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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중국유학생의 우울과 문화적응스트레스에 따른 빗속의 사람 (Person-In-The-Rain) 그림검사 반응특성 연구

        고정윤,김유정 한국예술치료학회 2020 한국예술치료학회지 Vol.20 No.1

        본 연구는 중국유학생의 우울 수준과 문화적응스트레스 수준에 따른 빗속의 사람(Person-In-The-Rain) 그림 검사의 반응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유학생의 우울과 문화적응스트레스를 진단하는 도구로써 활용성을 검증 하고 정서적,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유학생들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2017년 5월 16일 부터 6월 29일까지 수도권 A시와 B시에 소재한 4년제 대학의 비학위과정을 포함한 중국유학생 230명을 무선 표집하여 설문조사와 그림검사를 실시하였다. 이 중 답변이 누락되거나, 그림 채점이 어려운 14부를 제외한 216부를 선정하여 분석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SPSS 23.0 프로그램으로 분석하였다. 통계 검증을 위해 기술 통계분석, t-test, one-way ANOVA, Scheffe 사후 검증을 사용하였다. 분석 결과 첫째, 중국유학생의 우울 수준에 따른 PITR 검사에 나타난 스트레스 영역의 반응특성은 ‘비의 접촉’, ‘젖다’, ‘바람’, ‘웅덩이에 서있다’, ‘강수강설’, ‘번개’, ‘구름’ 항목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으며, 대처자원 영역의 반응특성 은 ‘보호물 있다’, ‘우산 있다’, ‘적절한 크기 보호물’, ‘완전무결한 보호물’, ‘옷’, ‘미소’, ‘신체부위 생략’에서 유의 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둘째, 중국유학생의 문화적응스트레스 수준에 따른 PITR 검사에 나타난 스트레스 영역 반응특성의 분석 결과, ‘많은 비’ 항목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으며, 대처자원 영역의 반응특성은 ‘미소’와 ‘신체부위 생략’ 항목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기초하여 본 연구는 중국유학생들의 우울 수준과 문화적응스트레스 수준에 따른 PITR 반응특성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중국유학생들이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경험하는 정서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으며, 미술치료 및 상담 영역에서 심리적 상담개입의 시기에 필요한 진단 도구로서의 활용성을 검증하고, 심리지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한데 의의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ovide baseline data for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who are experiencing emotional and psychological difficulties. This study examines the response characteristics of the Person-In-The-Rain (PITR) picture test of Chinese students studying in Korea to validate the usability of the PITR test as a psychological tool that diagnoses the level of depression and acculturative stress of Chinese students studying in Korea. The study conducted a survey and PITR test on a total of 230 subjects of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recruited randomly, from May 16, 2017, to June 29, 2017. The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were from four-year universities, including non-degree courses, located in the city A and B. A total of 216 responses and drawings of the PITR(Person-In-The-Rain) were selected and analyzed, excluding 14, which responses were either omitted or drawings that were challenging to interpret. The collected data were analyzed using the SPSS 23.0 program. For statistical verification, the technical statistical analysis, t-tests, one-way ANOVA, and Scheffe post hoc test was used. The results derived from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response characteristics of stress zones in the PITR test according to the depressive level of Chinese students were significantly different in the categories ‘Rain Contact,’ ‘Wetness,’ ‘Wind,’ ‘Being in a puddle,’ ‘Precipitation of Rainfall and Snowfall,’ ‘Lightning’ and ‘Cloud’ and significantly different in coping resources of ‘Having protection,’ ‘Having an umbrella,’ ‘A suitably sized piece of protection,’ ‘Perfect protection,’ ‘Clothes,’ ‘Smile,’ and ‘Elimination of body parts.’ Second,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stress area response characteristics in the PITR test according to the level of acculturative stress of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a significant difference appeared in the 'Heavy rain' category and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Smile’ and ‘Elimination of body parts’ of the response characteristics of coping resources. Thus, by examining the PITR response characteristics according to the level of depression and acculturative stress of Chinese students, the emotional state experienced by Chinese students while studying abroad can be estimated.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hat it not only verifies the usability of the diagnostic tool necessary for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ention in art therapy and counseling, but it also provides essential data for psychological support to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 KCI등재

        유학생의 차별 경험과 정신건강 간의 관계에서 문화적응 스트레스의 매개효과 검증 연구: 대구・경북지역의 베트남 유학생과 중국 유학생의 비교

        김연희,이교일 전남대학교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2021 디아스포라 연구 Vol.15 No.1

