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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대 『포은집』 운각본(芸閣本)의 간행과 의의 = Publication and Its M eanings of Poeunjib U ngakbon in the re ign of King Se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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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포은집 은 고려 말 정몽주의 문집이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판본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가장 많이 간행된 문집이기도 하다. 특히, 세종 21년(1439)과 선조 18년(1585) 두 차례에 걸쳐 왕명에 의해 교서관에서 간행된 점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고는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 판본 가운데 선조 18년(1585)에 간행 된 포은집 운각본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선조 18년(1585)에 간행된 포은집 판본은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는 운각본이라 칭하고자 한다. 포은집 운각본의 특징은 선조의 명에 의해 유성룡이 기존의 포 은집 을 바탕으로 하여 교정을 보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산물이 주자의 「한문고이」를 본받아서 서술한 유성룡의 「연보고이」이다. 「연보고이」는 조선 전기 포은집 판본인 신계본, 개성본, 교서관본 등 세 본에 실려 있는 정몽주의 연보를 바탕으로 하여, 유성룡이 주자의 「한문 고이」의 예에 따라서 새롭게 정리한 것이다. 유성룡은 조선 당대 최고의 주자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그러므로 선조 18년(1585)에 간행된 포은집 운각본은 주자성리학의 대의명분에 바탕을 둔 판본으로서 그 내 용면에서 「연보고이」의 수록과 함께 기존의 포은집 에 수록되어 있는 정 도전의 글을 모두 삭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포은집 운각본은 조선 후기 포은집 판본인 영천본, 봉화본, 숭양본
      등의 저본이 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선조대는 포은집 의 간행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 저변에는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중종대 정몽주는 문묘에 종사됨에도 불구하고, 재야에 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몽주의 출처문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명종대 이황이 주자의 말을 빌어서 정몽주의 출처문제를 잠재웠으며, 선조대 이황의 문인인 유성룡은 주자의 「한문고이」를 빌어서 「연보고이」 를 서술하여 글로서 정몽주의 출처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현종대 송시열이 정몽주를 절의의 차원에서 그 위상을 찾기보다는 조선 성리학의 이학의 비 조로 인식하고, 여기에서 정몽주의 위상을 찾고자 한 점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대 포은집 운각본은 조선시대 정몽주 문집의 간행에서 조선 전기의 포은집 과 조선 후기의 포은집 을 구분하는 한 획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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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은집 은 고려 말 정몽주의 문집이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판본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가장 많이 간행된 문집이기도 하다. 특히, 세종 21년(1439)과 선조 18년(1585) 두 차례에 걸쳐 왕명에 의해 ...

