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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裝身具로 본 熊津百濟 地方支配의 推移 = Local Governing of Baekje Ungjin(熊津) Period Shown in Noble Metal Access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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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8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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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was written to inquire an aspect of Baekje's culture in Ungjin period by analyzing noble metal accessories as authority goods, and furthermore, the local governing aspect of Baekje in Ungjin period by inquiring distribution of excavated accessories from the capital and local areas.
      Baekje's accessories in Ungjin period are concentrated in Gongju, the capital city, and limitedly found in Naju among local areas. The manufacturing methods of earrings and belt ornaments, the accessories of Ungjin period is related with the accessories of the late Hanseong period, but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g, unique characteristics of Ungjin period is clearly shown. The level of that period's accessory culture was much developed compared to Hanseong period, but the owning class of accessories rapidly narrowed. It reflects the intention of strengthening the royal power by limiting the owning possession of accessories.
      Among the accessories excavated from Naju, those from Sinchon-ri 9th tomb made in the late 5th century seem to be made in the actual place, but gilt bronze shoes excavated from the stone room of Bogam-ri 3rd tomb in 1996 is probably granted from the central government. In those days, the central government of Baekje seems to have reorganized Yeongsan River area with the powers of the tomb group of Bogam-ri around Dasi-myeon. It may have been because Yeongsan River area was the major collecting source for Baekje to grow and therefore more intensified control of the area was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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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was written to inquire an aspect of Baekje's culture in Ungjin period by analyzing noble metal accessories as authority goods, and furthermore, the local governing aspect of Baekje in Ungjin period by inquiring distribution of excavated accessori...

      This was written to inquire an aspect of Baekje's culture in Ungjin period by analyzing noble metal accessories as authority goods, and furthermore, the local governing aspect of Baekje in Ungjin period by inquiring distribution of excavated accessories from the capital and local areas.
      Baekje's accessories in Ungjin period are concentrated in Gongju, the capital city, and limitedly found in Naju among local areas. The manufacturing methods of earrings and belt ornaments, the accessories of Ungjin period is related with the accessories of the late Hanseong period, but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g, unique characteristics of Ungjin period is clearly shown. The level of that period's accessory culture was much developed compared to Hanseong period, but the owning class of accessories rapidly narrowed. It reflects the intention of strengthening the royal power by limiting the owning possession of accessories.
      Among the accessories excavated from Naju, those from Sinchon-ri 9th tomb made in the late 5th century seem to be made in the actual place, but gilt bronze shoes excavated from the stone room of Bogam-ri 3rd tomb in 1996 is probably granted from the central government. In those days, the central government of Baekje seems to have reorganized Yeongsan River area with the powers of the tomb group of Bogam-ri around Dasi-myeon. It may have been because Yeongsan River area was the major collecting source for Baekje to grow and therefore more intensified control of the area was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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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위세품(威勢品)적 성격이 짙은 귀금속제 장신구를 분석하여 웅진시기 백제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도 및 지방에서 출토된 장신구의 분포추이를 살펴 웅진시기 백제의 지방지배 양상을 추론해 본 것이다.
      웅진시기의 백제 장신구는 왕도인 공주에 집중되며 지방의 경우 나주에 한정하여 분포한다. 이식이나 대금구의 제작기법으로 보면 웅진시기의 장신구는 한성시기 후반의 장신구와 연속성을 지니며, 무령왕릉 단계가 되면서 웅진시기만의 특색을 현저히 드러낸다. 이 시기 장신구문화의 수준은 한성시기에 비하여 크게 진전된 것이지만 장신구의 소유층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것은 장신구의 소유를 제한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던 의도를 반영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나주에서 출토된 장신구 가운데 5세기 후반의 무덤인 신촌리9호분 출토품은 현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6세기 전반의 무덤인 복암리3호분 96년 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식리는 중앙에서 사여한 물품일 가능성이 높다. 이 무렵 백제의 중앙은 다시면 일대의 복암리고분군 조영세력을 매개를 영산강유역을 재편해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성장을 담보할 주요한 수취원(收取源)이었기 때문에 지배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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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위세품(威勢品)적 성격이 짙은 귀금속제 장신구를 분석하여 웅진시기 백제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도 및 지방에서 출토된 장신구의 분포추이...

