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초기의 선교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涵虛堂得通ㆍ梅月堂雲岑ㆍ燈谷學祖의 현존하는 글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한 까닭은, 함허는 도력ㆍ학식ㆍ덕화 등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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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초기의 선교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涵虛堂得通ㆍ梅月堂雲岑ㆍ燈谷學祖의 현존하는 글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한 까닭은, 함허는 도력ㆍ학식ㆍ덕화 등이 당...
본 논문은 조선초기의 선교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涵虛堂得通ㆍ梅月堂雲岑ㆍ燈谷學祖의 현존하는 글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한 까닭은, 함허는 도력ㆍ학식ㆍ덕화 등이 당시를 대표하는 고승이었고, 설잠의 불교 관련 저술도 고찰해야 할 당위성이 요구되었으며, 학조는 조선초기에 秀菴道人信眉擴ㆍ學悅과 함께 '三和尙’으로 일컬어졌으며, 오랜 기간 왕실 불사에 참여했고 학식과 문장의 품격이 높아서 그 시대의 文士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고승이었다. 그러므로 이 분들의 저술에 대하여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세 고승의 禪敎觀'은 ‘禪敎融攝ㆍ敎禪統攝ㆍ禪敎圓融ㆍ禪敎無二ㆍ依敎入禪’등의 선교관이었다. 이런 선교관은 고승들의 찬술문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佛事儀禮文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같은 선교관은 조선초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역대 한국불교사의 전통적 특성이 '統合性'이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원인으로는, 한국불교가 민족의 토착신앙인 巫敎를 수용하고, 외국의 불교를 지속적으로 수용하여 한국적으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임을 추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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