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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에 나타난 에이레네(eivrh,nh)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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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 평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성서적 평화 실현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제10차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

      1. 평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성서적 평화 실현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제10차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였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라는 세 개의 주제는 당면한 세계와 세계 교회의 문제에 관한 성찰로부터 도출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생명, 정의, 평화가 오늘날 교회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라는 자각이 이러한 주제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생명, 정의, 평화의 주제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떼어 낼 수 없겠으나,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가장 넓은 개념은 평화로 볼 수 있다. 가령 생명이 보장되는 상태, 생명의 안전이 유지되는 상태를 가리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평화는 참된 평화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WCC는 오래전부터 정의와 평화를 하나의 상태로 인식하여 왔고, 이것을 WCC를 비롯한 세계 교회가 함께 지향해야 할 목표임을 분명히 해왔다. 가령, 1983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는 “평화와 정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모두를 위한 정의 없이는 우리는 결코 어디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믿음에 근거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WCC가 천명한 평화의 개념은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폭력이 부재하는 상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와 같은 평화 개념은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갈퉁에 의해 ‘소극적 평화 (negative peace)’로 정의되었는데, 이것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억제하는 데 몰두하여 보이지 않는 다른 폭력, 소위 구조적 폭력 (structural violence)을 용인하거나 축소시키게 된다. 이와 같은 평화의 대표적인 예는 ‘팍스 로마나 (Pax Romana)’로 일컬어지는 ‘로마의 평화’이다. 로마의 평화는 “로마 제국에 의해 정의된 개념”으로, “평화와 안전은 다른 국가를 이긴 승리와 정복을 의미”했으며, “최고도에 달하였던 로마의 군사적 권력에 의해 좌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보다 완전한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권 보장, 사회 정의, 경제 발전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평화의 요건들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시대를 돌아보면, 적극적인 평화를 이루는 것이 요원한 과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라이베리아, 수단, 이라크, 싸이프러스, 소말리아, 코트디부아르, 아프가니스탄, 부룬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세계적인 분쟁지역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역시 남북으로 분단된 휴전의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즉 적극적인 평화는 고사하고 소극적인 평화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직시할 때,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 1588.4.5~1679.12.4)가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 (Leviathan, 1651)’에서 인간의 자연 상태를 정의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the war of all against all) 이 하나의 진리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온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할 이상이며, 공동의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평화가 사라진 상황이 얼마나 큰 불행을 의미하는지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의 역할과 책임이 아니며 전 인류가 함께 경주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평화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이념이 아니라, 좁게는 각 개인의 일상에서, 넓게는 국제 사회의 관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이며, 동시에 그 목표를 향한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먼저 평화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특히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이 주장하는 편협한 평화가 아니라, 성서가 말하는 평화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더군다나 성서는 하나님을 가리켜 ‘평화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예수를 가리켜 ‘우리의 평화’라고 일컫는다. 나아가 예수의 사역과 십자가의 목적을 평화를 이루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평화의 종교로 불려지는 기독교에서 평화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우리가 함께 추구해 나가야 할 소명임을 인식해야 한다.

      2. 누가복음의 연속성과 통일성 문제

      한편 이 논문은 성서적 평화의 개념과 의미를 우리의 삶 속에 투영하는 일차적인 목적에 더해 성서학적인 관심에서 비롯되는 이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누가복음 연구사 중에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논쟁이 있는데, 그것은 1-2장에 해당하는 유아기 내러티브와 나머지 부분 사이의 연속성과 통일성에 관한 문제이다. 어떤 학자들은 유아기 내러티브를 누가복음의 다른 부분과 비교할 때, 어휘나 논조, 그리고 유대적 이상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누가 학자인 콘첼만도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1-2장을 누가복음 연구에서 제외시켰고, 피츠마이어 역시 3장 1-2절이 1장 1-4절과 유사한 점을 들어 원누가(Proto-Luke)에 1-2장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콘첼만이나 피츠마이어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콘첼만의 연구 이후, 오히려 많은 학자들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누가복음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가령 브라운(R. E. Brown)은 누가의 구속사적 시간을 이스라엘 시대, 예수 시대, 교회 시대로 구분한 콘첼만의 구분법을 수용하여 누가복음 1-2장을 이스라엘 시대의 마지막 시기로 보며, 누가복음의 나머지 부분을 예수 시대, 그리고 사도행전을 교회 시대로 설정함으로써 사도행전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보여 주었다. 어드만(Erdmann), 탤버트(Talbert), 오뎃(Audet) 등은 헬라-로마의 전기 문학 연구를 통해 누가복음 1-2장과 나머지 부분의 연속성을 입증하려고 했는데, 특히 오뎃은 로마-헬라 전기 문학의 서문에 해당하는 프로오이미아(prooi,mia, 서문들)를 누가가 수용했다고 주장함으로써 1-2장이 누가복음의 프로오이미아임을 주장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1-2장이 누가복음의 문학적 구조면에서 나머지 부분과 연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록 1-2장과 나머지 부분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두 부분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문학비평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들은 누가복음 1-2장과 나머지 부분 사이에 나타나는 기독론적, 구원론적 관점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즉 1-2장에 나타난 기독론적, 구원론적 관점과 나머지 부분의 기독론적, 구원론적 관점이 다르다면, 그것은 누가의 문학적 장치로서 누가의 신학적 의도를 반영한 결과인데, 누가가 사용한 문학적 장치와 그 신학적 의도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의 목적은 에이레네가 누가복음의 기독론적, 구원론적 개념들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용어이며, 누가복음 1-2장의 유아기 내러티브와 나머지 부분 사이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비록 일부의 학자들은 1-2장의 유아기 내러티브의 기독론적, 구원론적 개념들이 유대 중심적인 특징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나머지 부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설명하지만, 유아기 내러티브에서 기독론적, 구원론적 개념들은 구약의 예언에 바탕을 둔 유대 중심적인 성격에 머물지 않고 이방을 포함하는 만민으로 확장되고 있다. 더불어 에이레네의 개념도 민족주의적인 개념을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아기 내러티브는 브라운이나 포드가 제시한 것처럼 이스라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가복음 전체에 대한 문학적 서문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누가복음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타나는 예수와 예수의 사역에 대한 의미를 설명할 뿐 아니라, 장차 일어날 예수의 사역에 대한 암시와 복선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즉 유아기 내러티브에서 예수는 이스라엘과 이방에 평화를 가져오신 분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사역에서는 오히려 반평화적인 언행을 보여 주신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유아기 내러티브에서 시므온의 두 번째 예언에서 예언된 것으로 예수와 예수의 사역이 이스라엘에게 거절된다는 암시를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유아기 내러티브에서 나타나는 평화에 대한 언급과 개념들은 나머지 부분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스라엘의 기대 속에 있는 평화와 누가가 제시하는 실제적인 ‘예수의 평화’가 달랐던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누가복음 전체의 문학적 서문으로서 유아기 내러티브에 나타난 에이레네의 의미들을 연구하고, 그 의미들이 나머지 부분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관찰함으로써 누가복음의 문학적 연속성과 통일성의 전제에서 에이레네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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