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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소설에 나타난 감각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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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한국 근대소설은 감각의 ‘발전’과 몸의 발견을 어떻게 수용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몸이나 감각은 새로운 정신성의 영토였지, 오늘날처럼 그 자체는 전혀 목적이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

      한국 근대소설은 감각의 ‘발전’과 몸의 발견을 어떻게 수용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몸이나 감각은 새로운 정신성의 영토였지, 오늘날처럼 그 자체는 전혀 목적이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 근대문학은 감각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전의 방향을 잡았다.

      여기에는 발견된 감각과 몸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다루는 근대적 로고스중심주의ㆍ남성중심주의의 보편적인 작동과 한국 소설사 특유의 전통이 함께 작동했다. 1990년대가 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한국 소설은 감각을 아예 다루지 않거나, 인물과 서술자가 전존재를 걸고 영과 육을 분리하고자 투쟁했다. 감각과 몸에 대해 정신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도록 하고 애욕(愛慾)에 대해 이른바 플라토닉러브가 승리를 거두도록 했다.

      문학을 통해 정치적ㆍ이념적 과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계몽주의 전통은 1990년대 이후 탈이념의 시대가 오고 문학의 사회적 위상이 완전히 변하기까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 그 명맥은 실력양성론과 결부된 1910년대의 최남선ㆍ이광수의 문학, 1920년대와 1930년대의 <KAPF>의 계급주의 문학운동과 ‘국민문학파’의 문화민족주의, 해방기의 민족문학 운동, 그리고 1960-70년대의 참여문학과 민족문학, 1980년대의 민중문학ㆍ노동문학 등등으로 그야말로 면면하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한 문학의 창작 원리나 설득구조는 ‘감각’과 무관하다.

      정치적 계몽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한국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평을 들으며 문체적으로 해방 이후 한국 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것으로 여겨진 김승옥 문학은 ‘감각적인 문체’로 이름 높았다지만, 김승옥 소설에서의 ‘감수성’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세계인식, 혹은 윤리적 태도를 일컫는 것이지 감각의 본연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이후에 완전히 역전되어 감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갖게 된다. ‘몸’의 복권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대체로 두 가지 힘을 기축으로 한 것이다. 하나는 ‘탈근대’의 도래이다. 이는 로고스중심주의와 이데올로기, 거대담론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적 전환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진영 대립의 종언,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해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산 등으로 요약되는데, 이러한 정황은 한국 땅에도 현실적인 위력으로 덮쳐왔다. 새로운 적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혼란한 상황에서 소위 ‘억압되었던 것들’의 귀환이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에 감각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 중반 장정일ㆍ하일지ㆍ마광수 등의 소설은 한결같이 과감한 성애의 묘사와 탈 전통적인 서사의 시도로 인해, 사회적인 물의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소설에서 감각의 추구는 곧 자유롭고 일탈적인 성의 추구인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이는 개별적 주체의 몸과 성에 가해져 온 성적ㆍ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부정성의 구현으로 읽혔다. 또한 파격적인 성애의 묘사를 겨냥한 소설이 아닌 경우에도 감각이 중요한 소설의 매개가 된 경우들이 나타났다. 윤대녕ㆍ김경욱ㆍ김훈 등의 소설을 들 수 있다.

      또한 감각은 여성문학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여성적인 것에 대한 여성의 자각이 몸에 대한 묘사를 긍정적인 동력으로 바꾸어 냈다. 다양한 내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는 대체로 여성들이 몸을 통해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것과 여성 억압이 여성 몸에 대한 억압을 통해 수행된다는 입장을 공유할 수 있다 한다. 또한 “감각적 글쓰기는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인식을 배제하고 육체가 느끼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글쓰기”인데, 이는 월경ㆍ임신ㆍ출산ㆍ수유하는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가능하다. 결국 감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궁’이다. 이때 여성의 몸은 이전까지의 문학을 일구어 낸 몸과는 전혀 다른 신체이기에,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언어”를 지향하는 것이다.

      감각과 몸에 대한 추구는 민족ㆍ민중 같은 공동체의 에토스와 파토스를 추구해 온 한국 소설의 전통에서 낯선 것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그것이 새로운 주류가 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탈계몽’이나 ‘탈정치’의 과제 자체는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감각에 대한 추구가 새로운 국면의 문학을 이룰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감각의 문학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공동체의 관심사나 집합적 정체성을 다루기를 꺼린다. 이는 오늘날 한국 소설이 처한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소설이 ‘공통감각’을 회복하는 데 기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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