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은 최고 권력자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의 개인적 능력과 품성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컸다. 이 상황에서 다음 대 왕위 계승자인 세자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 중시되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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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Korean
세자교육 ; 入朝 ; 學禮 ; 入學儀 ; 師傅相見儀 ; 書筵會講儀 ; 五禮 ; 嘉禮 ; 朝賀 ; 國朝五禮儀 ; 明集禮 ; 拜禮 ; 南面受朝 ; 稱臣 ; Crown Prince’s education ; attendance at the Imperial Court ; Education Rites ; Meeting’s Rite of the Prince’s fosterer and tutor ; Five rites ; Felicitous rites ; Choha(朝賀) ; Kukchoorye?i(Five State Rites) ; Mingjili (Ritual Regulations of Ming Dynasty)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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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67-10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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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조선시대 왕은 최고 권력자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의 개인적 능력과 품성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컸다. 이 상황에서 다음 대 왕위 계승자인 세자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 중시되었는데, ...
조선시대 왕은 최고 권력자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의 개인적 능력과 품성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컸다. 이 상황에서 다음 대 왕위 계승자인 세자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 중시되었는데, 본고에서는 세자교육과 사대부교육과의 차별성을 국가의례의 교육과 실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였다.
세자교육은 태종?세종대를 거치면서 世子侍講院과 書筵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도적인 정비가 마련되었다. 세자교육은 경전의 記誦을 통해 과거를 준비하는 사대부 자제들의 교육과 달리 心性 함양과 言動의 規正을 바탕으로 역대 제왕들의 다양한 治亂의 경험을 학습시키는데 중점이 두어졌다. 아울러 초기의 왕들은 어린 세자를 명에 보내 황제가 주재하는 각종 의례에 참여시킴으로써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국제적 감각을 익히도록 배려하였다. 세자의 교육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시되었던 것은 의례교육이었다. 세자의 의례교육은 학습과정에서 필요한 學禮의 습득과 다양한 국가의례에 참여해 정치적 자질을 높이는 체험 학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자는 책봉된 직후 성균관에서 謁聖과 入學禮를 거행하여 臣民들에게 장차 유교군주로서의 모습을 인식시켰고, 이후 스승과의 일상적 만남을 규정한 師傅相見禮와 書筵會講禮를 통해 훗날 통치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키웠다. 이러한 학례에서 세자는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至尊의식을 내세우기 보다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공손한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기를 벗어난 세자는 다양한 국가의례에 참여함으로써 예법을 익히는 동시에 군신간의 위계질서를 체득하는 정치학습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세자는 국왕이 주도하는 국가의식에 2인자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성년기에 이르면 주도적으로 의례를 주관하고 국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세조 등은 성년기의 세자와 群臣간에는 의례상으로 상호 차별화된 모습이 필수적이라 판단하여 明禮에 근거하여 세자의 南面受朝와 신하들의 四拜禮, 稱臣 등을 강요해 신료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현존 『국조오례의』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삭제되었다.
국가의례는 대체로 이른 새벽에 종친과 문무백관, 호위군사 등 수 천명의 인원이 정렬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의식은 엄격한 격식에 따라 장엄하게 진행되었고, 세자는 行禮의 전 시간동안 엄숙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기에 그 교육적 효과는 컸다. 조선시대에는 세자의 국가의례 참여가 반드시 습득해야만 할 엄격한 교육과정인 동시에 훗날 통치자로서 그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시대가 흐르면서 세자의 의례교육은 더욱 강화되어 ‘禮治’의 구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ain contents and political natures of Crown Prince’s rites-education during early Chos?n dynasty. The education program specifically designed for Crown Prince began to be institutionalized from the reigns of King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ain contents and political natures of Crown Prince’s rites-education during early Chos?n dynasty. The education program specifically designed for Crown Prince began to be institutionalized from the reigns of King T’aejong to King Sejong. Contrary to common educational curriculums for the ruling aristocrats which focused on preparing the state examination through learning by heart the Nine Chinese Classics, its purpose was mostly for cultivation of the mind and behavior as a future king. To achieve its aim, education program for Crown prince focused on internalizing ideal politics model of sage kings’, and attending the court from time to time was a part of Prince‘s education program too. Accordingly, core of the program for Crown Prince’s education was education on the rites(禮). After receiving the peerage, the Crown Prince entered Sungkyunkwan, the royal college, performed the inaugural ceremony, and then dedicated himself to mastery of Rites of Studying(學(禮) along with the tutors the royal house designated for him. Concentrating on learning Rites of Studying, Crown Prince was supposed to display his civil and humble posture following the models of sage kings. Growing out of his boyhood, the crown prince learned good manners from joining in various state rites and came to learn the natures of political relations between the suzerain and subject. In general, he participated in state-level rites representing second highest position of vertical hierarchy topped by the king. However, in such crucial momentums when a king of Early Choson needed to assure his crown prince already had enough qualification and legitimacy for succession of the throne, it was quite common the king ordered his crown prince to lead the rites and administered the affairs of state as a vicarious authority for the throne. Then, this usually created political tension between king’s side and his subjects. On account of this kind of situation, A few kings have tried to come up with new method which would enable the crown prince to have distinctive and higher ceremonial position among all the subjects of the king’s. Consequently, ceremonial rites of Ming empire’s crown prince was borrowed as the ideal model for Choson’s crown prince. Following Ming empire"s case, Choson’s Crown Prince’s position in the rites began to be designed as a symbol of a vicarious authority for the kingship. The Crown Prince of Early Choson came to have his position toward the south(南面) in the rites, to have his distinctive position called with particular title, to have his king’s subjects pay homage to the crown prince himself by defining his kings subjects as his own subjects(稱臣), to have his subjects practice four-bow-rite(四拜) in front of himself and so on. It was clear that Crown Prince"s participation in state rites was a sort of educational and political process which would symbolize his political stature as the proper vicarious authority for the kingship in front of the subject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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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근세 어업에서 본 「漁場請負制」와 울릉도 어업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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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9-12-3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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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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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63 | 0.63 | 0.65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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