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개항기 부산항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 형성 = Formation of Relationship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during the Opening of the Port of Busan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7807722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개항기 부산항을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타협하는 ‘섞임(entanglement)의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개항장은 기존의 연구에서 정리한 지배-피지배, 수탈-피수탈의 ...

      본 연구는 개항기 부산항을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타협하는 ‘섞임(entanglement)의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개항장은 기존의 연구에서 정리한 지배-피지배, 수탈-피수탈의 논리적 구조와 함께 제국주의 세력과 토착세력 사이의 섞임도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먼저 개항장 부산의 공간 변화에 주목하였다. 개항전 초량 왜관이라는 고립되고 폐쇄적인 전근대시설이 존재했던 부산항은 개항과 함께 전관거류지가 설치되었다. 통제의 상징인 담장과 대문이 철폐되었다. 일본인만의 배타적인 공간이 아니라 조선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섞임의 공간으로 변하였다.
      개항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섞임을 상거래 방식에서 확인하였다. 개항기 거래방식은 화폐나 물건을 먼저 건네고 반대급부를 나중에 받는 선대제 형식의 외상거래였다. 이러한 방식은 상호 신용거래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왜관이 있던 시기부터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요소였다.
      개항장 내 섞임은 문화 분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류지 내 일본인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조선인 교사가 채용되고, 조선의 고전소설이 교재로 사용되었다. 한편 일본인 학교에 조선인의 입학도 허용되었다. 문화 분야의 섞임은 부산에서 생활하던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인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부자였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는 식민자 일본인과 다름없는 수탈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부산에서 함께 살아가는 조선인과의 신뢰를 강조하기도하였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began with trying to understand during the opening of the Port of Busan as a ‘Space of Entanglement' that diverse cultures clash and compromise. The open port was a space where the logical structures of dominant-dominated class and exploi...

      This study began with trying to understand during the opening of the Port of Busan as a ‘Space of Entanglement' that diverse cultures clash and compromise. The open port was a space where the logical structures of dominant-dominated class and exploiting-exploited class, which were organized in the existing studies, as well as the entanglement between the imperialist power and indigenous power existed.
      First of all, we focused on the spatial variance of the open port, Busan, in order to analyze this. Before the opening, there was the isolated and exclusive pre-modern facility named Choryang Waegwan(草梁倭館) at the Port of Busan. However, the exclusive concession was established when the Port of Busan opened. The fences and gate, the symbol of control, were removed. The Port of Busan changed from the exclusive space just for Japanese to the Space of Entanglement where Korean had free access to.
      The entanglement between Korean and Japanese at the open port was confirmed by the method of business transactions. The transaction method during the opening was the putting-out system of credit transaction to hand over money or commercial products first and to receive the counter performance later. This method was based on mutual credit transactions, and the traditional element that had been preserved from the days when Waegwan existed.
      The entanglement inside the open port can be confirmed in cultural aspects. Korean language was taught in the Japanese school on the concession. At the school, Korean teacher was employed and the Korean classic novel was used as the teaching material. On the other hand, Korean students were also admitted to the Japanese school. The entanglement in cultural aspects can be confirmed in the awareness of Korean by Japanese who lived in Busan. Hazama Husataro[迫間房太郞], a representative Japanese capitalist of Busan, pursued an exploitation just as other Japanese colonists. However, he emphasized trust with the Korean who lived together in Busan.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동철, "조선후기 통제와 교류의 장소, 부산 왜관" 한일관계사학회 37 (37): 3-36, 2010

      2 한국고서동우회, "조선신보" 한국출판판매(주) 1984

      3 이송희, "일제하 부산지역 일본인사회의 교육 (1) : 일본인 학교 설립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23 (23): 203-250, 2005

      4 허경진,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인문과학연구소 15 (15): 49-71, 2010

      5 최원규, "일본 東洋經濟新報의 한국관계 기사와 對韓認識(1895-1905년)" 한국민족문화연구소 30 (30): 63-99, 2007

      6 장순순, "새로 발견된 왜관지도: 浦山港見取圖" 한일관계사학회 16 : 2002

      7 김승, "사진으로 보는 부산변천사 신편 부산대관" 선인 2010

      8 김재승, "부산해관 개청과 초대 해관장 W.V.Lovatt" 국제무역학회 9 (9): 2003

      9 부산광역시, "부산고지도"

