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奇大升(1527∼1572)은 한국 지성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 고봉의 문인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짧은 생애 탓에 학문이 단절되었던 이유가 컸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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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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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Daeseung ; Yi Hwang ; Yi Yi ; Dongin(Easteners) ; Seoin(Westeners) ;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 奇大升 ; 李滉 ; 李珥 ; 東人 ; 西人 ; 義兵
810.5
KCI등재
학술저널
349-37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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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 奇大升(1527∼1572)은 한국 지성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 고봉의 문인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짧은 생애 탓에 학문이 단절되었던 이유가 컸다. 그 외...
고봉 奇大升(1527∼1572)은 한국 지성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 고봉의 문인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짧은 생애 탓에 학문이 단절되었던 이유가 컸다. 그 외에는 정치적인 구도가 크게 작용한다. 퇴계를 통해 존재 증명을 했지만 퇴계를 통해 그는 지워졌다. 퇴계와의 관계를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 퇴계가 엄청난 흡입력으로 고봉의 기억될 공간마저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닐까.
또 율곡과는 반목이 심했다. 고봉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율곡의 반감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하다. 이로써 그는 퇴계에게 흡수되고 율곡에게 배척되었다. 그는 동인, 서인 어느 쪽에서도 지분을 확보할 수는 없었다. 이호민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문인들의 문집에서 고봉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삭제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奇自獻(1562∼1624) 같은 사람의 정치적 선택도 고봉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는 서인계에게 지탄을 받았고 동인계도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고봉의 문인들은 의병으로 활약한 이가 많다. 정확하게 그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때 고봉의 문인들 중 상당한 인물들이 전란에 목숨을 잃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제자의 활동과 지명도가 스승 사후에 스승의 위치를 규정한다. 그를 가장 확실하게 기억해 줄 사람들의 부재는 그의 부재를 가속화시켰다.
본고는 고봉의 문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잊힌 그를 온전히 복원하는 데는 왜 잊혔는가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는 작업이 우선이어야 한다. 남은 자료가 많지 않지만 좀 더 치밀하게 하나하나 모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을 계기로 관련 문인들의 자료 속에 흩어져 있는 고봉의 흔적들을 정밀히 추적해 볼 것을 기대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Gobong Gi Daeseung(奇大升, 1527∼1572) can't be missed in the discussion on the history of mentality in Korea. However,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there is almost none who knows him at present. It's mainly because his short life broke his acad...
Gobong Gi Daeseung(奇大升, 1527∼1572) can't be missed in the discussion on the history of mentality in Korea. However,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there is almost none who knows him at present. It's mainly because his short life broke his academic life. Another reason was the political system. He was ignored in the literary world by Toegye even thought he became prominent through Toegye.
Furthermore, he was severely at feud with Yulgok. The animosity of Yulgok against the political view of Gobong was beyond what anyone could imagine. Thus, he was ignored by Toegye but excluded by Yulgok. He couldn't secure his position both in Dongin(Easteners) and Seoin (Westeners).
A significant number of writers who knew Gobong participated in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There is no data to accurately identify the number of such writers at present. However, a number of writers who were Gobong's acquaintance definitely died in the wars. The activities and publicity of disciples define their teachers' position in the society after the death of their teachers. The fact that there is none who can remind us of him accelerated his absence in the history of mentality in Korea.
This paper proved that there were no more data on his acquaintances. It is required to find out why Gobong was completely forgotten before restoring his literary status. I hope the result of this paper will be the opportunity to throughly investigate his trace dispersed in the data of other writer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李珥, "栗谷全書"
2 허경진, "퇴계와 고봉이 주고받은 매화시에 대하여" 고봉학술원 (10) : 1999
3 윤용남, "조선시대 한시작가론" 이회 1996
4 권순열, "기고봉과 양송천" 고봉학술원 (7) : 1996
5 김태환, "고봉(高峯) 기흥설(起興說)의 미학적 의미: 흥(興)의 미적 본질 문제" 한국학중앙연구원 26 (26): 125-151, 2003
6 조정림, "고봉 기대승의 시문학 연구" 조선대학교 2004
7 김풍기, "고봉 기대승의 문학세계와 문화유산" 소와당 2013
8 김성기, "고봉 기대승의 문학과 면앙 송순" 고봉학술원 (7) : 1996
9 김병국, "고봉 기대승의 문학 연구" 반교어문학회 (30) : 61-92, 2011
10 권미화, "高峰 文學觀의 性理學的 양상" 열상고전연구회 (33) : 65-94, 2011
1 李珥, "栗谷全書"
2 허경진, "퇴계와 고봉이 주고받은 매화시에 대하여" 고봉학술원 (10)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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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권순열, "기고봉과 양송천" 고봉학술원 (7) : 1996
5 김태환, "고봉(高峯) 기흥설(起興說)의 미학적 의미: 흥(興)의 미적 본질 문제" 한국학중앙연구원 26 (26): 125-15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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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성기, "고봉 기대승의 문학과 면앙 송순" 고봉학술원 (7)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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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동준, "高峰 奇大升의 시세계" 한국한시학회 6 : 2001
12 김성기, "高峯의 贈詩 연구" 고봉학술원 (10) : 1999
13 김주한, "高峯의 文學世界와 退溪" 고봉학술원 (8) : 1996
14 奇大升, "高峯集"
15 조기영, "高峯詩의 ‘觀物’精神" 동양고전학회 8 : 1997
16 조기영, "高峯 奇大升의 樓亭詩 存在樣相" 고봉학술원 (8) : 1996
17 李泌秀, "高峯 奇大升의 詩 世界" 東國大學校 敎育大學院 1996
18 유연석, "高峯 奇大升의 表文硏究" 고봉학술원 (7) : 1996
19 柳希春, "眉巖日記"
20 鄭弘溟, "畸庵集"
21 이병기, "奇大升의 弔挽詩에 대하여" 고봉학술원 (7) : 1996
『巽窩漫錄自序』를 통해 본 鄕吏 출신 文人 金敬天의 생애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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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6-07-2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Http://Www.Daedonghanmunhak.Co.Kr -> http://www.daedonghanmun.or.kr/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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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1 | 0.71 | 0.6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1 | 0.61 | 1.492 | 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