        This study analyzed the mediating effect of acculturation stres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iscrimination experience and mental health among Vietnamese and Chinese foreign students in Daegu and Gyeongbuk region. To this end, 257 foreign students from Vietnam and China in Daegu and Gyeongbuk were surveyed with measures such as discrimination experiences, mental health, and acculturation stress as well as socio-demographic variables. The study findings are: First, there was statistically significant differences in the level of discrimination experience and acculturation stress between Vietnamese and Chinese students. Second, both Vietnamese and Chinese students had relatively high levels of depression and anxiety. Third, acculturation stress has a mediating effec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international students’ discrimination experience and mental health, and the discrimination experience of Vietnamese students has a stronger influence on both the level of acculturation stress and the mental health than those of Chinese students. Based on these findings, the implications for the programs and services that the government and universities should provide for the mental health of foreign students in Vietnam and China were discussed. 이 연구는 대구・경북지역 대학에서 유학하는 베트남, 중국 유학생이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으로써 차별 경험, 문화적응 스트레스, 정신건강 수준은 어떠한지 살펴보고 이들 변수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대구・경북지역 베트남, 중국 유학생 257명을 대상으로 인구사회학적 변인, 차별 경험, 정신건강, 문화적응 스트레스 변인을 측정하여 관련 변인들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첫째, 대구・경북지역 베트남 유학생과 중국 유학생 간에 차별 경험과 문화적응 스트레스 수준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베트남 유학생과 중국 유학생 모두 우울과 불안 수준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외국인 유학생의 차별 경험과 정신건강 간의 관계에서 문화적응 스트레스는 매개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베트남 유학생이 중국 유학생에 비해 차별 경험이 문화적응 스트레스 수준과 정신건강 수준에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베트남, 중국 유학생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이중언어/이중문화전문가를 활용한 정신건강서비스 필요성, 대학교 구성원을 위한 다문화 수용성 프로그램, 특정한 사회 이슈로 인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 KCI등재후보

        1910년대 전반 재일유학생의 민족운동-在東京朝鮮留學生親睦會를 중심으로

        小野容照 숭실사학회 2011 숭실사학 Vol.0 No.27

        1910년대 전반 재일유학생의 민족운동 -在東京朝鮮留學生親睦會를 중심으로- 小野容照 이 글의 목적은 재일유학생 단체인 在東京朝鮮留學生親睦會의 조직과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식민지기에 들어서 재일유학생 민족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는 데에 있다. 식민지기 재일유학생 단체로는 1912년 10월에 설립된 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가 잘 알려져 있지만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는 학우회에 앞서서 1911년 5월에 설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단체는 학우회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친목회의 설립과 해산 과정은 1910년대 재일유학생 민족운동의 시발점으로서 상당히 중요하다.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의 조직을 주도한 것은 1909년에 설립된 大韓興學會에서 간부로 활동한 유학생들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인해 대한흥학회의 해산을 겪은 그들은 조금씩 유학생 친목 모임 규모를 확장하면서 1911년 5월에 유학생전체 친목기관으로서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는 설립된 지 불과 9개월 만에 해산되었다.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가 기관지 『學界報』를 발행하려고 한 것을 경계한 일제가 조선유학생감독부를 통해서 해산을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는 조선유학생감독부를 활동거점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산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學界報』가 창간호를 발행한 1912년 4월에는 이미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는 해산된 상태였다. 이후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다시 학우회가 설립되었다. 이 때 그들은 재동경조선유학생친목회의 해산을 교훈으로 삼아 조선유학생감독부와 거리를 두면서 학우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조선유학생감독부를 대신할 활동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학우회는 在東京朝鮮基督靑年會와 협력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결과 학우회는 1931년까지 존속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재일유학생들은 기관지 『학지광』을 비롯해 다양한 출판물을 발행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재일유학생은 언론의 자유가 거의 없었던 1910년대 조선 내의 지식인들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존재로서 민족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The National Movement of the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in the early 1910’s - in the case of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Ono Yasuteru This paper aimed to explain how the national movement of Koreans oversea students was started through analyzing the organizations and activities of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the communi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A Korean oversea Students’ Association in Tokyo, established in October 1912, is well known, but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was the parent of A Korean oversea Students’ Association in Tokyo as well as founding earlier in May 1911 than that. Thus, the progresses of establishment and dissolution of the Amity Society are very important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national movement of Koreans oversea students in 1910’s. It was the executive students in Daehanheunghakwhoi, which founded in 1909, that took lead the organization of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They, dispersed by Korea-Japan Annexation Treaty, organized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as get-together of the whole oversea students in May 1911, expanding gradually the scale of friendship communities. However, in only 9 month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broke up since the society was established. Because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sought to publish the organ of 『Hakgyebo』, Japanese Imperialism kept strict watch their activities and ordered to break up the society through the Superintendent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had nothing to do but obey a order since it based of the Superintendent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Therefor,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already broke up when they published their first issue in April 1912. After that time, a students’ association was established again by the executives of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At this time they learned the lesson from the dissolution of the Amity Society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Tokyo and operated the Students’ Association giving the Superintendent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a wide berth. They also joined hands with the Christian Association of the Korean Students in Tokyo in order to secure another center of their activities as a substitute for the Superintendent of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As a result, a students’ association could continue to exist until 1931, and the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worked on positive lines including publishing the organ of 『Hakjigwang』 and the variety of issues. The Korean oversea students in Japan eventually could inaugurate national movements as a society which strengthened the weak point of Korean intellectuals, when Japan Imperialism restricted freedom of speech.

