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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초기 및 전기왕성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 Review on Royal Castles of the Early Buyeo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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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aimed to determine the exact location of Buyeo’s royal castles by analyzing the archeological data of ancient remains that comparatively assumed to date back to the early years of Buyeo and to examine the problems and the tasks ahead. Given the fact that it was constructed after demolishing the residential area in the early iron age, Qinghua Castle which comparatively assumed to have been one of Buyeo’s royal castles can be said to have been a local strong point built for the exchange with Yirou or for the defense after Buyeo was established, Nongan Castle, Chengzisan Mountain Fortress Wall, and Dongtuansan Castle are comparatively assumed to have been royal castles in the early Buyeo. Nongan Castle and Chengzisan Mountain Fortress Wall are not royal castles in the early Buyeo considering that the archeological materials have never been found there, and they are now comparatively assumed to have been potential royal castles in the later Buyeo. Dongtuansan Castle, whose scale and shape are similar to royal castles which described in the ancient literature, and which is surrounded by Maoersan Tombs, the tombs of the noble men in Buyeo, and Rongtansan Mountain Fortress Wall, is assumed to have been the most suitable for being a royal castle in the early Buyeo as a great quantity of high quality remains are being excavated within and near the castle.
    Yet, the problem is that the remains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royal palace have not been discovered. To solve this problem, the finding of jade burial suit which kings of Buyeo weared at their funerals should take precedence over any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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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imed to determine the exact location of Buyeo’s royal castles by analyzing the archeological data of ancient remains that comparatively assumed to date back to the early years of Buyeo and to examine the problems and the tasks ahead. Giv...

    This study aimed to determine the exact location of Buyeo’s royal castles by analyzing the archeological data of ancient remains that comparatively assumed to date back to the early years of Buyeo and to examine the problems and the tasks ahead. Given the fact that it was constructed after demolishing the residential area in the early iron age, Qinghua Castle which comparatively assumed to have been one of Buyeo’s royal castles can be said to have been a local strong point built for the exchange with Yirou or for the defense after Buyeo was established, Nongan Castle, Chengzisan Mountain Fortress Wall, and Dongtuansan Castle are comparatively assumed to have been royal castles in the early Buyeo. Nongan Castle and Chengzisan Mountain Fortress Wall are not royal castles in the early Buyeo considering that the archeological materials have never been found there, and they are now comparatively assumed to have been potential royal castles in the later Buyeo. Dongtuansan Castle, whose scale and shape are similar to royal castles which described in the ancient literature, and which is surrounded by Maoersan Tombs, the tombs of the noble men in Buyeo, and Rongtansan Mountain Fortress Wall, is assumed to have been the most suitable for being a royal castle in the early Buyeo as a great quantity of high quality remains are being excavated within and near the castle.
    Yet, the problem is that the remains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royal palace have not been discovered. To solve this problem, the finding of jade burial suit which kings of Buyeo weared at their funerals should take precedence over any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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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그동안 부여 초기 및 전기왕성으로 비정되던 유적들의 고고학 자료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를 통해초기왕성 비정 유적의 성격을 파악해 보고, 전기왕성의 정확한 위치 비정과 더불어 문제점 및 향후 과제 등을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부여의 초기왕성 혹은 색리국의 왕성으로 비정되는 경화성지는 고고학 자료에 대한 검토 결과 성벽이 초기철기시대 주거지를 파괴하고 축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초기 왕성이 아닌 부여 성립 이후에 대읍루 교통과 방어, 행정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세워진 지방 거점성이라 할 수 있다.
    부여 전기왕성은 자치통감의 기록에 의하면 녹산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전기왕성으로 비정되는 곳은 농안고성, 성자산산성, 동단산평지성 등이 있다. 농안고성과 성자산산성은 부여시기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고고학자료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전기왕성으로 비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두 성은현재 후기왕성으로도 비정되고 있다.
    동단산평지성은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부여 전기왕성으로 가장 유력하게 비정되고 있는데, 성곽의 규모와 형태가 문헌기록과 유사하고, 주변에 부여의 귀족 무덤인 모아산고분군과 용담산산성이 위치해 있으며, 성곽 내부와 주변에서 다량의 고급 위신재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부여의 전기왕성으로 가장 적합하다고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지 내부에서 왕이 거주하던 궁전 건축 관련 유구가 발견되지 않고, “國南山”으로 추정되는 모아산고분군이 남쪽이 아닌 동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 등은 향후 풀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여 왕이 장례시에 착용하였다는 옥갑을 찾아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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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그동안 부여 초기 및 전기왕성으로 비정되던 유적들의 고고학 자료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를 통해초기왕성 비정 유적의 성격을 파악해 보고, 전기왕성의 정확한 위치 비정과 더불어 ...

