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은 산맥이라는 의미이며 서쪽으로는 아드리아(Adria)海, 동쪽과 동남쪽에는 흑해 및 에게이스(Agais)海, 북쪽으로는 도나우江 유역으로부터 남쪽의 희랍 본토까지 이르는 유럽의 동남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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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발칸은 산맥이라는 의미이며 서쪽으로는 아드리아(Adria)海, 동쪽과 동남쪽에는 흑해 및 에게이스(Agais)海, 북쪽으로는 도나우江 유역으로부터 남쪽의 희랍 본토까지 이르는 유럽의 동남부 지...
발칸은 산맥이라는 의미이며 서쪽으로는 아드리아(Adria)海, 동쪽과 동남쪽에는 흑해 및 에게이스(Agais)海, 북쪽으로는 도나우江 유역으로부터 남쪽의 희랍 본토까지 이르는 유럽의 동남부 지역을 지칭한다.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자연적인 지형은 발칸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하나의 대국을 형성하는데는 어려움을 주었으나 종족들의 분권주의, 인종적, 문화적 집단의 구성을 촉진시켰다. 발칸반도와 인접한 강대국들을은 이들 집단들을 약탈의 대상물로 삼았다.
오지리의 합부스부르크가는 슬로베니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주거지역들을 제국에 편입시켰고, 터키의 오스만제국은 희랍,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굴복시켰다. 러시아는 슬라브 정교의 강대국으로서 슬라브족 형통이고, 정교를 신봉하는 발칸 민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부 및 중부 유럽에 대두된 국민국가 이념과 민족적 언어, 문화 인식의 이념은 발칸의 다민족들의 독립투쟁에서 강력한 호응을 얻었다. 특히 내부의 위기와 오스만제국의 멸망은 국민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켰다. 오스만제국 해체에 대한 희망은 발칸지역에 최다수 민족인 세르비아족의 주도하에 하나의 기독교 대국이 탄생될 수 있다는 관념과 연결 지어져 있었다.
다른 국민국가들은 그들 나름의 민족족, 종교적 분포와 국수주의적 지배욕으로 인하여 새로운 분쟁과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래서 지금까지 발칸반도에 통일국가를 이룬 것은 단 두 번밖에 없었다. 1차세계대전 종전에 이어, 2차세계대전후 티토에 의해 공산정권이 수립됐을 때 뿐이다.
1991년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유고연방에서 탈퇴하고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신유고연방을 창설, 유고슬라비아 연방체제의 와해가 결정될 무렵이던 92년 3월 3일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는 국민투표를 통해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독립을 주도한 것은 회교도가 중심을 이룬 보스니아 이슬람 정부와 이에 협조하는 보스니아內 크로아티아人들이었다.
보스니아 주민의 약 31%를 차지하는 세르비아계는 독립선언 다음날인 3월 4일 보스니아안에서 또다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92년 4월초 유럽공동체가 보스니아 독립을 인정하면서 본격적인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내전이 격화되면서 유엔은 여러 차례 군사행동 가능성을 비쳤지만 인명희생 위험이 있었고 유럽지역의 주도권에 관한 복잡한 이해관계로 정작 본격개입은 망설였다. 세르바아계들이 점령지대에서 회교도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을 대상으로 민족청소를 방불케하는 만행을 자행하자 마지못해 8월 군사개입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유엔평화유지군은 평화유지는커녕 자기방어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1995년 10월에 비로서 보스니아 내전 참가국들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압력으로 2개월간의 휴전과 평화협상에 합의하였고, 평화협정은 1995년 12월 14일 파리의 보스니아평화회의에서 서명되었다.
이로서 세르비아(정교), 크로아티아(캐톨릭), 보스니아(이슬람)간의 관계가 잠정적으로 정립되었으나, 다민족, 다종교에서 유래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을 보지 못하고 다만 봉합된 상태이었다. 그러므로 코소보(Kosovo) 분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약된 프로그램이라고 하겠다. 코보소는 신유고연방에 소속되어 있으나 코소보 주민의 절대 다수가 알바니아인이기 때문이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이미 티토의 사망이후부터 빈번히 코소보의 독립을 주장해왔고, 유고의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세르비아계의 총수인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구유고연방의 와해로 대세르비아공화국 건설의 청사진이 매우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들에게 지방자치정부를 허용할 이가 없고 보스니아 내전에서 서방열강들이 보여준 소극적이고, 결단성이 결여된 참전태도에 "고무" 받어 코소보의 완전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겠다. 그러므로 밀로세비치는 코소보의 자치와 독립절차를 합의한 [랑부예 협정]에서 지연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엄밀한 의미에서 코소보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이번에 유고공습을 결행했다. 이에 대한 진짜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나 나토의 주도국가인 미국의 이해관계는 다음과 같이 집약될 수 있다; 1) 권력정치적 측면: 소련연방의 붕괴 및 그로 인한 와르샤와동맹의 해체로 권력 진공상태가 된 동구권에 어떤 주도적인 권력집단의 등장도 허용치 않겠다는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 2) 동맹정책적 측면: 나토동맹국간의 공조체제 활용 및 미국의 주도적 능력 과시. 3) 경제적 측면: 첨단 무기산업의 발전과 군수산업의 호황 및 그것이 미국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4) 도덕적 측면: 인본주의 원칙 존중.
그러면 유고의 밀로세비치 대통령의 코소보에 대한 선택 범위는 어떠한가? 하나는 랑부예 합의사항에 따르는 것인데 이는 그가 코소보를 평화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코소보 주민의 대다수가 알바니아계인데 3년후 유고슬라비아의 소속으로 복귀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밀로세비치가 코소보를 점유하는 것인데 나토가 이를 허용할 리가 없다. 따라서 그는 코소보의 분할 점유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나토의 엄청난 공습을 받으면서도 밀로세비치가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들을 대량으로 추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해준다.
나토의 입장으로는 코소보의 독립이 궁극적인 목표이겠으나 러시아의 존재를 의식하여 코소보에 다국적 또는 유엔평화군을 주둔시키고 코소보 난민들을 귀향시키는 선에서 이 사태를 종결지을 수도 있다고 관망된다. 설혹 나토가 이번에 월등한 무력에 의하여 코소보를 독립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코소보는 전쟁전의 코소보와는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나토는 알바니아인들의 비난, 불평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분쟁이 해결된후 복구문제, 원조문제 등의 처리 과정에서도 나토동맹국사이에 공습과는 달리 불협화음이 생겨날 소지가 있다. 만약 미국이 보스니아 경우처럼 유럽문제는 유럽국가들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