      • KCI등재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이 관광지선택속성과 행동의도,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정총화 한국관광산업학회 2020 Tourism Research Vol.45 No.3

        In this study, the following study was conducted to find out the effect of international student's lifestyle on tourist destination selection attributes, behavioral intentions, and satisfaction. First, factors of lifestyle were analyzed to understand the degree of influence of international student lifestyle on tourist destination selection attributes. And the results of regression analysis are as follows. The factors of international student lifestyle rational planning and family-centeredness were found to have a significant influence on attractiveness. It seems that it is necessary to develop and provide mission tours, educational tours, and experiential tours in tourist destinations that can increase the self-esteem of international students by breaking away from conventional scenic tours in tourist destinations. Second, in order to understand the degree of influence of international student lifestyle on behavioral intention, a regression analysis was conducted by analyzing each item of lifestyle. Appeared to be crazy. In order to increase safety, it is necessary to provide guideline information that can show alternative situations in case of an accident in connection with local governments and local organizations, and develop local programs to learn and experience local culture and history by participating with local residents. Third, in order to understand the degree of influence of international student lifestyle on satisfaction, a regression analysis was conducted by analyzing each item of lifestyle. Has been shown to affect. When promoting tourist destinations, local governments should promote programs that allow individual development along with tourism and recreation, and touristic-related organizations should establish a joint public relations line to promote programs that provide comfort. Fourth, in order to understand the degree of influence of the tourist destination selection attribute on the behavioral intention, a regression analysis was conducted by analyzing each item of the tourist destination selection attribute. . Since most international students do not have private vehicles, it is expected that temporary public transportation, such as shuttle buses, should be operated from places with excellent access during the weekends when sightseeing is a lot. Fifth, in order to understand the degree of influence of the tourist destination selection attribute on satisfaction, a regression analysis was conducted by analyzing each item of the tourist destination selection attribute. It is necessary to promote information on tourist destinations through online communities and SNS of international students, and furthermore, to promote international students to their home countries, publicity in various languages ​​should be provided. Finally, in order to understand the degree of influence of behavioral intention on satisfaction, the results of regression analysis by factor analysis of each item of behavioral intention showed that behavioral intention and satisfaction had a significant effect. Affinity is a subjective psychological factor. As various events related to international students are planned and conducted, the affinity for tourist destinations is expected to increase. For this, it is necessary to develop a program through interactive opinions through the formation of a community with international students, and it is necessary to devise a system for recommending tourist destinations and operate a system of points or benefits for recommenders. 본 연구는 유학생의 라이프스타일이 관광지선택속성, 행동의도,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첫째,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이 관광지선택속성에 미치는 영향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의 각 항목들을 요인 분석하였다. 그리고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의 요인 합리적계획성, 가족중심성의 요인은 매력성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관광여행 상품의 관광지 현지에서 일반적인 경관 관광을 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유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관광지에서의 미션투어, 교육투어, 체험투어를 개발해서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이 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의 각 항목들을 요인 분석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의 요인 감각추구형, 가족중심형의 요인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자체, 지역 단체와 연계한 사고 시 대체 상황을 보여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정보 제공과 지역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지역의 문화·역사를 배우며 체험하는 지역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이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의 각 항목들을 요인 분석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유학생 라이프스타일의 요인 합리적계획성, 감각추구형, 가족중심형의 요인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에서는 관광지 홍보 시 관광 휴양과 함께 개인의 개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관광지관련 단체에서는 편안함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홍보를 공동 홍보라인을 구축해서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관광지선택속성이 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관광지선택속성의 각 항목들을 요인 분석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관광지선택속성의 요인 매력성과 접근성의 요인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유학생들은 개인 차량이 없기 때문에 관광을 많이 하는 주말에는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서 셔틀버스와 같은 임시 대중교통을 운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관광지선택속성이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관광지선택속성의 각 항목들을 요인 분석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관광지선택속성의 요인 매력성과 접근성의 요인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한 관광지 정보를 홍보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유학생의 본국에까지 홍보를 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로 구성한 홍보를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동의도가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행동의도의 각 항목들을 요인 분석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행동의도와 만족도는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호도는 주관적인 심리요인으로 유학생 관련 다채로운 행사를 계획, 진행하면서, 관광지에 대한 애호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위해서는 유학생과의 커뮤니티 형성으로 쌍방향 의견을 통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고, 관광지 추천 제도를 구상하여 추천자를 위한 포인트, 또는 해택 제도를 운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공계 분야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 현황과 유치방안

