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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의 對日 敎化 樣相과 그 基底 = Chosun’s Enlightening Aspects of Japan and Its B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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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06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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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hosun suffered Japanese pirate raiders’ pillage in its former term so all the necessary diplomatic steps were deadly needed. But Japanese pirate raiders were uncontrolled by makbu, so negotiation often ended in failure. Under such circumstances as ...

      Chosun suffered Japanese pirate raiders’ pillage in its former term so all the necessary diplomatic steps were deadly needed. But Japanese pirate raiders were uncontrolled by makbu, so negotiation often ended in failure. Under such circumstances as these, Chosun regarded Japan as a faithless minor country. This kind of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shown in poetry and prose of that time. But in the poetry and prose, there were no aspect of cultural exchange but supremacy over Japanese pirate raiders. It was regrettable that Japanese pirate raiders hindered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two.20
      The more Japanese pirate raiders plundered Chosun the more necessities were needed to enlighten them. But there was no way to enlighten them so the literary men of that times tried giving poetry and prose to Korean news agencies and let them hand over it to the Japanese royal news agency.
      The object of enlightenment was supposed to be the Japanese pirate raiders but they were unsubstantial so Japanese king became the focus of enlightenment project. At this point, there were inevitable limitation of enlightenment. This thesis is mainly focused on Chosun’s enlightening aspects of Japan and its basis which were shown in the poetry and prose of the former term of Chosun. Because most of the researches about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two countries had an inclination to something concrete.
      An aspects of enlightenment included Kija and highlighting a peaceful reign by developed civilization. At that time, Chosun enjoyed political stability and a high level of culture so the Confucian ideas mercy, upbringing became the motive of enlightenment. A sense of superiority based on high culture and Confucianism’s priority over Buddhism became the emblem of enlightenment:two nations were the one. The term ‘enlightenment’ is conceptional so it had ideality to calm down the East Sea by enlightenment. There were perfect virtue and circle in its basis.21
      Perfect virtue had a tendency to grow all creation like sunlight by moral excellence over military force. According to the universal recognition, Japan is the direction of perfect virtue, it became the theoretical foundation and at the same time the turning-point to reform Japan. Circle is the principles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and it was hoped to be adopted in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Chosun and Japan. Its practical meaning in cultural exchange was faithfulness but its real function was to help enlightenment work properly. It is meaningless to divide perfect virtue with circle. Perfect virtue is the core basis to develop Japanese humanity on the other hand circle is the supplementary basis to support perfect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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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전기는 왜구의 잦은 침탈로 인해 일본과의 외교적 해결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였다. 그러나 막부의 왜구 통제력 부족으로 교섭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명...

      조선전기는 왜구의 잦은 침탈로 인해 일본과의 외교적 해결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였다. 그러나 막부의 왜구 통제력 부족으로 교섭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명쾌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조선은 信義를 잃은 일본에 대하여 夷狄으로 대하거나 小國으로 여기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당시의 대일 관계는 문인들에 의해 시문으로 구현되었다. 하지만 시문을 살펴보면, 현안인 왜구를 근절하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조일 간의 다양한 교류의 면모는 찾을 수 없고 왜구 금압이라는 한 측면에만 경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왜구 문제가 조일 간의 정상적인 문화 교류를 저해하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고 문학사에서도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왜구의 창궐이 심할수록 교화의 당위성은 제고되었으나 직접 왜구를 대면하여 교화할 길이 없었던 당대 문인들은 일본국왕사나 통신사에게 주는 시문으로나마 교화의 뜻을 일본에 전하고자 하였다. 그 대상이 왜구여야 함에도 실체가 모호하였기에 일본국왕을 상대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본고에서는 조일 양국의 교류에 대한 연구가 유형적인 것에 편향되었다는 반성에서, 조선전기 시문에 나타난 대일 교화의 양상과 그 기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교화의 양상으로는 먼저 조선이 교화의 주체로 나서고자 箕子와 찬란한 문물로써 태평시대임을 부각시키려 한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조선의 정치가 안정되고 문화가 난숙하였던 기반 위에서 나왔으며 그 동인은 ‘恕’와 ‘位育’이라는 유가의 치도였다. 우수한 문물로 인한 문화적 우월감과 유가의 불가에 대한 우위는 ‘兩國一家’라는 교화의 기치로 이어진다. 교화라는 말이 관념적이라서 양국일가에 장애가 되는 험난한 동해를 교화로 고요히 하려는 관념성을 띠었고, 더 나아가 교화를 ‘雲雨’나 ‘雨露’로써 비유하여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교화의 양상을 보인 기저에는 ‘仁’과 ‘圓’이 있었다.
      교화의 기저 가운데 ‘仁’은 무력보다는 덕을 높이고 따스한 햇볕과 같이 만물을 비추어 소생시키는 지향을 지녔다. 우주론적 인식에 근거하면 일본은 ‘仁’의 방향이 되는데, 그 점은 실제 왜구가 벌인 만행과는 모순되지만 왜구를 금제할 이론적 근거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인’을 감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圓’은 만물의 운행 원리로, 조일 간의 교린에도 적용되기를 바랐다. ‘圓’의 실제적 의미는 교린에서의 信義를 뜻하였지만, 교화의 기저 가운데 하나로서 교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능이었다. ‘仁’과 ‘圓’의 층위가 달라 구분이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仁’이 일본의 人性을 계발하는 교화의 핵심적 기저라면 ‘圓’은 그것을 보조하는 주변적 기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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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주해, 해동제국기" 범우사 2004

      2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한길사 2005

      3 "조선통신사, 일본과 통하다" 동아시아 2006

      4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인식" 혜안 2006

      5 "朝鮮通信使:江戶 日本への 善隣使節" NHK 출판사 2001

      6 "朝鮮前期 文人들의 日本國王使 對應의 한 斷面李陸의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를 중심으로" 槿域漢文學會 24 : 2006

      7 "朝鮮 文士들의 詩文에 나타난 日本 認識과 交流 樣相-주로 壬亂 前까지의 對日 관계를 중심으로" 槿域漢文學會 23 : 2005

      8 "朝日 兩國의 漸移地帶 對馬島 硏究朝鮮前期 詩文에 투영된 형상을 중심으로" 東아시아古代學會 14 : 2006

      9 "昭和 56년." 京都大學文學部國史硏究室 編

      1 "주해, 해동제국기" 범우사 2004

      2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한길사 2005

      3 "조선통신사, 일본과 통하다" 동아시아 2006

      4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인식" 혜안 2006

      5 "朝鮮通信使:江戶 日本への 善隣使節" NHK 출판사 2001

      6 "朝鮮前期 文人들의 日本國王使 對應의 한 斷面李陸의 送日本僧聖津首座還國詩序를 중심으로" 槿域漢文學會 24 : 2006

      7 "朝鮮 文士들의 詩文에 나타난 日本 認識과 交流 樣相-주로 壬亂 前까지의 對日 관계를 중심으로" 槿域漢文學會 23 : 2005

      8 "朝日 兩國의 漸移地帶 對馬島 硏究朝鮮前期 詩文에 투영된 형상을 중심으로" 東아시아古代學會 14 : 2006

      9 "昭和 56년." 京都大學文學部國史硏究室 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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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6-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Oriental Studies KCI등재
      2013-03-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
      영문명 : Dankook University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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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7 0.7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3 1.457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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