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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對明儀禮를 통해 본 15세기 朝-明관계 = A relationship between Chosŏn Dynasty and Ming Dynasty through the viewpoint of national rites in the 1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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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60072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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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15세기 朝-明관계를 외교의례의 시행과정과 분석을 통해 검토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조공-책봉관계의 성격을 찾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고려 말 여-명 교류는 원명교체라...

      본 연구는 15세기 朝-明관계를 외교의례의 시행과정과 분석을 통해 검토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조공-책봉관계의 성격을 찾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고려 말 여-명 교류는 원명교체라는 대륙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민왕이 국권 수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양국관계는 명의 세력 확대와 고려의 자주적 입장이 상호 출동하면서 이후 우호와 갈등이 상호 교차되는 과정을 겪었다. 국가의례의 전래 역시 마찬가지여서, 祀典정비를 통해 새로운 천하질서를 모색하고 이를 蕃國에 강요하려는 명의 의도는 고려전기의 자주적 의례로 복구하려는 고려의 입장과 서로 충돌하였다.
      親明事大를 내세운 조선왕조의 개창은 조-명 관계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초창기의 양국관계는 여진족의 주도권 쟁탈로 원만하지 못했고, 그 결과 태조 이성계는 誥命조차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대조선 강경책을 썼던 주원장이 사망하고 곧이어 叔姪간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싸이면서 명의 대조선 정책은 바뀌었다. 새로 즉위한 혜제는 戰馬를 비롯한 조선의 도움을 받기 위해 서둘러 태종의 고명을 보내는 동시에 조선왕의 위차를 親王으로 높였다. 親王禮의 사여는 명의 外蕃중에서 최혜국 대우로, 조선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했음을 뜻한다. 아울러 문종 즉위년에는 세자의 位次 역시 친왕 세자에 맞추어 인정하였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조선의 국가의례는 親王禮를 기준으로 모색·정비되었던 것이다.
      대명의례는 양국 사신의 평화로운 내왕과정에서 明禮가 참작되어 제정되었다. 현재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에는 명과 관련된 의식이 빈례조와 가례조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사』에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 모두 빈례조에 수록된 반면 조선의 빈례에서는 명 사신과의 宴會 및 일본, 유구 등 사신과의 의식들만이 보일 뿐 정작 명과의 사대관계를 보여주는 의식은 가례조에 수록되었다.
      빈례와 가례의 구분은 조선왕조의 이중적인 세계관이 국가의례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가례에 수록된 望闕·迎詔·迎勅·拜表 등의 의식은 황제의 권위를 바탕으로 시행됨으로써 명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질서를 인정하였다. 반면에 정작 외교의례인 빈례에서는 명 사신과의 대등한 의식 및 일본, 유구, 여진 등을 대상으로 조선왕의 우월적 입장을 보이는 의식만을 수록함으로써 조선 중심의 세계관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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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oryŏ-Ming interstate relations began with King Kongmin's struggle to recover Koryŏ autonomy from Yuan rule in dynastic shift from Yuan to Ming. since then, Ming's expansion to the east and Koryŏ's autonomous policy were often confronted. Subsequen...