        엄미정,이윤지,박동오,김도훈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2 정책연구 Vol.- No.-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 우수 이공계 석·박사 과정 유학생 유치 방안 모색 및 관련한 제언 목적○ 이공계 석박사 과정 유학생 유치과정 및 현황 분석-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의 유치 목적 및 활용 현황-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의 한국 선택 이유 및 향후 진로 분석○ 이공계 석박사 과정 유학생 유치를 위한 정책지원 현황 분석-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 현황 분석○ 우수 이공계 석박사 유치 방안 및 프로그램 제안 주요 연구내용(1) 해외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및 지원프로그램 사례□ 해외 외국인 유학생 정책○ 주요국들의 경우 학비, 기숙사, 체제비 등을 지원하는 국비 유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미국과 호주는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 공립학교 입학, 동반 비자 발급 등의 혜택을 제공. 독일, 프랑스, 일본의 경우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일정 기간의 체류를 허용○ 해외 두뇌를 끌어들이려면 다양한 유인이 필요. 자격과 능력을 종합평가하는 선진국 형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우수 인재에게 출입국과 취업, 체류자격에 확실한 인센티브를 줘야 함□ 일본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 프로그램○ 2008년 일본총리는 시정방침연설에서 “새롭게 유학생 30만 명 계획”을 제안. 산학관 연계에 의한 해외 우수인재들의 대학원 및 기업 유치를 확대○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국비 유학생 장학금 제도는 1954년에 창설. 종류는 모두 7가지인데, 연구유학생, 교원연수유학생, 학부유학생, 일본어·일본문화연수유학생, 고등전문학교 유학생, 전수학교 유학생 및 Young Leader’s Program 유학생- 사비유학 장학금제도는 일본학생지원기구, (재)일본국제교육지원협회, 지방공공단체, 대학, 민간기업 등이 사비로 일본에 유학을 오는 경우 지원하는 장학금- 유학종합 시스템은 유학정보 제공·유학 상담부터 거점대학을 통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이나 교원 유치를 확대 입학, 일본어 교육, 생활 지원 및 지자체의 유학생 지원, 유학생을 위한 취업지원까지 이루어짐 (2)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유치현황 및 문제점□ 이공계 외국인 유학생 유입 현황○ 이공계 유학생 현황도 해마다 증가 추세로 국적별로는 가까운 아시아 국가 비중이 높은 편으로 중국이 가장 높음- 과정별로는 외국인 유학생 중 학부생들은 감소하고 있고 석·박사 생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학부생과 석사보다는 박사생의 비율이 높음□ 대학의 이공계 석·박사 유치노력과 한계점○ 외국인 이공계 유학생을 유치 및 관리 담당자 및 직접적으로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을 유치한 교수들을 대상으로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관련 현황 및 문제점에 관한 간담회를 실시- 대학 및 교수차원에서 외국인 석?박사 유치를 추진. 최근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의 추진을 추진하는 대학도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 유치경로는 교수에게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경우와 대학이나 학과를 통해서 신청하는 경우 모두 존재-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의 경우 한국어 능력보다는 영어 능력이 보다 강조. 교수들의 외국인 유학생들에 관리·유치하는 데에서 어려움이 많음. 유치의 문제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애로사항과 연결되어 있음- 대체적으로 이공계 석·박사에 대한 장학금이 지원.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등록금, 기숙사비 외에 생활비 지원 등의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우수학생들의 유치를 유도- 국내 대학들 간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에서 특히 재정적 지원 규모는 중요한 변수로 외국인 유학생이 가장 애로사항으로 느끼는 바는 기숙사, 생활비임○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의 설문조사 결과- 한국 유학 동기는 한국 기업 및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도움이 되며, 다른 나라를 고려하지 않은 유학생들의 경우 연구경쟁력, 국가인지도, 입학요건 등의 측면에서 특히 경쟁력 있다고 평가- 최종적으로 한국에 입학한 학생들이 한국 유학을 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것은 재정적 여건임 (3)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유치 정책 및 지원프로그램 현황□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유치 관련 정부 주요 정책의 경우 2012년 우수 외국인재 유치와 사회통합정책에 역점을 두고 총 964개 사업(중앙부처 149개, 지자체 815개)을 시행함○ 우리나라가 하고 있는 사업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 가. 유학생 유치지원 나. 석·박사 유치지원 다. 이공계 유치지원으로 나눠짐. ○ 교육과학기술부의 「Study Korea 2020 Project 추진계획」, 지식경제부의 「산업인력 육성·관리시스템 혁신방안」□ 교육과학기술부의 국립 국제교육원의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사업을 포함, 여러 부처에서 다양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 사업을 하고 있음 정책제언(1) 전체 유학생 확대 지원□ 유학생 동창회 조직의 정비 지원○ 대학단위, 혹은 국가단위의 동창회 지원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관리체계를 정비할 필요□ 유학생 세부전공별 현황 조사 및 졸업생 조사○ 기업의 인력수급와의 연계 및 전략적 차원의 유치, 연구실 생활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위해서는 세부전공별 현황파악이 요구○ 유학생들의 졸업 시점에서의 현황과 진로 계획 등을 수집할 수 있는 강제된 제도적 체계가 요구□ 보안 가이드라인 제시 필요○ 정부 연구개발사업과 관련한 외국인 유학생들의 참여 자격 등에 대한 규정이 필요- 연구 보안 측면에서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부차원의 가이드라인 제시 요구 (2) 석박사 유학생 지원 프로그램□ 유학생 follow-up 지원 사업(안)○ 본국에 돌아간 유학생 중에서 학계 및 공무원에 종사하는 인력의 국내 교수들과의 교류 지원 (3)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특화 프로그램□ 취업지원 프로그램○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을 위한 기업과의 연계 및 고용지원 서비스의 확충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유학생에게 취업활동 및 취업지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업상담 및 전국 네트워크를 활용한 매칭지원- 유학생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취업면접회 등을 실시□ 사비 학습장려금 제도○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의 유치 지원을 위한 재정적인 지원 프로그램- 사비 유학생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