      10 김재승, "기록사진으로 보는 부산·부산항 130년" 부산광 역시 중구청 2005

      1 김동철, "조선후기 통제와 교류의 장소, 부산 왜관" 한일관계사학회 37 (37): 3-36, 2010

      2 한국고서동우회, "조선신보" 한국출판판매(주) 1984

      3 이송희, "일제하 부산지역 일본인사회의 교육 (1) : 일본인 학교 설립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23 (23): 203-250, 2005

      4 허경진,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인문과학연구소 15 (15): 49-71, 2010

      5 최원규, "일본 東洋經濟新報의 한국관계 기사와 對韓認識(1895-1905년)" 한국민족문화연구소 30 (30): 63-99, 2007

      6 장순순, "새로 발견된 왜관지도: 浦山港見取圖" 한일관계사학회 16 : 2002

      7 김승, "사진으로 보는 부산변천사 신편 부산대관" 선인 2010

      8 김재승, "부산해관 개청과 초대 해관장 W.V.Lovatt" 국제무역학회 9 (9): 2003

      9 부산광역시, "부산고지도"

      10 김재승, "기록사진으로 보는 부산·부산항 130년" 부산광 역시 중구청 2005

      11 정근식, "구한말 일본인의 조선어교육과 통역경찰의 형성" 한국문학연구소 32 (32): 7-55, 2007

      12 차철욱, "구포[경남]은행의 설립과 경영" 부경역사연구소 9 : 2001

      13 하지영, "개항기 조선상인과 일본상인 간의 자금거래와 곡물유통 -부산?경상지역 ‘兩民交涉債案’의 분석을 중심으로" 부경역사연구소 20 (20): 153-216, 2007

      14 "개벽"

      15 釜山第二公立商業學校, "釜山開成學校要錄" 1934

      16 大曲美太郞, "釜山港日本居留地に於ける朝鮮語敎育" 靑丘學會 24 : 1936

      17 "釜山日報"

      18 "釜山府史原稿.. 6권"

      19 釜山府, "釜山① 古蹟及遺物"

      20 "通商彙纂 제100호 부록"

      21 柏原祐泉, "維新期の眞宗" 同朋會 1975

      22 片茂鎭, "漂民對話" 불이문화 2006

      23 "東海經濟新報"

      24 차철욱, "東京經濟雜誌의 한국관련 자료와 사료적 가치" 한국민족문화연구소 30 (30): 1-21, 2007

      25 "東京經濟雜誌"

      26 "東京橫浜每日新聞"

      27 "東京日新聞"

      28 石幡貞, "朝鮮歸好餘錄" 日就社 1878

      29 "朝日新聞"

      30 岡庸一, "最新韓國事情"

      31 南相瓔, "日本人の韓國語學習:朝鮮植民地化過程に焦点をあてて" 日本 金澤大學 58 (58): 1991

      32 국사편찬위원회, "所志謄錄 2"

      33 국사편찬위원회, "再刊 交隣須知"

      34 조희웅, "『淑香傳』 형성연대 재고: 일본측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고전문학회 12 : 1997

      35 양흥숙, "‘범죄’를 통해 본 조선후기 왜관 주변 지역민의 일상과 일탈" 한국민족문화연구소 40 (40): 233-264, 2011

      36 김동철, "18세기 중엽 이후 대일무역의 변화와 節目의 제정" 동양한문학회 33 (33): 175-214, 2011

      37 정병설, "18·19세기 일본인의 조선소설 공부와 조선관 ― <최충전>과 <임경업전>을 중심으로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5 (35): 27-55, 2005

      38 서용태, "1877년 釜山 濟生醫院의 설립과 그 의의" 부경역사연구소 28 (28): 239-276, 2011

      39 양흥숙, "17~18세기 譯官의 對日貿易" 부산경남역사연구소 5 : 1999

      40 相澤仁助, ".釜山港勢一班" 日韓昌文社 1905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6-07-12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2 0.59 1.314 0.39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