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미학과 윤리의 문제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가공'한다는 그리어슨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최초의 정의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혀들어 간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기...
다큐멘터리의 미학과 윤리의 문제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가공'한다는 그리어슨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최초의 정의에서부터 복잡하게 얽혀들어 간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기록성과 현실을 가공한다는 창조의 개념을 함께 포함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론에서부터 타인과 외부세계를 재현할 때의 윤리문제와 같은 가치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들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문화적 지형의 변화가 촉발하는 다양한 양식적 시도들은 다큐멘터리의 경계 자체를 시험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진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시대성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재현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독립다큐멘터리의 연구의 주제는 거의 대부분 포스트 다큐멘터리속에서의 새로운 양식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미학적인 연구와 담론들은 활발한데 비해, 다큐멘터리의 윤리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현실과의 관계맺음이 전폭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중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예술사 전체에서 중요한 조합이었던 미학과 윤리의 관계성 위에 다큐멘터리를 올려놓고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논점들을 살펴본 뒤, 한국독립다큐멘터리의 재현양식의 변화에 대입시켜 발생되는 윤리적 문제들과 양상들을 탐구해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타인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가 윤리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현실과 재현된 현실의 차이에서 나오는 재구성의 문제에서부터 미학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제작자의 조작과 진실성의 문제, 대상과의 관계맺음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작자의 신뢰와 책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텍스트를 구성하는 제작자와 재현되는 대상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기반한다는데 있다. 즉 텍스트를 구성하는 발화자는 대상을 가공할 수 있는 '창조'의 권한을 누리면서 대상은 만남에서부터 제작, 그리고 편집 등 모든 과정에서 착취당할 수 있는 위험성에 놓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독립다큐멘터리의 재현양식은 변화는 이러한 윤리적인 고민들이 반영되어 있다. 즉,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당위성을 반영한, 운동영화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한국의 초기 독립다큐멘터리들은 목적론적 서사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미학적인 고민보다는 내용에 있어서의 윤리성을 강제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작자의 일방적인 해석에 의지하는 설명적 양식으로 발현되었는데, 제작자가 '가상적 우리fictive we'를 상정하고 '신의 목소리(Voice of God)'라 불리우는 전지적 시점으로 대상을 균질하게 다루는 양식으로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재현의 방법하에서 대상들은 텍스트에서 제작자의 '정치적 올바름'이란 당위적 서사속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다.
이러한 양상은 민주화의 진행을 통한 사회적 변화와 영화제 같은 새로운 만남의 공간의 생성, 그리고 비디오의 대중화와 같은 기술적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의 모색으로 이어졌다. 상호주의적 관찰자 양식은 이러한 배경하에서 전개되었는데, 이는 대상과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면서 대상의 몰이해에서 오는 일반화의 오류나 재현 상의 실수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독립다큐멘터리는 방송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대상에 대한 오랜기간의 친밀감 형성이 제작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홍형숙 감독의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등 수평적 관찰을 시도하는 영화들은 재현권력에 대한 성찰을 통해 대상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시도했던 작품들이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간의 포지셔닝은 포스트 다큐멘터리 시대에 사적 다큐멘터리의 등장과 함께 더욱 복층화된다. 가족이나 친구 등 대상과의 구별이 되지 않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관찰하는 사적다큐멘터리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개념지어 준다. 사적다큐멘터리에서 제작주체와 대상은 경계가 희미해거나, 역전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재현양식의 변화는 미학적 기반과 함께 윤리적 패러다임을 새로운 층위에 올려놓는다. 즉, 사적다큐멘터리에서 주체와 구분이 모호한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은 텍스트에서의 주관성을 강하게 주입시키면서 발화자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이는 주체와 대상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기능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친밀한 대상을 관찰하면서 촬영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또다른 권력관계도 새롭게 촉발한다. 특히 카츠(Katz)가 제시한 윤리의 네 가지 범주, 즉 동의(consent), 공개(disclosure), 동기(motive), 구성(construction)에 있어서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자는 가족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를 소홀히 할 개연성이 높은데 이는 또다른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렇게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재현양식들은 시대적 제약과 장르의 성숙과 함께 제작자의 윤리적 미학적 욕구가 낳은 소산이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이렇게 재현 권력에 대한 성찰을 하면서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하여왔다. 이런 관점에서 다큐멘터리의 생산에서 비평에 이르기까지 미학적 고민과 윤리적인 담론의 조화는 중요하다. 이는 오늘날 기술적으로 사생활의 관찰이 용이해지고 있다는 기술적인 측면과 사적다큐멘터리의 일상으로의 주관적인 접근이 사생활을 더욱 쉽게 노출시킨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결국,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대상과의 밀접한 관계맺음을 통해 대상을 관찰하고 촬영하고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미학과 윤리라는 균형점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