      • KCI등재

        갑오개혁 이후 조선 유학생의 일본 유학과 유학 분야

        왕현종(Wang, Hyeon Jong) 역사실학회 2019 역사와실학 Vol.69 No.-

        본 논문에서는 갑오개혁이후 대한제국기 조선인의 일본 유학에 대해 갑오개혁 이후 유학생 파견 정책의 변화와 일본 유학생들의 자치단체인 친목회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관비유학생 파견은 주로 일본 게이오 의숙에 무려 195명 정도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갑오개혁정부는 처음에는 독자적인 고등교육체계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압력하에 대학설립 구상이 포기된 채, 대규모 관비유학생 파견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게이오 의숙에 맡겨진 유학생들은 일본어 교육과 기초교과를 바탕으로 대학·전문학교 등 상급학교로 진학에 대비하였다. 또한 조선 유학생들은 자체적으로 친목회를 결성하여 주기적인 단체모임과 매달 정례 학술 모임을 통하여 결속을 다지고 선진 학문 수용과 여론 형성을 주도하였다. 이들의 주제 강연은 유학생 잡지인 『친목회 회보』(1~6회)에 수록되었는데, 유학생의 학업과 친목회 활동에 당부하는 글, 국민의 각성과 애국 논설, 국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군애국 강조, 전공 학문에 대한 소개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 조선 유학생들은 서구의 정치원리나 법적 체계를 비롯하여 최신 동향을 소개하고 나름대로 논점을 제기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주목한 것은 친목회규칙에 수록된 특별찬성원들이었다. 이들은 유학생 관리를 맡은 후쿠자와 유키치 등 게이오 의숙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일본 주요 대학의 학장들과 일본 의회 및 법률관계 종사자들을 망라하고 있다. 110명의 특별찬성원들은 조선유학생들이 각 대학의 전공분야를 선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한국정부는 유학생 파견과 관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데 실패했다. 관비 유학대상자의 축소와 학자금 지급 등이 지연되었다. 졸업 이후 귀국한 관비유학생들은 주로 정치·법률학 관료나 학자로서 나아갈 수도 있었으나 1904년 이전까지 제대로 그런 분야에 진출하지 못했다. 본 논문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조선 유학생들의 일본 파견과 학술활동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려고 하였다. 특히 친목회의 특별찬성원과의 연계망에 주목하여 유학생들의 전공 분야 선택의 관련성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조선유학생들의 관료 및 사회활동상을 개인별로 추적하여 살펴보았다. In this study of Koreans studying in Japan during the Korean Empire after the Gabo Reformation, I considered the change in the policy of sending students to Japan after the Gabo Reform and the activities of the autonomous organization of Korean students in Japan. The Government influenced by the Gabo reforms initially envisioned its own higher education system; however, under pressure from Japan, it abandoned the idea of establishing a university. As a result, large-scale government-funded students who were entrusted to Fukuzawa Yukichi, in Keio University(慶應義塾), were prepared for further study at higher schools, such as universities and vocational schools, based on Japanese language education and basic subjects. In addition, Joseon students formed their own fraternity groups to strengthen their solidarity and lead the adoption of advanced studies and public opinion through regular group gatherings and monthly academic meetings. Their lecture topics were included in the Journal of the Friendship Society, a magazine for students studying abroad, and the topics ranged from urging them to study, engaging in social activities, writing about awakening the patriotic spirit among people, an absolute emphasis on the King’s patriotic patriarchs, and other major studies. These Joseon students were introducing the latest trends, including Western political principles and legal systems, and were validating their own objectives. This article takes the special note of members of the Fellowship Rules. These include the heads of major Japanese universities, members of the Japanese parliament and legal workers, as well as Keio officials such as Fukuzawa Yukichi, who managed international students. These 110 special members would have played a decisive role in Joseon students’ choice of college majors. The Korean government, however, failed to establish a system to improve the effectiveness of managing and placing the students during the Korean Empire. There was a delay in bridging the gap in the numbers of students eligible for government grants and paying their tuition. After graduation, government-funded students who returned home were able to move forward mainly as political and legal officials or scholars; however, they were unable to enter the their field of employment until 1904. In this paper, I have tried to analyze the dispatch of Joseon students to Japan and their academic activities in general after the Gabo Reform. In particular, it was my endeavor to reveal the relevance of overseas students’ choice of majors by paying attention to the association’s network of special support for the fraternity. Finally, I tracked the awards for official and social activities that were bestowed by private individuals on the overseas Joseon students after their grad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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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조선유학생들의 ‘국민론’과 ‘애국론’ -『親睦會會報』(1896~1898)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김소영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1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0 No.66

