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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推案及鞫案』에 기록된 戊申餘黨 謀反事件의 樣相 = The Patterns of Revolt Cases by Musinyeodang in 『Chuangeupgu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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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42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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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朝鮮 後期 英祖 4년(1728)에 일어난 戊申亂은 老論 · 少論 · 南人의 정치적 갈등이 兵亂으로 폭발한 사건이었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무신란을 지지하고 표방한 ‘戊申餘黨’들은 다시 �...

      朝鮮 後期 英祖 4년(1728)에 일어난 戊申亂은 老論 · 少論 · 南人의 정치적 갈등이 兵亂으로 폭발한 사건이었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무신란을 지지하고 표방한 ‘戊申餘黨’들은 다시 한 번 반란을 통하여 정계 복귀 내지는 정권 탈취를 위하여 謀反事件을 일으켰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중죄인의 조사서와 판결서를 모은 『推案及鞫案』을 검토하여 무신여당의 모반사건이라고 판단되는 11건을 추려내어 검토하고 그 양상을 정리하였다.
      11건의 무신여당 모반사건은 무신란 직후부터 30여 년 동안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이것은 무신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무신란을 지향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이 무신란과 같은 반란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신여당의 모반 방식은 괘서 · 모의 · 시장 투서의 형식이었다. 掛書의 경우 民心 선동, 즉 여론의 형성이 가능하여 적극 사용되었다. 試場 投書 역시 왕과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인 공개적인 과거시험장에서 흉역을 적은 시장을 왕에게 바치는 노골적인 행위로 민심을 자극하는 파급력이 있었다.
      무신여당의 인적 구성을 보면 무신란에 직접 가담했던 인물, 소론계 인물, 남인계 인물, 무신란을 모방한 다양한 계층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었다. 1728년에 일어났던 무신란은 少論 峻論과 남인이 중심이 된 사족의 반란이었지만, 이후 영조 대 무신여당의 활동에는 소론 준론과 남인은 물론 몰락한 지방의 사족이나 中人 · 良人 등 다양한 계층이 가담함으로써 무신란에 비하여 모반사건에 가담하는 계층이 확대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鄭鑑錄』과 『道詵秘記』에 영향을 받은 무신여당의 모습도 확인되었다.
      무신여당 모반사건의 지역별 동향을 살펴보면 전라도의 유배지와 충청도 청주 지역에서 일어난 모반사건이 많았다. 이것은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유배를 가서도 무신란의 재현을 시도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청주 지역의 경우 무신란 당시 병영성 점령에 성공했고, 한양으로 진출한 반란군의 교두보가 되었던 지역으로 반노론 정서가 남아 있어서 무신여당의 모반활동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연구에서는 무신란 이후 실세한 소론들이 주로 무신여당으로 모반사건을 일으켰다고 보았다. 그러나 11건의 무신여당 모반사건 검토로 인하여 무신여당 인적 구성의 한 축은 지방의 남인이나 중인 · 양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당시 조정에서는 중앙 정치에서 소론을 견제할 필요가 있어서 소론 준론이 일으킨 무신여당 사건을 더욱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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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usinran, which took place in the fourth year(1728) of King Yeongjo"s reign in Joseon, was the explosion of political conflicts among Noron, Soron and Namin in the form of disturbance. Even after the revolt was repressed, the “Musinyeodang” st...

