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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최후기 조선문학과 중국 = Relation between Korean Modern Literature and China under the Lat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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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45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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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43년 말 이후 일제는 ‘결전’을 외치면서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미국의 전력에 밀려 연패하게 되자 학병을 동원하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총동원전을 펼쳤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에 ...

      1943년 말 이후 일제는 ‘결전’을 외치면서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미국의 전력에 밀려 연패하게 되자 학병을 동원하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총동원전을 펼쳤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조선문학인들을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일제에 협력하던 이들은 일본의 직접적인 통치로 장악되고 있던 만주국을 대동아공영권의 새로운 연대 거점으로 상상하였다. 만주국 예문연맹에서 개최한 만주국결전예문회의에 주요 한과 최재서가 각각 1943년과 1944년에 참가한 것은 그 대표적인 일이다. 일제는 만주국에서 펼쳤던 오족협화도 포기할 정도로 모든 만주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동화형의 친일협력을 주장하였던 주요한 과, 혼재형의 친일협력을 주장하였던 최재서는 그 지향하는 바에 있어 일정한 차이가 있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일제에 저항하였던 이들은 한때 내선일체를 피해 준 망명지 역할을 하였던 만주국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중국 항일 전선이 펼쳐지던 태항산 쪽으로 망명한다. 1944년에 김태준이, 1945년에 김사량이 각각 연안지역으로 망명한 것은 그 대표적이다. 이 두 작가는 일제가 학병을 동원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이 곧 망하리라고 판단하였다. 김태준은 항일 혁명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위해 연안으로 갔고, 김사량은 글쓰기를 통하여 끝까지 버티고자 했던 노력이 힘들게 되자 연안으로 망명하였다. 상이한 전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중국 공산당의 항일 전선이었던 연안이 자신들의 새로운 출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일제 최후기에 이르면 조선의 문학인들은 협력과 저항이란 자신의 태도에 따라 중국을 다르게 상상하였다. 협력 문인들에게는 만주국이, 저항 문인들에게는 중국 연안이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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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ince the end of 1943, Japan has gone to its last phase of war shouting decisive battle. Japanese Empire used to mobilize university students to engage in a total war that had never been seen before. According to these changes, Joseon writers newly re...

      Since the end of 1943, Japan has gone to its last phase of war shouting decisive battle. Japanese Empire used to mobilize university students to engage in a total war that had never been seen before. According to these changes, Joseon writers newly recognized China. The collaborators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imagined Manchukuo, which was dominated by Japan's direct rule, as a new joint hub of the Greater East Asia Community. It is typical that Joo Yo-han and Choi Jae-seo participated in the Congress of Manchukuo Writers for Fighting, which was held by the Manchukuo Federation of Literature and Arts, in 1943 and 1944, respectively. Japan mobilized all the Manchurian people in the war giving up ‘harmony of five ethnics. Joo Yo-han, who insisted on pro-Japanese collaboration in a assimilation basis, and Choi Jae-seo, who insisted on pro-Japanese collaboration in a association basis made every efforts to build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despite of little difference in their direction. Those who resisted the Japanese colonial rule no longer pay attention to Manchukuo, which once served as an asylum for avoiding the coersion, and ran into Yenan which is the main area of Chinese communist resistance directed by Mao. Kim Tae-jun, in 1944 and Kim Sa-ryang in 1945 escaped. The two writers saw the Japanese government recruit university students and thought that Japan would soon collapse. Kim Tae-jun went to the Yenan for a new perspective of the anti-Japanese revolution, Kim Sa-ryang went to Yenan when he found it difficult to endure the oppression from colonial government in inner area of Korean peninsula through writing. Despite the differing views, they thought the Yenan, which was base of all anti-Japanese warriors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was their new exit. By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scholars of Joseon imagined China differently depending on their attitude of collaboration and resistance. Manchukuo is a new place for writers of collaboration and Yenan for writers of 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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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재용, "풍화와 기억" 소명출판사 2015

      2 "藝文志(1943-1945), 新京"

      3 "藝文(1944-1945), 新京"

      4 劉春英, "爲滿洲國文藝大事記" 北方文藝出版社 2017

      5 岡村敬二, "滿洲出版社" 吉川弘文館 2012

      6 張泉, "植民拓疆與文學離散" 北方文藝出版社 2017

      7 "新時代(1939-1945), 京城"

      8 "文學(1946-1948), 서울"

      9 "國民文學(1941- 1945), 京城"

      10 劉曉麗, "僞滿洲國文學與文學雜誌" 重慶出版社 2012

      1 김재용, "풍화와 기억" 소명출판사 2015

      2 "藝文志(1943-1945), 新京"

      3 "藝文(1944-1945), 新京"

      4 劉春英, "爲滿洲國文藝大事記" 北方文藝出版社 2017

      5 岡村敬二, "滿洲出版社" 吉川弘文館 2012

      6 張泉, "植民拓疆與文學離散" 北方文藝出版社 2017

      7 "新時代(1939-1945), 京城"

      8 "文學(1946-1948), 서울"

      9 "國民文學(1941- 1945), 京城"

      10 劉曉麗, "僞滿洲國文學與文學雜誌" 重慶出版社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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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5-15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of Korean Literary Studies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5-27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Korean Modern Literature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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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7 1.07 0.9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5 0.9 1.801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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