        재일조선유학생들의 ‘국민론’과 ‘애국론’ -親睦會會報(1896~1898)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김소영 갑오개혁기 교육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으로 대규모의 관비 유학생들이 파견되었다. 이들 유학생들은 유학생들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자신들이 공부하던 분야의 새로운 지식들을 공유하기 위해 ‘친목회’를 결성하는 한편 회지인 친목회회보를 간행했다. 본 연구는 회보에 기고된 글들을 분석하여 유학생들이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를 추진하고 근대국가를 수립해 갈 주체로 ‘국민’을 설정했다는 점을 밝히고, 그들의 ‘국민’ 용어 사용과 개념 정의, 그리고 ‘국민’에 대한 여러 논의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같은 시기 조선 내의 사정과 비교해 볼 때 유학생들은 근대 국민국가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용어로 ‘국민’을 보다 빈번하게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유학생들은 ‘국민’을 기존의 ‘인민’ 또는 ‘신민’과 개념상으로 구별하여 인식하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국민’, ‘인민’, ‘동포’, ‘신민’ 등을 모두 서구의 ‘네이션’에 대응하는 근대국가의 구성원, 근대국가를 수립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주체이자 국민국가의 구성원을 호칭하는 용어로 혼용했다. 유학생들은 기존의 조선민이 근대국가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新性質’ 또는 ‘원기’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의 ‘신성질’ 또는 ‘국민지원기’를 갖추고 활성화할 때 시대적 과제인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를 이루고, ‘국권’과 ‘민권’을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학생들은 조선의 ‘국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먼저 ‘민권’을 확립해야 하며, ‘민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입헌이 시급한 과제라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권’을 ‘국권’보다 우위에 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은 국법과 ‘국권’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저항할 수 없고, 국가가 필요할 경우 ‘국민’의 재산과 생명까지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같이 ‘인권’ 또는 ‘민권’보다 ‘국권’을 우선시하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를 이루고 ‘민권’과 ‘국권’, 무엇보다 ‘국권’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국민’이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국민정신’이자 ‘국민’의 의무로 유학생들이 제시했던 것은 바로 ‘애국심’이었다. ‘애국심’은 자기애로부터 발단하여 가족애, 친족애, 국가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 자연적 감정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유학생들은 ‘애국심’이 비록 자연발생적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자연적 애국심”을 발현시켜 “정치적 애국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가구성원들에게 정치 참여를 허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정체가 전제가 아닌 입헌을 실시해야 ‘국민’이 ‘애국심’을 갖게 된다는 주장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애국심’을 형성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빈번하게 제기되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교육을 통해 ‘애국심’을 형성한다는 것은 곧 ‘애국심’을 가진 ‘국민’을 형성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유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를 추진해 갈 ‘국민’을 형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동시에 자신들과 같이 이미 교육을 받은 중등지식인들이 사실상 ‘국민’으로서 개혁을 추진해 갈 주체임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Discourse on ‘Kungmin’ and ‘Patriotism’ of the Chosŏn Students Studying in the Japan(1896~1898) Kim, Soyoung The Kabo reformist government sent a massive students at the expense of government to Japan as a part of educational reform during the Kabo reform. These students established the ‘Society of Great Korean Students’ and published the ‘Journal of Society of Great Korean Students’ in order to promote friendship among them and share new knowledge of their studying field. By analyzing the students’ writings contributed to the ‘Journal’, this study addresses that they considered ‘kungmin(國民, nation)’ as an agent who would propel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富國强兵)’ an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文明開化)’ and established modern nation-state and examines their usage of the term ‘kungmin’ and its concept, and several discussions about ‘the nation’. To examine the students’ concept and perception of ‘kungmin’ will be the premise of clarifying the direction of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reform which they pursued and the image of modern nation which they wanted to establish. These students in particular attract our attention in the sense that they studied and accepted modern knowledge in Japan and after returning to their home country not only led to form the discourse of knowledge as modern intellectuals but enhanced their influence on the several fields of society. It is convincing that they used more frequently ‘kungmin’ as a term designating a member of modern nation-state in comparison with the situation of Korea. And, although the students perceived and explained notionally ‘kungmin’ different from ‘inmin(人民, people)’ or ‘sinmin(臣民, subject)’, they actually used ‘kungmin’ mixed with ‘inmin’, ‘tongpo(同胞)’ and ‘sinmin’. Corresponding to the ‘nation’ in the west, all these terms were used mixed to call a member of nation-state as well as an agent who holds a crucial role to establish a modern nation-state and this mixed-usage continued after this. They argued that existing subjects of Chosŏn needed to have ‘new-nature’ or ‘spirit of kungmin’ in order to become a ‘kungmin’ of modern nation-state. They also insisted that Korea could have reached the task of the age,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an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and preserved ‘sovereignty’ and ‘civil rights’ if these ‘new-nature’ or ‘spirit of kungmin’ would be possessed and vitalized. Even though the students had the common awareness that ‘civil rights’ had to be established first so as to consolidate the ‘sovereignty’ of Chosŏn and ‘constitution’ was urgent task to establish ‘civil rights’, they didn’t put ‘civil rights’ before ‘sovereignty’. Actually, it seemed to be common perception that ‘kungmin’ should obey absolutely the national law and ‘sovereignty’ and never resist those and even provide their properties and lives in the case of need of the state. The students suggested the ‘patriotism’ as ‘spirit of kungmin’ and ‘duty of kungmin’ which ‘kungmin’ should possess in order to realize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an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and preserve and develop ‘civil rights’ and ‘sovereignty’, especially ‘sovereignty’. ‘Patriotism’ was defined as natural emotion which originated from self-love and extended to in turn love for family, love for kinship, and love for country. However, the students insisted that ‘patriotism’, even though it was natural emotion, could be manifested with certain motive. The member of the state had to be allowed to participate in politics so as to manifest and transform “natural patriotism” into “political patriotism”. Their contention that ‘kungmin’ would have ‘patriotism’ when the polity of the state became not autocracy but constitutional was suggested in the same context. Education was mentioned frequently as the other way to form ‘patriotism’. To form ‘patriotism’ by education meant practically the building of ‘kungmin’ who had ‘patriotism’. The students seemed to argue that education could make ‘kungmin’ who would carry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an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and at the same time, the intellectuals already educated like themselves could be the agent who would carry reform as ‘k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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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유학생의 의무가입 의료보험에 대한 인식 및 이용에 관한 연구

