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 마른김의 제조법과 규격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을 자기들의 김 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전파한 기술에 기초하고 있다. 조선 전통 김의 제조 역사 또한 오래되었지만 그 기록...
한국의 현대 마른김의 제조법과 규격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을 자기들의 김 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전파한 기술에 기초하고 있다. 조선 전통 김의 제조 역사 또한 오래되었지만 그 기록이나 규격에 대한 연구는 드물고, 대한제국 시대에 일본인들이 왜곡된 인식에서 기록한대로 품질이 조잡한 김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이 남아있다. 본 연구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조선의 역사기록서에서 김에 관한 기록을 검색하여 분석하고, 마른김의 위생 및 제조 등 그 규격의 변화를 조사하여 조선시대 마른김의 실제 품질에 대해 고찰하였다.
조선시대의 여러 역사기록서에서 마른김에 관한 다양한 기록들이 처음으로 확인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은 전 시대를 기록하고 있으나, 그 내용면에서는 승정원일기가 훨씬 풍부하였다. 조선 초기(1468년) 역사기록서에서 마른김의 묶음 단위인 ‘첩(貼)’이 처음 등장하였으며, 적어도 이 무렵에는 비록 크기는 알 수 없으나 묶을 수 있을 정도로 일정한 규격의 마른김이 제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649년에는 기존의 크고 불결한 마른김(海衣)보다 맛이 좋고 위생적인 ‘소해의’(小海衣)를 조선 왕실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이 무렵마른김에 생기는 구멍은 품질과 크게 상관없다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1701년에는 당시 마른김은 발로 ‘떠서’ 제조하였다는 사실과 진상용 ‘소해의’의 크기(길이 불명, 너비 15.3 cm)와 중량(40장 1첩에 284 g) 등 표준규격이 공식적으로 정해져 생산지인 전라도와 경상도에까지 통보되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1701년 표준화된 규격의 위생적인‘소해의’는 200년이 지난 대한제국 시대에도 전라도 지방에서는 같은 크기의 마른김이 제조되고 있었다.
20세기 초, 조선 수산업을 조사한 일본인들은 구멍이 많은 조선김을 저급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향미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게 마른김 제조 시 원료 김을 일본보다 크게 썰어 구멍이 많이 생겼던 것으로 김 제조법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였다.
이상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기록서 4종에서 전통 마른김 제조법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조선 전통김 제조법은 18세기 초에 확립되었으며, 향미가 우수하고 위생적인 마른김 제조를 위한 규격이었음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 결과는 조선시대의 마른김 규격 변화와 그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