      이 글은 위세품(威勢品)적 성격이 짙은 귀금속제 장신구를 분석하여 웅진시기 백제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도 및 지방에서 출토된 장신구의 분포추이를 살펴 웅진시기 백제의 지방지배 양상을 추론해 본 것이다.
      웅진시기의 백제 장신구는 왕도인 공주에 집중되며 지방의 경우 나주에 한정하여 분포한다. 이식이나 대금구의 제작기법으로 보면 웅진시기의 장신구는 한성시기 후반의 장신구와 연속성을 지니며, 무령왕릉 단계가 되면서 웅진시기만의 특색을 현저히 드러낸다. 이 시기 장신구문화의 수준은 한성시기에 비하여 크게 진전된 것이지만 장신구의 소유층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것은 장신구의 소유를 제한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던 의도를 반영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나주에서 출토된 장신구 가운데 5세기 후반의 무덤인 신촌리9호분 출토품은 현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6세기 전반의 무덤인 복암리3호분 96년 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식리는 중앙에서 사여한 물품일 가능성이 높다. 이 무렵 백제의 중앙은 다시면 일대의 복암리고분군 조영세력을 매개를 영산강유역을 재편해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성장을 담보할 주요한 수취원(收取源)이었기 때문에 지배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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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馬場是一郞, "梁山夫婦塚と其遺物" 朝鮮總督府 1927

      2 穴澤咊光, "羅州潘南面古墳群" 古代學硏究會 70 : 1973

      3 공주대학교박물관, "회맹지 취리산"

      4 호암미술관, "황금의 미-한국미술 속의 금빛"

      5 국립광주박물관, "함평 신덕고분 조사개보"

      6 홍보식, "한반도 남부지역의 왜계 요소-기원후 3∼6세기대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44) : 21-58, 2006

      7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6 삼국의 정치와 사회II in: 백제" 1995

      8 국립중앙박물관, "하찌우마타다수선생 기증유물특별전"

      9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백제(도록)"

      10 차용걸, "청주 신봉동유적의 고고학적 검토 in: 백제 지방세력의 존재양태"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1 馬場是一郞, "梁山夫婦塚と其遺物" 朝鮮總督府 1927

      2 穴澤咊光, "羅州潘南面古墳群" 古代學硏究會 70 : 1973

      3 공주대학교박물관, "회맹지 취리산"

      4 호암미술관, "황금의 미-한국미술 속의 금빛"

      5 국립광주박물관, "함평 신덕고분 조사개보"

      6 홍보식, "한반도 남부지역의 왜계 요소-기원후 3∼6세기대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44) : 21-58, 2006

      7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6 삼국의 정치와 사회II in: 백제" 1995

      8 국립중앙박물관, "하찌우마타다수선생 기증유물특별전"

      9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백제(도록)"

      10 차용걸, "청주 신봉동유적의 고고학적 검토 in: 백제 지방세력의 존재양태"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11 충북대학교 박물관, "청주 신봉동고분군"

      12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유적"

      13 충북대학교박물관, "청원 南城谷고구려유적"

      14 공주대학교박물관, "천안 용원리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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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森下章司, "鴨稻荷山古墳出土遺物の調査 in: 琵琶湖周邊の6世紀を探る" 京都大學文學部考古學硏究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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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輕部慈恩, "百濟遺蹟の硏究" 吉川弘文館 1972

      73 齊東方, "百濟武寧王墓와 南朝梁墓 in: 무령왕릉과 동아세아" 국립공주박물관 2001

      74 王志高, "百濟武寧王陵形制結構的考察" 충청문화재연구원 2005

      75 권오영, "百濟文化의 이해를 위한 中國 六朝文化 탐색" 한국고대사학회 (37) : 81-112, 2005

      76 김영심, "榮山江流域 古代社會와 百濟" 역사문화학회 3 (3): 297-3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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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朝鮮總督府, "慶尙北道達城郡達西面古墳調査報告" 1930

      80 조윤재, "宋山里6號墳 銘文塼 판독에 대한 管見" 호서고고학회 19 (19): 58-73, 2008

      81 朝鮮總督府, "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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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毛利光俊彦, "古代朝鮮冠(百濟) in: 瓦衣千年森郁夫先生還曆記念論文集" 1999

      84 周裕興, "南京의 南朝墓制硏究 in: 위진남북조시대 묘장제도와 백제"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9

      85 南京市博物館, "南京市栖霞區東楊坊南朝墓"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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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酒井淸治, "5·6세기의 토기에서 본 羅州勢力" 백제연구소 (39) : 63-8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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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양기석, "475년 위례성 함락 직후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선 in: 한국 고대 사국의 국경선" 서경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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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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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2 0.82 0.8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5 0.87 1.8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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