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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유교 근대화 시도에 대한 분석과 평가 = 1947∼1950년 유도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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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04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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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기존의 한국 `유교-근대` 논의가 갖는 추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 연구는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유도회총본부의 유교 근대화 작업의 경과와 참여 세력들에 대해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 ...

      기존의 한국 `유교-근대` 논의가 갖는 추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 연구는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유도회총본부의 유교 근대화 작업의 경과와 참여 세력들에 대해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46년 3월 유교계의 통합 조직으로 출범한 유도회는 김창숙의 지도하에 유교 복원과 부흥을 목표로 한유교 근대화 작업에 착수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유교계의 여러 분파들과의 갈등을 낳았다. 유교의 민족화의 상징적 작업이었던 성균관의 중국 유현 위패 매안 조치는 보수 유림의 이반을, 유교 대학 설립 과정에서는 좌파 유교인의 이탈을, 향교 재산관리 합리화 방안에서는 지역 유림의 반발을 각각 야기했다. 그 결과 유교계 단체들을 통합하여 출범했던 유도회는 창립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수의 세력들이 이탈하여 유교계 대표성과 조직장악력이 약화되었다. 약화된 유도회 조직을 새로 채운 것은 당시 유교계와 연대하여 임시정부봉대운동을 추진했던 해외 망명독립운동가들과 아나키스트들이었는데, 이들은 김창숙과 함께 유교계 친일 세력 청산과 유교 민족화에 적극 나섰다. 이는 1950년경의 유도회 임원 명단을 통해서 확인 가능했는데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창기의 각파 연합체의 성격에서 벗어나 1947년 이후 유도회는 유교계 독립운동가와 후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특히 실무 부서와 감찰위원회에 이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둘째, 유도회의 가장 강력한 후원 세력이었던 정통 유림은 근대적 유교 조직화에 소극적이어서 군 단위 지부에만 참여했고 중앙 및 각 도 본부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유교 근대화의 대상인 정통 유림은 유도회와 무관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셋째, 유도회는 본래 비정파성을 강조했지만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이 격화되면서 임시정부 계열의 우파 민족주의 정치에 깊이 개입했는데, 내부의 사상 논쟁 없이 서둘러 정치에 개입하여 유교와 근대 정치 이념 사이의 논리적 학문적 연결 문제를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결국 유도회의 유교 근대화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잠정적인 중단 상태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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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ttempted to investigate and evaluate the confucian projects for modernization during 1947∼1950 in Korea. Leaders of Yudo-hoe(儒道會總本部),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organization since founding itself in 1946, were prominent ind...

      This study attempted to investigate and evaluate the confucian projects for modernization during 1947∼1950 in Korea. Leaders of Yudo-hoe(儒道會總本部),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organization since founding itself in 1946, were prominent independence movement activists, especially participated with `Paris Jang-so Movement`(巴里長書運動). Reforming Korean confucian circles, Kim Chang-Suk(金昌淑), the chairman of Yudo-hoe, moved forward with modernization plans: (1) nationalization of confucianism, (2) establishment of confucian university, (3) construction of stable income. These projects of Yudo-hoe inadvertently aroused conflicts within confucian circles and resulted in division. In support of this thesis, this article verified it by researching the executives list of Yudo-hoe in 1950. The summary of analysis is as follows: (1) Casting off the character of factional consociation, Yudo-hoe was run by new mainstream group, confucian independence activists and anarchists since 1947. (2) Traditional confucian group(儒林) joined only provincial organization of Yudo-hoe. (3) Kim Chang-Suk kept neutrality and fought only for complete independence, so Yudo-hoe mainstreams held out their doctrine support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But, this caused the lack of religious and academic interests on confucian reform. In the end, the attempt for modernization of Yudo-hoe was interrupted and didn`t bear 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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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장우성, "화맥인맥 - 3"

      2 정용욱, "해방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4권⋅5권" 다락방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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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황직, "해방정국의 좌익유교단체 '전국자유연맹' 연구" 한국인문사회과학회 40 (40): 65-96, 2016

      5 이문창,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이학사 2008

      6 박민희, "해방 후 위패매안과 전주향교의 대응" 전주대학교 대학원 2013

      7 이황직, "해방 직후 유교단체들의 성격에 관한 연구" 한국인문사회과학회 38 (38): 115-150, 2014

      8 이황직, "해방 전후 유교계의 이념 분립에 대한 연구 : 정 인보와 김 태준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이론학회 (49) : 215-253, 2016

      9 이명동, "한국사진사 구술프로젝트: 1945∼60년대 사진계의 활동과 동향" 한국사진문화연구소 2010

      10 금장태, "한국 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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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정용욱, "해방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4권⋅5권" 다락방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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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윤혁동, "초창기의 유림운동" (173) : 1983

      12 "조선일보"

      13 서울시임시인민위원회, "정당사회단체 등록철"

      14 "자유신문, 조선총독부 관보"

      15 張昇淳, "일제하 충남 서산군의 지역사회운동" 公州大學校 敎育大學院 1994

      16 유용상, "이념보다 민족을 우선했던 고뇌의 시절" 262-271, 1990

      17 김상구, "유림운동오십년사" 광림북하우스 2008

      18 함재봉, "유교민주주의, 왜 & 어떻게" 전통과현대 2000

      19 박영신, "역사와 사회변동" 대영사 1986

      20 심지연,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소나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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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성균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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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정범진, "백 번 꺾어도 꺾이지 않은 민족의 자존-김 창숙의 생애와 선비 정신"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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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권기훈, "김창숙-혁신유림계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선각자" 역사공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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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金昌淑, "心山遺稿" 국사편찬위원회 1973

      35 洪致裕, "兼山集" 회상사 1986

      36 Eisenstadt, Shmuel N., "Tradition, Change, and Modernity" Wiley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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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Bellah, Robert N., "Religion and Progress in Modern Asia" Free Press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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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5-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Social Theory -> Korean Journal of Social Theory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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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6 1.06 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2 0.82 1.401 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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