      Koryŏ-Ming interstate relations began with King Kongmin's struggle to recover Koryŏ autonomy from Yuan rule in dynastic shift from Yuan to Ming. since then, Ming's expansion to the east and Koryŏ's autonomous policy were often confronted. Subsequently, when it comes to state rites, Ming's policy to control its vassals by forcing them to follow degraded code of state ritual, and Koryŏ's struggle to avoid Ming policy delineating Koryŏ's own Koryŏ-centered state ritual code, often confronted each other. This situation went on in the very early stage of Chosŏn too. Chosŏn and Ming both claimed suzerainty over those Jurchen tribes in Manchuria and Chosŏn's founder could not even expect Ming's designation as Chosŏn's legitimate king.
      However, as the throne of Ming court became threatened by powerful Yen King(燕王) who was a brother of Jianwen emperor(建文帝) and Both side of Jianwen Emperor and Yen King eventually went to a civil war, Chosŏn King could make use of this situation to take better position. Ming Jianwen Emperor sent official designation of Chosŏn king as its vassal and put Chosŏn King into very exceptional position of Imperial Prince(親王) which were given only to emperor's brothers in its sino-centric east asian world order. Giving Chosŏn king Imperial Prince means most-favored treatment for Chosŏn king. According to this, Chosŏn delineated frames of state ritual codes and elevated Chosŏn Kings position.
      Since then, while both side exchanged emissaries, state ritual codes related to the whole process of receptions for Ming emissaries began to be formulated in Chosŏn. Those codes of rituals for Ming emissaries were included in these two major ritual manuals, Sejongsillok Orye and Kukcho Oryeūi compiled by Chosŏn court. Interestingly, Chosŏn court put only those ritual codes which were directly relevant to the process of receiving Emperor's order, into the chapter of Felicitous rites, and put the rest of those ritual codes dealing with Ming emissaries, into the chapters of felicitous rites which originally deals with the Chosŏn-centered ritual codes for the receptions of Japan, Jurchen, and Okinawa envoys.
      In this way Chosŏn's ruling elites signifies Chosŏn's own point of view on Sino-centric east Asian world order. Even though Chosŏn admitted Ming Emperor's authority above Chosŏn king, by putting those rituals directly relevant to receiving Emperor's order itself into the chapter of Felicitous rites, at the same time Chosŏn tried to signify Chosŏn king's equal or superior positions over those Chinese emissaries by putting those ritual codes for Ming emissaries into the chapter of Guest rites, just like Chosŏn's ruling elites delineated those ritual codes for Japan, Jurchen, and Okinawa envoys they looked down on, in the chapter of Guest 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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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고려말 對明儀禮의 모색
      • 3. 親王禮의 설정 및 왕실 位次의 상승
      • 4. 『國朝五禮儀』에 수록된 대명의식의 내용과 성격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고려말 對明儀禮의 모색
      • 3. 親王禮의 설정 및 왕실 位次의 상승
      • 4. 『國朝五禮儀』에 수록된 대명의식의 내용과 성격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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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성준, "고려말의 정국과 원,명 관계" 한국사 1994

      2 최승희, "개국초 왕권의 강화와 국정운영체계" 한국사 1995

      3 이석현, "高麗와 遼金의 外交관계-朝貢冊封關係를 중심으로- in :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5

      4 신채식, "高麗와 宋의 外交관계-朝貢과 冊封關係를 중심으로- in :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5

      5 高光林, "韓國의 服飾" 화성사 1990

      6 金東旭, "韓國服飾史硏究" 아세아문화사 1973

      7 李範稷, "韓國中世禮思想硏究" 일조각 1988

      8 "鄭多函,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東方學志』 141, 2008"

      9 李範稷, "朝鮮時代 禮學硏究" 국학자료원 2004

      10 韓永愚, "朝鮮前期社會思想硏究" 지식산업사 1983

      1 김성준, "고려말의 정국과 원,명 관계" 한국사 1994

      2 최승희, "개국초 왕권의 강화와 국정운영체계" 한국사 1995

      3 이석현, "高麗와 遼金의 外交관계-朝貢冊封關係를 중심으로- in :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5

      4 신채식, "高麗와 宋의 外交관계-朝貢과 冊封關係를 중심으로- in :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책봉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5

      5 高光林, "韓國의 服飾" 화성사 1990

      6 金東旭, "韓國服飾史硏究" 아세아문화사 1973

      7 李範稷, "韓國中世禮思想硏究" 일조각 1988

      8 "鄭多函,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東方學志』 141, 2008"

      9 李範稷, "朝鮮時代 禮學硏究" 국학자료원 2004

      10 韓永愚, "朝鮮前期社會思想硏究" 지식산업사 1983

      11 池斗煥, "朝鮮前期 儀禮硏究" 서울대 출판부 1994

      12 韓亨周, "朝鮮初期國家祭禮硏究" 일조각 2002

      13 최승희, "朝鮮初期 政治史 硏究" 일조각 2002

      14 박원호, "明初朝鮮關係史硏究" 일조각 2002

      15 "『高麗史』"

      16 "『諸司職掌』"

      17 "『朝鮮王朝實錄』(太祖~中宗)"

      18 "『明會典』"

      19 "『明史』"

      20 "『宋史』"

      21 "『大明集禮』"

      22 "『國朝五禮儀』"

      23 "『世宗實錄』 五禮"

      24 한형주, "15세기 祀典體制의 성립과 그 추이―『國朝五禮儀』편찬과정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89 (89): 127-161, 2004

      25 韓永愚, "15세기 官撰 史書 편찬의 추이 in : 朝鮮前期史學史硏究" 서울대 출판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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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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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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