    이 글은 그동안 부여 초기 및 전기왕성으로 비정되던 유적들의 고고학 자료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를 통해초기왕성 비정 유적의 성격을 파악해 보고, 전기왕성의 정확한 위치 비정과 더불어 문제점 및 향후 과제 등을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부여의 초기왕성 혹은 색리국의 왕성으로 비정되는 경화성지는 고고학 자료에 대한 검토 결과 성벽이 초기철기시대 주거지를 파괴하고 축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초기 왕성이 아닌 부여 성립 이후에 대읍루 교통과 방어, 행정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세워진 지방 거점성이라 할 수 있다.
    부여 전기왕성은 자치통감의 기록에 의하면 녹산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전기왕성으로 비정되는 곳은 농안고성, 성자산산성, 동단산평지성 등이 있다. 농안고성과 성자산산성은 부여시기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고고학자료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전기왕성으로 비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두 성은현재 후기왕성으로도 비정되고 있다.
    동단산평지성은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부여 전기왕성으로 가장 유력하게 비정되고 있는데, 성곽의 규모와 형태가 문헌기록과 유사하고, 주변에 부여의 귀족 무덤인 모아산고분군과 용담산산성이 위치해 있으며, 성곽 내부와 주변에서 다량의 고급 위신재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부여의 전기왕성으로 가장 적합하다고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지 내부에서 왕이 거주하던 궁전 건축 관련 유구가 발견되지 않고, “國南山”으로 추정되는 모아산고분군이 남쪽이 아닌 동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 등은 향후 풀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여 왕이 장례시에 착용하였다는 옥갑을 찾아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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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文信, "李文信考古文集" 遼寧人民出版社 1992

    2 李文信, "李文信考古文集" 遼寧人民出版社 1992

    3 송호정, "처음으로 읽는 부여사" 사계절 2015

    4 이종수, "송화강유역 초기철기문화와 부여의 문화기원" 주류성 2009

    5 이종수, "부여 왕성연구의 새로운 경향–후기왕성 遼源說을 중심으로–, In 고대 동북아 민족의 고고와 역사" 2016

    6 魏存成, "高句麗遺迹" 文物出版社 2002

    7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8 董學增, "關于確定吉林市建城地點與年代的論證意見" (4) : 2006

    9 周向永, "西豐城子山山城始建年代再考" (2) : 2008

    10 唐音, "田野考古集粹" 文物出版社 2008

    1 李文信, "李文信考古文集" 遼寧人民出版社 1992

    2 李文信, "李文信考古文集" 遼寧人民出版社 1992

    3 송호정, "처음으로 읽는 부여사" 사계절 2015

    4 이종수, "송화강유역 초기철기문화와 부여의 문화기원" 주류성 2009

    5 이종수, "부여 왕성연구의 새로운 경향–후기왕성 遼源說을 중심으로–, In 고대 동북아 민족의 고고와 역사" 2016

    6 魏存成, "高句麗遺迹" 文物出版社 2002

    7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8 董學增, "關于確定吉林市建城地點與年代的論證意見" (4) : 2006

    9 周向永, "西豐城子山山城始建年代再考" (2) : 2008

    10 唐音, "田野考古集粹" 文物出版社 2008

    11 馬德謙, "淡淡吉林龍潭山, 東團山一帶的漢代遺物" (4) : 1987

    12 王綿厚, "東北古代夫余部的興衰及王城變遷" (2) : 1990

    13 李麗娜, "文化吉林·夫餘卷" 時代文藝出版社 2014

    14 劉 寧, "夫餘歷史與文化探察" 東北師範大學 2011

    15 范恩實, "夫餘興亡史"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13

    16 李建才, "夫餘的疆域和王城" (4) : 1982

    17 張博泉, "夫餘的地理環境與疆域" (2) : 1998

    18 武國勛, "夫餘王城新考– 前期夫余王城的發現" (4) : 1983

    19 王禹浪, "夫餘族稱與王城硏究綜述" (4) : 2015

    20 楊 軍, "夫餘史硏究" 蘭州大學出版社 2012

    21 林 沄, "夫餘史地再探討" (4) : 1999

    22 馬德謙, "夫餘前期國都的幾個問題" (3) : 1995

    23 董學增, "夫余王國論集續編" 吉林文史出版社 2007

    24 董學增, "夫余王國論集" 吉林市文物管理處 2003

    25 於海民, "夫余王國芻議" 2015

    26 董學增, "夫余王國前期王城所在地及高句麗扶余城考辨" (1) : 2010

    27 李鍾洙, "夫余文化硏究" 吉林大學 2004

    28 楊 軍, "夫余始遷時間地點考" (1) : 2010

    29 李東, "夫余國研究" 吉林人民出版社 2006

    30 黃斌, "夫余國史話" 遠方出版社 2006

    31 王雪梅, "國內夫餘活動中心與王城硏究" 16 (16): 2015

    32 吉林省地方志編纂委員會, "吉林省志卷43 –文物志–" 吉林人民出版社 1994

    33 董學增, "吉林東團山原始·漢·高句麗·渤海諸文化遺址調査略報" (創刊) : 1982

    34 劉玉成, "吉林市龍潭山鹿場遺址出土陶片的初步硏究" (6) : 2012

    35 董學增, "吉林市龍潭山高句麗山城及其附近衛城調査報告" (4) : 1986

    36 李建才, "吉林市龍潭山山城考" (2) : 1995

    37 秦麗榮, "吉林市龍潭山文化內涵新考" (2) : 2013

    38 翟立偉, "吉林市龍潭山城應為夫余國前期都城" (6) : 2002

    39 翟立偉, "吉林市的城市起源– 兼論龍潭山城的始建年代" (9) : 2004

    40 邵蔚風, "吉林市東團山遺址局部調査簡報" (1) : 2001

    41 孔艷春, "吉林市建城歷史考略" (6) : 2008

    42 董學增, "再論吉林市"南城子"是古穢城·夫余王國前期王城" (2) : 2006

    43 唐音, "中國考古學年鑒2002" 文物出版社 2003

    44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3

    45 王禹浪, ""索離"國及其夫余的初期王城" (1)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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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6-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Oriental Studies KCI등재
    2013-03-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
    영문명 : Dankook University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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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3 1.457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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