        이아름 ( Lee Arum ),신재호 ( Sin Jae Ho ),장경헝 ( Zhang Jing Heng ),임기억 ( Ren Ge ),김민정 ( Kim Minjeung ) 한국금융소비자학회 2019 금융소비자연구 Vol.9 No.3

        교육통계서비스에 의하면 2019년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외국인 유학생은 16만 165명으로 전년대비 1만 7,960명이 증가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늘어나는 유학생 숫자만큼 외국인 유학생들이 국내에 거주하는 동안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시스템 및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일환 중 하나는 국내 대학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유학생 질병 상해보험’에 가입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생 보험(혹은 질병 상해보험)’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으로써 국내유학생활 중에 발생하는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경제적인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연구에서는 과연 외국인 유학생들이 이 보험제도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가 어떠한지 전반적으로 알아보고, 이용 현황이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국내 체류 중인유학생들 중 대표적인 유학생 집단인 중국유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와 면접조사를 진행하였고, 주요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보험용어 이해도, 보장내용이해도, 보험청구방법 이해도, 보험청구서류 이해도 모두 2점대로 대부분 보험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질병이나 상해로 인해 보험금을 청구한 경험 여부에 대해서는 79.0%가 없다고 응답하였다. 셋째, 보험 가입 시 충분한 정보제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아니라고 응답한 비율이 71.0%로 높게 나타났고, 유학생 보험의 정보전달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서는 54.8%가 학교상담이 가장 좋다고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본 제언은 다음과 같다. 유학생들이 보험보장 내용 등과 같은 정보제공에 있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내용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언어지원서비스가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2021년 2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된 외국인 유학생의 국민건강보험 의무가입이 시행되었을 때, 외국인 유학생들이 보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점을 생각하여 제도시행 전 이러한 부분을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According to the education statistics service, the number of international students in Korea’s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in 2019 was 16,165, an increase of 17,960 from the previous year. As the number of international students increases, a system are in place to ensure that international students can live in a safe environment while living in Korea. This is that international universities are obliged to enroll in the International Student Disease Accident Insurance upon admission to Korean universities. International Student Insurance is a foreigner who is staying in Korea to guarantee economic loss from accidents or illnesses while studying in Korea. In this study, we tried to find out the overall recognition of foreign students and their understanding of the insurance system, and how they are used. Among the international students staying in Korea, we conducted an online survey and interview with a representative group of Chinese students. The main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understanding of insurance terms, understanding of insurance contents, understanding of insurance claims method, and understanding of claims documents were 2 points. Second, 79.0% of the respondents said they did not claim insurance due to illness or injury. Third, 71.0% of the respondents answered that they thought they received sufficient information when they signed up for insurance, and 54.8% said that school counseling was the best method for delivering information on international student insurance. Based on these results, this suggestion is as follows. In order for international students to provide information such as insurance coverage, it should be easily solved and delivered, and various language support services should be activated. In particular, when foreign students who are temporarily deferred until the end of February 2021 are required to enroll in the National Health Insurance, they should be able to make up for these areas before implementing the system, considering that they do not understand the insu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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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1910년 대한제국 관비 일본유학생의 성격 변화

        이계형(Gye-Hyeong Lee)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 2008 한국독립운동사연구 Vol.0 No.31