      The Musinran, which took place in the fourth year(1728) of King Yeongjo"s reign in Joseon, was the explosion of political conflicts among Noron, Soron and Namin in the form of disturbance. Even after the revolt was repressed, the “Musinyeodang” still supported and advocated the Musinran. They kept raising a revolt through the reign of King Yeongjo to return to the political arena or seize political power.
      Trying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previous study, this study found and reviewed 11 revolt cases by Musinyeodang recorded in Chuangeupgukan, which is a collection of investigations and written judgments for felons during Joseon.
      In the 11 revolt cases, the Musinyeodang raised a revolt in the forms of Goaeseo, conspiracy, and anonymous letter at the test site. Goaeseo was actively used by them since it was capable of instigating the people or forming public opinions. In case of anonymous letters at the site of the state exam, they would submit an anonymous letter containing disloyal content to the king in an obvious way at the open site where many people gathered. These anonymous letters were also influential.
      The revolt cases were classified according to the human composition of Musinyeodang: the revolts raised by those who took direct part in the Musinran, those raised by Soron members, those raised by Namin members, and those raised by individuals from various classes to mimic the Musinran. In the Musinran of 1728, the noblemen of Namin and Soron hardlinerssoron led the revolt. In the activities of Musinyeodang following the revolt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various classes participated including collapsed local noblemen, Jungin, and common people as well as Soron hardlinerssoron and Namin. The scope of classes involved in the revolts expanded.
      The study then examined the local trends of the revolt cases by the Musinyeodang and found that their activities were prominent at places of exile in Chungcheong and Jeolla Provinces. In the Musinran, they succeeded in occupying Byeongyeongseong near Cheongju, Chungchong Province. The activities of Musinyeodang were prominent especially in the area.
      The revolt cases by Musinyeodang continued around the nation for about 30 years, which suggests that the Musinran continued to have impacts for many years even after it was repressed. Previous studies reported that mainly Soron members raised a revolt on the back of Musinyeodang after losing their power due to Musinran. Many of the researches emphasized that noblemen in the Soron line were punished for the revolt cases by Musinyeodang. The study, however, reviewed 11 revolt cases by Musinyeodang and found that one of the axes in the revolts was local Namin members, Jungin and commo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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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추안급국안』에 기록된 무신여당 모반사건
      • Ⅲ. 무신여당 모반사건의 방식과 인적 구성
      • Ⅳ. 무신여당 모반사건의 지역별 동향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추안급국안』에 기록된 무신여당 모반사건
      • Ⅲ. 무신여당 모반사건의 방식과 인적 구성
      • Ⅳ. 무신여당 모반사건의 지역별 동향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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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우철, "추안급국안 64" 흐름 2014

      2 조윤선, "추안급국안 61" 흐름 2014

      3 조윤선, "추안급국안 58" 흐름 2014

      4 이향배, "추안급국안 56" 흐름 2014

      5 이향배, "추안급국안 55" 흐름 2014

      6 조윤선, "추안급국안 51" 흐름 2014

      7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乙亥獄事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고려사학회 (37) : 233-263, 2009

      8 이상배, "영조조 윤지괘서사건과 정국의 동향" 한국사연구회 76 : 1992

      9 조윤선, "영조 9년, 남원 만복사 괘서 사건의 정치적, 법제적 고찰" 전북사학회 (33) : 105-142, 2008

      10 "討逆日記"

      1 김우철, "추안급국안 64" 흐름 2014

      2 조윤선, "추안급국안 61" 흐름 2014

      3 조윤선, "추안급국안 58" 흐름 2014

      4 이향배, "추안급국안 56" 흐름 2014

      5 이향배, "추안급국안 55" 흐름 2014

      6 조윤선, "추안급국안 51" 흐름 2014

      7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乙亥獄事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고려사학회 (37) : 233-263, 2009

      8 이상배, "영조조 윤지괘서사건과 정국의 동향" 한국사연구회 76 : 1992

      9 조윤선, "영조 9년, 남원 만복사 괘서 사건의 정치적, 법제적 고찰" 전북사학회 (33) : 105-142, 2008

      10 "討逆日記"

      11 이상배, "英祖朝 沈鼎衍 試券事件과 乙亥逆獄" 강원대 30 : 1992

      12 "英祖實錄"

      13 金淳碩, "英祖 初期 戊申亂 關聯 掛書·逆謀事件의 性格" 高麗大學校 大學院 1992

      14 丁若鏞, "與猶堂全書補遺"

      15 丁若鏞, "牧民心書"

      16 "正祖實錄"

      17 "推案及鞫案"

      18 "承政院日記"

      19 "國朝寶鑑"

      20 莊獻世子, "凌虛關漫稿"

      21 배혜숙, "乙亥獄事의 參與階層에 關한 硏究; 羅州 掛書事件을 中心으로" 백산학회 40 : 1992

      22 고수연, "『戊申逆獄推案』에 기록된 戊申亂 叛亂軍의 성격" 호서사학회 (82) : 119-168, 2017

      23 조윤선, "18세기 淸州지역의 謀反·掛書 사건" 호서사학회 (50) : 65-103, 2008

      24 고수연, "1728년 무신란과 청주지역 사족동향" 충북대학교 대학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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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2-06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호서사학 -> 역사와 담론
      외국어명 : HO-SUH SAHAK -> HISTORY AND DISCOURSE(Journal of Historycal Review)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9-29 학술지등록 한글명 : 호서사학
      외국어명 : HO-SUH SA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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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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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6 0.56 0.4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6 0.46 0.953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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