      포은집 은 고려 말 정몽주의 문집이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판본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가장 많이 간행된 문집이기도 하다. 특히, 세종 21년(1439)과 선조 18년(1585) 두 차례에 걸쳐 왕명에 의해 교서관에서 간행된 점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고는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 판본 가운데 선조 18년(1585)에 간행 된 포은집 운각본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선조 18년(1585)에 간행된 포은집 판본은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는 운각본이라 칭하고자 한다. 포은집 운각본의 특징은 선조의 명에 의해 유성룡이 기존의 포 은집 을 바탕으로 하여 교정을 보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산물이 주자의 「한문고이」를 본받아서 서술한 유성룡의 「연보고이」이다. 「연보고이」는 조선 전기 포은집 판본인 신계본, 개성본, 교서관본 등 세 본에 실려 있는 정몽주의 연보를 바탕으로 하여, 유성룡이 주자의 「한문 고이」의 예에 따라서 새롭게 정리한 것이다. 유성룡은 조선 당대 최고의 주자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그러므로 선조 18년(1585)에 간행된 포은집 운각본은 주자성리학의 대의명분에 바탕을 둔 판본으로서 그 내 용면에서 「연보고이」의 수록과 함께 기존의 포은집 에 수록되어 있는 정 도전의 글을 모두 삭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포은집 운각본은 조선 후기 포은집 판본인 영천본, 봉화본, 숭양본
      등의 저본이 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선조대는 포은집 의 간행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 저변에는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중종대 정몽주는 문묘에 종사됨에도 불구하고, 재야에 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몽주의 출처문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명종대 이황이 주자의 말을 빌어서 정몽주의 출처문제를 잠재웠으며, 선조대 이황의 문인인 유성룡은 주자의 「한문고이」를 빌어서 「연보고이」 를 서술하여 글로서 정몽주의 출처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현종대 송시열이 정몽주를 절의의 차원에서 그 위상을 찾기보다는 조선 성리학의 이학의 비 조로 인식하고, 여기에서 정몽주의 위상을 찾고자 한 점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대 포은집 운각본은 조선시대 정몽주 문집의 간행에서 조선 전기의 포은집 과 조선 후기의 포은집 을 구분하는 한 획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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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Poeunjib is the collected writings of Jeong Mong-Ju at the end of Korea dynasty. This book had the most edition and the most published book in Chosun dynasty. Especially, it has the meaning of being published in Kyoseokwan because of the command of king twice(21th year of King Sejong and 18th year of King Seonjo). This article is about one of those anthology’s edition, Poeunjib Ungakbon which was published in 18th year of King Seonjo. Althiough this edition had lots of names, we’ll call it ‘Ungakbon’ in this article. One of its feature was that Ryu Seong-Ryong corrected the original Poeunjib because of the order of King Seonjo. The result was shown by Ryu Seong-Ryong’s Yonbokoyi(年譜攷異) which emulated Zhuxi’s Hanmunkoyi(韓文攷異). Yonbokoyi was summarized by Ryu Seong-Ryong through the example of Hanmunkoyi, based on Jeong Mong-Ju’s chronology in three books which Poeunjib Shinkyebon, Poeunjib Kaesungbon, and Poeunjib Kyoseokwanbon. These books were the edition of Poeunjib in early Chosun dynasty. Ryu Seong-Ryong was one of Lee Hwang’s disciple who was the greatest Neo-Confucianism scholar in Chosun dynasty. Poeunjib Ungakbon was the edition based on Neo-Confucianism in 18th year of King Seonjo. Therefore, all articles of Jeong Do-Jeon in the contents of Poeunjib were deleted. Poeunjib Ungakbon had a signification that were the base of Poeunjib edition (Youngchunbon, Bonghwabon, Sungyangbon)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The King Sunjo of Chosun is the most popular period of publishing Poeunjib. On the other hand, we could find a change of recognition about Jeong Mong–Ju. Despite the fact that Jeong Mong-Ju is engaged in the temple in King Jungjong, the problem of Jeong Mong-Ju s source, which is constantly raised in the field, still remained. About these, Lee Hwang in King Myongjong tried to solve the problem of Jeong Mong-Ju s source by asking Zhuxi. Ryu Sung-Ryong, who was a disciple of Lee Hwang in King Seonjo, summarized the source of Jeong Mong-Ju s works by describing Yonbokoyi. This had lead to a shift in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in the late Chosun Dynasty. Song Si-Yeol in King Hyunjong recognized as a juxtaposition of Chosun Neo-Confucianism rather than a term of Jeong Mong-Ju’s fidelity. Here, it have reflected the desire to find Jeong Mong-Ju s 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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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eunjib is the collected writings of Jeong Mong-Ju at the end of Korea dynasty. This book had the most edition and the most published book in Chosun dynasty. Especially, it has the meaning of being published in Kyoseokwan because of the command of ki...

      Poeunjib is the collected writings of Jeong Mong-Ju at the end of Korea dynasty. This book had the most edition and the most published book in Chosun dynasty. Especially, it has the meaning of being published in Kyoseokwan because of the command of king twice(21th year of King Sejong and 18th year of King Seonjo). This article is about one of those anthology’s edition, Poeunjib Ungakbon which was published in 18th year of King Seonjo. Althiough this edition had lots of names, we’ll call it ‘Ungakbon’ in this article. One of its feature was that Ryu Seong-Ryong corrected the original Poeunjib because of the order of King Seonjo. The result was shown by Ryu Seong-Ryong’s Yonbokoyi(年譜攷異) which emulated Zhuxi’s Hanmunkoyi(韓文攷異). Yonbokoyi was summarized by Ryu Seong-Ryong through the example of Hanmunkoyi, based on Jeong Mong-Ju’s chronology in three books which Poeunjib Shinkyebon, Poeunjib Kaesungbon, and Poeunjib Kyoseokwanbon. These books were the edition of Poeunjib in early Chosun dynasty. Ryu Seong-Ryong was one of Lee Hwang’s disciple who was the greatest Neo-Confucianism scholar in Chosun dynasty. Poeunjib Ungakbon was the edition based on Neo-Confucianism in 18th year of King Seonjo. Therefore, all articles of Jeong Do-Jeon in the contents of Poeunjib were deleted. Poeunjib Ungakbon had a signification that were the base of Poeunjib edition (Youngchunbon, Bonghwabon, Sungyangbon)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The King Sunjo of Chosun is the most popular period of publishing Poeunjib. On the other hand, we could find a change of recognition about Jeong Mong–Ju. Despite the fact that Jeong Mong-Ju is engaged in the temple in King Jungjong, the problem of Jeong Mong-Ju s source, which is constantly raised in the field, still remained. About these, Lee Hwang in King Myongjong tried to solve the problem of Jeong Mong-Ju s source by asking Zhuxi. Ryu Sung-Ryong, who was a disciple of Lee Hwang in King Seonjo, summarized the source of Jeong Mong-Ju s works by describing Yonbokoyi. This had lead to a shift in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in the late Chosun Dynasty. Song Si-Yeol in King Hyunjong recognized as a juxtaposition of Chosun Neo-Confucianism rather than a term of Jeong Mong-Ju’s fidelity. Here, it have reflected the desire to find Jeong Mong-Ju s 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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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선조대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간행
      • 3. 선조대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내용과 의의
      • 1)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내용과 체제
      • 2)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의의
      • 1. 머리말
      • 2. 선조대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간행
      • 3. 선조대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내용과 의의
      • 1)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내용과 체제
      • 2) 『포은집』운각본(芸閣本)의 의의
      •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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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양진조, "포은집의 국내외 현존 현황 및 과제" 포은학회 2 (2): 43-62, 2008