        19세기말 동아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부딪치자 서둘러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서구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문명을 배워오거나, 근대적인 개혁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한국은 이웃한 일본이나 중국보다 늦게, 비록 일본에 국한되었지만, 개항이후부터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의 유학정책은 계획적이지 못하고 국내의 정치적인 부침에 따라, 그리고 재정 부족문제로 파견과 중단을 반복하며 파행적으로 이뤄졌다. 결국 1903년 이후 유학생 파견은 중단되고 말았다. 1904년 10월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의 한국 침략이 가속화 되자, 고종은 교육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칙임관?주임관들로부터 子孫???弟?姪 가운데 16세 이상 25세인 자를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황실자금을 이용한 관비 일본유학생 50명을 선발, 파견하였다. 이에는 기존 관비유학생으로 유학 중인 4명도 포함되었다. 관비유학생 46명은 경성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하여 ‘特設 韓國委託生科’에서 일본어를 비롯하여 근대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다. 엄격한 군대식 통제와 규율을 적응하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중도 포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관비유학생들이 견뎌내기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국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겨 보호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었고, 경성부립제일중학교 교장의 한국 유학생 비하발언이었다. 관비유학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자기들의 억눌림과 분노를 표출시켰다. 동맹휴학은 4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26명은 복교되었지만 이를 주도하였던 10명은 관비유학생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식민권력으로 등장한 통감부는 일본 외무성 관리를 통한 관비유학생의 관리 감독을 강화시켜가는 한편, 1907년 3월 ‘학부소관 일본국 유학생 규정’을 만들어 관비유학생 뿐만 아니라 급증하는 사비유학생까지 통제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유학생들은 일본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모멸을 감내하고 저항하면서 민족의식과 배일의식을 형성시켜 나갔다. 한편, 통감부는 관비유학생의 결원이 생기면 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동맹휴학으로 말미암아 퇴학 조치된 관비유학생의 결원을 메운 것이 전부였다. 1908년 당시 중등학교의 급증으로 학생들의 진학문제가 사회문제로 번지자, 유학생 규정을 개정하여 시험대상자를 고등보통학교 이상 동등의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 출신자들만 지원토록 하였지만, 이를 제대로 실시하지도 않았다. 통감부는 한국을 식민체제로 전환시켜 가는 와중에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을 길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1909년에 들어 식민체제를 가속화시켜 가는 와중에 관비유학생을 선발하여 고등실업교육을 시키는 정도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로 7, 8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친 관비유학생이 귀국하였지만, 더러는 한국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식민권력의 하층 지배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한국은 관비유학생을 통한 부국강병을 모색하였지만,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스스로 문명화를 이룩하지 못한 채, 그 빛을 바래고 말았다. As East Asian countries faced the aggression of European imperialism, they sent the students to the European countries and learned Western civilization to enhance national prosperity and defense or tried to actively receive Western civilization together with modern reform. Although the country to send the students was limited to Japan, Korea started to send the students to a foreign country behind Japan or China after the opening of a port. But its policy was not deliberate and sending the students to Japan was performed creepingly according to the domestic political ups and downs and due to a financial crunch. In the end, sending the students abroad stopped after the year of 1903. As Japan's invasion of Korea accelerated with the outbreak of the Russo-Japanese War in October, 1904, Gojing carried out the reform of the educational system and selected and sent 50 students among his descendants, niece's husbands, brothers and nephews with the age from 16 to 25 to Japan by the government taking advantage of funds of the Imperial Household. They were recommended by the senior officials. Four existing students sent to Japan by the government were included among them. 46 students by the government entered the First high school established by Kyeongseong Province and received an modern education including the Japanese language at the class for specially trusted Korean students. Some students who were not adapted to the strict regulation and rules of military way gave up studying there halfway. But the most difficult distress that the students couldn’t bear was the actual that Korea was robbed of its diplomatic rights by Japan and was under Japanese rule and the school principal's demeaning comments about Korean students. The students revealed their wrath through a strike. The strike lasted for 4 months and 26 students could return to school, however, 10 students who led the strike were deprived of their qualification. The Residency-General which appeared as colonization might after the second Korea-Japan Agreement in 1905 tightened control of the students studying abroad by the government by the management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Japan, while it made the regulations on the students studying in Japan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tried to control the students sent abroad by the government as well as the students studying abroad at their own expense who increased rapidly in number. Korean students put up with and resisted disdain of the Japanese in such a situation, and formed their national and anti-Japanese consciousness. In the mean time, in spite that the Residency-General had to fill a vacancy, when a position of the students studying abroad was vacated, it didn't perform it. what it had done was to have filled up vacancies of the students studying in Japan who were expelled from school. As entering a school of higher grade due to the rapid increase of the number of students of a secondary school spread to a social problem, it revised the regulations on the students studying abroad, and therefore only the high school graduates or the higher school graduates as qualified persons can apply for studying abroad, however, it didn't perform the regulations satisfactorily because it didn't want to cultivate a highly educated person during its transforming Korea into a colonial system. During its accelerating the colonial system only in 1909 it selected the students to be sent abroad by government and made them receive industrial education. The students who were sent abroad by the government and finished their study returned home before and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Some of them were engaged in an independence movement, however, most of them degenerated into lower government officials of colonization might. In the end, Korea groped for enhancing the national prosperity and defense, however, it degenerated into a colony and couldn't accomplish civilized one by 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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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생의 대학생활적응에 대한 연구

        윤지원(Yoon, Jiwon),김상욱(Kim, Sangwook) 영남대학교 중국연구센터 2017 중국과 중국학 Vol.- No.32

        본 논문은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는 학업적 적응, 정서적 적응, 문화적 적응, 그리고 사회적 적응으로 구성된다. 배재대학교의 유학생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중국인이 아닌 유학생의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가 중국인 유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둘째, 중국인 여학생의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가 남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셋째, 학년별로 보면 1학년이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가 가장 높으며 2학년과 3학년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낮아지다가 4학년이 되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넷째, 유학기간별로 보면 2년-3년 기간의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가 가장 높으며 유학기간이 길어질수록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는 낮아지고 있다. 다섯째, 거주형태별로는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에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학교 밖에서 혼자 자취하는 경우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와 같은 발견은 향후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교육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학년별로 나타나는 유학생대학생활적응지수의 U자 형태는 전공 수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This paper studies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includes the academical adaptation, the emotional adaptation, the cultural adaptation, and the social adaptation. We research the foreign student in PaiChai university. The results as follows. First,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of the non-Chinese foreign student respectively higher than the Chinese foreign student. Second,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of the female respectively higher than the male. Third,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of the first year class is highest, the second year class and the third year class more and more low, and the fourth year class higher than the third year class. Fourth,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of the second-third year is highest by the study abroad period, the study abroad period more longer,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more low. Fifth, the foreign student college life adaptation index of the school dormitory respectively higher than the outside residence by the residence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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