본(卒本)은 현재의 환인 지역으로, 고구려 이른 시기의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은 발굴조사를 통해 고구려 전기에 해당하는 초석 건물지가 확인되어 초기 도성으로 활용되었음이 밝혀졌으나, 아직까지 졸본의 평지 거점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학계에서는 하고성자토성(下古城子土城)을 평지 도성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고력묘자고분군(高力墓子古墳群) 일대가 초기 도성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인 집안 지역에서는 국내성(國內城)이 비교적 일찍부터 평지 도성으로 활용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국내성 석축 성벽은 고구려 중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문헌기록과 <?丘儉紀功碑>를 통해 3세기에 축조된 것이 확실한 환도산성(丸都山城)에서는 현재까지 5세기대 유물만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한 이른 시기의 유물과 유구의 확인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도성 후보로 거론된 바 있는 나합성(喇合城)과 양민고성(良民古城)에 대한 조속한 시굴조사를 통해, 고구려 도성에 대한 추가적인 단서를 확보해야할 것이다.
    고구려의 세 번째 도읍인 평양은 전기 평양성 후보인 안학궁과 청암리토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안학궁 출토품을 검토하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고구려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도 존재하고 있는 만큼, 안학궁의 축조 시기는 평양 천도 직후가 아닌 그 이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전기 평양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부에 절터가 발견된 청암리토성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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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지정 10년을 맞이하여, 고구려 도성의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여러쟁점 중 고고학적인 검토가 가능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고구려 도성은 도읍...

    본 논문은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지정 10년을 맞이하여, 고구려 도성의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여러쟁점 중 고고학적인 검토가 가능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고구려 도성은 도읍의 위치에 따라 환인(桓仁), 집안(集安), 평양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문헌기록에는 보다 많은 고구려 도성 및 천도 기사가 확인되는 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고학적인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고구려의 건국지인 졸본(卒本)은 현재의 환인 지역으로, 고구려 이른 시기의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은 발굴조사를 통해 고구려 전기에 해당하는 초석 건물지가 확인되어 초기 도성으로 활용되었음이 밝혀졌으나, 아직까지 졸본의 평지 거점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학계에서는 하고성자토성(下古城子土城)을 평지 도성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고력묘자고분군(高力墓子古墳群) 일대가 초기 도성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인 집안 지역에서는 국내성(國內城)이 비교적 일찍부터 평지 도성으로 활용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국내성 석축 성벽은 고구려 중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문헌기록과 <?丘儉紀功碑>를 통해 3세기에 축조된 것이 확실한 환도산성(丸都山城)에서는 현재까지 5세기대 유물만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한 이른 시기의 유물과 유구의 확인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도성 후보로 거론된 바 있는 나합성(喇合城)과 양민고성(良民古城)에 대한 조속한 시굴조사를 통해, 고구려 도성에 대한 추가적인 단서를 확보해야할 것이다.
    고구려의 세 번째 도읍인 평양은 전기 평양성 후보인 안학궁과 청암리토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안학궁 출토품을 검토하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고구려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도 존재하고 있는 만큼, 안학궁의 축조 시기는 평양 천도 직후가 아닌 그 이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전기 평양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부에 절터가 발견된 청암리토성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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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research aims to check the current issues on Koguryo capital cities. The Koguryo capital cities can be divided into Hengren(桓仁), Jian(集安) and Pyongyang(平壤) as to the location.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the Wunu Mountain fortress(五女山城) in Hengren was used for capital since Koguryo first emerged as a state. But the existence of a fortress on the plain ground is still unclear.
    In Jian, the second capital of Koguryo, the Guonei stone-walled fortress(國內城) and the Wandu Mountain fortress(丸都山城) are located. In the Guonei stone-walled fortress(國內城), fine-clay pottery made on a turn table was found in one of the layers inside of the fortress wall. A cirrus design roof-end tile and celadon porcelain vessels from the East Jin(東晉) period were found in the lowest layer. Based on this, the Guonei stone-walled fortress appears to have been built int he 4<SUP>th</SUP> century.
    When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Pyongyang, as for an earthen-walled fortress on the plain ground, either the Cheongamni earthen-walled fortress(淸岩里土城) or the Anhak palace(安鶴宮) is thought of as having been used for capital city in previous studies. Nonetheless, both views have their own problems. In the Cheongamni earthen-walled fortress, roof-end tiles from an earlier phase were discovered, but a temple foundation was found in a place which has previously been thought of as a palace foundation. The Anhak palace was constructed, destroying a stone chamber tomb from the middle phase of Koguryo. In the palace artifacts dated to the late phase of Koguryo or even later than that were found in large numbers, too. Based on this, the palace was unlikely to be constructedn i the early 5<SUP>th</SUP>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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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research aims to check the current issues on Koguryo capital cities. The Koguryo capital cities can be divided into Hengren(桓仁), Jian(集安) and Pyongyang(平壤) as to the location.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the Wunu Mountain fortres...

