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다층적인 삶을 살았던 현덕신의 삶을 실증적인 사료를 중심으로 추적하고 정리함으로써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의 지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대상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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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300
KCI등재
학술저널
575-59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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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이 논문의 목적은 다층적인 삶을 살았던 현덕신의 삶을 실증적인 사료를 중심으로 추적하고 정리함으로써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의 지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대상은 일...
이 논문의 목적은 다층적인 삶을 살았던 현덕신의 삶을 실증적인 사료를 중심으로 추적하고 정리함으로써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의 지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대상은 일제강점기 척박했던 시대 안에서 여성의 삶을 개척한 여성운동가였던 여의사 현덕신이다. 그동안 현덕신에 대한 연구는 없었고 역사적으로 조명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의 활동을 실증적인 방법으로 확인한 바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덕신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학생으로 ‘2·8독립선언’의 준비자금을 지원하였고,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으며, 황신덕 등과 함께 검속되었다. 이후에도 일본에서 독립운동혐의로 여러 차례 검속되었다. 일본경시청의 ‘1급 감시대상자’가 되었지만 굴하지 않고 유영준과 함께 일본여자유학생들의 조직인 ‘조선여자유학생흥학회’를 조직하여 『여자계』를 발간하였다. 일본에서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전개한 뒤 귀국해서도 동대문병원의 의사로 ‘근우회’창립회원이자 발기인으로 중앙집행위원으로 조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하여 투신하였다. 둘째, 현덕신은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단발하였고 ‘조선여자의학교’를 설립하기 위하여 애를 썼으며, 경성기독청년회와 조선기독교청년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광주로 내려와 병원을 열고 광주YWCA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사회에도 여성들의 삶을 위해 헌신하였다. 신생유치원과 신생보육학교를 설립하여 어린이와 여성 인권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조선여성’을 ‘조선사회’를 위한 삶을 살아낸 여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였다. 현덕신에 대한 총론으로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한국독립운동사와 한국여성운동사에 현덕신의 자리가 마련되는 단초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re were several women who pioneered the barren lives of Chosun women, but Hyun Duk-shin, a female doctor, was not investigated historically. This thesis intended to examine the life of Hyun Duk-shin, who played multipl...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re were several women who pioneered the barren lives of Chosun women, but Hyun Duk-shin, a female doctor, was not investigated historically. This thesis intended to examine the life of Hyun Duk-shin, who played multiple roles, and review the position of female activists. Hyun Duk-shin supported the reserve fund of the “2.8 Declaration of Independence,” participated in it, and was taken into custody with Hwang, Shin-duk, as a student of the Tokyo Women s Medical College. Then, she was arrested several times on the suspicion of participation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Japan. She became the object of “the 1st watch” of Japanese police. Nevertheless, she established the “Chosun Women’s Free Student Association” that was an organization of the Japanese women’s free students, including Yu, Young-jun, and published 『Yeojagye』 without submission. After returning to her hometown, she became a doctor in the Dongdaemun hospital and sacrificed her life for the improvement of the Chosun women’s position, as a member and initiator of the ”Geunwuhoe,” a left-right joint organization of female activists, and a member of the central executive committee. Hyun, Duk-shin set an example in the Chosun society, who was a dynamic woman, a doctor in the Dongdaemun hospital, and a teacher of biology in the Jeongshin Girls’ School. She cut her hair to save time, strived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Chosun female medical school,” played important roles in several groups, including the Gyeongseong Christian Youth League and the Chosun Christian Youth League, and led the establishment of the Chosun women’s barren lives. She came to Gwangju, opened the hospital, and endeavored to solve difficult problems in the regional society, thereby dedicating her life for the regional society’s upliftment by becoming the president of Gwangju YWCA. She opened a new kindergarten, supervised the education of children, established a new child care school, and cultivated child care teachers, thereby leading the movement of human rights improvement of women and children. She was a doctor, and a female activist, and an independence fighter, who dedicated her life to the “Chosun society.” Therefore, this thesis should act as an introduction about the historical position of Hyun, Duk-shin, whose name failed to appear in the records of several significant movement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4)"
2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 (9)"
3 "조선일보"
4 현덕신, "조선에 여병원이 필요한 이유" 11 (11): 1-21, 1926
5 최은경, "일제강점기 조선 여자 의사들의 활동 -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 4인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소 80 : 287-316, 2016
6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한인의 역사(상)" 2009
7 이화여고, "이화여고 동문록"
8 일본경시청, "요시찰 조선인 일급감시 대상자"
9 현덕신, "여의사가 되기까지의 고심기" 신동아사 3 (3): 1935
10 현덕신, "새 셰게가 다시왓네" (5) : 1920
1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4)"
2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 (9)"
3 "조선일보"
4 현덕신, "조선에 여병원이 필요한 이유" 11 (11): 1-21, 1926
5 최은경, "일제강점기 조선 여자 의사들의 활동 -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 4인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소 80 : 287-316, 2016
6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한인의 역사(상)" 2009
7 이화여고, "이화여고 동문록"
8 일본경시청, "요시찰 조선인 일급감시 대상자"
9 현덕신, "여의사가 되기까지의 고심기" 신동아사 3 (3): 1935
10 현덕신, "새 셰게가 다시왓네" (5) : 1920
11 편집부, "별건곤 (5)" 개벽사 1927
12 현덕신, "별건곤 (4)" 개벽사 1927
13 현덕신, "별건곤 (4)" 개벽사 1927
14 "매일신보"
15 "동아일보"
16 "동광신문"
1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 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18 "독립신문"
19 박선홍, "광주100년(1)" 심미안 107-, 2012
20 시민의 소리, "광전남여성운동사17"
21 주기운, "獻詩-古玄德信女史胸像建立에"
22 현덕신, "卒業生諸兄에게 들임" (3) : 1918
23 일본경시청, "「재경조선학생의 독립만세사건」에 관한 비밀문서"
잠재평균분석을 활용한 대학생 학업성취의 차이 검증 : 종합적 사고력과 지식탐구역량을 중심으로
원본과 사본, 저자와 독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 음악 리얼리티쇼의 해석적 의미와 즐거움 : <히든싱어>를 중심으로
문어체 연결어미 ‘(으)나, (으)며’의 학습이 한국어 쓰기에 미치는 효과 연구 : TOPIKⅡ 쓰기 53번 문항을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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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3-2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문화와 융합 -> 문화와융합 | |
2022-03-1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Society of Culture and Convergence -> The Society of Korean Culture and Convergence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2014-03-04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문학과언어학회 -> 한국문화융합학회영문명 : Munhak Kwa Eoneo Hakhoi -> The Korean Society of Culture and Convergence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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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 | 0 | 0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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