      2 "포은시집 (초간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4-411-1)"

      3 "포은시고 (황주병영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45-가203)"

      4 "포은시고 (황주병영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4-151-203)"

      5 "포은시고 (신계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古朝45-가379)"

      6 "포은시고 (신계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4-527)"

      7 "포은선생집속록 (숭양추각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古朝46-가5)"

      8 "포은선생집권3-4 (숭양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승계古3648-70-82)"

      9 "포은선생집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古46-가1780)"

      10 "포은선생집 (교서관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3648-70-7)"

      1 양진조, "포은집의 국내외 현존 현황 및 과제" 포은학회 2 (2): 43-62, 2008

      2 "포은시집 (초간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4-411-1)"

      3 "포은시고 (황주병영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45-가203)"

      4 "포은시고 (황주병영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4-151-203)"

      5 "포은시고 (신계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古朝45-가379)"

      6 "포은시고 (신계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4-527)"

      7 "포은선생집속록 (숭양추각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古朝46-가5)"

      8 "포은선생집권3-4 (숭양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승계古3648-70-82)"

      9 "포은선생집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古46-가1780)"

      10 "포은선생집 (교서관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貴3648-70-7)"

      11 "포은선생문집권1-2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곡古3648-70-107)"

      12 "포은선생문집1-6 (옥산재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古3648-70-323-1-6)"

      13 "포은선생문집 (영천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古朝46-가5-2)"

      14 "퇴계집"

      15 "지산집"

      16 김보정, "중종․명종대 정몽주 인식 - 박상의 『동국사략』과 유희령의 『표제음주동국사략』을 중심으로 -" 부경역사연구소 (39) : 275-307, 2016

      17 김순희, "죽유 오운의「포은집」교정에 대하여" 한국서지학회 (32) : 337-359, 2005

      18 김학수, "조선후기 영천지역 사림과 임고서원" 포은학회 6 : 120-166, 2010

      19 지두환, "조선시대 정치사 1" 역사문화 2013

      20 최채기, "조선시대 간행 『圃隱集』 板本에 관한 연구" 한국서지학회 30 : 2006

      21 "임고서원지"

      22 조창규, "우암 송시열을 통해 살펴본 포은 정몽주의 지성사적 위상" 포은학회 17 : 63-81, 2016

      23 "선조실록"

      24 "선조수정실록"

      25 김보정, "선조·광해군대 정몽주 인식 - 윤두수의 『成仁錄』과 오운의 『동사찬요』를 중심으로 -" 한국민족문화연구소 (61) : 363-395, 2016

      26 "서애집"

      27 "고려사절요"

      28 "고려사"

      29 안장리, "鄭夢周와 文天祥의 忠臣像 비교" 포은학회 12 : 199-228, 2013

      30 정재철, "朱熹의 『韓文考異』연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34 : 2003

      31 조준호, "朝鮮時代 鄭夢周 祭享書院의 建立 推移와 性格" 포은학회 6 : 99-117, 2010

      32 천혜봉, "日本 蓬左文庫 韓國典籍" 지식산업사 2003

      33 최채기, "圃隱集의 刊行動因 硏究" 한국고전번역원 30 (30): 139-168, 2007

      34 전관수, "圃隱集 간행과 道統論의 관계에 대한 연구" 열상고전연구회 22 : 2005

      35 서대원, "{포은집} 서문 등에 보이는 포은관 고찰" 포은학회 2 (2): 191-2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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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0-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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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8 0.38 0.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 0.47 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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