    This research aims to check the current issues on Koguryo capital cities. The Koguryo capital cities can be divided into Hengren(桓仁), Jian(集安) and Pyongyang(平壤) as to the location.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the Wunu Mountain fortress(五女山城) in Hengren was used for capital since Koguryo first emerged as a state. But the existence of a fortress on the plain ground is still unclear.
    In Jian, the second capital of Koguryo, the Guonei stone-walled fortress(國內城) and the Wandu Mountain fortress(丸都山城) are located. In the Guonei stone-walled fortress(國內城), fine-clay pottery made on a turn table was found in one of the layers inside of the fortress wall. A cirrus design roof-end tile and celadon porcelain vessels from the East Jin(東晉) period were found in the lowest layer. Based on this, the Guonei stone-walled fortress appears to have been built int he 4<SUP>th</SUP> century.
    When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Pyongyang, as for an earthen-walled fortress on the plain ground, either the Cheongamni earthen-walled fortress(淸岩里土城) or the Anhak palace(安鶴宮) is thought of as having been used for capital city in previous studies. Nonetheless, both views have their own problems. In the Cheongamni earthen-walled fortress, roof-end tiles from an earlier phase were discovered, but a temple foundation was found in a place which has previously been thought of as a palace foundation. The Anhak palace was constructed, destroying a stone chamber tomb from the middle phase of Koguryo. In the palace artifacts dated to the late phase of Koguryo or even later than that were found in large numbers, too. Based on this, the palace was unlikely to be constructedn i the early 5<SUP>th</SUP>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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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고구려 도성의 조사 현황
    • Ⅲ. 주요 쟁점 검토
    • Ⅳ. 맺음말: 고구려 도성 연구의 과제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고구려 도성의 조사 현황
    • Ⅲ. 주요 쟁점 검토
    • Ⅳ. 맺음말: 고구려 도성 연구의 과제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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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남일룡, "청암동토성에 대하여(1)" 2 : 1998

    2 梁志龍, "졸본시기의 고구려 역사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8

    3 여호규, "삼국시대 고고학개론." 진인진 2014

    4 최희림, "고구려 평양성"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8

    5 임기환, "고구려 평양 도성의 정치적 성격" 한국사연구회 (137) : 1-32, 2007

    6 노태돈,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한국고대사학회 (68) : 5-34, 2012

    7 고구려연구재단, "고구려 안학궁 조사 보고서" 2006

    8 양시은, "고구려 성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3

    9 양시은, "고구려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고구려 유산의 현황과 활용 그리고 전망" 고구려발해학회 2014

    10 심광주, "고구려 국가형성기의 성곽연구" 고구려연구재단 2005

    1 남일룡, "청암동토성에 대하여(1)" 2 : 1998

    2 梁志龍, "졸본시기의 고구려 역사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8

    3 여호규, "삼국시대 고고학개론." 진인진 2014

    4 최희림, "고구려 평양성"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8

    5 임기환, "고구려 평양 도성의 정치적 성격" 한국사연구회 (137) : 1-32, 2007

    6 노태돈,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한국고대사학회 (68) : 5-34, 2012

    7 고구려연구재단, "고구려 안학궁 조사 보고서" 2006

    8 양시은, "고구려 성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3

    9 양시은, "고구려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고구려 유산의 현황과 활용 그리고 전망" 고구려발해학회 2014

    10 심광주, "고구려 국가형성기의 성곽연구" 고구려연구재단 2005

    11 여호규, "고구려 國內城 지역의 건물유적과 都城의 공간구조" 한국고대사학회 (66) : 43-93, 2012

    12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고고학 및 민속학강좌" 1973

    13 박순발, "高句麗의 都城과 墓域"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2) : 43-94, 2012

    14 李新全, "高句麗的早期都城及遷徒" 6 : 2009

    15 田中俊明, "高句麗平壤遷都と王宮城, 古代都城과 益山王宮城" 圓光大學校 馬韓・百濟文化硏究所 2005

    16 魏存成, "高句麗初中期的都城" 2 : 1985

    17 東潮, "高句麗の歷史と遺跡" 中央公論社 1995

    18 田中俊明, "高句麗の前期王都 卒本の構造" 2 : 1998

    19 양정석, "高句麗 安鶴宮 中央 建築群에 대한 考察 -前殿 高臺建築 形制의 채용을 중심으로-" 중국사학회 (56) : 1-35, 2008

    20 여호규, "高句麗 國內 遷都의 시기와 배경" 한국고대사학회 (38) : 37-84, 2005

    21 集安縣文物保管所, "集安高句麗國內城址的調査與試掘" 1 : 1984

    22 李新全, "關于高句麗兩坐土城的一點思考" 3 : 2004

    23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國內城-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24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五女山城-1996~1999, 2003年桓仁五女山城調査發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25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丸都山城-2001~2003年集安丸都山城調査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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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2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guryoBalhae -> Association of Koguryo Balhae KCI등재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2-14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고구려연구 -> 고구려발해연구
    외국어명 : The Koguryo Yonku -> The KoguryoBalhae Yon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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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고구려연구회 -> 고구려발해학회
    영문명 : Institute of Koguryo Studies -> Institute of KoguryoBal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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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5-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Institute of Koguryo Studies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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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8 0.78 0.9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93 2.013 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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