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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후반 朝鮮과 中國 지식인의 국제적 經學 論爭 탐구 —大學講語에 나타난 經學 論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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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16세기 四端七情 논쟁이 끝난 이후 性理學的 思考 심화 과정에서 經學에 대한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국제적 논쟁 탐구를 통해 한국 지식인의 성리학적 경학사상 정립과 내...

      본 연구의 목적은 16세기 四端七情 논쟁이 끝난 이후 性理學的 思考 심화 과정에서 經學에 대한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국제적 논쟁 탐구를 통해 한국 지식인의 성리학적 경학사상 정립과 내재적 계승 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그 중심은 국난과정에서 경학에 대한 획기적 전환을 준 月沙 李廷龜(1564〜1635)의 大學講語를 토대로 연구되는 바, 이는 한국 경학의 성리학적 계승과 철학적 변화 양상에 대한 위상을 살펴볼 것이다.
      經學이란 儒家經典에 대한 시대의 변화나 현실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진 학문 분야이다. 이 학문 분야는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줄곧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경전이 언제 수용되었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유교경전과 사상이 정치와 사회의 교화적 측면에서 크게 작용하였다. 경전에 대한 해석은 고려 12세기 초 金仁存(?~1127)과 尹彦頤(1090~1149)가 시작되었으나 그 자료는 현재 있지 않다.
      고려말기 주자학(성리학)이 수용된 이후 지식인들은 성리학적 측면에서 경전을 읽었고, 신유학(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한 조선의 학자들은 유교 경전을 학문적으로 탐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15~16세기 중엽까지 경전을 해석/주석한 학자들은 성리학이 경학적/학문적 차원에서 정착하도록 하는데 노력하였다. 명나라의 학자 王守仁의 傳習錄이 전래되기는 하였으나, 이황이 양명학을 비판하여 양명학의 기반 구축을 허락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 援軍으로 온 명나라의 經略이자 양명학자 宋應昌(1536~1606)은 조선이 주자학(성리학)만을 표방하는 학문태도를 벗어나도록 요청하였다. 당시 조선의 30대 초반의 학자 柳夢寅(1559~1623)․黃愼(1560~1617)․李廷龜(1564~1635) 등은 이에 맞서 성리학적 입장에서 송응창의 해석을 학술논쟁을 하였다. 이 국제적 경학논쟁에 대한 연구는 한국 경학의 성리학적 계승과 철학적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또한 16세기 후반 대학에 대한 리학(성리학)과 심학(양명학)의 사유 양상에서 전개된 경학사상 고찰에도 도움을 줄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한국 성리학과 경학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시각, 그리고 균형적 연구 토대를 마련하도록 하는데 밑거름이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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